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露宿人). 길 로(路)자를 써서 길에서 자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슬 로(露)자를 쓴다. 한자를 직역하면 이슬을 맞으며 잠드는 사람이란 뜻인데, 어찌 보면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숙인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러 단체, 매체 등에서는 겨울을 맞아 노숙인을 위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근본 대책은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데다 실상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추운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갑다. 역 근처에 노숙인들이 조금만 모여 있어도 지나가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기 바쁘고, 혹시라도 나에게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눈치만 볼 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추위를 이기지 못해 불을 피우던 노숙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직접 사고 현장을 다니면서도 노숙인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직접 노숙인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눈도, 일반 시민의 눈에서 바라보는 노숙인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의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후 7시께 수원역.
이미 해는 저물고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간. 오늘따라 유난히 찬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연방 나오는 콧물 때문에 코를 훌쩍이며 수원역 남쪽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는 흰 천막 여러 동이 설치돼 있었다. 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나와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천막 안쪽에서는 이미 여러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고, 옆쪽으로는 수십 명이 줄지어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밥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뒤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줄을 섰다.
사람들은 밥을 먹으러 오가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헌데 이곳에서 밥을 먹기 전 하는 인사는 조금 특별했다. 보통은 “잘 먹겠습니다” 혹은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많이 드세요”다. 미묘한 차이이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예상보다 질서가 잘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누구 하나 자기가 먼저 먹겠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원역 건너편 버스정류장보다 훨씬 질서정연한 모습에 그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 하나가 깨지게 됐다.
드디어 밥을 받았다. 오징어 튀김에 오이무침, 김치에 어묵국과 밥이 나왔다. 늦게 받은 편이라 반찬은 식었지만, 국은 따뜻했다. 테이블 쪽엔 자리가 없어 옆에 있는 조형물 앞에 식판을 놓고 앉았다.
밥을 먹으려고 하던 찰나, 옆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형님(?)이 와서 자리 잡았다. “형님 많이 잡수쇼”라고 인사를 건네자 허허 웃으며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올해로 77살이라고 밝힌 형님은 젊은 친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에도 좀 걸렸나 보다. 밥 먹는 시간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었다.
“잠은 어디서 자? 여기 패스트푸드점?”, “거기 아니면 수원역이나 지하상가에 늦게 들어가서 자고 있슈”, “너 노가다 뛰지? 노가다 하지 말고 젊은 놈이 직장에라도 들어가”, “형님, 노가다라도 해야 소주 사 마시고 담배라도 하나 피울거 아니유”, “그건 그러네 허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님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이거 밥 다 먹고 하나 펴, 이게 요새 잘 나가는 외제 담배여”
극구 사양했지만, 잠바 주머니에 쏙 넣어주고 자신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말을 이어나갔다. “술 많이 먹지 말고, 어디 번듯한 곳에 가서 일해. 이런 곳에서 있지 말고. 나이도 아직 젊은것 같은데. 나 같은 늙은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린 친구에게 진심 어린 말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그러나 이런 가슴 따뜻함과는 반대로 겨울 날씨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추위를 견디다 못해 어묵국물이라도 먹으려고 역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갔더니 먼저 와서 어묵 꼬치를 먹던 사람들 중 몇몇이 슥 자리를 피했다. 국물 좀 주면 안 되냐고 묻자 비웃음 소리가 돌아왔다. ‘뭐 저런 젊은 사람이 저러고 있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종이컵에 국물을 담고 황급히 포장마차를 나와 그 옆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몸을 녹였다.
평소 시력이 나쁜 편이라 안경을 쓰는데, 도저히 안경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며 온갖 욕을 하는 느낌이 들어 애써 외면했다. 킥킥거리며 웃는 사람부터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차마 더는 있을 수 없어 밥을 먹던 남쪽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노숙인 체험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은 바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시간은 안가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고독감과 무력함이 몸을 지배한다. 결국, 이런 이유가 노숙인들의 음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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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잘 곳을 마련해야 했다. 이곳저곳을 계속 찾아다니다 수원역 2층 대합실 앞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공간에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 직원이 와서 이를 제지하는 바람에 바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뒤 수원역 뒤쪽
주차장에서 과선교로 나가는 육교 통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신문지를 덮긴 했지만, 실내가 아니다 보니 매서운 칼바람이 몸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간신히 잠이 들긴 했지만,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노숙인 체험은 하룻밤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새벽녘에 종료됐다.
체험을 마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단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노숙인이 되었다?. 노숙인을 모두 이해했다? 어림없는 소리다. 체험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엔 그저 노숙인 ‘
코스프레’에 불과할 뿐이었다. 외형은 초라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그들의 절실한 심정, 현재 처한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잠깐의 체험을 통해 온몸으로 느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멸시이고, 또 하나는 노숙인의 인자는 ‘사람 인(人)’자라는 사실이다. 연민의 시선이 아니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적어도 이번 겨울 동안 추위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관주기자
leekj5@kyeonggi.com사진= 추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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