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다선일여(茶禪一如) 차와 선은 하나다
다선일여(茶禪一如)는 차와 선은 하나다. 즉 같다는 뜻으로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사원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아주 흔한 일을 '다반사(茶飯事)'라고 하듯 이 중국인들, 중국 선종사원에서 차는 일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당 말(唐末)의 조주(趙州. 778~897) 선사는 '끽다거(喫茶去)'라고 하여, 차를 매개로 선법문을 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차를 대접했는데, 그냥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
조주 선사가 물었다.
"여기 와 본 적이 있소?" "있습니다." "아, 그렇소. 그러면 차나 한잔 드시오."
또 다른 납자가 찾아왔다.
조주 선사가 물었다.
"여기 와 본 적이 있소?" "없습니다." "아, 그렇소. 그러면 차나 한잔 드시오."
이것을 '끽다거(喫茶去)'라고 한다. 여기서 '거(去)'라고 하는 글자는 '가라'는 뜻이 아니고 '드시오'의 '시오' 또는 '드시게'의 '게'에 해당한다. 즉 행동의 종결을 강조하는 어조사이다. 예컨대 '서거(逝去)', '사거死去)'도 '죽었다'는 말이지. '죽어 갔다'는 말이 아니다.
다선일여(茶禪一如)', '다선일미(茶禪一味)'는 차(茶)의 맛과 선의 맛이 같다는 뜻이다. 보리밥과 잡곡밥 맛이 같다면 좀 이해가 가는데, 차와 선이 같다면 공감하기 쉽지 않다. 어떤 점이 같다는 것일까?
다선일미 (茶禪一味)라고 하는 것은 '차의 청아한 맛과 향', '선의 맑고 청아함'이 상통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차를 '작설차(雀舌茶)'라고 한다. 찻잎이 참새(雀) 혀(舌) 크기만 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인 데, 곡우(穀雨) 전인 양력 4월 20일경에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雨前茶)라고 한다.
우전차는 이른 봄 가장 처음에 나온 어린 찻잎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맛과 향과 색이 청아하고 그윽 하다. 선의 세계도 그윽하고 청아하다. 이것이 차와 선이 만나게 되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타이완(臺灣)에서 나오는 대우령(大禹嶺)은 더욱 맛과 향이 아름답다. 차향은 작설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에도 있는데 커피 향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선종사원에서는 차를 많이 마셨다. 선승들이 차를 좋아했던 것은 차가 좌선 중의 졸음을 쫓아주기 때문 이었다. 또 선원에서는 전문적으로 차를 재배해서 만들기도 했는데, 간시궐(乾屎橛) 화두로 유명한 운문 (雲門) 선사 어록에는 제자들과 차를 따면서 나눈 선문답이 많다.
이쯤에서 차시를 한 수 감상해 볼까 한다.
조주 선사는 찾아오는 사람마다 차를 마시라고 말했네. 하지만 그는 한 방울도 입에 묻히지 않았다네.
조주 선사가 수없이 차를 달여 마셨지만 차향은 여전히 남아 있고 다성(茶聖) 육우(陸羽)가 수없이 달여 마셨지만 양(量)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네.
趙州道箇喫茶去 조주도개끽다거 一滴何會濕口脣 일적하회습구순 趙州喫去尙留香 조주끽거상유향 陸羽煎來不減量 육우전래불감량
이 시는 차의 세계와 선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시이다.
1. 2구에서 조주 선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차를 권했고, 분명 그 역시 차를 마셨을 터이지만, '입술도 적시 지 않았다' 또는 '흔적도 없다'는 데서, 선의 특징인 무심, 무집착, 공(空), 몰종적(沒蹤跡)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일 조주 선사가 한 잔이라도 마셨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면 그의 '끽다거(喫茶去)'는 깨달음을 이루는 화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3, 4구는 더욱더 선적(禪)이다. 선승 조주(趙州) 선사와 다성(茶聖) 육우(陸羽)가 평생 차를 끓여 마셨는데 도 여전히 차향은 남아 있고, 또 그 양(量)도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선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 다선일여(茶禪ㅡ如)
茶 차 다(차로 발음해도 맞다). 禪 참선 선. 一 한 일. 하나, 같다. 如 같을 여.
출처 : 윤창화 <불교의 사자성어> ----------------------------------------------------------------------------------------------------------------
이 사자성어를 통해 차에 대한 호감이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커피에 호감을 갖고 기호식품으로 크게 자리한 것 같습니다. 녹차는 커피에 밀려 우리 일상에 다소 물러나 있지만 가끔은 차를 마시며 다선일미를 느껴보는 것도 운치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맑게 한다면 다선일미를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다선일여(茶禪一如) · 다선일미(茶禪一味)는 모두 "차의 참맛과 선의 참뜻은 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곧 차를 바르게 마시는 마음과 선을 닦는 마음이 본래 하나라는 말입니다.
차와 선이 같은 이유를 본문에서 자세히 밝혔지만 다시 짚어보는 마음에서 정리해 봅니다.
차는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해 주고, 선은 마음의 번뇌를 걷어 본성을 밝힙니다.
차를 마실 때 잡념 없이 온전히 향과 맛에 집중하면 바로 현재에 머물게 되는데, 이것이 선의 정신과 통합니다.
차는 욕심내어 급히 마시면 참맛을 모르고, 선 또한 조급하면 도리를 얻기 어렵습니다.
좋은 차는 은은하고 담박하듯, 선의 경지도 꾸밈없고 담담합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행주좌와 (行住坐臥) 속 수행이 될 수 있기에 차 생활이 곧 선 수행과 이어집니다.
그래서 옛 선승들은 차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수행의 벗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선승들이 차를 즐긴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좌선 중 졸음을 깨고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수행자의 검소하고 담박한 삶과 잘 맞기 때문에, 손님과 대중을 차로 맞으며 자비와 예를 실천하기 위해, 차를 달이고 마시는 과정을 수행처럼 삼기 위해, 한 잔의 차 속에서도 무상 · 무심 · 평등의 도리를 체득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래서 선가에는
"차 한 잔에도 도가 있다." "평상심이 곧 도요, 차 마시는 일 또한 수행이다."라는 말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결국 다선일여란 특별한 경계가 아니라,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이 깨어 있는 마음, 바로 그것이 선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모금 맑은 차 향 입 안에 머물고
고요한 마음에는 선향(禪香)이 머문다네.
차 한 잔 음미하는 중 마음도 맑아지네.
오늘 하루도 차 한 잔의 맑음처럼 마음을 청정히 하시고, 분주한 속에서도 본래의 고요함을 잘 지니고, 걸음마다 여유와 밝은 기운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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