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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춘옥은 1945년 수원 영동 시장내 싸전거리에서 이 귀성(李貴成)씨가 27평짜리 2층 목조 건물에서 시작하였다. 당초 제과제빵 기술자였던 이 귀성씨는 1930년 수원시 팔달구 1-9번지에서 형(李春明)과 함께 화춘제과점을 운영하였다. 화춘이란 상호는 수원의 옛 지명인 화성(華城)의"華"와 형인 이춘명씨의 "春"에서 한 글자씩 따와 작명하였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이 귀성씨는 제과점을 운영하여 상당한 돈을 벌었으나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식량배급정책에 따라 밀가루 공급이 중단되자 제과점을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독립하여 영동시장에 화춘옥이란 음식점을 차리게 되었다. 운영 초기에는 해장국에 소갈비를 푸짐하게 넣고 조리하여 그 깊고 시원한 탕 맛에 처음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과자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음식솜씨도 보통이 아니군!” 하며 귀성씨를 아는 시장 상인은 물론 시장에 오는 고객들로 항상 붐볐다. 그러나 비싼 갈비를 넣어주다 보니 해장국의 질은 좋았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이익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갈비에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재어 놓은 다음 맛있는 갈비의 맛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양념갈비를 팔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원갈비가 시작된 것이다. |
1950년 6ㆍ25 동란으로 잠시 문을 닫고 피난길에 오른 이귀성씨는 부산에서 도움을 준 현지인에게 조리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해운대갈비」라는 이름의 갈비가 부산지방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동란 후 모든 것이 풍족하지 못한 당시, 이귀성씨는 시장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먹게 하여 한 때 경영이 어렵기도 하였다. (그 일화는 1964년 이귀성씨가 타계하자 시장상인 및 그 주변사람들이 모두 나와 애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1953년도에 싸전에 위치한 영동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잠시 문을 닫고 수원시에서 대토를 받아 팔달로 3가 27-1로 이사하여 다시 화춘옥을 경영하였다. 그 후 외상을 너무 많이 깔아 경영상 문제가 발생하여 보다 못한 그의 아들 이영근 (李榮根)씨가 13년간 근무하던 수원시청 재무과를 근무하다 퇴직하고 2대째 화춘옥을 운영하게 되었다. 영업을 재개한 영근씨는 공무원 생활로 익힌 체계적이고 꼼꼼한 경영으로 영업을 정상화 시킨 후 갈비구이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옛부터 내려오는 수원지방의 소갈비구이 특징은 간장으로 양념하지 않고 소금에다 재워서 구워 먹는 것이었다. (소금간은 고기를 구울 때 간장보다 양념과 고기에 있는 수분을 덜 뺏아가고 고기를 타지 않게 하여 양념맛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느끼게 해 준다.) |
또한 고기 맛을 연하게 하고 풍미를 향상시키는 저온냉장숙성은 최근에야 그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더구나 참숯 (白炭)만을 이용하여 큰 화덕에서 고기를 직접 구운 후에 손님상에 갈비를 가져다주는 것은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화춘옥의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지금의 화춘옥도 그 당시 화덕을 재현하여 갈비를 초벌구이 하여 손님상에 내 놓고 있다.) 화춘옥은 지금까지 참숯만을 고집하고 있는 데, 그것은 참숯이 고기 속에 있는 수분을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고 고기 속까지 익혀 줌으로써 고기 맛을 더욱 좋게 하기 때문이다.(최근 조사에 의하면 白炭인 참숯은 연소시 인체에 유해가스인 다이옥신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숯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의 다량방출로 육류조직의 콜레스테롤을 분해 감소시켜주며 육질을 알카리성으로 바꿔 준다. 그리고 숯에서 방출된 전자는 해독작용 및 산화를 방지하며 육류 특유의 냄새나 비린내를 없애주고 고기의 참맛을 즐기게 해준다.) 지금은 우리가 쉽게 여느 갈비전문점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 모든 것은 화춘옥에서 유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수원지방의 모든 갈비전문점은 화춘옥의 조리법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화춘옥은 소갈비구이 뿐 아니라 해장국, 갈비탕, 설렁탕, 냉면 등 우리 고유의 향토음식점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60년대 낚시, 사냥 붐이 전국적으로 일었을때 수많은 낚시, 사냥애호가들은 새벽에 화춘옥에서 해장국을 먹고 낚시터로 가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그 당시 아침에 세 시간만 팔았지만 500여 그릇 이상을 팔았었다. 영근씨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치밀한 경영으로 6~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화춘옥은당시 유명정치인, 연예인, 기업인 등이 찾아와 서울에서 더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기도청을 비롯한 지방 순시 때 자주 들러 그 성가를 더욱 높였다.(박대통령이 바쁠 때에는 영근씨가 도청으로 직접 가서 조리를 하기도 했다.)
오늘날 수원갈비는 수원의향토음식으로 지정되어 매년 10월8일에서 10일까지 수원갈비축제가 열려 수원 시민 뿐 아니라 갈비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수원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것은 할 때 수원화성과 수원갈비라고 할 만큼 전국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수원갈비를 있게 한 화춘옥은 수원갈비의 산실이며 원조이다. |
I - CODE : 297-216-3603
전화번호 : 031-216-5005(예약을 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디카가 없어서 음식 사진은 없네요...
지금은 3대 아저씨가 운영한다는군요...
첫댓글 근무하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고, 또 회식으로 수차례 가 봅니다만. 사실 이곳은 그다지 명성만큼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요기 보다는 동수원 사거리 쪽에 가보정이 더 유명하지 않나 싶네요. 다만, 화춘옥은 손님 접대할 때 갈 만하고 가보정은 그냥 허물없는 사람끼리 식사하러 또는 일반 회식자리로 괜찮
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타지에 알려진 곳은 수원본갈비가 아닌가 싶네요. 요긴 근무처에서 화춘옥보다 더 가깝네요. 4- 5 회 정도 가 본 것 같습니다. 1 년 정도 전에 일반 가정집 구조에서 개조를 했더군요. 요기는 정말 시장을 방불케 합니다. 세 곳 중에 가장 양을 많이 줍니다. 생보다는 양념이 더 맛난 듯 하네요.
다만, 정말 싸게 먹을 생각 아니면 너무 정신 없으니 비추합니다. 수원에 또 삼부자갈비라고 있습니다. 요기 *가지 없기로 유명합니다. 망하는 꼴 한번 보고 싶은데, 안 망하네요. 반찬도 별로 없고 무지 비싸기만 합니다. 그래도 사람은 바글바글하더군요. 음냐, 지금까지 수원에 명성있는 갈비집이었습니다. 제가아는한
화춘옥이 예전엔 유명했었데요. 그런데 아들들이 이어받지 않고 있다가 화춘옥 주방장이 나가서 수원본갈비를 하게 되었고요. 나중에 맥이 끊겼다가 아들이 화춘옥을 다시 개시했다더군요. 암튼 참숯으로 고기를 구우니 다른 여타한 집보단 낫구요. 본갈비는 정말 시장통인가 봐요. 서비스는 기대안하고 고기맛을 보려면가
보세요. 주워들은 얘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