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상류층" 심리가 명품소비 자극해
짝퉁시장 키워 지하 경제 확대 부작용도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1층 루이비통 매장. 쇼핑객이 불어나는 오후 무렵이면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주말에는 1시간30분~2시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줄이 길다. 국내 명품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백화점 매장 풍경만 바뀐게 아니라 명품 관련 시조어도 대거 양산됐다. '3초백' '샤테크' '맥 럭셔리' 등이 그것이다. '3초백'은 길을 걷다보 면 3초마다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서 루이비통 가방에 붙여진 별칭. '샤테크'란 샤넬과 재테크의 합성어로 샤넬 핸드백은 해마다 가격이 올라 미리 사두는 게 이득이라는 의미다. '맥 럭셔리'는 맥도널드와 럭셔리를 섞은 말로 명품을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누구나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명품 매출 10년 새 10배로
정말이지 샤넬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등의 로고와 상품은 어린아이들까지 알 정도로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한국 명품시장은 2006년 이후 매년 최고 12%씩 정장해 지난해 45억달러 규모에 이르렀다.
맥킨지는 한국 가계소득 중 명품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로 일본의 4%를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명품 소비자 45%가 '명품을 갖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조사 결과인 21%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반면 일본은 이같이 생각하는 소비자가 2010년 39%에서 2011년 38%로 줄었다.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등 3대 명품의 국내 매출 변동 추이를 살펴보자.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명품 3사 매출은 10년 새 무려 10배를 넘어섰다.
2000년 382억원에 불과했던 루이비통코리아 매출은 지난해 4273억원을 기록했고, 구찌그룹도 2000년 238억원에서 지난해 2731억원으로 매출이 가파르게 늘었다.
지난 9월에는 세계 공항 면세점으로는 처음 인천공항 면세점에 루이비통 매장이 둥지를 틀었다. 이브 카셀 루이비통 최고경영자가 인천국제공상 신라면세점 오픈식에서 "20년간 매장을 운영해 온 한국은 루이비통의 세계 4대 시장"이라며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정도다.
◆가치소비 vs 사치
명품시장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뭘까.
일단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주는 매력과 좋은 품질, 질리지 않는 디자인 등이 소비자들에게 만족감을 줬기 때문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해석이다.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가운데 가격이 비싸더라도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 "며느리나 딸에게 대를 물려 쓰겠다"는 목소리도 있다. 명품 자체가 보유한 뛰어난 가치 때문에 명품을 소비하는 일명 '가치소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차별화된 상품을 제공해 다양한 소비계층 욕구를 만족시키고 소비를 촉진시킨 것 역시 명품의 순기능이다. 명품이 국내에서 생산되지는 않지만 명품시장 성장으로 매출 신장과 고용 증대 등 국민경제에 선순환적 영향을 미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명품시장 성장 배경에는 한국인 특유의 비교 심리와 질시, 열등가므 동조화 등의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명품 소비를 통해 사회적 지위와 부, 권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과시욕과 다수의 사람이 소유하지 않은 희소한 제품을 통해 일반 대중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명품을 소유하면 상위계층에 소속돼 있다고 느끼는 '파노플리 효과'와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도 소비를 촉진시킨 배경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맥도널드형 명품 소비'라는 특징이 있다. 누구나 맥도널드에 가서 빅맥을 사먹는 것처럼 쉽게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과시형 수단으로 명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품, 네이밍의 승리"
명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명품의 정의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좀 난감한 게 사실이다.
명품은 원래 잘인들이 수제로 만든 값어치 있고 희귀한 제품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히 비싼 해외 고가 브랜드를 통칭하는 말이 됐다.
해외에서는 일반적으로 럭셔리(Luxury)로 불리는 이들 브랜드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명품이라는 용어를 채택한 것이 명품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명품은 럭셔리 브랜드가 들고나온 일종의 마케팅 용어였던 것. '네이밍의 승리'라는 해석이다.
원대연 한국패션협회 회장은 "사치품이라고 불렀다면 지금과 같은 명품 열풍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명품이란 말의 오용에서 벗어나자"고 지적했다.
명품 구매사 증가하면서 명품을 칭하는 용어도 다양해졌다. 매스티지 명품, 위버럭셔리 등의 용어로 진화한 것. 명품업체들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위해 만든 조어이기도 하다.
매스티지(Masstige)란 대중제품(Mass product)와 명품(Prestige product)의 합성어로 명품의 품질에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 깊숙이 파고든 제품이다.
위버럭셔리(uber-luxury)는 영어 'uber(최고의)'와 'luxury(고가 사치재)'를 합성한 말이다. 일반 명품 가격을 뛰어넘는 초고가 명품을 의미한다. 대중화한 명품을 일컫는 '맥넉셔리'와 대별되는 용어로 사용된다.
5000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 1000만원을 호가하는 키톤 수제 정장, 37억원짜리 스위스 시계 바쉐론콘스탄틴 등이 이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명품 숭배의 그늘
명품에 열광하는 트렌드가 사회에 심각한 그늘을 드리웠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상대적 박탈감과 심리적 빈부 격차 심화 등이 그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럭셔리 코리아'에서 명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등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 같은 개인적인 감동 외에 외적 조건인 사회의 동조도 사치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사치를 동조하는 사회가 될수록 집단 혹은 개인 간 불화의 골은 깊어지며 사람들은 서로를 물질로서 판단하게 된다"며 "대한민국은 소비 만능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아래서 사치를 권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명품에 대한 애정이 도를 넘는 사례를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 버킨백을 사기 위해 1000만원이 넘는 선불을 내고 기다리고 있는 국내 대기자가 1000여명에 달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명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나친 숭배는 백화점과 명품업체 간 공정하지 못한 거래 관행으로 귀결된다. 명품을 유치하려믄 백화점 간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명품의 콧대를 높여 국내 브랜드와 비교해 헐값의 수수료만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명품 소비대열에 끼고 싶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악용한 작퉁시장 비대화도 사회 문데로 대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