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춘성 ♬
만화방창 ♪
호시절을 맞아 봄 인사 하는 기분으로
오늘 집 짓다 생긴 이야기 한 자락 꺼내고자 함이요.
날도 풀렸겠다,
땅도 녹았겠다.
정화조를 묻고 있었어.
물론 굴삭기는 부전공이지만...ㅋ

집 지을 때마다 정화조를 묻어야 하니 이미 수십 개는 족히 묻었지.
근데
그런데 말이요.
요 "정화조"란 것이 참 묘한 것이요.
이름도 "화조"라 잖우?
화조가 머겠어?
"불새" 아냐?
이렇게 이름을 바꿔 말하고 보니,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질 않소?
그러고 보니 그렇지?
그럼 잘 들어 보시구랴.
집이란 것을
민속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집에는 많은 귀신이 있어.
귀신이라고 해서 무섭고 요사스런 것만이 있는 게 아니고
나라를 지키거나 집안을 수호하는 귀신도 있어.
우리네 조상은 그렇게 믿고 살았지.
개화다 근대화다 새마을이다 하면서 일도 많이 했지만,
동시에 우리의 민속, 풍속, 감성적 사고를 해치는 경우도 많았지.
그 중 귀신에 관한 민간 속설은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깡그리 매도당한 처지로
수십 년이 흘렀지만,
나는 오늘 민속의 이름으로 귀신을 다시 살리고자 하오.
그렇다고 무속적인 사람으로 보지는 말기요. ㅋㅋ
집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는
마당과 건물의 본체를 관장하는 성주신이 그 으뜸이요.
부엌과 아궁이와 음식물을 담당하는 조왕신이 대표적이랄 수 있겠다.
반면에 성질이 사납고 요사스럽기로는 단연 변소 귀신을 꼽을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정낭 귀신, 측간 귀신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정낭 귀신은 본래 기생이라고 전해진다.
제주지방의 어느 양반댁에 소실로 들어갔다가 본처를 죽이고 정실이 되려다가
그 음모가 발각되어 변소간에서 목이 잘려 귀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가끔
비 오는 날이면 어두컴컴한 변소간 잿더미 뒤에서
젖은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지는바,
관심 있는 친구들은 댓글로 신청해 주기 바랍니다.
정낭 귀신의 성질은 그렇다 치고...
정화조를 묻을 때마다
대체 정낭귀신은 언제 나타나는 것일까 궁금해 지곤 한다.
생각이 그리 미치다가도 에이! 괜한 생각이다 싶어 고개를 가로 젓기도 하지만
지난 일들을 곰곰 더듬어 보노라면 정화조를 땅에 묻는 날에 정낭귀신이
날아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금산에서 일 할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정화조 묻으려는 날,
마침 큰 굴삭기가 조경작업을 하고 있어서 땅을 파게 했다.
자리를 정하고 포크레인 바가지를 땅에 대는 순간 바가지 잇빨이 댕강 부러 졌다.
"아차! 막걸리 한잔 찌끄리고 할걸..."
"대명천지에 귀신이 어딨어?"하던 건축주 말에
굴삭기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정화조를 반쯤 묻었다.
호스를 끓어다 물을 채운다.
물을 채우지 않고 흙으로 다 덮으면 정화조가 찌그러지기 때문이다.
물을 채우던 건축주는 호스를 깊이 담궈두고 나무를 심다 깜빡 잊고
물이 넘쳐 난리가 났다.
물이 밖으로 새어 나와 반쯤 묻은 흙이 곤죽이 되고,
정화조는 15도쯤 비스듬히 기울었다.
건축주와 굴삭기 기사는 옥신각신하더니, 포크레인 잇빨로 한쪽을 들어 올리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지 말고 막걸리 한 통 찌끄립시다.
정낭 귀신이 해코지를 하고 있잖아요.
정낭귀신이 기생출신이라 술을 좋아하지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현장은 장난기가 넘쳤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게 확대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한 체....
굴삭기 바가지로 한쪽을 걸어 올리는 순간 찌익!하고 정화조가 찢어졌다.
난리 났다.
급기야 제작업체에 전화하고...
결론은 새것을 사다가 묻어야 한단다.
장비대는 재껴두고서라도 합병정화조 값 250만 원이 연기처럼 날아갔다.
너무 억울해하는 건축주를 위해서 내가 나섰다.
철물점 하던 후배에게 전화하니
정화조 물을 퍼내고 용접을 하면 된다고 했다.
"용접이라?
그래 고무 다라 때우는 식으로 하란 말이지?
용접봉으로는 주름관 연결 벨트를 찢어서 하라고 했다.
가스 토치로 역한 냄새를 참아가며 때우고 한마디 했다.
"똑똑한 후배 덕에 200만 원 도로 건졌다."
찬찬히 살피던 건축주께서 한 말씀 하신다.
"제대로 하려면 안쪽에서 때워야죠."
솔선수범 잘하는 건축주가 큰 정화조를 굴려 가며, 정화조 안에 들어가 메케한 연기를 수건 한 장으로 막고 꼼꼼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나무 심던 나는 기분이 이상해 용접하던 건축주를 불렀다.
"잘 돼 가요?"
잠잠하다.
불길한 기운이 뒷덜미에서 정수리로 관통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 널브러진 것을 인공호흡과 마사지를 살려냈다.
119 구급차에 누워 실려가던 건축주가 비몽사몽 간에 한마디 한다.
"니미럴! 구신이 어딨어...."
오늘은 혼자 정화조를 묻는다.
땅을 파고 깊이를 재고, 수평 맞추고, 물 채우고 굴삭기에 오르락내리락
수십 번을 반복했다.
아차!
정낭귀신이 올 텐데...
막걸리를 준비 안 했네.
그럼 어때?
귀신이 어딨다고?
다 술이 고파 하는 소리지...
그때 핸드폰 소리가 났다.
굴삭기 소음에 묻혀 희미하게 들린다.
엔진을 낮추고 주섬주섬 앞뒤 포켓마다 더듬거려 보지만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다.
거참 이상하다.
핸드폰이 울리는 데 찾을 수가 없다니...
그런데 이 기분은 뭔가?
스멀스멀 바퀴벌레가 볼에 기어 다니는 이 지랄 같은 기분이라니????
아! 저기 있다.
폰이 정화조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었다.
옴마! 자칫하면 통속에 빠뜨릴 뻔했구나.
급히 운전석에서 내린다.
발이 궤도에 닿으려는 순간 누가 잠바 뒤를 움켜쥐고 놓아 주질 않는다.
힐끗 돌아보니 잠바 뒷자락이 스윙 레바에 걸렸다.
움찔 빼려는 순간!
굴삭기 탑이 휙~ 돌면서 나를 패대기쳤다.
갑자기 세상이 깜깜하다.
삼 분이나 지났을까?
정강이 촛대뼈가 부러질 듯 아팠다.
산속에 혼자 일하다가 졸지에 당한 일이라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때 바로 그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요사스런 웃음소리다.
고개를 홱 돌려다 보니,
아니 이럴 수가???
그곳 정화조 위에 정낭 귀신이 걸터앉아 있었다.

헉!
관능적 허리에 공격적 가슴골이 눈에 들어온다.
뇌쇄적 쇄골위에 가느다란 목선이여!
옴마!
머리가 없다.
또 다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소름이 돋는다.
휙! 돌아본다.
머리만 허공에 걸렸다.
조조 잠자리에 관운장 머리가 떠돌았단 말은 들었으되
정낭귀신의 산발한 머리가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갤럭시폰 에스펜으로 그린 것이라
표현의 한계가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화사한 봄날 유원지 화장실 주변에도 나타난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소.
친구들이여!
봄이라 해서
못 견디게 꼴리는 봄날이라 해도
유혹하는 여인의 눈길에 속지 말고 열심히 일합시다례!!!
첫댓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근데 쬐금 무서워요 워낙 겁보라서 ㅎㅎ
시골에서 뒷간에 사는 구렁이 쫓고나서 수리했는데 얼마 안가서
불 났어요 우연 일까요?
ㅋㅋ
복수열전?
정낭귀신 잼있네,,,항상 건강하시길...
브레이니께서도...
봄날 즐거움 가득하소서^^
마루님 글은 언제 읽어도 담백해.
우린 첨 가는 낚시터에 도착해서 도착주 마시기 전에
물 쪽으로 꼭 고수레~~! 하고 한 잔 하는디... ㅎㅎ
반갑습니다^^
밤낚시 하다 어째 뒷덜미가 으스스해서 휙 돌아보면
소복입은 여인이 물속으로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있는 일이지요.
올만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잼나게 맛깔스럽게 잘 쓰시는군요
물금 낙동강변에서 막걸리 한잔 할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