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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0 moment in Wrestling History TSN.ca에서 선정한 지난 프로 레슬링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순간 top 30을 TSN공식 websiTe에서 발췌/번역한 글 입니다. 아시는 내용이 '대부분'이겠지만 프로 레슬링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어느정도 참고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
30. 스티브 오스틴 떠나다 90년대 후반, 헐크 호건이래로 가장 큰 fan들의 사랑을 받은'스톤콜드'스티브 오스틴은 지난 2002년 6월, RAW 생중계가 시작되기전
'자의'로 WWF에서 걸어나오게 된다. 오스틴의 실제 gimmick과도 유사할법한 일이라 각본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또한, 사업의
아이콘이였던 오스틴이 떠남으로서 WWF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전 WCW 회장이였던 에릭 비숍의 등장, 스맥다운대 RAW의 각본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등등. .
29. 9월 11일 사건후 스맥다운 2001년 9.11사건으로 전 미국이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된다. WWF도 예외는 아니였다. 당초 계획과는 달리 9월 11일 녹화하기로한 스맥다운이 취소되고 9월 13일 생중계!로 스맥다운이 중계 되는데 ..이날 많은 WWF 슈퍼스타 들은 자신의 캐릭터 성격을 버리고 진정으로 9.11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WWF의 회장 빈스 맥마한도 감동적인 MIC.WORK를 보여주었으며 많은 레슬러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국가를 부른 릴리안 가르시아 또한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28. 커프만 vs. 로러 우리는 대중적인 스타 이면서도 레슬링의 세계에 나타났던 제이 레노, 로드맨, 말론등을 잊지 못하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1982년 인기 스타와 레슬러간의 진짜 싸움이 있었으니 바로 코미디언 앤드 커프만과 제리 로러가 퍼포먼스중에 실제로 싸웠던 .. 웃지 못할사건이다. 로러는 자신을 비웃은 커프만을 의자로 공격했고 ... 커프만도 커피잔을 던지며 응수했다. 확실한 당시 경황은 알려진바 없으나 이는 대중문화의 '흥미있던'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될것이다. 심지어 락가수 REM은 이것을 노래-가사로 쓰기도 하였다.
27. Alundra Blaze가 WWF 여성 타이틀 벨트를 던져 버린 사건 1995년, 빈스 맥마한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드는 사건이 또한번 터지게 된다. 바로 WWF의 여성 타이틀 벨트가 WCW 방송중에 쓰레기통에 쳐밖힌것이다. 前 WWF 여성 챔피언이였던 Debbie Miceli( =Alundra Blaze, 우리에게는 메두사로 잘알려져 있죠. )는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웬디 리처나 페이블러스 물라같은 이의 전설이 묻어있던 그 타이틀 벨트를 가차없이 ~ 쓰레기통 바구니에 던져 버린다. 그이후 양 단체간의 대립은 한층더 심화되었고 맥마한은 이런일이 다시는 일어나길 원치 않았다. 그뒤에 어떤일이 벌어졌는지는 브렛 하트에게 물어보는게 좋을 것이다.
26. 호건 vs. 슬러터 여러가지 점을 고려해봤을때, 프로 레슬링은 삶을 예술적으로 표방하기도 한다. 1991년에 열린 레슬매니아 VII에서의 챔피언쉽이 그랬다. 미국이 91년 페르시아만의 Gulf 전쟁을 치르자 슬러터는 이라크의 지지자로 돌변하게 된다. 이 사업의 역사적으로도 이 Gimmick은 가장 많은 fan들의 반응을 받기도 하였다. 슬러터( 본명 Robert Remus: 아시겠지만 미국인 입니다. )와 그의 가족은 이시기에 많은 죽음의 위협과 협박편지를 받기도 하였다. 때문에 빈스 맥마한 호건 vs. 슬러터 경기가 열릴 장소를 야외 로스엔젤러스 콜로세움에서 안전이 보장되는 로스엔젤러스 스포츠 아레아로 변경하기도 했다. 베테랑 이였던 슬러터는 이 시합에 대한 걱정을 하였지만 결국 헐크매니아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그뒤 슬러터는 이라크 지지자의 Gimmick을 빠른 시간내에 버리게 된다.
25. 60분 철인경기의 성사 96년 3월레슬매니아 12의 메인-이벤트, 이경기에서'HBK'숀 마이클즈는 브렛 하트와의 60분간의 사투끝에 무승부를 기록. '어린 시절의 꿈'이 수포로 돌아갈듯 했으나 연장전에서 브렛 하트를 누름으로서 '꿈'을 이룩하게 된다. 애초에 이 경기가 60분동안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두 베테랑은 대단한 기술과 쇼맨쉽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허나 브렛은 이 경기후에 WWF와 적지않은 갈등을 갖게 된다.
24. 빈스맥마한, 법정에 서다 1993년 WWF는 국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TV에서 유명하게 소개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는 법정에 관한 문제 때문이였다. 연방 검찰관들은 1985년과 1991년 사이 레슬러에게 금지된 약물인 스테로이드를 먹도록 한 WWE총수 빈스 맥마한을 기소, ( 인기 절정의 호건을 포함한 )많은 선수들과 빈스 맥마한은 함께 법정에 서게 된다. 하지만 결국 94년 연방법원은 맥마한과 타이탄 스포츠에 무죄를 선고했고 맥마한또한 법정에서 할애한 시간덕에 WWF의 각본에 참여하지 못한 책임을 묻기도 하였다. Dr. George Zahorian( 빈스의 고소인 )과 호건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많은 결점과 선수들의 저항으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23. 레슬매니아 10, 새로운 시대의 시작 94년,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레슬매니아 10는 새로운 시대의 초래를 의미했다. 숀 마이클즈와 레이져 라몬은 WWF PPV역사상 처음으로 '사다리 경기'의 막을 열었으며 HBK의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요코주나가 갖고 있는 WWF 타이틀에 렉스 루거와 브렛 하트가 도전, 다시 브렛 하트의 품으로 타이틀이 돌아오게 되면서 새로운 WWF 세대의 막이 올라서게 된다. 특히 브렛 하트의 타이틀 탈환 후에 많은 선수들이 나와 축하해주는 장면은 이를 더 부각시켜주었다
22. 쉐인 맥마한 나이트로 무대에 서다 2001년, WWF가 WCW를 흡수하게 되면서 3월 26일 열린 마지막 WCW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스포츠 엔터테이너먼트 역사상 처음으로 한 장면이 두( TNN과 TNT에서 방송되는 )쇼에 생중계 되는 진풍경을 보여주게 된다. TNN에서 방송하던 RAW에서 빈스 맥마한은 세계적인 갑부인 테드 터너의 회사를 눌렀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여주나맥마한의 승리의 순간도 잠시, 아들인 쉐인 맥마한이 플로리다 해변의 나이트로에 등장! 자신이 터너로부터 회사를 인계받았다고 언급한다. 쉐인은 WCW를 다시 일으켜 빈스의 Ass를 걷어차주겠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론 이날 이후 '진정한'WCW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21. 헐크 호건 vs. 더 락 2002년 2월, 맥마한에 의해 nWo와 헐크 호건이 다시 WWF의 TV에 나타나게 된다. 다시 돌아온 호건은 WCW에서의 악역 gimmick을 그대로 가지고 왔으나 fan들의 환호는 여전했다. 호건은 예상대로 더 락과 대립, 꿈의 승부를 기약하나 트럭으로 락을 공격하는등 nWo의 비열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레슬매니아 18에서 스카이돔으로 돌아온 호건을 캐나다 fan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전례 없는 환호에 화답 하듯 호건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 최고의 기량을 펼치게 되며 비록 Rock bottom에 무릎 꿇었지만 WWF fan들은 헐크매니아를 되찾은것만으로도 만족했다.
20. MSG에서의 Kilq포응 클리크( Kliq )는 WWF내에서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비공식 모임 이였다. WWF의 최고의 스타중 한명이였던 숀 마이클즈와 디절, 레이저 라몬, 트리플 H, 1-2-3 키드등은 90년대 중반 ( 친분적인 모임 성격의 )더 클리크를 만든다. 허나 이 그룹은 WWF 백스테이지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발휘하여 WWF측을 당혹스럽게 만든것으로 유명하다. 1996년 5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하우스 쇼에서 디절과 레이저 라몬은 WCW로 이적하기전 마지막 경기를 치루게 되는데 이날의 대전 상대는 다름아닌 숀 마이클즈와 헌터였다. 경기가 끝난후 그들은 친구들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자신들의 캐릭터 성격을 버리고 서로 포응을 나누게 되었다. 헌데 이게 문제거리가 되었다. 링위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 성격을 버린것은 '프로답지'못한 행동이였고 WWF임직원과 빈스 맥마한은 이를 용납하지 못했던것이였다. 디절과 라몬은 WCW로 가게 되었고 당시 HBK는 챔피언이자 '흥행보증 수표'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죄는 트리플 H 한사람이 책임지게 되었고 96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하기로 되어있던 HHH 대신에 신예 스티브 오스틴이 우승을 거뭐지게 된다. 나머지 일들은 여러분들이 더 잘알 것이다.
19. 헐크 호건, WCW에 나타나다 1994년 6월 11일 프로 레슬링계가 낳은 당대 최고의 별, 헐크 호건이 테드 터너의 WCW와 계약하게 된다. 호건은 첫번째 상대, 릭 플레어를 누르고 WCW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거뭐지었으며 또한번의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호건의 성공적인 '이적'이 이루어지자 WWF의 많은 스타들이 이를 발판삼아 더많은 연봉을 약속하는 WCW로 이적하게 된다. 같은해 랜디 새비지등도 WCW와 계약, 이러한 계기로 WCW는 더 유명해졌고 관중들 또한 WWF에서 WCW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호건의 WCW 도착이'월요일밤의 전쟁'의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된샘이다.
18. 스톤 콜드 vs. 마이크 타이슨 지난 85년 첫 레슬매니아에서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메드 알리가 중요한'집행인'역활을 해서 관심을 이끈적이 있었다. 13년뒤인 98년, 레슬매니아 14에서 유사한 일이 진행되어 WWF는 전세계적인 이목을 받게 된다. 이 경기가 열리기전 마치 권투계가 그런것과 같이 보스턴의 Fleet 센터에서는 선수 조인식및 기자회견이 있었다. 주먹다짐을 하려던 숀 마이클즈와 오스틴을 타이슨이 저지했고 이날 장면은 TV를 통해 전세계로 방송되었다. 이런것들로 인해 98년 WWF는 한층더 강력한 메이져단체로서 발전하게 된다.
17. 폴리, 데스 매치의 왕 1995년 8월 20일 믹 폴리( 캑터스 잭 )이 IWA 킹 오브 데스매치 토너먼트 에서 우승하게 된다. 이날 경기에서 쓰인 링은 철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압정, 폭약, 테이블등의 도구가 사용되어 링위에서의 잔인하고도 새로운 모습을 시도하게 된다. 토너먼트에서 폴리는 테리 고디, 소지 나카마키등을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 테리 펑크와 맞붙게 된다. 두선수는 철사에 엉켜 피로 온몸이 물드는'혈투'를 벌였으며 폴리가 펑크를 테이블( 폭약 장치가 되어있던 )에 쳐밖으면서 승리를 거뭐지게 된다. 나중일이지만 폴리는 이날 수여한 트로피 덕분에 WWF에서 진정한 '하드코어 전설'로 제역활을 하게 된다.
16. WWF의 WCW인수 90년대 이전의 레슬링사업은 미국의 다양한 지역안에서 각기 다른 프로모터에 의해 경쟁되고 또 진보하였다. 당연 엔터테이너먼트를 앞세운 WWF가 레슬링사업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면서 레슬링하면 WWF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허나 90년대 중반에 들어서 이 WWF라는 제국에 맞선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테드 터너의 거대한 재력을 바탕으로한 WCW 였다. WWF 전성기 시절에 뛰던 슈퍼스타 들이 대거 이적, WCW에서 뛰게 되었고 좀더 진보적이였던 WCW 나이트로는 nWo를 앞세워 시청률 전쟁에서 경쟁 프로그램인 WWF RAW를 83주동안 연속으로 누르게 된다. 하지만 2000년에 이르러 WCW는 관리 부족과 늦은 세대 교체로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 테드터너의 CNN과 합병한 )타임 워너/AOL사는 WCW를 다른 회사에 인계하기로 협상, 2001년 3월에 WWF가 그'기회'를 잡음으로서 2-메이져 단체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15. 알리 vs. 이노키 이 한판승부는 1976년 6월 26일에 일어났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中 한명인 안토니오 이노키와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메드 알리가 링위에서 한판 붙게 된것이다. 이노키는 이미 유도 금메달리스트와 승부를 겨룬적 있었으며 4달후 알리와 진검승부를 펼치게 된다. 하지만 경기는 각본에 의하여 알리가 패배하기로 계획됐었다. 물론 알리는 손해보길 원하지 않았고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된다. 규칙이 이노키가 Suplex나 Submission을 쓸수 없게 되었던지라 시종일반 이노키는 아리에게 low Kick만을 통한 공격을 해야만 했다. 이 경기는 영화 Rocky 3에서 록키 발보아( 스탤론역 )와 Thunderlips( 호건역 )에 의해 재현되기도 했다.
14. 익스트림 챔피온쉽 레슬링의 탄생 1994년 8월, NWA 세계 챔피언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쉐인 더글러스는 2 콜드 스콜피오를 누르고 NWA 세계 타이틀을 거뭐지게 된다. 허나 더글러스는 경기뒤에 지난날의 NWA챔피언 더스티 로즈와 릭 플레어 같은이를 거론하며 자신의 ass에 Kiss나 하라는식으로 언급! NWA 타이틀을 던져 버리고 프로모션의'사망'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는 이스턴( Eastern )챔피언쉽 레슬링 title을 잡고 '이것이야 말로 제대로된 세계 타이틀 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old ECW가 익스트림( Extreme )챔피언쉽 레슬링로 변모되고 .. ECW는 TV에서 보여주는 아둔하고 저속한 형식의 레슬링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13. 헬인 어 셀! 첫번째 헬인 어 셀경기가 97년 PPV 배드 블러드에서 시작된다. 숀 마이클즈와 언더테이커 사이의 대립 관계, 그리고 경기를 위해 이것이 계획된다. WWF에서 이제것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수준의 잔인함을 보여줌으로서 이경기는 큰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중에 피를 철철 흘린 HBK는 철창중간 높이에서 해설석에 쳐밖히는 고난이도 액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몬스터'케인의 난입으로 경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으나 새로운 경기 방식이 도입된 WWF는 한층 더 흥미로워졌다.
12. 호건 vs. 워리어 1990년 열린 레슬매니아 6을 기억하는가? 워리어는 쇼 스타퍼로 입지를 굳혔고 WWF와 스카이돔은 북미 최고의 단체와 스포츠 시설로 진보하게 된다. '불사신'이자 당시 WWF세계 챔피언이였던 헐크 호건과 대륙간 챔피언이였던 워리어의 대결은 그 어느때보다 fan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약 6,5000의 사람 앞에서 두선수는 최초로 통합 타이틀전을 벌인것이다. 또한 이 경기는 두선수의 경력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워리어가 이김으로서 메인 이벤트로서의 재능과 명성을 확보했으며 호건의 최고의 자리로서의 입지는 서서히 하락한다. 이 새시대 창조는 결국 WWF'황금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1. 오스틴 vs. 빈스 레슬매니아 14 이후로 WWF는 '새로운-피'를 필요로 했다. 브렛 하트는 떠났으며 숀 마이클즈는 등부상을 이유로 은퇴를 고하게 된다. 스톤 콜드가 이시기에 적절하게 새로운 Star로 급부상하게 된것이다. 빈스 맥마한은 당시 '몬트리올 screw job'이 알려지면서 악덕-회장으로 fan들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챔피언에 올라선 오스틴이 블루 컬러의 자신의 고용주 vince를 공격함으로서 fan들, 특히 노동자와 젊은이들은 레슬링을 통해 자신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이각본이 진행되면서 WWF는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WCW와의 '시청률 전쟁'에도 다시 승리하기 시작한다. 오스틴이 레슬링역사상 가장 수익성 높은 선수로 올라서게된 셈이다.
10. 첫번째 통합 챔피언, 루 테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리코, HHH, 호건, 언더테이커, 락, 브록 레스나에 앞서 루 테즈는 첫번째 통합 세계 챔피언을 지낸 선수이다. 루 테즈는 NWA 타이틀을 갖고 있을시 AWA( 보스턴 )타이틀, WWA( L.A ), AWA, ( 오하이오 )타이틀을 20세기 중반에 모두 차지하게 된다. 통합 세계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서 그는 미국에서 프로 레슬링이 프로 스포츠로 인정 받기 시작한 1948년과 1955년 사이에 936연승이라는'대기록'을 성립하였다. 이 사업의 역사상 극소수의 챔피언만이 루 테즈만큼 우세적이였으며 이는 통합 챔피언쉽의 상징 이였다.
9. 빈스,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다 1982년 빈센트 맥마한 Sr.은 레슬링계에서 은퇴, 자신의 프로모션 WWWF에 대한 모든것을 아들인 빈스 주니어 에게 넘기게 된다. 당시의 WWWF는 북.동지방을 기반을 둔 프로모션이였다. 이사업을 넘겨받은 빈스는 모든것을 바꿔 버린다. 빈스는 마치 토네이도가 소용돌이 치듯이 주위의 모든 경쟁 단체들을 흡수, 강력한 국제 프로모션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름 또한 WWF로 변경시켰고 그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였던것을 감행한다. 1985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레슬매니아를 개최, 처음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볼수 있는 PPV가 TV로 중계된다. 약 100개의 경기장에 돈을 쏟아부었으며 사람들은 돈을내고 이 경기장에 들어가 거대한 스크린으로 레슬링을 지켜보았다. 레슬매니아가 빈스 맥마한을 백만장자로 만들어준 것이다.
8. 포 호스맨의 탄생 1985년 봄, NWA TV에서 최초의 포 호스맨의 기초가 되는 팀이 탄생한다. J.J 딜런이 메니져로 릭 플레어, 안 앤더슨, Tully Blanchard, 올 앤더슨으로 구성되었으며 프로 레슬링계의 일약 에리트 군단을 자칭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안 앤더슨의 자서전에 의하면 호스맨의 그 이름은 NWA활동중의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언급.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렉스 루거, 배리 윈드햄, 스팅, 시드, 폴 로마, 필먼, 제럿, 헤닉, 맥마이클, 말렌코, 벤와등이 포 호스맨을 거처간다. 포 호스맨은 레슬링계에 최초로 집단( Group )이라는 개념을 심어주었다. 포 호스맨이 없었다면 DX나 nWo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7. WCW 나이트로의 첫 생방송 1995년 9월 4일, 미네소타에서 열린 WCW 나이트로가 역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로 공중파 방송에 방영되기 시작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WWF에서 3년만에 돌아온 렉스 루거가 나타나 fan들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또한 에릭 비숍은 먼데이 나이트로로 인해 WCW에 많은 개혁을 일으키게 된다. 한편, 93년부터 녹화-방송된 WWF RAW는 나이트로의 생중계로 인하여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비숍의 '혁명'으로 동시 시간대에 방송하게 된 두 프로그램의 경쟁을 지켜보는 fan으로선 즐거운일이 아닐수 없었다. 월요일밤의 전쟁은 WWF 여성 챔피언이였던 Alundra Blaze가 WWF 여성 타이틀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서 더욱 '과열'된다. WCW 먼데이 나이트로는 nWo가 전성기 시대를 펼치땔쯤 WWF RAW를 완벽하게 압도, 84주동안 시청률 전쟁에서 이기게 된다
6. 오스틴 3:16의 탄생 1996년 KOR, 스톤 콜드는 그의 레슬링 경력뿐만 아니라 WWF 산업을 완벽하게 전환시킬 발언을 하게 된다. 오스틴은 준결승에서 마크 메로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 입술에 부상을 입는덕에 즉석에서 12바늘 꼬매는 수술을 한뒤에야 제이크 로버츠와 결승전에서 경기를 치루게 된다. 오스틴은 로버츠를 이기고 당당하게 96년 KOR의 우승자가 되는데 그뒤 인터뷰에서 제이크를 조롱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제이크는 자신이 힘들때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으며 신께 기도를 드렸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 오스틴은 이를 인용하여 오스틴 3장 16절에는 '난 단지 너의 엉덩이를 걷어차주었을뿐!"이라고 적혀있다고 발언! 이 단어는 엄청난 유행을 타고 오스틴은 슈퍼 스타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오스틴은 한마디로 흥행보증 수표가 되었으며 그의 3:16 T-셔츠, 출연하는 쇼등은 여지없이 매진되었다. 어쩌면 지난날 호건보다도 오늘날의 더 락보다도 큰 인기를 누렸던 오스틴 시대는 이렇게 문을 열게 된 것이다.
5. nWo의 탄생 헐크 호건은 누가 뭐라해도 꾸준한 인기를 받아오며 10년 이상 챔피언을 지낸선수였다. 허나 이 낡은'관습'과도 같은건 1996년 여름에 중지 된다. WCW는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충격적인 변화를 주어야 하였고 PPV 배쉬 오브 더 비치에서 이것이 실행된다. ( = 물론 그러기까지의 과정에는 WWF에서 이적해 'WCW 쟁취'를 선언한 두 거물의 활약이 컸지만 .. )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호건이 아웃사이더즈가 말한 3번째 인물중 하나였던것이다. 배쉬 오브 더 비치의 메인 이벤트도중에 나온 호건은 랜디 새비지를 공격! 선역만을 고집해온 호건의 공식을 완전히 깨버린 순간이였다. 뉴 월드 오더, 미래에도 레슬링 세계에서 다시는 이같은 거대 그룹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4. 오웬 하트, 비극적인 죽음 1999년 5월 23일의 오버 더 엣지 엔터테이너먼트 세계는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바로 레슬링경기장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위해 오웬 하트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것이다. 오웬은 블루 블레이져 캐릭터의 '영웅적인'성격을 소화하기 위해 공중에서부터 와이어를 타고 링에 내려오는 퍼포먼스 도중 50 피트 상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된다. 그는 병원으로 후송되는 도중 앰블런스에서 사망 하는데 푸쉬를 받지 못했던 오웬이 오기가 발동해 이 역활을 할것을 결심했던것이 알려지게 된다. 하트 가족은 빈스 맥마한의 끝없는 욕망에 오웬을 희생당했다고 믿었고 빈스에게 소송을 걸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사망한 오엔은 그의 가족이나 fan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못할 '진정한'레슬링 전설로 남을 것이다.
3. 자이안트 vs. 호건 스포츠 엔터테이너먼트 역사상 가장 대단했던 메인 이벤트를 뽑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레슬매니아 3 에서의 경기일것이다. 미시간, 디트로이트의 Pontiac 실버돔에서 개최된 쇼는 93,000명이 넘는 전례없는 관중몰이에 성공. 특히 안드레의 20년 이상의 불패행진을( 논란의 여지가 약간 있긴 하지만 )미국의 영웅, 헐크 호건이 깨버리게 된다. 호건은 500 파운드가 넘는 거구를 들어 매트에 매다꼿았으며 제 8大 불가사의라는 별명의 안드레 자이안트는 헐크매니아 앞에 산산히 무너지게 된다. 이 메인 이벤트는 북미-레슬링 역사상 당연 최고였던 쇼로 기억되고 있으며 80년대 중반, 호건은 이를 계기로 프로 레슬링의'황금-시대'를 열게 된다.
2. 브렛 하트와 빈스, 프로 레슬링 사상 최대의 배반 1951년, Bobby Thompson이 날린 우승을 뒤바꾼 한방의 홈런이 '지구를 뒤흔든 한방'이였다면 써바이벌 시리즈 '97에서의 사건은 '지구를 뒤흔든 배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적어도 캐나다 fan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빈스가 브렛을 배반한 사건은 레슬링-산업상에 가장 충격적인 일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써바이벌 시리즈 '97의 메인 이벤트의 커튼이 올라가자 갑자기 레슬링은 'real'로 변모하게 된다. '레슬링 위드 쉐도우'같은 다큐-영화에도 나왔듯이 이'사건'이 열리기전에 브렛과 빈스 사이에 적지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악덕 사장으로 분류된 빈스 맥마한은 이 '진짜-사건'을 각본에 이용해 WWF를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데 성공하게 된다.
1. 헬인 어 셀 두번째 시간 이 경기가 Screwjob사건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것은 어느정도 논란의 요지가 있을것이라 예상된다. 허나 tsn.CA의 투표로 인한 결과이니 어느정도의 객관성은 배제할수 없다. 40년 이후에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가장 기억할만한 순간중의 #1은 바로 1998년 킹 오브 더링에서 벌어진 맨카인드( =믹 폴리 )와 언더테이커간의 헬인 어 셀경기이다. 맨카인드가 보여준 공중에서 떨어지는 신이나 압정에 쳐밖히는 신은 추후에 폴리 자신의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 산업의 단면을 잘 보여준 순간으로도 기억될것이다.( 실제 위험요소! ) 어쨋거나 이경기는 전례없는 .. 프로 레슬링 최고의 순간에 이름이 오를만한 가치가 있다. |
출처 : 레슬매니아.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