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퍼포먼스․104
-노숙자-
吳 岐 煥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는 인사동엘 간다. 3호선 안국역에서 6번 출구로 나온다. 늦가을이 나를 휘감는다. 이즈(학고재), 쌈지길, 수도약국을 지나면 보리수다방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방 안은 만원이다.
섬에서 섬으로 떠돌다가 이날이오면 인사동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생진 시인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다.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눈인사를 나누며 빈 의자에 앉는다. 오천 원 선금을 내고 오미자차를 주문한다. 새큼 달착지근한 차 한 모금으로 속을 데운다.
오늘로 104번째 시낭송회다. 9년 가까운 세월을, 상혼이 들끓는 인사동에서 돈 안 되는 시를 읊고 또 들으러 모여든다. 오늘의 주제는 ‘노숙자’다. 전철역을 나서자 한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던 생각이 난다. 시인은 낡은 점퍼에 찌그러진 모자를 눌러쓰고 마이크 앞에 선다. 그 옆에는 남루한 차림의 중년사내가 골판지위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우리고 있다.
시인은 팜플렛을 펴들고 설명에 열중이다. 그 안에는 〈노숙자의 병아리〉〈추석 다음 날〉〈쫓겨난 기분〉〈노숙자의 보관함〉이란 시가 인쇄되어있다. 다음 쪽에는 ‘서울역(92009.10.26/월 아침 6시)’ 이라고 쓰여 있는 제목아래 사진들이 있다. 배식하는 모습, 노숙자들이 쭈그리고 앉아 식사하는 모습, 오늘 아침 무료신문들, 이런 현장을 담기위해 새벽 4시에 방학동 집을 나와 오전 9시까지 서울역 지하도 근처를 서성였다고 말한다. 그 다음 쪽은 외국인 노숙자 사진들이다.
그 중에는 ‘미국/카디자 윌리암스:하바드에 들어간 소녀 노숙자’의 사진. 그는 18세 흑인 여인. 엄마가 14살에 낳은 사생아. 노숙하면서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12곳의 학교를 전학한 뒤 하바드 대학을 지원했다. 그를 인터뷰했던 교수는 카디자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제2의 미셀 오바마를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말자고 입학사정관들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진은 ‘러시아/레오니드 코노발노프’의 사진. 그는 하루에 2천개의 빈병을 1년간 모은 돈이 5천7백만 원이나 되었다. 러시아가 경제위기 때 국민들은 실의 속에서 술을 더 가까이 하면서 늘어난 빈병을 모아 가난 탈출을 시도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증권투자에 성공하여 증권거래인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노숙인 사진이 배치되어있다.
사진설명을 마치면서 “오늘 조선일보에 내 시가 네 편이나 실렸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시인 이생진을 알아주는 모양 입니다”라면서 A용지에 출력한 시 네 편을 신문지에 붙여놓고 자작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그가 들고 있는 신문지가 파르르
떤다. 신문지가 떠는 게 아니라 시인의 손이 떨린다. 신문지도 떨고 시인의 손도 떤다. 인사동도 출렁이고 가을도 출렁인다.
내가 매일 아침 걷는 산책길 야산에
어느 노숙자가 널판때기를 임시로 보관함을 집채만케
떡갈나무 사이에 매달았다.
(중략)
노숙자가 많은 서울역 지하도를 왔다 갔다 했지만
누가 그 주인인지 찾아낼 재간이 없었다
어느 날은 목포역 가로수 밑에 앉았다가도 그 생각이 벌떡 나서
노숙자들의 얼굴을 뒤져봤다 그런데
서울 노숙자나 목포 노숙자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어서
이러다간 내가 노숙자가 되겠구나 하고 얼른 돌아왔다
나는 돌아왔지만
그 노숙자는 눈이 와도 돌아올 것 같지 않다
-노숙자 보관함-
기타가 운다. 음악 하는 현승엽의 기타 줄도 떤다. 그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를 부르고 시인은 골판지에 앉은 중년 노숙자와 대작을 한다.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 앙코르”를 연호한다. 마이크 앞에 다시선 그는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로 화답한다. …깊은 밤 조각배에서 부터는 이곳저곳에서 따라 부른다. 나도 부른다. 어느새 관중들은 합창단원이 된다. ‘보리수합창단’의 노랫소리를 인사동이 듣는다. 가을밤이 깊어 가는데 인사동엔 목포의 눈물이 흐르고 삼학도엔 파도가 덮친다. 그런가하면 시인은 때로는 노란 목도리를 두르고 『반 고흐, 너도 미쳐라』라고 외치기도하고, 삿갓을 쓰고『김삿갓, 시인아 바람아』를 읊기도 한다. 이렇게 몰입하면서 시를 쓰고 또 뜨겁게 읽는다. 그때도 손이 떨린다.
시인은 팔십 고개를 넘어섰는데도 아직 철이 덜든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씩 다방주인 눈치를 보면서 이런 판을 벌린다. 아트사이트에서 2년, 시인학교에서 1년, 지금은 보리수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시인은 이날이 지나면 인사동을 떠나 또 섬으로 간다. 자기 모습을 찾아 섬으로 간다. ‘걸을 수 있는 한 섬으로 섬으로 간다.’
시인은 말한다. ‘미치는 일, 사랑하는 일, 그리고 죽어버리는 일, 그래서 나는 인사동을 찾을 때마다 고흐의 열정 같은 것이 없나하고 화랑을 누빈다. 내게 모자라는 것, 그것을 나는 섬과 인사동에서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고흐처럼 시에 미치는 일이다.’ 라고, 그는 시에 몰입해서 한 편의 시를 쓰고 그 속에 빠지고 싶어 한다.
나는 오늘도 관람석에서 시인과 만나고 미치도록 몸부림치며 미치도록 몰입해서 쓴 시를 읽는다. 나도 미치도록 몰입하여 글 한편을 쓰고 싶다.
오늘은 밤바람이 더 시리다.
창작수필 10.봄 호 게재 2009.011.04(14.1매)
인사동 시낭송회
2009년 10월 26일 (월) 오후 7-8
인사동 보리수 갤러리카페
박희진:디오게네스의 노래
이생진:노숙자의 밤
음악/현승엽
첫댓글 골판지에 앉아서 막걸리 먹던 놈이 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