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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유아발달심리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1
인 사 말
2014. 09. 12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이 시행되었다. 공교육정상화법의 골자는 '선행교육'과 '선행학습 유발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다. 선행교육은 수업이나 방과 후 학교에서 편성된 학교 교육과정에 앞서서 가르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교육 증가 우려 때문에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학교의 영어는 3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입학이 예정된 학생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출석시켜 해당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행위도 선행교육에 해당이 된다. 선행학습 유발행위는 평가에서 배운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중·고등학교의 중간·기말고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지필평가와 수행평가, 각종 교내 대회 등에서 선행학습 유발행위가 금지된다. 입학 예정 학생을 대상으로 해당 학교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것도 규제대상이다. 일명 예비 중학생에게 배치고사에서 중학교 과정의 시험을 내는 것이 금지된다는 뜻이다. 대학도 예외가 없다. 대학이 선생학습 유발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 입학정원의 10% 내에서 모집 정지 제재까지 받는다. 그런데 공교육정상화법은 그 출발 배경과 다르게 사교육에서 시작된 선행교육은 잡지 못하고 학교에서의 선행교육을 퇴출시켰다. 사교육의 선행교육을 잡기 희망했던 부모들은 아마도 지금의 상황을 더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사교육기관의 선행 일변도의 사교육 퇴출을 희망했고, 사교육의 영향을 받는 공교육이 대신하여 사교육만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원했다. 그런데 정작 사교육기관의 선행교육은 잡지 못하고, 공교육기관의 선행교육을 잡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작은 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네 친구는 성적이 낮은데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니, 나를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며 나눈 대화를 전한다. 아이의 꿈은 의사라고 했다. 저는 눈높이를 했지만,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면 기탄 시리즈를 해야 해요. 5학년 2학기 전에 우공비로 선행하구요, 최상위 수학으로 심화를 해야 해요. 수학경시 3-4개월 전에는 엄청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면서 경시 준비를 해야 해요. 책은 많이 읽는 게 좋다고 해서 하루에 30장정도 읽고 있어요. 관심 있는 쪽은 문학이에요. 과학영재원 산출물대회를 준비하고 있어서 지진에 대해 엄청 읽고 있어요. 리히터 분야 쪽이랑 기후와 지질에 관심이 있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영어 과외를 하고 있고, YBM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과학을 잘하지만 학교 과학은 쉬운 편이에요. 용해와 용액부분에서 헷갈리는 것이 많구요. 속력 계산 등 5학년 2학기에는 많이 어려워져요. 저는 빨강 펜을 하는데 국어는 저한테 쉬어요. 사회교육과정도 어려운데 역사 체험을 많이 다니고 있고, 학교 사회는 쉬운데 학원에서 배우는 것처럼 역사 체험은 어려워요. 한국사 용 선생을 형광펜으로 자습하고 있어요. 하루에 3-4시간 정도 공부하고 11시 넘게 자요. 공부하다보면 12시까지 할 때도 있고, 잠이 안와서 TV를 보다가 새벽3시에 자는 적도 있어요. 그래도 학교에서는 졸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수학 개념 지도 없이 대충 가르치기 때문에 선행 없이는 따라가기 힘들어요.
이 아이에게 놀라운 것은 전혀 스트레스가 없이, 이 많은 일과를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는 점이었다. 심지어 놀러온 날도 저녁 9시 30분에 영어 과외 선생님이 오시기로 일정이 연기 되었으니, 더 놀다 와도 된다는 연락에 더욱 놀랐다. 문득, 이것이 우리나라의 특정한 한 두 명만의 일상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또한 교사의 교수 내용과 방식을 평가하는 것에서 역으로 사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온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방과 후 교육을 시키는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공교육정상화법의 시행은 그래서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공교육에서 사교육에 버금가는 방과 후 교육을 기대해서였다. 이제 원래의 의도보다 조금 더 멀리 온 사교육의 선행교육은 어떤 도깨비 방망이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히려 사교육 강화의 역효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일들 중 선한 의도와 다른 귀결을 맞이하는 사례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방과 후 교육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묻고 싶어진다. 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하며 이끌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현재 이룬 나의 꿈을 어떻게 이루었는가? 왜 사는가 하는 물음의 답인 인생의 좌표 없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공부는 왜 하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엘리트주의가 알게 모르게 순기능과 역기능을 발휘하면서 방향을 잃은 것 같기만 하다. 철저히 선행교육의 장단점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면서도 소심하게 아들 네미 친구가 전해준 교육 정보를 사냥감을 찾은 하이에나처럼 더 뚫어지게 확인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비굴한 내 모습이 초라함을 넘어 더 아이러니하다. 회원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간직하고 계신지, 저처럼 모순 덩어리인지 반성의 보따리를 풀어 보기를 기대한다. 진솔함 속에 아름다운 향기와 희망이 묻어 나오리라.
2014년 9월 19 한국유아발달심리연구회 박 소 영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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