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① 신종플루 경보(警報)없었나? ☞수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
2004년 국무총리실 직속 국무조정실장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했다. 조류독감이 돌 때였다. 당시 이해찬(李海瓚) 총리가 "전문가가 누구냐, 데리고 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당시 일부에서 타미플루 비축을 제안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CDC(미국 질병통제센터)에서 그때 이미 신종인플루엔자 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고(故) 이종욱 WHO사무총장도 "세계가 타미플루를 20%씩 비축한다. 한국도 준비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 ▲ 조선일보 DB
2005년 질병관리본부는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감염내과에 용역을 의뢰했다. 제목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신종 전염병 대응 전략 개발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의 책임자는 고대 예방의학교실 천병철 교수였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최상(最上)의 방역 조치가 취해져도 9만2420명이 사망한다'는 것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대응 계획을 수립했다. '2006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대비 대응계획'이다.
천 교수의 시뮬레이션은 'FluAid 2.0'이라는 예측모델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Meltzer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1957년 아시아에 대유행한 인플루엔자가 재발했을 때를 가정했다고 한다.
천 교수의 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든 정부의 시나리오는 '10만~20만명이 입원해 1만~2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치사율을 0.1~0.2%로 본 것인데 이는 계절 플루 수준이라고 한다.
시나리오에는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잠실체육관에 수용하고 은퇴한 의사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린다는 내용도 있었다. 병원의 다른 중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주민들의 반발은 없을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의문② 타미플루 비축론 없었나? ☞반미론자(反美論者)들에게 핀잔만 당했다!
2005년 10월 9일 조류인플루엔자(AI)가 동남아에서 번지자 부(副)총리와 사회부처 장관들은 회의를 열고 타미플루 100만명분을 더 비축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어찌된 일인지 장관 회의에서 나온 결론은 흐지부지됐다.
1년 후인 2006년 정부가 확보한 타미플루는 28만명분에 불과했다. 그 해 12월 14일 국회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야의원들이 타미플루를 선진국처럼 전 국민의 20%, 즉 1000만명분을 확보하라고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요구했다. 장관은 "오지도 않을 판데믹에 대비해 타미플루를 비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타미플루는 보존기간이 5년(2년→5년→현재 7년)인 만큼 해마다 20%씩만 바꿔도 매년 700억원(사실은 5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했다.
여기에 친(親)정부 성향의 학자들도 한몫을 했다. "사스 때도 잘 지나갔기 때문에 판데믹이 오더라도 크게 염려할 것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면역력이 높다"고 정부를 거든 것이다.
우리가 허송세월할 때 미국은 국민 25%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했다. 영국(30%) 일본(20%) 프랑스(23%) 싱가포르(25%)도 타미플루를 비축했다. 심지어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영국은 전 국민이 맞을 분량의 예방백신을 확보했다.
2006년 11월 27일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 주최 '신종인플루엔자 대비 공청회'가 열렸다. 여기서도 2006년 말까지 100만명분의 타미플루가 확보될 계획인데, 이는 국민의 2%에 불과하며, 20%인 1000만명분의 타미플루를 비축하자고 했다. 책임자들은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유시민 복지부장관 시절인 2007년 한중일 3국 복지부장관 심포지엄이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세 나라는 조류독감이나 신종 전염병에 공동 대응하자고 결의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후 유 장관은 정책방향을 결핵퇴치로 몰아갔다.
■의문③ 신종플루가 미국의 생물학 무기설(武器說)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음모론
황당하게도 당시 좌파정권은 신종플루가 미국의 음모(陰謀)라고 판단했다. 타미플루를 비축해놓지 않은 데는 신종플루에 대한 음모설이 한몫했다는 것이다.
신종플루 음모론은 ▲제약사 자작극 ▲미군의 생물학 무기 실험에서 비롯됐다는 두 가지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이 음모론의 주역이 됐다. 그가 1997년부터 2001년에 길리드사이언시스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길리드사이언시스사 대주주인 럼스펠드는 국방장관 재임시절에도 지분을 포기하지 않았고, 전 세계 미군에 타미플루를 일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국방장관이었다. 타미플루는 길리드사이언시스에서 개발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하면서 로슈와 길리드사이언시스는 돈방석에 앉았다. 럼스펠드 전 장관도 많은 돈을 벌었다. 올 들어 조류 인플루엔자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양사의 이익은 2008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마치 때를 맞춘 듯 신종플루가 등장했고, 이들 두 회사의 주가는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신종플루에 대한 또 다른 음모론은 미군이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신종플루를 만들었는데 그게 유출됐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말이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생물학 무기가 되려면 ▲인체에 치명적이어야 하며 ▲본인은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음모론의 당사자인 미국이 신종플루가 확산되던 초기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또 신종플루의 병독성(病毒性)을 0~10으로 봤을 때 계절독감이 1, 스페인독감이 10이라면 신종플루는 3~4수준이다. 이렇게 복잡한 바이러스를 병독성이 낮게 만들 바보는 없을 것이다.
■의문④ 신종플루가 계절독감 수준? ☞규모가 다르다
계절독감과 신종플루는 공통점이 많다. 3~4일 고열(高熱)이 나고 1주일 뒤면 완쾌된다. 치사율도 계절독감보다 조금 높지만 비슷하다. 그런데도 신종플루에 바짝 긴장하는 이유는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구의 10%가 계절독감에 감염된다면 신종플루는 인구의 30%가 걸린다. 이게 계절독감 치사율×3을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의문⑤ 한국인은 바이러스에 강하다고? ☞웃기는 얘기
한국인은 김치 등의 음식을 먹어 바이러스에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이없다. 한국은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한번도 비켜간 적이 없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유행해 전 세계적으로 2000만명의 사망자를 냈을 때 우리는? 조선총독부 연감에 따르면 당시 국내에서 758만840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14만518명이 사망했다. 인구 대비 발병률이 38%, 환자 대비 사망률 0.8%였다. 1957년 조선일보 9월 8일자에 따르면 전국의 독감환자는 277만명이었다.
■의문⑥ 손씻기로 70% 예방? ☞마스크가 최고
서울시에서 600억원을 들여 공공장소에 손 세정제를 비치했다. 예산만 낭비하는 전형적인 관심끌기 행정이다. 손씻기는 흐르는 물과 비누로 15초만 하면 충분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스크다.
타미플루는 전형적인 호흡기 질환이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50㎍ 이상의 비말(飛沫)과 50㎍ 이하의 에어로졸이 주 감염원인이다. 따라서 기침 에티켓과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제일 좋은 신종플루 예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