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임금 때 암행어사로서 많은 일화를 남긴 어사 박문수(1691~1756)가 젊었을 때였다.
영남어사의 임무를 띠고 방방곡곡을 누비며 민생을 살피고 탐관오리를 숙청하는 등 바쁜 임무를 수행하느라 고을마다 길이 있고 동네가 있는 곳은 모두 찾아 다니며 민생을 살폈다. 그러던 중 한번은 경상도 어느 산골 마을을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길을 떠났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아무리 걸어도 첩첩이 산만이 앞을 가로막아 도무지 인가가 나오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 박어사는 더욱 걸음을 재촉하였으나 갈수록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며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어디선가 짐승들 우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박어사는 겁이 났다. 이러다가는 짐승들 밥이 되어 귀신도 모르게 죽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저 멀리를 보니 산 한 모퉁이에 불빛이 보였다. 박어사는 무척 기뻤다.
틀림없이 불이 있는 곳에 인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불을 목표로 하고 불이 반짝이는 곳을 향해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얼마 후 불이 비치는 곳에 당도해 보니 과연 조그마한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박어사는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산중에서 잃은 나그네인데 하룻밤 자고 갈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그 집안에서 한 여인이 나와서 하는 말이, 지금 이 집에는 남편이 출타 중이어서 자기 혼자만이 있는데 외간 남자를 재울 수 없으니 딴 곳으로 가보라고 거절을 했다. 박어사는 이 외진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같으니 제발 아무데서라도 재워 달라고 애원하였다.
한참 망설이던 여인은 그러면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엌에 나가더니 저녁밥을 차려 왔다.
배가 고픈 박 어사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상을 물리자 여인은 자기 집에는 잠 잘 곳은 오직 그 방 한 칸 뿐이어서 도저히 재워 줄 수는 없지만 사정이 딱해서 재워 주는 것이니 박어사는 윗목에서 자고 여인은 아랫목에서 잤는데 절대로 선비의 도리를 지켜서 딴 마음 먹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더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에 비할까 인간 세상에는 이렇게 아리땁고 예쁜 여자는 없을 정도로 곱고 어여쁜 미인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일이 있은 지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박어사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잘만한 적당한 집을 찾아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 일이 있은 지도 몇달이 지난 어느 날, 박어사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잘만한 적당한 집을 찾아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그 집에도 남자는 장사 차 출타하고 여자 혼자만이 있는 집이었다. 여인은 반갑게 어사를 방으로 맞아들여 저녁상을 잘 차려 와서 저녁밥을 드는 어사 옆에 앉아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식사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상을 물리자 윗방에 어사의 자리를 마련하고 잘 자라는 인사를 여러 번하고 방문을 닫았다.
어사는 먼 길을 걸어오느라 피곤해서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가만히 방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속옷 바람의 주인 여자가 어사의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 아닌가, 어사는 몇 달 전 싸리 회초리로 매 맞은 생각이 불현듯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흐트러진 주인 여자를 보고 호령을 하였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이게 무슨 짓이요! 오륜을 저버린 이 파렴치한 행동은 도저히 용서 못 할 일이니, 냉큼 밖에 나가 싸리 회초리를 꺾어 오시오." 하고 위엄을 갖추었다. 여인은 어사의 위엄에 기가 질려 시키는 대로 회초리를 만들어 왔다. 어사는 여인의 종아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 때였다. 다락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 장정이 손에 시퍼런 도끼를 들고 방으로 뛰어 내려와서, 방바닥에 엎드려 어사에게 말을 했다.
"손님, 저는 저년의 남편입니다. 소문에 저년의 행실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위를 확인해서 이 도끼로 요절을 내려고 며칠째 다락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오늘 하마터면 귀한 분을 해칠 뻔했습니다. " 하는 것이었다. 박어사는 온 몸이 오싹했다. 전에 싸리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훈계를 받지 않았던들 오늘 이런 난을 피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그 산속의 여인이 더욱 고맙고 신기하기만 하였다. 이야기로는 그 여인이 박어사의 조상이며, 훗날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몸소 사람으로 나타나 교훈을 준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