“인생은 모험이다. 그러나 미래의 계획을 확실히 세우고 자신을 가꾸어 나간다면 그 모험도 즐거울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신입생 신세용씨(26). 그의 모험은 1988년 중학교 1학년 때 시작됐다. 미술대회 입상으로 미국 유학을 떠난 두 살 차인 형이 부러워 부모님에게 졸라봤지만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식 둘을 유학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배만 타면 미국으로 갈 줄 알고 무턱대고 짐을 꾸려 가출까지 감행하는 아들의 의지에 부모는 두손을 들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입학한 학교는 문제아들이 모이는 사관학교. 체벌이 공개적으로 허용되고 대마초는 3차례까지 피워도 봐주는 그런 학교였다. 동양인은 그 한 명뿐. 동양인이라곤 TV에서만 보았던 ‘미국애’들의 차별은 견디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그 녀석들에게 지기도 싫었다.
“입학한 첫날 식당에서였다. 그곳 친구들과 어울려 보려고 애들이 가장 많은 테이블을 찾아가 한가운데 앉았다. 그런데 그 테이블에 있던 20명 정도의 애들이 모두 식판을 들고 자리를 옮겨갔다. 눈물이 흘렀지만 그 자리에서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
그곳에서의 2년간 생활은 악몽 같았다. 이틀에 하룻밤은 울면서 잠들었고 매일같이 싸움질을 했다.
고등학교 과정은 보스턴, 하와이, 버지니아 등으로 옮겨다녔다. 보스턴의 G D 스쿨(Governor Dummer School)에는 마약과 싸움대신 한국인 친구와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문제는 있었다. 자신이 미국으로 무작정 떠나올 때처럼 맹목적으로 미국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싫어서 92년에는 ‘나는 한국인이야’라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은 1백만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밀리언셀러가 돼 출판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건강이 악화돼 요양차 하와이로 학교를 옮기기도 했으며 결국 버지니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은 영국의 옥스퍼드를 선택했다. 하버드와 예일대에서도 입학 허가가 났지만 따뜻함이 그리워 형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정치경제철학과(PPE)를 졸업하고 철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학부때는 한인학생회 초대회장과 한인회 학부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의 뒷면에는 남모르는 고생이 있었다.
이곳저곳 돈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왕복비행기 삯을 따져도 생활비가 필요 없는 한국생활은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절약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모으면 그 ‘밑천’을 들고 다시 영국으로 향했다.
이렇게 12년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그의 모험은 계속됐다. 영국에서 알게된 한국 인큐베이팅회사에 취직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MBA 과정에 입학한 것이다. “MBA는 금융시장의 실체를 익히고 리더십과 인적 네트워크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약점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로스차일드가 되겠다는 신세용씨. 특별히 커리어 관리에 신경을 쓰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