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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제11장 광야생활 40년 : 민수기(1), 민수기 1:1-4
- (1) 광야에서의 생활
오늘부터 민수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성막을 받은, 또한 속죄와 성결, 나눔의 제사법을 허락받은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첫 걸음을 잘 떼어내었을까요?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사건도 있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잘 해내었을 법도 한데 우리의 기대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을까요? 그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시간, 최초로 하나님께 율법과 성막과 제사법을 허락 받은 1세대, 그들이 자녀를 낳고 그들이 자라 새로운 신앙의 주축으로 세워지는, 신앙의 첫 번째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던 약 40년의 시간동안, 그들은 하나님께 합격점을 받는 삶을 살았을까요? 그 내용을 함께 11강 12강에 걸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97쪽 중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일 년간 머물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이 그들의 종착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여행 준비를 위하여 백성의 숫자를 다시 확인하며 행군 대열을 가다듬게 됩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하여 길을 떠납니다.” 이하의 내용은 차차 확인하시고, 이 일을 명령하시는 본문 민수기 1장 1~4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민1:1-4)
민수기는 바로 오늘 본문 1장, 시내산에서, 그리고 26장, 모압평지에서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한 것에서부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특별히 20세 이상 남자,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었던 것이지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 성막 중심의 삶, 특별히 말씀과 제사를 맡은, 그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성결하며,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아야하는 거룩한 제사장나라로서의 삶은, 평탄하게 이뤄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특별히 매순간, 나이 20세 이상의 남자는 계속해서 싸움의 연속인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싸움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싸움은 무엇을 위한 싸움일까요? 민수기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라는 이름은 고대 희랍어 70인역에 사용된 Αριθμοι(아리쓰모이, 숫자들)이라는 이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영어성경에도 민수기는 Book of Numbers 라고 되어 있지요? 우리말로도 “백성의 수”라는 뜻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백성들의 숫자, 성막에서 직임을 맡은 사람들의 숫자, 짐승들의 숫자, 성물들의 숫자들이 계속해서 세어지고 말해지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의 히브리어 본래 이름을 우리는 더욱 기억해야합니다. 왜요? 그 이름이 오늘 민수기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이름 함께 읽어볼까요?
“במדבר” 베 미드바르, 그 뜻은 "광야에서"(in the wilderness)입니다.
그러니 무슨 말씀이예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첫 번째 세대 백성으로 그들이 겪은, 마주하여 싸워낸 광야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책인 것입니다. 광야에서 있었던 일들이 여러 전쟁과 여러 사건들로 소개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특별히 민수기는 두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10장 10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내광야에서의 광야생활을, 그리고 10장 11절부터 36장까지는 시내광야를 출발하여 모압평지까지 이르는 약 38년간의 기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아주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오늘 우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소개하시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일까요? 다 아시지만, 차차 확인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쯤에서 민수기의 위치를 한번 확인해볼까요? 오늘 교재에 그 내용이 소개가 됩니다. 99쪽 첫 번째 단락, “오경의 책배열은~” 시작!
“오경의 책 배열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사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출애굽기에는 이 약속을 따라 백성들이 구원을 받고 율법을 받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는 이 율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고, 민수기는 율법을 받은 백성이 시험과 단련을 거치는 과정이며, 신명기는 민수기의 연단과 훈련을 모두 마친 백성이 다시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고생과 훈련을 받고 통과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과정은 온전히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로써 구원을 받고, 광야생활을 통해서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 구원사의 중요한 한 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현주소는 광야가 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광야의 생활은 약속(약속의 성취를)을 받기 전에 요구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재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훈련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전에도 제가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헬스클럽을 10년 치를 끊어두었어도, 안다니면 살이 빠지지 않습니다. 매일 다녔어도, 운동은 안하고 수다만 떨고 싸간 과일과 음료수만 마시다가 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찬가지, 문제집을 출판사별로 수십 권을 사다 놓았어도, 안 풀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풀었어도, 다 찍고, 틀린 문제를 다시금 왜 틀렸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절대로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학원을 하루에 일곱 개씩 다녀도, 가서 엎드려 자고 있거나 핸드폰만 하고 있으면, 편의점 가서 분식 사먹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 엄마도 허리가 휘고, 아이도 척추가 휘는 것입니다. 엄마는 뼈가 삭고, 아이는 이빨이 썩는 것이지요. 엄마도 눈이 침침해지고, 아이도 눈만 나빠지는 것이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만 등록하면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책만 들고 설렁설렁 사람구경하고 점심먹으러 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고 들었으면, 우리의 하루 하루 광야에서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지요. 훈련없이 연단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천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혹시 나는 그래도 천재가 아닐까?’ 제가 정중히 용서를 구하고 말씀드립니다. “아뇨, 아니십니다.” 저희들은 그저 천릿길을 한걸음부터 꾸준하게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내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면서 달려갈 뿐인 것이지요?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유혹들과 갈망 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않을 수 있기를 소원하고 기도하며 다시금 눈을 치켜뜨고 성냥개비 꽂아가며 허벅지에 바늘을 찔러가며 잠을 줄이고 졸음을 참아가며 나아가야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훈련과 연단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익숙한 것만 잘 할 수 있는 것만 또 다시 또 다시 반복하려고 하지 마시고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시고 연습하시고 훈련하시는 복된 분들, 이길 수 있는 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질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어, 지면서 맞아가면서 내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나가는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실패들을 모아 성공의 어머니를 삼아나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를 더 이야기 합니다. 무엇이지요?
두 번째, 훈련을 받고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걸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모든 과정이 은혜요, 사랑이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 안 드려도 아시지요? 눈치를 보아하니 설명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예요? 통과해야 하나님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훈련을 받고 연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과정을 다 통과한 사람에게만 1부터 100의 연단의 과정이 있는데 마지막 100을 통과해야만 그제서야 기뻐해주시고 복을 주시고 칭찬하시고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연단과 훈련의 과정에, 그 시작 1단계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순간에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설령 30단계까지 밖에 못가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사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허락하신 모든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감사로 기쁨으로 그리고 인내하고 견뎌내며 감당해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통과한 사람도 있지만, 아직 출발선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한 몸을 이룬 공동체요,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통과한 사람이라고 우쭐할 필요없고, 출발선에 있다고 한숨 쉬며, 주눅들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분명한 코치가 되어주시고 동반자가 되어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해볼까요? 여러분, 결혼식을 올려야 내 사람이라는 인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내 사람인 것입니다. 결혼식을 올린 이후에는 확실하고 더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이미 처음 썸을 타는 순간부터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들, 서로 밀고 당기던 시간들, 어느새 서로가 가랑비에 젖듯 좋아지고, 어느 새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때로는 다투고, 마음 상하고, 서운해 하고, 질투하고, 때로는 행복하고, 짜릿하고, 즐겁고, 두근거리고, 설레는 모든 시간들이 이미 내 사람이기에 허락하고 함께 한 시간들이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이루고 완성해가는 빼놓을 수 없는 시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끝이던가요? 이상스레 결혼한 이후에 내 사람 아닌척 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더욱 내 사람인 것입니다. 부부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함께하며 배워가는 것이지요. 또 싸우고 또 화해하고 또 서운해 하고 또 위로해가면서 아프고 병들고 다치고 늙어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태어나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그 이후의 시간들을 마주해가야 합니다. 왜요? 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하나님께서 복 주신 시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간들도 연단의 과정, 때로는 아프고 고통스러워 힘들고 피하고픈 과정일 수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내 사람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삼으셨기에 우리를 연단하시는 시간인 것입니다. 테스트 해보시고 연단하시는 동안은 우리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 단계를 통과하고 연단의 불속을 통과 했다고 해서 이제는 끝이 아닙니다. 이제는 내 백성이 분명하니 더 이상 연단이나 훈련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계속해서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또 성장해가는 것이지요? 성장하면 또 그만큼 보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부부가 서로 함께 하며 성장해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장할수록 성숙하지 못했을 때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볼 수 있게 되고, 몰랐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더 큰 사랑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장하지 못한 부부들이 맨날 같은 문제로 싸우는 것입니다. 서로 노력하시고 서로 더욱 성장하실 수 있으시길, 그를 위해 더욱 광야에, 연단받는 자리에, 부부가 서로 더욱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실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중에,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기억해야하고 기준 삼아야 하는, 마침내 연단을 마치고 났을 그때에도 붙들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확인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처음에 주셨던 말씀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말씀과 기대인 것이지요. 내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혼인 서약을 가끔 한 번씩 들여다 보십시오. 철없을 때 읽었던 혼인서약이 새롭게 읽혀지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당시에도 진지하게 했던 혼인 서약이 다시 지금 읽으면 사뭇 더욱 진지해지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ㄴ디ㅏ.
마찬가지, 하나님의 말씀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확인하면 다르고, 모압평지에서 확인하면 다른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또 다르겠지요. 바라옵기는 시간 시간 말씀을 붙들고 성장해 나가시는, 매 주일 고백하시는 대로,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늘 날마다 놀라운 것을 보게 되시는 크고 귀한 은혜 속에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우리가 맺은 모든 관계도 그렇게 날마다 새로워지고 더욱 지경이 넓어지시길 또한 축복합니다.
특별히 이번 민수기에는 두고두고 이야기되는 중요한 지점 한 군데를 소개합니다. 그곳이 바로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재는 민수기를 가지고 이 가데스 바네아를 기점으로 11강(1~14장)과 12강(15~36장)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길래 나뉘어질까요? 지도를 먼저 한 번 보시겠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가데스 바네아는 시내산 북동쪽에 위치한 사막 속 오아시스입니다. 여기에는 네 개의 샘물, 즉 아인 케데이스(Ain Qedeis), 아인 엘 쿠데이 랏(Ain el-Qudeirat), 엘-코세이메 (el-Qoseimeh)와 엘-무에일라(el-Muweilah)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의 위치는 여러분 잘 아시는 브엘세바, 아브라함과 이삭이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자, 가나안땅의 남쪽 경계가 되는 지점으로부터 한 8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음암에서부터 80킬로 정도를 계산해보면, 용인, 진천, 청주, 논산, 서천 정도 되더라구요. 가나안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브라함에게 자자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 불과 걸어가도 한 3-4일길 밖에 되지 않는 곳인데, 어떻게 했다구요? 여기에서 제동이 걸려서 이 주위 바란광야, 신(Zin)광야를 맴돌면서 이스라엘이 38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곳이었는지 느낌이 오시지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땅에 정탐꾼을 보냈던 곳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끊임없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까지 공급해주신 장소이고,
세 번째, 70인의 장로들에게 영이 내린 장소
네 번째, 아론과 미리암이 불평을 했던 장소,
다섯 번째, 고리가 반란을 일으켰던 장소요, 미리암이 죽은 장소
여섯 번째, 반석에서 물이 나온 ‘므리바’가 있던 곳
그런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이곳에서의 일 때문에 멈추어섰고, 이곳에서의 일이 잘 마무리가 되어서 다시금 가나안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곳일까요? 그 이름에서부터 확인을 해보게 됩니다. "가데스"란 「거룩한」 또는 「성별된」이라는 뜻이며, 그러니 팔레스틴지역에는 당연히 `가데스' 또는 `게데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많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뒤에 붙은 `바네아'를, 이 가데스를 다른 많은 지역의 가데스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일 것으로 추청하고 있구요. '바네아'란 말의 뜻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곳, 거룩하다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보여주시는 비전 앞에, 그리고 허락된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반응하고 감사로 반응하고 나눔과 섬김으로 반응을 해야했던 것입니다. 모든 순간 하나님께 경배해야했고, 말씀이 기준이 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던 것이지요? 신명기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함께 읽어보시지요.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신32:51)
여기에서 나오는 “너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므리바 물가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 바로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지요? 그 앞 구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신32:49-50)
이 구절은 모세에게만 따로 하신 말씀인데, 이렇습니다. “네 형 아론이 그래서 죽었고, 너도, 이제 아바림산 느보산에 올라가면,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 산에서 죽을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의 죽음을 통보해주신 것입니다. 언제요? 오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어마 어마한 설교말씀을 전하고 어마 어마한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게 한 날, 가나안 땅 입성에 대한 기대와 감격이 온 이스라엘에 가득 채워졌던 날,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너는 거룩해야할 곳에서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모세, 그 말씀을 백성에게 대언하는 아론조차 거룩하기가 힘들었던 곳, 그의 누나 미리암도 범죄하여 죽게 되었던 곳, 그곳이 바로 가데스 바네아 였던 것입니다. 무서운 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이 어디라구요? 오늘 교재가 잠시 언급했습니다. 99쪽 가운데부분, 우리 읽었던 첫 번째 단락 마지막 부분만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화면에 옮겼습니다. 시작!
“그래서 교회의 현주소는 광야가 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광야의 생활은 약속(약속의 성취를)을 받기 전에 요구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현주소, 오늘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곳 교회는 물론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주하며 싸우며 살아가야하는 삶의 모든 자리가 광야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가나안땅이지만, 아직 도착하지 못한 곳, 어떤 곳이요? 끝까지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면, 가나안땅을 들어가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게 되는 곳이 바로 광야요, 가데스 바네아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우리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생각나시지요? 모세를 부르셨던 자리가 생각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5절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호렙산 기슭, 모세가 매일 두발을 딛고 살아온 곳이었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타협하고 살았던 자리입니다. 싸우다 지쳐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버린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뭐라고 하시지요? 그곳은 거룩한 곳,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하는 곳, 신발을 벗어야하는 곳이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또 누가 생각나시지요? 아브라함입니다.
하루 하루 부름받아 달려나왔으나 어느 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며,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살아가던, 편법으로 아들을 낳고 살아가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너의 일상생활의 자리, 너의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완전하심,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손상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해야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데스 바네아, 우리를 세우신 광야, 우리가 머물러있는 현주소는,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고, 불신앙을 드러내며 살아가야할 곳이 아닌, 하나님 앞에 신을 벗어야하고 완전히 행해야 하는 거룩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 그 영광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언제요? 내가 훈련받으면서 연단 받으면서 고통당하면서 힘겨운 순간들을 견디는 그 어떤 순간에도 말입니다.
이곳의 성격자체가 그러합니다. 천국백성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훈련과 연단을 감당하는 자리요, 낙오하지 말고, 과락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잘 통과해야 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과정 과정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하며, 허락하신 이웃들을 돌아보며 우리의 것을 나누고 섬기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경주를 잘 달려가야 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발 이런 것 좀 없으면 안될까요? 왜 이런 연단이 필요하고 왜 이런 훈련이 필요합니까? 입에서 절로 막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우리만 품고, 이런 말을 우리만 한 것이 아니더라구요.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마음을 품었고, 이런 말을 했고, 아니 그들은 용기있게(?) 그 마음과 생각을, 그들이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더라구요. 그들을 마주하신 하나님은 오늘 그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요? 우리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자세하게, 광야에서의 생활과 연단에 대해서 말씀 나누겠습니다.
다음시간 예습 성경 : 민수기 1~14장 교재 : 97~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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