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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화가의 꿈 직장은퇴하고 이뤄내다…姜晩成 동문
하천의 바닥이 굵은 모래나 잔자갈 같은 물질로 되어 있을 경우 하천의 물은 바닥으로 스며들어 땅 속으로 숨어 흐른다. 이러한 하천을 伏流川이라고 하고 그 물을 伏流水라고 한다. 濟州道는 지질특성상 玄武巖과 柱狀節理의 발달로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고 스며들었던 지하수 즉 복류수는 해안에서 솟아나는데, 이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샘을 龍泉帶라고 한다. 이래서 대부분의 제주도 마을은 해안의 용천대를 따라 생겼고 해발 200m 이상의 中山間 지대에는 사람이 살 수 없었다. 용천대에서 솟아오르는 물은 생명의 물이다.
어릴 적 지녔던 꿈이 복류수처럼 마음 깊이 잠겨 있다가 긴 세월이 흐른 뒤 드러난 동문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이 지하수를 펌프로 퍼올리듯 그 꿈을 끌어내 현실 속에서 이뤄냈다고 해야겠다. 부친께서도 이런 것을 내다보셨던 것일까. 이름도 큰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려 늦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姜晩成 동문. 姜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2014년 미국으로 그림공부 하러 유학을 떠난다고 할 때였다. 대치 도곡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옆 자리의 6반 반창회가 姜 동문 환송회라는 것이었다. 귀국하길 기다렸다가 올 8월에서야 그림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올들어 처음 하는 인터뷰였는데 그나마 나의 게으름과 이런 저런 일이 겹쳐 만난 지 두 달여 만에 글쓰기를 마치게 되었다.
학력 및 경력
1952년 경북 평해 출생
1965년 서울 방산국민학교 졸업
1968년 용산중학교 졸업
1971년 용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졸업
1979년 호남정유㈜ (현 GS-Caltex) 입사
1999년 싱가포르 소재 Caltex 본사General Manager
2000년 GS-Caltex 윤활유부문장
2001년 극동도시가스㈜ 상무
2008년 ㈜예스코(구 극동도시가스) 및 그룹부사장
2010년 LS그룹 자회사 한성피씨건설㈜ 대표이사 사장
2013년 LS 그룹 퇴임, ㈜예스코 상임고문
2006~2012년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 강남교육원 8학기 수료
201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현대미술최고위과정 제30기 수료
2013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현대미술최고위과정 제33기 수료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Academy of Art University 대학원 입학
2016년 Academy of Art University 졸업, 석사학위 취득,
MFA (Mmaster of Fine Art)
-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겠다. 그림을 공부하러 미국에 갔다 왔는데 그 동기나 계기는 무엇인가.
=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재질이 있다는 말도 들었고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2남2녀의 장남이었고 집안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서 그림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못했다. 그러다 2012년 말에 직장생활 35년을 마치고 은퇴하고 나서 이제는 좀 내가 원했던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미술을 하되 그저 취미로만 하는 게 아니라 프로답게 해보고 싶었다.
당초에는 국내 홍익대학원에 진학하려고 대학원장 교수 등 여러 사람을 만났더니 언어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더라. 그래서 프랑스 독일 등을 생각했는데 그 나라는 언어를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부담이 있어 그래도 조금 언어가 되는 영어권인 미국을 선택하게 되었다. 지역도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LA 등을 검토하다가 내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샌프라시스코에 있고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대학이 좋겠다고 생각해 샌프란시스코 소재 Academy of Art University(AAU)를 택해 지원하기로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그린 40여 점을 보냈더니 합격통지가 왔다. AAU는 1926년에 설립된 종합대학으로 학부가 아닌 대학원인 Graduate School에 입학해 전문적인 미술공부를 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잊어버렸다가 다시 붓을 잡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었다. 임원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틈틈이 일과 후와 주말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 2012년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50여 점을 그릴 수 있었다.
- 국내에서 전시회를 몇 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 2003년 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직장인 동아리에서한동안 배우다가 동기인 김의섭 동문과 연락이 되어 같이 홍익대학교 부설 미술디자인교육원 강남분원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다 2006년 참여 동아리인 미인회 그룹전시회에 처음 참가했고 2013년에는 몇 차례의 그룹전과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경력
2006년 제2회 미인회그룹전시회 (경인미술관, 서울)
2008년 제3회 미인회그룹전시회 (경인미술관, 서울)
2010년 제4회 미인회그룹전시회 (경인미술관, 서울)
2010년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 교육원전 (홍익대학교, 서울)
2012년 제5회 미인회그룹전시회 (경인미술관, 서울)
2012년 한국 신맥회 10주년 기념 ‘신맥 모티브’전 초대작가 (하나갤러리, 서울)
2013년 제1회 개인전 (Gallery DM, DM Art Center, 서울)
2013년 제2회 개인전 (TOPOHOUSE, 서울 인사동 내)
2015년 그룹 전시회, 2015 Small Works, Richeson Art Gallery, Kimberly, WI, USA
2016년 그룹 전시회 Spring Show 2016, Academy of Art University, San Francisco, USA
2016년 그룹 전시회 The Exhibition, ‘RED’, California Art League, The Blinn House, Pasadena, USA
2016년 인터넷 전시회 The Exhibition, ‘New Beginnings’, Manhattan Arts International, NY, USA
2017년 인터넷 전시히 April 2017 Landscape Art Exhibition, Light Space & Time, USA
2017년 인터넷 전시회 Oct 2017 Seascape Art Exhjbition, Light Space & Time, USA
- 유학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겠다. 3년 가까이 유학을 하면서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그리고 혼자 가서 있었나.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이나 에피소드는.
= 많이 들 것으로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조금 더 드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애초 예상으로는 3년 동안 3억 원 정도 들 것으로 각오했는데 실제로는 기간도 6개월 정도 줄여서 최단 기간에 학위를 취득했고 비용도 훨씬 적은 약 1억8천만 원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그리 짧지만은 않은 것으로 생각해 나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거의 퇴직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집사람은 나의 유학에 대해 동의해 주었고 가정주부로 자신의 취미생활도 있으니 국내에 살면서 6개월에 한번 정도 미국과 한국을 서로 오가며 만났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두 달간 서머스쿨 할 때는 함께 머물면서 약 석 달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교수나 학생 모두들 내 나이에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 63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학교 규칙상 1년에 30학점까지만 딸 수 있어 적어도 3년은 걸려야 학위취득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야말로 열성을 다하여 노력하다보니 최단코스로 2년 8개월 만에 끝냈다.
이것도 행운이었다. 논문심사는 서류제출과 동시에 심의위원들 앞에서 구두로 발표해야 하는데 전 과정을 통하여 두 번 하도록 되어 있다. 30학점 정도의 기초과정을 마친 후 논문주제를 선정하고 추진방향을 수립해 평가를 받는 중간심사를 패스해야 하며 그러고 나서 논문작품을 본인의 美術觀에 연계하여 제작 후 제출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여 최종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 남편의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뒤늦게 유학을 하겠다는 남편의 뜻에 동의한 부인이 훌륭하다. 전문적으로 그림공부를 하고 나니 느낌이 어떤가. 앞으로의 계획은.
= 이렇게 어렵게 배우고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이 왔다고나 할까. 소위 프로화가라는 자신감을 이렇게 갖게 되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나는 이제 당연히 프로화가다.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나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작품들을 평생에 걸쳐 제작해 내야만 한다는 목표의식과 또 나의 작품제작능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만 한다는 명제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은 주로 미국에서 하고 싶은 심정이다. 국내에서는 그 풍토가 여러 가지 면에서 실망감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제작한 작품들을 활용하여 이미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작가와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유명 인터넷 전시에 응모하는 등 해외활동을 하고 있기 했기 때문이다. 또 2015년에 모두 다섯 차례, 2016년 열한 차례였고 올해도 현재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수상한 것도 나에게 커다란 동기부여 되었다.
- 국어사전에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 화가를 높여 이르는 말이 畵伯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림그리기가 직업은 아니지만 전문적으로 하고 있으니 이제부터 강 화백이라고 불러야 옳겠다. 강 화백의 미술세계랄까 美術觀을 듣고 싶다.
= 나의 홈페이지(www.masonmansungkang.com)에 있는 Artist Statement에 설명되어 있듯이 크리스천으로서 창조된 이 세상의 만물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하나의 작은 피조물이지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표현해 내길 원한다.
특히 빛과 그림자가 균형 있게 드리워진 오묘한 자연의 세계를, 내 느낌을 담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고 이를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 나의 목표는 관객들이 내 그림을 보고 마음의 편안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평생 그 목표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끝까지 쉬지 않고 나의 능력을 개발해서 작품세계를 추구하고 싶다. 말하자면 내 그림은 인상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근대적 impresionim이 내가 추구하는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글쓴이: 아래글 참조)
ARTIST STATEMENT
After retirement from 35 years of service in the petroleum business, at the age of 61, I decided to pursue my long-time dream to paint. As a Christian, I feel the awe and wonder of the divine providence to see every corner of this world. I think the world we live in is truly abeautiful place.
Every natural entity is different and unique and this diversity makes the world beautiful. The visual changes of the natural world, with unending colors and values that exist in light and shadow over each season and over time, createvariations of moods and emotions that always affect my mind. I struggle to observe these subtle colors, but also enhance the colors that are usually not noticed by untrainedeyes. To share this beauty is the goal of my efforts. I have just begun to experience this in my own work and want to develop my ability to paint beyond what I simply observe from life. I want to show the exact feelings that I have while I’m on site.
I like to use oil as the medium for my work due to its depth and great versatility. In my painting, ‘Boating on the Arno’, I enjoyed describing the information I noticed in the shadows under the bridge, and was also happy to paint various colors with different values on the waves of the flowing river. In ‘Country Field in Winter’, I was excited to paint the colors with various values of both the ground and snow spots in shadowy areas too. ‘On the Hill, California’ was a challenging painting. I tried to paint the sensations I felt at the site, which was the bright sunny and windy day of typical Californian weather. It was also challenging because at a glance it looked like there was nothing special for me to paint. But while I was painting, I realized that nature always presents something beautiful that deserves painting. Even the small part of grass, sand, and the tiny stream on the pathway were enough for me to enjoy painting them.
I may never be fully satisfied with the result of my work, but the beauty of this world keeps me seeking satisfaction and bliss through painting. I will continue to embrace this struggle and live my life this way for the rest of my years.
<번역 요약>
작가의 미술관
나는 61세 되던 해 지난 35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오랜 동안 고대해 왔던 미술작가로서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세상의 만물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창조된 그 섭리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늘 가슴 속에 품어 왔습니다. 모든 자연에 속한 요소들이 매우 독특하며, 또 서로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는 그 다양성이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커다란 요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시각각, 계절을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세계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깔들과 명암의 요소들로 어우러져 나의 눈을 항상 매혹시키고 있으며, 그 때 그 때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창조해 내고 우리의 감정을 흥분시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러한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을, 훈련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잘 안보일 수도 있는 독특한 색깔과 명암의 구성으로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모든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 작품들을 통해 당시에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캔버스 위에 그대로 표현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야기를 바꿔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자.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아온 과정을 들려 달라.
= 부모님이 1.4후퇴
때 경북 울진의 평해로 피난가셔서 거기서 태어났으나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으로 올라와 그곳이 고향인 것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니 대방동 말고는 어릴 적 추억이 거의 없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방산초등학교로 전학해 용산중학교에 입학했다.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서인지 그리 밝은 모습으로 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들 가운데는 서유갑하고 김세만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더 조용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축구를 좋아해서 체육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들을 운동장에 풀어놓고 공을 두어 개 주고는 무조건 차고 넣게 했던 축구 선생님이 계셨는데 성함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 기억나는 친구는 김진권이다. 볼을 참 잘 찼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에피소드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고 특별활동도 안 했으니 그냥 조용히 지냈다고 할까.
- 대학에 진학하면서 화학을 선택했는데 혹시 미술과 관계가 있나.
=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화학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컬러가 있다는 것이다. 산과 알칼리가 작용해 물질의 컬러가 신비하게 바뀌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것이 화학을 택한 작은 이유의 하나였다고 생각되네. 화학은 물질의 근본을 연구하는 과학인데 나중에 대학원에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미술도 근본은 철저하게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깨달았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을 그리려고 할 때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모습, 크기, 방향, 명도의 차이 등등. 소위 그림을 못 그린다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추상미술 등 非사실적 분야의 전문화가가 되려는 사람들도 먼저 기본을 잘 익혀서 마스터해야만 훌륭한 추상작품을 만들 수 있다.
- 직장생활은 어떠했나.
= 직장생활은 참 재미있었다. 1978년 군 제대 후 쌍용시멘트에 입사했는데 주거환경 등에 문제가 있어 이듬해 5월 당시 호남정유(현 GS 칼텍스)에 다시 들어가 기술판매부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윤활유 전문가가 되었다. 모회사인 칼텍스 본사(싱가포르 소재)로 가서 General Manager로 2년 간 근무하다가 다시 GS칼텍스로 돌아와 윤활유부문장으로 임명됐으나 곧바로 회사가 막 인수한 극동도시가스(현 예스코) 영업담당부문장으로 옮겨 근무하기 되었다. 그 사이 소속 그룹이 LS로 바뀌어 2008년 그룹 부사장, 2010년 그룹 계열사인 (주)한성 및 한성PC건설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다 2012년 말에 35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은퇴했다. 그 뒤 예스코의 상임고문을 2년 간 있다가 2016년 3월말 부로 모든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 늦은 나이에 그림공부를 시작해 프로화가가 되었으니 이름처럼 되었다. 漢字도 크게 될 사람은 늦게라도 성공한다는 大器晩成의 晩成이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가.
= 아버지께서 지워주신 이름이다. 옛날에는 부끄러웠고 잘 몰랐는데 지금은 지어주신 뜻을 알 것 같다. 끝까지 자만하지도, 쉬지도 말고 노력하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모네는 시력을 잃고도 그림을 그렸다.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만큼 그림 그리는 것이 좋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물론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어 속도 상하고 버리고도 싶지만 마음에 들면 그 뿌듯한 만족감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 요즘은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너도 나도 관심이 많다. 직장생활도 성공적으로 했고 퇴직 후의 선택이나 노력 등이 가히 모범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세계적인 대화가가 되어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길 바라고 그러할 것으로 믿는다.
글 사진 柳熙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