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제(順治帝, 숭덕(崇德) 3년 음력 1월 30일 (1638년 3월 15일) ~ 순치(順治) 18년 음력 1월 7일 (1661년 2월 5일)?)는 청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1643년 ~ 1661년)이다. 휘는 복림(福臨),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체천융운정통건극영예흠문현무대덕홍공지인순효장황제(體天隆運定統建極英睿欽文顯武大德弘功至仁純孝章皇帝), 연호는 순치(順治), 법명은 행치(行痴)이다. 만주어로는 이지슌 다산 한(만주어: ᡳᠵᡳᠰᡥᡡᠨ ᡩᠠᠰᠠᠨ ᠾᠠᠨ, Izhis'huun Dasan Han)이라 불리기도 한다. 홍타이지의 9남으로 어머니는 그의 후궁이었던 효장문황후(孝莊文皇后)이다.
[편집] 생애
1638년(숭덕 2년) 3월 15일에 성경(盛京) 고궁 영복궁(永福宮)에서 장비(莊妃) 박이제길특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1643년 부황의 갑작스런 붕어로 제후회의에서 황제로 선출되었는데 그때 복림의 나이 6세였다. 제후회의는 복림의 나이가 어려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누르하치의 14남이자 복림의 숙부 예친왕 도르곤과 누르하치의 동생 슈르하치의 6남 정친왕 지르하랑을 각각 좌우 섭정왕으로 삼아 정무를 대리케 하였다.
그가 즉위하게 된 것은 숙부 도르곤이 강력하게 추천한 덕분이었다. 도르곤은 1644년(순치 원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죽고 명이 멸망하자, 투항한 명의 장수 오삼계의 도움으로 산해관을 넘어 함께 이자성을 공격, 어부지리로 중국 대륙을 거의 통일하였고, 명의 수도 북경에 들어가 자신들이 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조라고 선포하였다. 도르곤은 이자성을 추포하라 명령, 이듬해인 1645년(순치 2년) 이자성은 쫓기는 도중 살해당한다. 1650년 도르곤이 죽자 순치제는 비로소 청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치세에 독일인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이 대포 기술과 고딕 양식의 건축 기술을 들여와 북경에 고딕 양식의 성당을 지었다.
순치제는 몽골 출신의 어머니 효장태후를 싫어하여 당시 역시 싫어하던 몽골 출신인 황후를 폐하고 새로운 황후 효혜장황후를 세웠는데, 그녀 역시 몽골 출신이었다. 그는 현비 동악씨라는 후궁을 총애하였는데, 그녀가 1660년(순치 17년)에 사망하자, 정치에 뜻을 잃었다. 얼마 안가 순치제는 그녀를 황후로 추시하였으나, 대신들은 국법에 어긋난다 하여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661년(순치 18년)에 황위를 황태자인 3황자 현엽에게 물려주고 24세 때 천연두로 붕어하였다 했는데, 일설에는 동악씨의 죽음과 동악씨의 황후 추서 반대에 순치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해서 제위에서 물러난 뒤 오대산으로 출가를 했고, 1669년(강희 8년), 1707년(강희 46년), 1712년(강희 51년), 심지어는 손자인 옹정제 초기까지 살고 입적하였다고는 하나 분명하지는 않다.[출처 필요]
[편집] 가족
- 현황귀비 동악씨(賢皇貴妃 董鄂氏) - 효헌단경황후(孝獻端敬皇后)로 추숭됨.
- 정비 동악씨(貞妃 董鄂氏)
- 숙혜비 박이제길특씨(淑惠妃 博爾濟吉特氏)
- 공정비 호제특박이제길특씨(恭靖妃 浩齊特博爾濟吉特氏)
- 단순비 아파해박이제길특씨(端順妃 阿巴亥博爾濟吉特氏)
- 영각비 동악씨(寧愨妃 董鄂氏)
- 각비 석씨(恪妃 石氏)
- 서비 목극도씨(穆克圖氏)
- 서비 파씨(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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