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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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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의 눈 빛
한용운
푸른 하늘에 숨었다
살며시 내려온
이슬은
무슨 빛 일까요
빨간 꽃잎 한 입 물고
빨갛게 물 드는
이슬
이슬방울
풀잎 위에
앉았다
새파란 얼굴 되고요
노을 바라보다
저 혼자 자꾸 부끄러워
마주 보는 눈빛은
노을 빛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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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데
한용운
귀 쫑긋 세우고
돌 냇물 ㅎ르는 소리
가만히 듣고 있는
버들강아지
사르르 사르르
곷샘 바람 불면
눈망울 배시시 내미는
개나리
언땅도 아하!
하품하는 소리에
개구리 잠깨는 소리도
들리고
뒤뚱뒤뚱
오리 궁둥이 흔드는
소리까지도
내 귀에는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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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날
한용운
파란 댕기 봄바람
도리 도리
머리 흔드는 날
샛노란 새싹들
왜
도리질 하느냐고
쑥 쑤욱 고개 내밀고
물 오르는 미루나무
까치 엄마
까꿍 까꿍 하지요
얼굴 간지러운 개나리
비는
언제쯤 오느냐고
묻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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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
한용운
언제나 늘
어디를 가던지 좋다고
졸졸 따라 다니는
다정한 내 친구
싫가고 화 내어도
아무말 없이
빙긋이 웃기만 하는
내 친구
어둔밤 길 갈때면
무섭다고 몰래 숨어서
가만히 뒤따라 오고
잠 잘때면
미안스럽게도
꼬박 밤새워 지켜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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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어둠
한용운
햇빛은 날마다 여보란듯
하얀손길 푸른 잎 만지며
예쁜 꽃을 피워요
어둠은 밤마다 우리들 보라고
하얀 달 빛 어루만지며
달맞이 꽃 피워요
낮에는
낮에 나온 반달 지기까지
새들은 새끼를 기르고
밤에는
먼 별빛 은 구슬로
금목거리 만드는 꿈을 꾸고
햇빛과 어둠은
좋은 세상 만들려고
모두모두 땀 흘려 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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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한용운
이른새벽 살며시
다가 온 안내
우리집을 꼭 끌어 안는다
장독대 간장도 퍼 마시고
멍멍이 송아지도
모두 먹어 치운다
온 동네가 금새
새보얀 꿈속같은 안개속에
죽음처럼 고요한데
헷님은 무어하고 야단쳤는지
미친듯 집어 삼켰던
세상것들 그대로 토해 놓는다
멍멍이 송아지도
이제는 살았다고
멍,멍,멍 음매, 음매, 음매
푸른하늘은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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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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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김규중
무엇이 부끄러워
땅 속으로 숨었니
다른 콩들은
하늘을 향해 크고
어떤 콩은
조금이라도 태양 가까이 가기위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비옥한 땅도 마다하고
모래 속에 숨어있는 너
너의 진실이 궁금하기에
한 옴큼씩 다가선다
한참 만에 만난 너
투박한 옷 벗기면
속옷 속의 뽀오얀 살
풋풋하고 비릿한 당신의 내음
네가 난 좋아
화려하지도 뽐내지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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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김규중
도 개 걸 윷 모
윷판에서 모가 가장 멀리 가지만
윷놀이에서 이기려면
도 개 걸 윷이 모두 필요하네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이 아닐까
필요할 때 나올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원하는 대로 되기보다야
엇갈려 나오는 때가 더 많은 것 같아
기왕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면
모두 엎드려 있는 모보다는
배를 모두 드러내는 윷이
가장 멋있는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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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김규중
한여름
모진 바람에도 부러지지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수십 년을 버텨온 당신
당신의 이름처럼
참 나무이구나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으로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더니
인간에 의하여
기계톱소리와 함께
몸뚱어리 잘려나가도
순응하던 당신이
한겨울
꽁꽁 얼어 버린 몸으로
화부의 힘에
대항이라도 하듯
쫙쫙 몸을 쪼개는 구나
죽어서도 참나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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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무상歲月無常
김규중
산골에 사는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기찻길도
먼지가 풀풀나는 황토길 인줄 알았다
막연히 동요에서 듣던
기찻길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가 잠을 잔다는
그 기차를 보지 못했다
세월 지나
산골에도 4차선 아스팔트 길
쌩쌩 달리는 자동차 요란한 소리
도로 옆 아파트에 사시는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께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시라고
자장가를 불러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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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김미애
세탁기로 가기 전 주저앉은 그를 보았다
더러운 셔츠와 양말, 대책 없이 구겨진 채 쉬고 있다
땀과 각질에 시달렸을 내부를 드러내고
미처 빼내지 못한 긴 띠를 떨쳐 내리지 못하고
낮은 포복으로 뜨거운 다림판에 아주 낮게
칼날 주름 빳빳이 세웠을 것이다
작열하는 스침과 걸러지지 않는 바람과 먼지에
찌들어 살갗이 벗어졌을 그를 내려다 본다
종일 목을 조이던 가죽과 금속의 팽팽한 떨림속에
묵묵히 견뎌온 자신을 대견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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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축제
김 미애
여름내 정체를 가라 앉혔다
한 치의 실수도 용서치 않을 서릿발을 기다리며
거듭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용서치 못할 것이다
수면 위 딱딱한 천막이 쳐지고 그 위에 불꽃을 쏘아
올려도 상관없다
묻지 않았던 이유에 새삼 관심 가질 필요가 있을까
찬 몸이라고 피가 없을까
그냥 겨울 피라미 인줄 알았다
물이 단단해지면 풍선 띄우고 각설이패 목청을 높인다
참 많이들 온다
쬐그만 피라미 보러온다
놀란 물고기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긴다
얼음 속에도 물결이 일렁일까
가끔 쉬러 올라온 치어 두 마리 구더기에게 물린다
몽고텐트 속에서 꽁치가 익고 통돼지가 돌아간다
거미줄에 걸린 빙어들은 산소 포장 속에 제 갈 길로 간다
어지러운 세상 속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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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나무숲의 잠
김 미애
대청봉(大靑峯) 단풍 들던 날, 둥치에 둘러 쌓인채 동글 길쭉한 것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거슬러 가고 싶다 달이 반으로 쪼개져 자갈위에 지붕을 덮어 아늑한 모양으로 만들어 가는지 거칠어진 손바닥보다 먼저 가슴 깊이에서 해일 밀려오고 눈감은 물닭 갈대숲에 떠다니는 그림자 마르기전 어떻게 자기가 밀어내놓은 점백이 알 품어 이름을 또 만드는지 구겨진 상반기의 달력을 정성껏 다려서 패여진 산맥의 골목을 들어가고 들어간 곳 이젠 숲에서 주워 붙인 억지스런 오색빛 깃털이 바람에 날리기 전에 마음 바꾸어 더 화려한 황금빛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마중할 수 있을지 진짜와 가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계절로 치면 시월쯤 가장자리에서 절었던 시월 전의 하찮던 그렇치않던 모두 끌어모아 높아진 하늘을 뒤집어 태양 언저리에 더 이상의 자전을 멈추어 쪼그려 불을 쬐고 싶다 늘 근심에 둘둘 말린 하루가 숲이 어두워지면 나무 맨 위로 올라가 상수리식구를 늘려가는 까닭을
진득치 못한 내 잠의 울타리에 가을이면 숲의 회전을 따라 미쳐 튕겨 오르지 못한 별똥별은 시월 이후에 새 가족을 입적[入籍] 하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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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에 꿈을 꾸다
김 미애
산 아래 낮게 엎드려 무심히
너를 헤아릴 때 스며 들었는가
무게가 부담스러운 관절 하나 꺽으며
땅 아래 잠들었던 무수한 씨앗들
퍼 올린다
산 그림 각막에 밀착 시켜 떠나간
언제쯤일까 네가 더듬어 꿈틀거렸던
지금은 돌아 갈수 없는 먼 땅
돌아 갈수 있을까 떠나자
어디로 가는가 휘파람 부는
그래서 떠나야 한다 예고 없이
쿨럭이는 늙은 나무에게 잎 떨구는 법을 배운다
사라질듯 몸을 섞었다 가끔 눈빛을 건네며 다가오는
봄 날
산 동백 터지면 갈채를 보내고 사산된 꽃들은 떠나갔다
어지러운 홀씨 기슭에 묻어놓고
버려진 흑백필름 저 돌 틈에 꽂아두고
미루어 놓았던 골짜기 향해 문 열린다
떠나간다 갈풍나무 뒤척이는 소리
들리는가 마주보는 침엽수 곧게 솟아있듯
다가갈수록 낮 설은 모습들
어느 때인가 사월과 오월의 따듯한 바람에 다져진
견고한 물로 잠들었던 지난날
이제는 소스라쳐 깨어 무언가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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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 할 일이 아니다
-미리내 캠프에서-
김미애
한줌 햇살이 우레탄 길을 데우고 있다
그 위로 아이들이 지네발로 지나간다
솔밭아래 개울 고산에서 흘러온 얼음이
긴 겨울을 뒷담하고 한 무리로 내려간다
늙어버린 오후가 떠나야 저 아이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조급할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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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
김동호
시의 바다 그 너머 시 없는 뭍 있다고
뭍 향해
떠났습니다
가다 도로 왔습니다
苦海가 불국토(佛國土)길레
시가 곧 수행이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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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김동호
나팔꽃 그리려다 붓 거두고 만 것은
아무리 떠올려도 그 잎 생각나지 않아
인생을 그리는 일도 하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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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김동호
구름을 입는구나 그 옷 도로 벗는구나
벗어서 눈길 끌고 입어 더 사로잡는
대청봉 저러한데도 한낱 옷을 못 떨치고
입고 또 벗는 일이 하필 옷뿐일까
평생도 대청봉에 구름같은 걸침인 것
덧없는 세월 등허리에 높은 뫼도 한 철 납의(衲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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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김동호
은하수 흘러가듯 개망초 피운 들길
잔잔히 모여들어 하얗게 굽이친다
한 세상 그 이름이라도 그 망초꽃 땅에 뜬 별
이 땅 어디서건 저 작고 하얗게 피는
사람아 낮춘 사람아 한갓지기만한 사람아
개망초 지천으로 널린 그 길 총총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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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김동호
이 가을 저녁비가 잎새만 건드리거나
그 비, 마른 땅만 적시는 거랍니까
닿거나 스미지 않아도 실컷 그런 마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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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金薗 박돈녀
천년을 두고도 잊지 못할
이산의 아픔
만년을 두고도 못 잊을
어머니의 그리움
봄은 왔는데
산동백은 저리도
바라지게 피었는데
어머니 가슴에 내려앉은
잔설 밀치고 얼레지 꽃 피면
북에서 철새들 소식 전해와
어머니 마른 가슴가득
연분홍 살구꽃 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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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금원 박돈녀
멀뚱하니 병원 천정만
바라보는 노을 진 얼굴들
가끔씩 세상 밖을 헤매다
내안에 문을 찾아
가슴 내려 쓸며 문턱을 들어선다
시야는 침침하고 귓전엔
온통 바람소리뿐
이마에 얹은 손톱 밑 풀물들손
감겨진 눈 속에 아른대는 얼굴들
깊은 심연을 툭툭 깨고 있다
황혼 몇 가닥 내려앉은 창밖에
귀향을 재촉하는 막차는
굉음을 울리며달려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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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박돈녀
긴 여정
움켜잡은 손 놓칠세라
돌다리 건너 가시덤불 헤치고
안개꽃 만발한 계곡
굽이굽이 돌아
굽어진 허리 노송밭에 쉬어가며
허망한 세월 무게만큼 작아지는 키
졸라맨 허리춤 흘러내린다
지친 몸 추슬러
미로의 터널을 찾아
다시 떠나는 길
놓치면 큰일 난다고
꼭 잡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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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순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이 생명
-73회 생일을 맞으며
오정진
잠 안오는 밤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어쩔까
동북아세아 해뜨는 곳
이 한반도
아리랑의 恨서린 가락속에
역경의 고개 수없이 넘고 있는
이 겨례를 어쩔까
平和와 生命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원
이 피맺힌 悲願이
언제나 풀릴까
지어미가
제 새끼 데리고
지아비 바라보며
마음놓고 편안히 사는 그 날
아! 어쩔까
아직도 활 활 타오르는 이 생명
우리 모두들
겨레의 제단에 사르면
비개며 무지개 뜨듯
그날이 꿈처럼 오겠지
아직도 고동치는
이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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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12
-고독
오정진
훠언히 뚫린 한길을 걷는다면
무엇이 외로우랴
아무도 가보지 않는 새 길을
꼬옥 가야 할 이유를 홀로 발견하고
걸어 갈 때
그 때
가슴이 저려오도록 외로운 법
새길을 어찌 평탄하랴
상처투성이 발이 외롭게 외롭게
걸어 간 피 묻은 자국이
길이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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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성탄절은 다가 오는데
오정진
우리 서로
나누며 삽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나누면
셍상이 온통
눈부시게
밝아 올 것을
알토란 같은 것은
꼭 꼭 지니고
허섭쓰레기 나누어 보았자
어디 마음문이 서로
열린 답니까
보세요!
당신의 '피' 와 '살'을
'너희는 이것을 받아 먹어라'
눈물나게 고마운
나눔
극명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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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오정진
나눔은 흐름이다 받았으니 보내야지
온만큼 흘러가라 본시는 없었던것
흘러야 맑아지느니 고이며는 썩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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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오정진
간 밤에 쌓인눈이 북풍에 휘날린다
꾀 벗은 가지끝에 애터지게 우는 바람
깟깟깟 다급히 울며 까치 한쌍 어델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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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오정진
쓰르르 쓰르라미 맥풀리게 울고나면
빨래줄에 고추잠자리 날개넘어 뭉게구름
무거워 고개숙이는 수수이삭 벼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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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杜宇 원영애
어머니 기일
뿔뿔이 흩어졌던 식구들 다 모였다
어린 시절
지글지글 싸움도 잘하고
삐치고 돌아서면 마주 보고 웃던
정다음으로
제상 앞에 우르르 서서
어머님 밥 잡수시길 기다린다
우리에게 챙겨주던 밥상
어머님께 먼저 올려
우릴 철들게 하는
김이 오르는 진뫼
갱물에 말아 드리고
시접匙楪 물리고
어머님 쓰시던 사기 사발에
정 담긴 물김치
어머니의 이야기가 반찬으로 올라와
귀로 먹고
추억으로 먹는 상머리
지난날로 돌아가는 이야기
수저 끝에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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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杜宇 원영애
사랑하는 사람아
높은 산은 하늘아래 있고
깊은 바다는 땅위에 있느니
저 높은 산에
무엇이 있기에
높이 오르려 하고
저 깊은 바다에
무엇이 있어
심연의 깊이를 재려 하느뇨
하늘은 구름으로
산을 휘감고
바다는 바람을 불러
파도를 일으키나니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하늘과 땅 사이에 가두어
험한 풍랑속을 떠돌게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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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杜宇 원영애
푸른 하늘 시린 새벽에
내 이름 부르는 이 누구인가
물소리
바람 소리
살갗을 깨우는 숲길 사이로
날 부르는 이
자작, 자작 난
자작 그 뽀얀 길
아련히 피어오르는 그리움
낙엽 지는 밤에도
그대 발자국 소린가 싶어
나즈시 귀 기우리는
풀잎 밟고 오는
자작나무 숨소리
날 부른 이 당신 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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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일기
杜宇 원영애
1.
창틀도 네모 천장도 네 모
아파하고 슬퍼하고 그
리워하는
네모 안에 모든 것이 있다
2.
네모 틀 안에 각진 아픔
분홍 빨강 노랑
서로 다른 눈금
하루의 각도를 잰다.
3.
여러 색깔의 사각 틀 창문
네모진 문으로 네모쟁반에
반찬 넷, 국, 밥
그리움으로 말아
창 너머 햇살 한 줌
꿈같은 고물 묻혀 삼킨다.
4.
네모창틀에 풍경들
낮과 밤 바뀌며
빨간 십자가
밤엔
기도가 가로등처럼 다가온다.
5.
꽃피는 소리 듣지 못하니
꽃 지는 소리 어이 들을까
내 슬픈 병명은
봄날에
서러운 각질로 휘날리네.
6.
고요가 집결되는 자국마다
저 고독의
빈 그림자
종이 위에 홀로그램으로 그려져 내린다.
7.
사각 틀 창문에
달하나 걸쳐놓고
외로움 문지르면
달빛처럼 설레는 그리움.
8.
유리창에 다가가
그 이름
가만히 부르면 뽀얗게 떠올라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질까 두려워
부르지 못하는 이슬 같은 이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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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풀기
杜宇 원영애
살다보면
살아가다 보면
인연 아닌 것 어디 있으랴
마음속 종하나
혼자 울릴 때도 있느니
세상 근심걱정
스스로
아파하며 녹여
잘라 버릴 인연 아니라면
하얀 눈 덮듯
그렇게 덮을 것을
풀지 못할 매듭 어디 있으랴
살다보면
살아가다 보면
모두가 인연
마음 하나로 맺고 풀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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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바다
영담 정기현
버려진 시간들이
모래 위에 제멋대로 누었다
계절이 떠난 자리에 서서 침묵이
주인 잃은 희미한 흔적 위를 서성일 때면
끌려가며 성숙하던 푸르던 꿈들은
옷을 벗어버린 채 자유가 된다
삶의 이야기가 끝나버린 것도 아닌데
이때쯤엔 눈을 뜨고있어도 고향이 보인다
어떻게 보낸 세월들 이었기에
커다란 손바닥엔 한웅큼 후회만 쥐었는가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 그 뒤에 서니
타는 노을만 봐도 눈물이 난다
아침이 오면 다시 긴장하는 두 어깨 위로
세월은 봇짐 하날 더 얹어주지만
꿈을 그린 보물지도 하나씩을 움켜 쥐고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여행 준비를 마친다
이번엔 동쪽 바다 끝 그 작은 섬이
새벽 파도 견디며 불러줄 노래 꼭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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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이 웃네
영담 정기현
속을 훤히 내 보이곤
까르르 실개천이 웃네
맑으면 숨길 것도 없지
땅 위에서 파랗게 하늘 길 가며
숨어 웃는 내 웃음 늘 비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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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논두렁엔
영담 정기현
잊어선 안 될 일도 없다고
하늘하늘 할 말 많은 벼 어린모
허수아비 손잡고 가는 학교 길
논두렁 길다
하루 해 열심히 제 몸 태우고
우주 한 모퉁이를 추락해 가도
지구의 순(純)한 자전이라 생각했지
시간의 겉 다른 속셈은
감히 상상도 못하였네
어느 새벽이 산 안개를 거두고
둑길 따라 훌쩍 커 버린 잡초 무리
나와 키를 재려 할 땐
세월이 또 한 웅쿰
내 호주머닐 새 나간 걸 알게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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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오는 데
영담 정기현
언제든
생각 한삽 떠내면
그 자린 눈물이 채우고
사무친 얼굴 하나
출렁 떠 오른다
잊으라
잊어지겠지만
텅 빈 저녁 거리
흐느끼는 낙엽들은
무엇으로 달래야 하나
계절이
이 무심한 계절이
성큼 성큼 걸어
당신도 없는 데
저 모퉁일 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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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온 초승달과 동행
영담 정기현
잊혀지기엔 추억이 너무 많았나 보다
둑길 위엔 안개처럼 침묵이 쏟아지고
빈 하늘엔 초승달만 멀감치 쫓아 오는데
새도 꽃도 널브러져 자유한 들판엔
강물도 제 길따라 노래라도 하려는가
심중에 한 사람을 꼭 보내야 할것 같아
사내 가슴 활짝 열고 꺼내 놓고는
그 문 차마 닫지 못해 쩔쩔 매고 있는가
이별이야 시린 눈 한번 감아 버린다지만
영문도 모른 채 지워져야 할 우리 얘기들은
또 어느 가슴에 적어 접어 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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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술
華曇 정순덕
동명동 횟집은
아버지가 옛날에 구장을 보았다고 해서 우리동네 사람들은 석구장네 라고 부른다
회 먹을 일 있어 속초에 가면 초등학교 동창의 동생이라고 그 집에 간다
회 한 접시 시키면 공짜 회도 주고 밥,술은 거저 준다
이층 창가에 앉으면
영금정이 보이고 오리발섬이 보이고 자맥질하는 해녀가 보인다
저 멀리 바다위에 고기 잡는 배도 보이고 배 따라 맴도는 갈매기 떼 도 보인다
오늘 오리발섬에는 갈매기 100 여 마리 서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동쪽 바위에 한마리, 바다물 위에 한마리
유독 커보이는 한마리는 내가 앉은 유리창 쪽 바위에 앉아 한 시간째 움직이지 않고 있다
회를 씹으며 저놈은 대장일까? 척후병일까 ?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갖혀있는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일까?
방파제 근처 연인들을 바라보는 것일까? 자아를 찾고 있는 것일까?
잠시 쉬는 중 일까? 그저 가는 시간을 즐기는 것일까?
말 한마디 없이 창 밖에, 창 안에 마주 앉아
세병째 소주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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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와 사위
華曇 정순덕
검정고무신 신고 퍼대-하고 앉아
끙끙 거리며 무시레기 엮는 사위, 한움큼 씩 시레기 넣어주며
-자네 출세 했네 환갑 지나서 무시레기 엮는 것 배웠으니...
-그러게요. 평생 무시레기 한 줄 못 엮고 가는 사람이 많을텐데
-사람은 평생 배우고 써 먹어도 배울게 천지빛깔이야.
올겨울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시레기장국 시레기볶음 물리게 먹겠네.
탱탱하게 살진 무시레기
처마 밑에 주르르 엮어 널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
늦가을 하늘도 파랗게 웃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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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장
華曇 정순덕
아흐레 나흘 날에는
잊어버릴듯한 모든 것들을 만나는 장이 있다
놋그릇 인두 화로 쥐덫 코뚜레 도 오랫 만에 보고
강냉이 즉석도넛 붕어빵 올챙이국수 도 맛 보고
덕산쌍동이이모, 필레동창생 가아리사돈댁도 반갑게 만나 안부 전 하고
무공해 열무 대파 감자 옥수수는 얼굴 보고 산다
지게꾼ㄱ씨 나뭇꾼ㄴ씨 미장공ㄷ씨
무허가미용사ㄹ씨 뜨게방ㅁ씨
ㅂ씨 ㅅ씨 염색공ㅇ씨 음악다방ㅈ씨
바쁜 사람들 만나 곰삭은 정 나눈다
열흘에 두 번, 한달 에 네번
잊지 말자고 다시 만나는 만남의 장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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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華曇 정순덕
요앞 마당귀에 나무 두 그루
빼뚜름이 누운 채 빨갛타기 보다 검게 타 버린 단풍 나무
키만 삐-죽 크고 노랑 반 황갈색 반 단풍나무
볼 때 마다 내 안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깔깔거리고 부지런히 이일저일 바쁜 척
아픈 곳 없고 걱정거리도 없는 척
반반하게 화장하고 치장하고 다녀도
내 안은 때깔 곱지않은 단풍을 닮은 것 같다
30년 지기 앞마당에 단풍 곱다기에
진짜 예쁘게 물든 단풍잎 가까이 보고싶댔더니
그림 보다 더 곱고 산뜻한 단풍잎이 주렁주렁
씨앗 까지 앙증맞은 가지 꺾어왔다
"오정진" 선생님의 시 "횡재" 위에 걸어 놓고
흐릿한 상념 끄집어내 가을 볕에 걸어놓고
오며가며 산듯산듯 고운 단풍 바라보니
올가을엔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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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華曇정순덕
메말라 갈라진 논에 물을 주어 곡식이 잘 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물을 퍼부어야 하는지 알고있니?
일단 한 번 가뭄을 탄 논은 회복되기 어렵단다
포기하지않고 계속 물을 퍼다 부으면 촉촉한 논이 되겠지 라며
따뜻한 손 포개는 수녀님께
무슨 말씀이냐고 되 묻고 싶었지만
그저 눈물만 나데요. 그땐
손바닥이 터지고 무릎관절이 삐그덕거려도
멈출수없는 물 질
메말랐던 당신은 아주 미미하게 변화 되고
나는 지치고지쳐 가끔 물긷는 일을 놓아버리고도 싶지만
멈추지마라 멈추지마라
수녀님의 목소리에 작은 희망의 줄 놓치않고 습관처럼 물을 긷는다
먼 훗날, 나는 부숴져
마지막 눈물 한 방울 대지의 틈새로
소리없이 스며들어 아픈 가슴 흔적도 없이
한송이 눈물꽃으로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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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그네
조 해 숙
참새 한마리가 방안에 날아 들었다
무심코 저 놈을 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들고 있더 손을 휘 휘 저었다
날아드는 건 내 주먹에
꼭 쥐었던 번뇌
갇혔던 세월이 벗어나와
새 깃털에 앉았다
비웃음이다
짹짹대는 저 놈의 참새
난 저 놈의
저 놈이 된지 오래
오래된 침묵의 방안
공중 그네를 타는
저 놈은
이 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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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밥
조해숙
볕 바른 양지에
양지꽃
사르한 꽃 잎에
보름달 가득 담아낸다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들
돗나물처럼 돗아
아지랑 아지랑 걸음마 한다
샛 별 보며
참아낸 눈물 보따리
쏟아낸 흔적마다
마른버짐처럼 피는 냉이꽃
소반에 담아낸
오곡밥
아홉나물
배꼽보다 작은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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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조해숙
천상의 꿈을 피우나
봉우리 봉우리마다
"에드가 케이시"의 방언으로
피워 올린 향연의 불꽃
점멸하여 부서질 바람 한 점
꽃 방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하얀 꽃신 벗어놓고
두 손 모아 올리는
간절한 바람
붓끝을 올리면
부서지고 꺽이어도
그대 사랑이고 싶었습니다.
날마다 간절한 믿음들을
불러 모아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갈구하면서
떨궈내던 멍든 편린의 기억을
이제는 편히 떠나 보낼 수 있는 것이
그대 사랑임을 알게되었습니다.
*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20세기의 예언자, 「에드가 케이시(1877~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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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홍
나 그리고 백일홍
허계홍
투정을 받아주는 아버지처럼
웃음을 주는 그런 사람
있다면
또
한번쯤
정열을 태우고 싶다
그리고
백일 동안 빗질 잘한 머리카락처럼 찰랑거리며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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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냉장고
허계홍
어머니 몸에는 익은 냄새가 난다
다섯 자식을 키운 마당 한 가운데 우물가는 어머니의 냉장고
우물가에는 늘 깍둑이 김치 오이소박이 항아리가 어름 같은 찬 물에 담겨져 있다
뉘엇뉘엇 서산에 해가 걸칠 즈음 밭에서 일손을 놓고 집에 오면
나무의자에 윗저고리 벗어놓고 목물을 하시면 쭈글거리는 어머니의 젖통
보리밥처럼 구수한 입맛 다시면
삶의 찌든 등골에서 주주룩 흘러 내리는 김치 냄새 그득한 우물가
나는 아직도 어머니 몸에서 익은 냄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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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
허계홍
수영장 가는길
푸른잎들 하늘을 닿는 밭 한자락이 동해바다 물결이다
비바람 속에서
무통의 머리는 파랗게 멍이든다
당당히 넓은 세파에 마주친
발가벗은 몸통이 백옥처럼 희다
중독된
남편의 술국에서
어릴적 어머니가 찰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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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하나
허계홍
내린천 강변에서
처음 본 너
우리집 장식장
지킴이로
인연을 쌓았다
웅크린 그대 앞에
마주서면
집안 구석구석 흐르는
잔잔한 물소리
강한 힘은
맑은 공기가 되고
바람이 되어
아침 햇빛에 날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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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