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난 아랫집에 작년 가을
새로 이사 온 아랫집 여자를 불러 함께 차를 마셨다.
그 동안
바쁨을 핑계로
만나면 눈인사만 주고받으면서
참으로 눈빛이 반짝이는 여인이란 생각을 늘 했었다.
하이얀 얼굴에
컷트 머리,
나직하고 갸날픈 목소리로 연신 미소를 띄며
그 여인은 남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명퇴를 하고
그 여인의 남편 분은 이 일, 저 일을 하며
정말 전전긍긍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디딘 생활을 했었다 한다.
생활고의 막판엔 지하에서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8만 원의 사글세방에서도 살았었다 한다.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 일을 시작하면 또 망하고..
오래 전엔 치킨집을 했었다고도 한다.
지금처럼 조류독감이 유행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장사는 제법 될만했는데
남편이 맥주라도 술잔을 들고 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너무 싫어해서
그만두고 결국 또 손해~~..
나중엔 하다 안 되니까 작은 용달차에 계란 장사를 다해보았단다.
잘나고 멋지고 당당하던 남편의 뒷모습은 오간데 없이 행방불명이었단다.
그래도 아침이면 애써 웃는 얼굴로 나서는 남편을
미소로 배웅하고 돌아서서는 하루 종일
가엾은 남편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시간도 흘러~~
지금은 번듯한 회사의 사장님이 되어
오늘의 집으로 이사를 왔노라 이야기하며
미소 짓는 그 여인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거리다 미소가 폴카를 추다했다.
아무튼 눈빛이 너무 반짝이는 여인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생 끝에 대학 때 전공을 되살려 건축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강화부근에서 처음으로 건축업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군불 때는 부엌을 개량하여 입식부엌으로 만들어주고
집안에 욕실을 들여놓아주는 일부터 시작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큰 부자는 아니지만,
딸 하나와 아내와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추억삼아 행복의 양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부부에게
몇 주 전 토요일 저녁
맥주잔을 마주한 남편이 느닷없이 말을 꺼내더란다.
“여보, 강화에 좀 가보고 싶어..”
“가고 싶으면 가면되죠?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가볍게 답을 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깊은 눈빛으로 이야길 꺼내더란다.
“ 사실 처음 건축일 시작할 때
처음으로 손을 대었던 그 집이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잘 못 된 곳이 많은 것 같아.
그 동안 내가 손 댄 집들이 많았지만
첫 집이라 꼭 가보고 싶어~~”
남편의 말에 흔쾌히 그러마 하고
야밤에 홈플러스에 가서 간식거리며
이것저것 꾸리고 집에 남아있겠다는 딸을 남겨두고
두 부부가 남편의 옛 기억을 더듬어 그 집을 찾아갔더란다.
강화도 여행이야 여러 번 다녀왔지만
누군가의 집을 주섬주섬 찾아들며
들어간 곳에 팔십이 넘어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호호 할머니가
나오셨단다.
5년 전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자식들 모두 도시로 나가고
이웃들도 대부분 떠나버린
그 곳을 지켜내며 살아계신 할머니와
옛기억에 싹을 돋우듯
남편은 할머니에게 남편의 존재를 상기시키느라
열심~~
갑자기 할머니의 환해지시는 얼굴~~
할머니가 두 부부에게 내민 것은
동충하초 드링크 한 병과 남은 홍시 한 개
아마도 누군가가 할머니 드시라고 가져다 놓은 것을
아끼고 아꼈던 것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단다.
저녁을 먹고 가란 할머님의 인심 쓰는 마음과는 달리
궁핍한 살림에 나그네 끼니 준비가 간단키나 했겠는가?
두 부부는 가봐야 한다며
할머님께 용돈도 드리고
극구 사양하고 길을 떠나왔단다.
남편이 이 곳 저 곳 살펴보고
당장 손댈 곳은 집에서 챙겨간 연장으로 뚝딱~! 뚝딱~!
다음 주에 직원들 데리고 가서
손댈 수 있는 한 최대한 완벽하게 해주기로 약속하고 돌아온
남편은 그 날 9년 묵은 마음의 짐을 푼 듯 했다한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약속대로 할머니집을
춥지 않도록 사시기 편하시도록
도배 장판까지 손 닿는데 까지 해드리고
남편 나름대로는 최대한 알뜰살뜰 보살펴 드리고 왔단다.
이런 남편을 자기는 정말 존경하며
그 날 이후 남편이 굉장히 큰 산으로 보였다한다.
“ 저 지금 삶이 너무 행복해요.
남편 때문에요.”
아랫집 여인의 눈빛이 그리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이유를 알게 된 날이었다.
근묵자흑. 주묵자적이라고
나도 그 여인의 윗집에 살면서 눈빛이 반짝이게 될까
짐짓 기대되는 참말 어여쁜 여인이다~~.
"부부란 첫 눈에 반한 마음으로 사는 게 아니다.
서로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평상시 내 생각을 더 깊이깊이 말하고픈 날
하늘에선 고대하던 눈발대신
빗방울이 하늘거렸다.
^^*
첫댓글 행복하고 따뜻한 세상 이야길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 뒤에 오는 비는 밉지가 않아요.
온갖 역경 속에서 제 자리를 잡으신 그 분, 주어진 상황에 감사할 줄 알고, 사회에 무언가를 되돌려 주시려는 마음,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감동적인 글로 형상화 시키시는 comi님,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많이 얻어 갑니다.
정작가님~, 김작가님~, 카페가 사춘기인지 말썽을 피워서 제 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었습니다. 답글 늦었음을 용서하시길요... 오늘이 우수라지요? 비 소식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고.. 비가 그친 후 강추위가 다가온다고도 하네요. 변덕스런 날씨에 우리도 변덕스럽게 발 맞춰야할 시간~~ 두 분 모두 건강하시길요~~... ^^*
꼬미님의 글을 읽어 가다가 갑자기 숨쉬는 공기가 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존경스러운 그 부부에게 항상 행복이 함께 하기를 ..... 이 글 읽는 동안 참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고운 시선으로 차 한 잔을 나눌 줄 아시는 꼬미님, 날마다 고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