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거사의 모습

평범한 불교 신도로서 승려 이상의 수행을 하여 천추에 빛난 이들이 이따금 있어 왔습니다. 하기야 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만 하여도 유마 거사는 탁월한 지혜를 가졌지 않겠습니까? 중국 불교사회에 있어서 유마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했던 방거사가 있어 오늘날까지도 그의 저서인 방거사어록이 우리들의 잠을 깨우고 있지 않은가요. 방거사는 숙세의 좋은 인연으로 하여 중국 사외에 불교가 현란하게 꽃 피우고 있을 전성기에 태어나 당대의 유명한 선지식인 마조스님과 석두스님 회상에서 수행하였으며, 약산선사, 단하선사와 선이의 벗이 되었습니다. 방거사는 처음엔 아주 부유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견성한 뒤 뜻한 바 있어 논과 밭은 이웃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버리고 가재도구는 강에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초가삼간에 몸을 담고 살며 돗자리를 만들어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그가 깨달은 뒤에 부인과 남매에게도 철저한 수행을 시켰습니다. 방거사가 마조스님에게, "온갖 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은 이가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마조스님이 "그대가 한 입으로 서쪽 강의 물을 다 마신 연후에 말하여 주겠다."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방거사는 활연히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때 남긴 시가 있습니다. 일용사가 다름이 없어라. 오직 내 스스로 만나 함께 하네. 모든 것 취하고 버릴게 아니니, 곳곳마다 펴고 닫을 것 없으랴. 주자를 누가 이름 하느냐. 구산에 점이가 끊어졌구나. 신통과 묘용이 물 긷고 땔나무 나르는 것일세. 방거사가 늙었을 때 딸 영조를 데리고 호북 영주 어느 바위 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방거사가 이 세상과 인연이 다 하였음을 직감하고 동굴 밖에 있는 영조에게, "영조야." "네." "정오가 되면 알려 주렴." "정오에 뭘 하실려고요?" "그저." "네." 이런 썰렁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정오가 되었을 때, "아버지, 정오가 되긴 했는데 구름이 끼인데다 일식을 하는지 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하고 아뢰었습니다. "그래?"하시며 방거사가 직접 살펴 볼 양으로 밖에 나왔습니다.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정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동굴속 자기 자리에 들어가니 딸 영조가 그 자리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내가 너에게 속았구나."하며 딸의 시신을 거두어 다비를 하였습니다. 영조의 평소 모습으로 탁발하는 스님이 왔을 적에, "무엇을 구합니까?" "보리(麥)을 얻으러 왔습니다." "스님, 보리(智慧)는 어떠하고요?" 이리하여 탁발승은 돌아갔습니다. 어느 해질 무렵에 객승이, "하룻밤 새우고 갈 방을 구합니다."하였습니다. 영조가 물었습니다. "삼계가 원래 공한데 무슨 방을 구합니까?" 그 스님은 선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영특한 딸을 먼저 보내고 스스로는 일주일 뒤에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마침 평소 친한 그 고을 태수가 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방거사가 피로하여 태수의 무릎을 베고 한참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아 짤막한 게송을 외고 바로 앉아 대적삼매에 들었습니다. 태수는 친구가 조사열반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며 여법히 장례를 치루고 그 유골을 방거사 부인에게 보냈습니다. 그 노파는 남편과 딸을 한번에 잃고도 슬퍼하지 않고, "무심한 사람들이구나. 한마디 인사도 없이 가다니...."하더랍니다. 태수가 다시 방거사 아들에게 이 소식을 일렀습니다.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던 그는, "아 그래요. 먼저 가셨군요."하고는 괭이를 지팽이처럼 집고 선 채로 입적하더랍니다. 이렇게 한 가정의 온 식구가 불교의 진수를 터득하기란 쉬운게 아닙니다. 참으로 귀한 인연들입니다. 출처 : 修禪 제1442호 푸른 소나무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