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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씨의 병(1978)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 힘, (1쇄 2000)173쇄 2019. 235-263(P.351)
- 조세희(趙世熙, 1942-2022) 경기 가평 출생. 서라벌예대와 경희대 졸업.
# 단편, 「클라인씨의 병(1978)」 235-263
조세희, 문학과 지성, 1978년 봄호
* 묘사 중에서 교회 목사가 가난한 노동자를 위해 교회를 열었다. 목사는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세상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을 부른다. 그 중에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도 부르고, 또는 노동 운동가를 부른다. 스스로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이가 아닌 자들은, - 자연 속에서 자연에 의한 창조가 아닌 것들 – 노동자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 자들은 사실은 노동자들 밖에 있는 자들이다. 영수는 말한다. “나중에야 나는 목사 어떤 면에서는 아주 보수적인 온건주의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신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우리의 교육을 위해 과학자를 부르고는 했다.(243)” 손에 기름때를 묻히지 않고 염보돈(십일조)으로서 기름때 묻은 돈을 챙긴다. 그는 빳빳한 새 돈을 챙길 수 있는 목사 수련기간을 기다리고, 노동자의 숙련과정과는 전혀 다른 삶의 수련 과정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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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상으로 안과 밖이 없다. 그런 표면을 상상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공간적 사고에서 가능할 수 있으나 시간적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신체라는 삼원성을 사차원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면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 여기서 공장안과 공장 밖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추론을 하고자 하는 것인데, 삶에서 안과 밖이 따로 없다는 것은 영혼과 신체가 안팎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본가와 노동자가 안팎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는 일의 과정에서 구별되어 있는 정도이며, 서로 일을 바꾸어 하면 될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사회 또는 국가의 제도의 명령(법률)이다. 법률을 배운 자가 그런 조건을 만든다. 판사와 검사도 3년을 지나 4년차에는 시골에 내려가 1년 논밭을 갈게 하면, 사람들은 사회와 국가가 그동안에 무너질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을 그 일을 꼭 노동자가 해야 되는 것으로 만든 것도 제도와 법률이다. 평생의 과정에서 돌아가면서 하면 된다. 즉 공직도 돌아가면서 봉사하게 하면 사적 이익의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하방(下放), 이익과 잉여착취를 생각하는 한 하방은 이루어 질 수 없다. 사는 것이 먼저이고 철학은 다음이라고 할 때, 하방은 자연과 순환으로 삶을 보여줄 것이다. (56LLE)
*작품 내용 중에서----
은강에는 장님이 많았다. 은강에 살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공업지역에서는 물론 볼 수가 없었다. 시가와 주거 지역을 거닐 다 나는 알았다. 어느 날 나는 십 분 동안에 다섯 사람의 장님을 보았다. 다음 십 분 동안에는 세 명을 보았고, 그 다음 십 분 동안에는 나의 발 옆을 두드리며 지나는 둘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 시간 이상을 헤매고도 단 한명의 장님을 볼 수 없는 도시가 세계에는 있을 것이다. 은강에 유독 장님이 많은 까닭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 중에 장님이 많다는 사실을 은강 사람을 몰랐다. 그래서 은강 사람들 모두가 장님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 (235, 첫 문단 시작부분)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그래요.” / “누가 사람처럼 살지 말랬니?” / “막는 놈들이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모르고요.” / “막으면 막게 놔두고, 모르면 계속 모르고 있게 놔둬. 내 말을 안 듣다가는 잡혀가. 너는 죄를 짓고,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간다. 그 문에 머리를 찧는 이 에미와 동생을 안 보려면 가만히 좀 있어.” (240-241) [영수와 어머니 대화]
그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의 환경이 내가 과학자가 되는 것을 막았다.”고 그는 말했다. .. 그에 의하면 기술과학의 발전이 숙련 노동자를 질식시켰고, 공장 내의 단순 노동은 어린 노동자들의 장신 저임금의 노동으로 충당되었다. 그리하여 공장을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하고, 도시에는 빈민굴이 생겼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는 예의 쇳소리를 냈다. 그러나 노동자의 손해는 경영주의 이익이라는 단순 지적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부의 증가는 저임금 노동자의 수의 증가와 비례해왔다는 역사를 그가 들춰냈다. (244) [맑스와 프루동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교회 목사님이 만드신 모임이 있어요. 여거 산업장의 대표급 노동자 모임인데 얼마 전부터 제가 그 모임을 주도하게 됐어요.” /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놀라셨겠구나. 그래 너에게 훌륭한 이론가가 될 소질이 많아. 원하기만 하면 넌 고급노동 운동 지도자가 될 수도 있을거야.” / “나는 형[지섭]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 “네가 안 해도 할 사람이 있는 일을 네가 하는 이유는 뭐냐?” / “제가 하는 일은 뭐예요?” / “현장을 지키는 일야.” / “제가 일하는 곳이 현장야요.” / “그럼 그곳을 뜨지 말고 지켜. 그곳에서 생각하고 그곳에서 행동해. 노동자로서 사용자와 부딪치는 그 지점에 네가 있으라구.” (257)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섭이 다녀간 다음의 내 변화를 제일 먼저 읽은 사람이 과학자였다. “따져보면 목사님과 나는 줄밖의 사람야.” 그가 말했다. (258) [밖에서 무슨 말을 하든, 하늘나라에서 무슨 말을 하든, 부활해서 무슨 말을 하든, 삶 속에서 힘(권능)은 다른 것이다.]
그가 공장 그의 방에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병을 보여주었다. 말이 병이지, 내부가 있어 공간이 밀폐되는 그런 보통 병이 아니었다. 대롱 벽에 구멍을 뚫어 한 끝을 그 구멍에 넣어 만든 이상한 병이었다. / 과학자는 것을 ‘클라인씨의 병’이라고 했다.(258/259)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림 (3)의 실체가 내 눈앞에 있는데, 그 실체를 무시하고 상상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 (3)을 들고 “그럼 이것은 뭡니까?” 내가 불었는데 그는 간단히 “그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공장 그의 방에서 나왔다. (260)
“이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 / 과학자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그대로야” / 과학자가 말했다. / 그가 ‘클라인씨 병’을 들고 나를 향해 돌아섰지만 나는 그의 방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 은강방직 보전반 기사 조수는 빠른 걸음으로 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262-263, 끝나는 문장들) - [보전반 기사 조수(영수) 인 병과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 않다. 일하러 가야 한다. - 공간의 순환은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상이다. 평생이라는 시간상의 과정의 순환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자연과 더불어 배우고 농촌에서 살다가 청ㆍ장년에는 도시의 생산에 종사하여 실생활의 편리를 창출하고 늙어서는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 소일하는 순환과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린시절이나 노년시절에는 필요에 따라 제공받고 청장년 시절에는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이다. 이익이 눈먼 집단이 – 맹목적 집단이, 즉 사악한 집단이 - 제도를 유지 하는 것이 삶의 유지가 아니다. (56LLE)]
*** 작품집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소설집, 이성과 힘, 1쇄 2000, 173쇄 2019. P. 351
- 조세희(1942-2022) 경기 가평 출생. 서라벌예대와 경희대 졸업.
- 1979년 <동인문학상> 수상,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단편이겠지]
- 2008년 11월 11일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작품집일 거고] 발간 3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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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예전에 읽었을 것인데, 마흔 다섯 해가 지나서, 쪽방촌, 판자촌 이야기라는 정도 이외에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을 떠올리는 순간 왜 윤흥길(1942)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창작과 비평, 1977)의 작품이 떠오를까?
언어를 그 시대의 공시태로 다루어야 한다는 말은 그때 당시 유행적이었다. 그 유행은 현상적이다. 공시태는 현상적 사실들을 다룬다. 이 단편들은 1975년 12월호(「칼날」, 문학사상)에서 1978년 여름호(「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창작과 비평)까지의 글 12편이다. 그럼에도 단편 소설을 서사적으로 읽을 때, 내용뿐만이 아니라 용어와 개념작용에서도 통시태가 중요하다.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도 작품이 지니는 지위(위상)는 그 시대의 지위와 더불어 어제와 아제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단행본 난쏘공은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갔다. 박정희의 유신, 그 다음으로 폭압의 긴급조치시절이며, 인혁당의 항거세력만이 아니라 건설과 발전의 그늘에서 억압받는 노동자, 판자촌의 주민들의 저항들도 많았다. 이런 시대의 흐름 가운데, 글로서 시대의 현실을 알리는 글들이 많았다. 통시적으로 보아, 박정희의 말기는 저항, 항거세력에 의해 위태로운 시기였고, 깨어있는 지성인과 시민은 나름 자기 방식대로 결사와 행동을 실행할 때였다. - 윤석열 정권의 부패와 무능에다가 보탠 폭압적으로 강압적인 정권에서 검찰발 마녀사냥을 두려워하며 주춤하는 것과는 다른 시대였다. 이 통시적 과정에서 열사들과 전사들, 투사들과 저항자들이 자기 영역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을 연대하며 조직하고 구체적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문단계에서도 시대의 구체적이고 현실적 작동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청준(李淸俊, 1939-2008), 황석영(黃晳暎, 1943-), 윤흥길(尹興吉, 1942-) 조세희(趙世熙, 1942-2022) 등의 작품들은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나온 결실들이다.
** 이 소설집 뒤에는 각 작품이 첫 수록된 문예지를 표기해 놓았다. 개인이든, 수상작품집이든, 각 작품이 첫 발표지를 알려주는 도움을 출판사는 독자에게 주어야 한다. 요즘 많은 수상작 작품집에 이런 도움을 주는 예가 드물다. (55LKE)
# 구도상으로#
* 이항 대립의 시대: 자본가와 노동자시대, 이를 대구로 쓴 서사시와 같은 연작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도 서사시라 하지만 몇몇 장면을 아름다운 문장 구성으로 보여 준 것이잖아.
** 배경 두 종류: 이항 대립적 구도
재개발 지역 행복시의 철거민 이야기 – 경기도 광주시 판자촌 철거.
바닷가 공장지대 은강시의 오염과 노동자 착취 – 인천 지구[인노련 1987]
- 자본계열
부자집 자식들 두 행태 – 성북구? - 아버지에 저항하는 윤호,
아버지보다 더 자본의 효과를 누릴 생각하는 경훈,
- 노동계열
노동운동의 투사: 지섭, - 손가락이 잘리고 몸이 망가져도 노동운동하는 지섭.
노동 운동의 전위 전사, - 재벌의 한사람을 살해한 난장이네 맏아들 영수
* 저자는 이항 대립을 마치 노자의 도덕경의 대구(對句)처럼 군데군데 서술하였다. 서술은 매우 서정적이라, 거친 철거 풍경과 판자촌의 식탁조차 자연 풍경같이 감성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서정적 풍경이 재벌이나 정치가들의 행태에 대비해 읽으면, 서정성은 사라지고 역사의 안목을 제시하는 과정으로서 서사시적 드라마로 치열한 투쟁관계로 드러난다. 삶의 과정에서 이런 저런 우여곡절은 누구에게나 있어왔다. 그럼에도 그 시절, 박정희의 폭압시절, 어느 날 눈 뜨면 가까운 사람이 사라져도 ‘입’조차 벙긋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풍요로움에 부를 축적하기 위해 또는 따라가기 위해, 주식시장을 보거나 비트코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생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이런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시절이 아니라, 지금 시절도 그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대립적으로 생각해보면, 주식과 비트코인하는 이들이 난장이 가족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멸치와 꼬추장을 SNS에 보내는 정용진이 경훈과 다를 바 없다. 재벌의 삐뚤어진 재산상속에 의해 이재용 같은 이보다, 아제도 영수같은 이에게 칼맞을 애들이, 즉 상속받지 않은 대신 조그만 지식과 권력으로 부를 형성하면서 이재용과 정용진처럼 행세하려는 정치권, 검찰권, 사법권에 많이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소설을 읽어봐야 망상과 착란에 빠질 것이다.
** 박정희 정권이 발악하던 시기, 긴급조치 1-4호를 공포하여 헌법개헌발언을 전혀 하지 못하게 하고, ‘헌’자만 발언해도 잡혀간다는 시기에, 긴급조치1-4호를 넘어서 9호까지 공포하면서 많은 운동가, 저항자들을 감옥에 또는 의문사로 만드는, 경제적 약탈과 사회적 폭압의 시대, 즉 야만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 작가는 글로서 넘어서기 또는 글을 통해 전환등 모색하며 대립적 구도를 선명하게 그려 놓았다. 지금 읽어보아도, 작가가 끌려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루이스 캐럴의 “훌륭한 나라 엘리스”와 같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 이런 시대가 박정희 정권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보도연맹 등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골로 가게 했던가, 그리고 박정희 다음에서 전두환 정권은 녹화사업 등으로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지금의 윤석열 정권도 이들에 못지않게 “공정과 상식”으로 앞 시대보다 덜 한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느낄 것이다. 고위행정, 검사, 판사 등이 앞 시대에서는 자신들보다 공부도 덜한 무식한 녀석들이 돈으로 휘둘렀던 것을, 법과 행정과 공정으로 이들을 감옥도 보내고 파면도 시켰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공정과 상식’이라 하는데, 윤 정권은 앞 시대와 달리 ‘공정과 상식’으로 우리가 시험(사시, 행시)을 통과하여 더 많이 공정과 상식을 실행하니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잘 살아야 한다고 뻗대고 있다. 이를 통과하지 못한 자들은 개돼지처럼 살아야 한다고 노골적이다. 과거에는 저항하는 이들이 사라진데 비해, 이즈음에는 곳곳에서 사고사를 당해도 법을 지키지 않은 현장의 고위 책임자들을 문책하지 않고, 법을 실행하는 그들은 법에서 예외로서 부와 권력을 누린다. 불과 1년도 안되어, 경계선을 긋는 작업을 하는데, 경제분야도 그러하지만, 교육분야에서 5.18항쟁을 빼겠다거나, 국방에서 남북의 이항대립으로 남은 선 북은 악이라는 구도를 설정하여, 심판하려는 상대성 없는 독재적 독단성을 주장하거나, 미국과 외교에서 핵무장은 하겠다면서 패전국 일본의 군대화에 대해 눈감고, 일본과의 외교에서 이완용의 매국의 법적조치와 마찬가지로 윤정권이 ‘공정과 상식’의 법률로 일본의 책임을 우리 나라가 담당하는 것으로 이완용을 닮은 조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글쓰기는 이런 사실을 긴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전환이 빨라서, 일상을 사는 이들은 이런 억압과 압제의 과정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조금만 더 천천히 생각하며 읽는다면, 마치 현 윤정부가 개돼지 취급하며 자르기의 과정을 하나하나 새기며 들여다보면, 폭력과 억압이 교묘하게 차단막으로 가려져 있으며, 공정과 상식은 ‘야만과 특수통’이라는 것이다. 이 정권의 검사들의 행태들이, 대필사건 조작사건 대리증인 등에서 얼마나 야비하고 치사한 인간성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재벌처럼 돈가지 떵떵거리며, 자기 (속좁은) 지식을 뽐내며 살고 싶어하는 탐만치 족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탐만치를 감추기 위해 시민을 ‘빨강이’이로 취급하고, 공산사회는 “악”이라고 주입시키려 든다. 이들은 상대성을 배워도 속좁은 지식이 상대성 중에서 남극만 선으로 남고 북극은 악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소환하고 출석시키면서 ‘남극나라’의 적으로 만들어 경제생활과 사회활동을 못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것의 허위과 착각을 알려는 이들을 개돼지로 취급한다. 이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보다 “악마 의례”에 젖어서 남극은 선, 북극은 악이라고 말을 기레기들을 통해서 흘리고 있다.
이런 짓거리를 313년경에, 많은 다른 종교적 사유를 제거하고 들어선 한 집단이 삼원성을 선으로 놓고서 출발하였다. 이 삼원성에서 눈 밖에 나 쫓겨난 자들이 다시 북아프리카를 통해 올라오니, 이를 제거하는 마녀사냥을 고안해 냈다. 단지 생각이 다르다고. 그런 사건들에서 인간이 스스로 불합리에 빠진다는 것을 깨달는 것이 계몽기였다. 이 시기 쯤에서 계몽기에 종교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고 감옥 보내는데 대해, 볼테르가 관용을 말했지만 여전히 계속되었다. 산업사회에서 모순을 해결하고자하는 공산주의는 이런 가운데 종교가 먼저가 아니고 삶이라는 구호로 성립한다. 종교는 아편이다. 19세기 내내 공산주의의 확장이 유럽 사회에서 “유령”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그들은 착각했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자본과 개돼지 구별을 더욱 분명하게 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는 개돼지 대 관료-자본가의 삶의 대립적 구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이든 대립적 구도가 생겨보라, 싸움하여 패허가 되고 난 뒤에 조용해지면, 한쪽은 또다시 건설해야 하는 노동에 시달리고, 다른 한쪽은 그 싸움 기간에도 잘 먹고 소리 소문 없이 잘 지내고 산다. 새 시대가 도래 하면 ‘공정과 상식’을 소문내며, 언론을 매체로 해서 자신들이 정당한 것처럼 또는 진리인 것처럼 떠든다. 이들이 상부이며, 식민국가에서 매판이며 매국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자고? - 더 써야 하는데 볼일이 있어 나가야 한다. (56LLF)
# 책 뒷면 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드디어 발간 백만 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1978년 6월 초판본이 나온 이래, 2007년 9월 백만 부 발간에 이르기까지 어언 삼십 년에 이르는 세월이 걸렸다는 점이다. 불과 수개월 만에 수십만 부가 나가는 소설책이 드물지 않고, 거의 이 년 주기로 소설책을 펴내는 작가도 흔한 세상에서, 삼십 년에 걸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백만부 돌파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문학적 사건이다.
그 어떤 작품보다도 문학적 염결성과 진정성에 기초하여 한 문장 한 문장 수를 놓듯이 씌어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삼십 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고결한 장인정신의 승리에 다름 아니다. 부박한 속도전과 물량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 문학관에서, 문학적 침묵과 은둔을 묵묵히 견디면서도 끝끝내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조세희의 존재는 스스로 오롯이 빛난다. .... (권성우, 문학평론가)
** 목차(173쇄 2019).
* 작가의 말: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 7-11
뫼비우스의 띠 세대 1976년 2월호, 문학과 지성 1976년 여름호 재수록
칼날 문학사상 1975년 12월호
우주 여행 뿌리깊은 나무 1976년 9월호 문학과 지성 1977년 봄호 재수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 지성 1976년 겨울호
육교 위에서 세대 1977년 2월호
궤도 회전 한국문학 1977년 6월호
기계 도시 대학신문 1977년 6월 20일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문학사상 1977년 10월호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문예중앙 1977년 겨울호
클라인씨의 병 문학과 지성 1978년 봄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창작과 비평 1978년 여름호
에필로그 문학사상 1978년 3월호
* 해설: 김병익(金炳翼, 1938-) [경북 상주, 문학평론가, 서울대 정치과 졸업].
대립적 세계관과 미학, 319-336
* 신판해설: 우찬제(禹燦濟, 1962-) [충북 충주,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대립의 초극미, 그 카오스모스의 시학 – 조세희의 난장이… 다시 읽기 337-351
* 뒷면 글; 권성우(1963-) 서울, 서울대 국문과, 동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동덕여대 교수,
# 작가의 말: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 7-11
[작가는 문단을 나누지 않고 끝까지 한 문단으로 썼다.]
[이 글을 쓴 시기를 명기하지 않았다. 이 판본 1쇄 2000(현 판본 173왜 2019년)보다 먼저 일 것이지만, ]
‘난장이 연작’이 쓰여지던 시기의 이야기를 나는 정색을 하고 앉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7, 시작하는 두 문장)
작가가 되는 것을 나는 작가가 아닌 삼십대 일반 직장 ‘시민’이 되어 칠십년대를 살았다. 무엇이 되었던 우리에게 칠십년 대는 파괴와 거짓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 나는 이런 말을 아주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천구백사십년을 전후해 태어나 우리 세대가 어느 사이에 서른을 넘어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평범한 직장인이 된 나의 눈에도 보였다. (8)
[[제국주의 밑에서 폭압과 야만을 말했다. 푸꼬가 광기의 역사라고 했다. - 제국의 지배하에 마름과 패거리가 공정과 자유를 말한다. 착란의 현상이며, 종교재판에서 반대자인 브루노를 산채로 화형시켰다. 제국주의이든 제국이든 악마재판을 하였던 이들은 참회한 적이 없었고, 세월이 지나 모습을 바꾼 이들이 미사일과 세계화폐로 만든 자발적 종속자에게 자유로운 칭송과 영광을 받고, 또한 그 똘만이 부일-숭미자들이 수적 다양체인 소수자들로부터 통성 고백을 받는다. 이근안도 본뜨고 있었고, 줄을 서서 김-윤에게 어천가를 부르며 자백을 한다. 입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은 ‘날리면’이라 고백하고 있다.
[젊이에게 늙이가 다룰 첫째 항목이 언어가 될 것이다. 언어 중에서 입말은 공감과 공명의 체계이다. 젊이가 악마재판에서 사용하였던 친일, 친미, 친신의 파라독스(역설)을 깨닫는 것이 ‘안다’이다. 일제에 부역하여 나라를 팔아먹거나 팔아먹을 생각하는 이들을 부일이라 입말하고, 미국을 숭배하여 미제를 따르는 자들을 숭미라고 입말하고, 하느님도 내 앞에서 무릎 꿇는다고 하는 그 하나님과 친신하는 착란자들을 망상자라 입말하고 있다. 노신의 말처럼 몽둥이로 패라고 하듯이 입말에 앞서 실천하는 행동도 있었다. 산다는 것이 먼저이며 철학은 다음이라고, 실천하고 움직임이 먼저이고, 입말 쓰기는 다음이다. 젊이에게 언어는 언어에 앞서서 살기, 삶을 실천하며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인간은 가재처럼 굳은 각질로 되어 있지도 않고 더 두꺼운 각질의 게 편도 아니다. 인간은 이들과 달리 단단한 단백질로서 뼈가 안에 있고, 살은 바깥에 있다. 인간은 생각과 행동이 갑각류와 다를 수밖에 없다. 피와 살이 활기찬 젊이 시절은 그럴 것이다.(56LKH)]]
독재기관의 감시를 받고, 체포되어 고문 받고, 억지 재판 과정을 거쳐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구성원 전체를 두고 볼 때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과거 어느 시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는 바로 우리 세대가 윗세대들과 ‘연대’라도 한 것처럼 잘 단결해 무서워하고 있다. 다수가 무서워한 것은 암흑 독재 체제가 냉혈 하수 부역자들을 시켜 올바름에 맹렬한 폭력으로 가한 체포-고문-재판-투옥만이 아니었다. 물론 잡혀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포였다. 그러나 강압 통치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가만히 있으면 자신과 가족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순응과 무저항을 안전한 생활 방식으로 터득한 사람들에게 고문이나 투옥은 밤잠을 빼앗아갈 정도의 공포는 아니었다. (8) [이 댓구로 된 글을 읽으면서, 순응이 어떤 사회와 역사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현재 윤석열과 김건희를 행태심리학적으로 보면 알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는 인류가 귀중한 가치로 치는 것들이 모조리 부정되었다. 예를 들면 소모사가 유린한 니카라과나 이디 아민이 통치한 우간다, 엥게마르가 지배한 적도 기니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박정희, 김종필 등이 이 땅 쿠데타의 문을 활짝 연 내란 제일 세대 군인들이 무력으로 집권해 피말리는 억압독재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
처음부터 탄압 기구에 의해 내가 낼 책이 판금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면 나의 작업은 쉬웠을 수도 있다. 하루 자고 나면 누가 잡혀갔고, 먼저 잡혀간 누구는 징벌방에서 죽어가는 지경이고, 노동자들이 또 짐승처럼 맞고 끌려가는,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권이 말살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작은 노트에 글을 서나가며, 이 작품들이 하나하나 작은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서 ‘파괴를 견디고’ 따뜻한 사랑과 고통받는 피의 이야기로 살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9-10)
나의 ‘난장이 연작’은 발간 뒤 몇 번의 위기를 맞았었지만 내가 처음 다짐했던 대로 ‘죽지 않고’ 살아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이 작품은 그 동안 이어져온 독자들에 의해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점만 생각하면 나는 행복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 (11) [자라지 못하고 있다. 난장이다.]
* 소모사 가르시아(Anastasio Somoza García, 1896-1956), 니카라과의 대통령이다. 1937년부터 1947년까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니카라과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반공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쿠데타로 실각했다가, 1950년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6년 만에 레온에서 살해[암살]당했다.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Luis Somoza Debayle, 1922-1967): 아나스타시오(소모사 가르시아)의 장남. 1956년-1963년 대통령 재직. /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Anastasio "Tachito" Somoza Debayle 1925-1980): 아나스타시오(소모사 가르시아)의 차남. 1967년-1972년, 1974년-1979년 대통령 재직. 미국으로 탈출. 1980년 아순시온의 망명지 근처에서 아르헨티나 게릴라 대원이 이끄는 산디니스타 기습부대 단원들에게 처형당했다.
*이디 아민(Idi Amin Dada Oumee, 1923/28-2003) 우간다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1971년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79년 축출. 리비아, 이라크를 거쳐 사우디아라비아에 망명.
*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Francisco Macías Nguema, 1924-1979). 적도 기니 초대 대통령,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직, 축출. 사형.
* 박정희(朴正熙, 1917-1979년 10월 26일)
* 묘하게도 소모사, 이디 아민, 응게마, 박정희는 같은 해(총 맞은 해, 1979년)에 사건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사적 연관 속에 있을 것이다. (56L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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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김병익(金炳翼, 1938-) 경북상주, 문학평론가, 서울대 정치과 졸업. 1967년 《사상계》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그는 C. R.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배경으로 정치와 사회를 문학 속에 수용한다는 기본 입장에서 지성적인 사회비판과 문학성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에 김주연(金柱演) 등과 공저인 《현대한국문학》을 비롯하여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주목을 끌었던 《한국문단사》와 《지성과 문학》 등이 있다. 198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1962 우찬제(禹燦濟, 1962-) 충북 충주,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욕망의 시학》(문학과지성사, 1993), 《고독한 공생》(문학과지성사, 2003)
1963 권성우(1963-) 서울, 서울대 국문과, 동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 동덕여대 교수,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존재론적 고독에서 ‘당신’과의 만남으로: 이인성론」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저서로 『비평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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