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열이 좀 나면 약을 쉽게 먹이시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이 글을 올립니다. 잘 보시고 아이의 건강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부천 함소아한의원 원장 권흥주님이 2003년에 어느 책에 쓴 글을 옮깁니다.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기운없이 늘어지면서 열이 '펄펄' 끓어오를 때처럼 엄마를 힘들게 하는 일도 없다. 아이 둘 셋을 키우고 있는 베테랑 엄마도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날 때면 발만 동동 구르는 '초보엄마'가 되고 만다.
이런 탓인지 엄마들 중엔 아이가 열이 난다 싶으면 해열제부터 먹이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열 때문에 곧 넘어갈 것만 같던 아이가 해열제를 먹고 나면 이내 열이 잡히는 데다, 해열제는 이미 처방전 없이 일반 슈퍼에서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안전한(?) 약이기 때문이다.
해열제를 가려 써야 하는 몇 가지 까닭
그러나 과연 열날 때 아이에게 해열제를 마음 놓고 사용해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난다고 덮어놓고 해열제를 먹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열이란 외부에서 나쁜 기운이 침입했을 때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여기서 싸워 이럴 수록 아이의 면역력은 높아진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도 아이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해열제는 이런 기회를 처음부터 차단하여 궁극적으로 아이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수면제와 마찬가지로 해열제 역시 우리 몸에는 하등 득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열이 38~39도 정도일 때 해열제를 사용하면 오히려 감기가 더 오래 간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게다가 무턱대고 해열제로 열을 내리면 정작 필요할 때 병의 원인을 찾기가 힘들 뿐 아니라, 아직 장기(臟器) 발달이 미숙한 아이들은 약물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지난 해 시월 영국 약품통제국(MCA)은 진통제와 해열제로 널리 쓰이는 아스피린이 어린이 백만 명당 한 명 꼴로 레이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어 열 여섯살 이하의 복용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해열제 사용에도 '중용'의 미덕이 필요할 때
그렇다고 해열제를 아예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배제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좋지만, 꼭필요하다면 가려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열이 39도를 넘더라도 아이가 별로 힘들어 하지 않고 물을 잘 마신다면 굳이 해열제를 쓸 까닭이 없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지난 해 구월 한국 소비자보호원이 소아용 종합감기약 및 해열제 스무 종과 시판 유아용 투약기 열 종을 가지고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삼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백 아흔 세명(64.3%)이 약 스푼이나 계량컵 대신 밥숟가락, 찻숟가락, 물컵, 약병 뚜껑 등을 사용했고, 백명(33%)이 약효가 없는 것 같아 복용량이나 복용 횟수를 임의로 늘리는 등, 해열제를 남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이가 열날 때는 한 발짝 물로서서 아이의 자연 치유력을 믿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열 때문에 뇌 손상을 입어 머리가 나빠진다고 믿기 쉽지만, 통념과 달리 뇌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열이 높아지는 경우(41.7~42도)란 거의 없다고 한다.
이틀 사흘 지나 열이 떨어지면 대부분은 안심해도 좋다. 단, 아이들은 어른보다 체표면적이 작아 금세 탈수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보리차나 과일즙 등으로 수분을 공급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보리차만으로 안심이 안 된다면 보리와 결명자를 1:1로 섞어 끓여 먹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겨우내 찬 기운을 머금고 자란 보리에
간의 열을 식혀주는 결명자의 효과가 더해져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한다.
단, 열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아이의 소변량이 현저하게 줄거나, 피부가 점점 쭈글쭈글해지거나, 호흡이 점점 가빠지거나, 달랠 수 없을 정도로 우는 응급상황엔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