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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작품은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작품은 그것을 제작한 작가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감상은 크게 직관적, 분석적 , 종합적인 감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직관적인 감상법은 작품 전체를 한 눈으로 보고 그 작품의 풍격을 직감으로 느끼는 것이고, 분석적 감상법은 작품의 장법과 글자의 결구 및 점획의 모양에 대해서 상세히 살피면서 감상하는 것이며, 종합적 감상법은 위의 두 가지 방법에 그 작품이 제작된 시기의 작가와 작가가 처한 당시의 역사적 배경까지를 더하여 모든 것을 종합하여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직관적 감상법을 말하면, 작품의 세부적인 기법이나 조형에 대해 관심을 두기 보다 전체적인 역감이나 동세 등을 정서적으로 느끼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서 주의할 것은 감상자의 기호에 치우칠 수가 있으며 과거경험과 학습에 따라 기준이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감상자가 좋아하는 시각으로만 작품을 보지말고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보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다음 분석적 감상법을 말하면, 작품을 좀더 세부적으로 뜯어서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작품의 표현기법과 서사도구 및 조형적 처리 등 여러 사항들이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서예작품에서는 장법, 결구, 점획의 형태 등을 중점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장법은 첫눈에 서예작품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림에서 말하는 구도와 같고, 서예용어로는 포국(布局) 내지는 포치(布置)라고도 합니다. 글자를 늘어놓는 방법이 똑 같이 고르게 늘어 놓으면 통일미를 느낄 수 있고, 이와 반대로 들쭉날쭉하게 늘어 놓으면 조화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핵심은 역시 여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여백의 처리에 따라 변화가 있느냐, 아니면 단조롭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장법은 또한 서체의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예컨대 예서는 납작하게 쓰고, 전서는 길쭉하게 쓰기 때문에 서체에 따라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일본에서 유행하는 일자서(一字書)일 경우 장법은 곧 그 작품의 풍격과 직결되기 때문에 작가는 이 점에 무척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장법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결구에 대해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결구는 결자(結字), 결체(結體)라고도 합니다. 즉 한 글자의 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글자의 짜임을 분석할 때 상하좌우가 등분되어 안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결구형태는 균제적 결구라고 하고, 상하좌우가 똑 같지 않지만 점획의 굵기나 여백을 조절해 균형을 이루는 것은 균형적 결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결구를 살필 때는 무엇보다 점획의 경사 정도, 글자꼴과 여백관계-여기서 여백은 글자 안에서의 여백과 글자 밖에서의 여백-를 면밀해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글자가 균형적인지 균제적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글자가 반복되거나 나란히 이어질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 눈여겨 보야야 합니다. 예컨대 왕희지의 난정서에는 갈지(之) 자가 20여 번 나와도 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듯이 한글작품이나 한문작품에서도 이러한 글자의 모양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결구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점획의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점획의 표현은 붓의 사용법, 즉 용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보통 용필은 붓끝의 처리방법에 따라 노봉, 장봉, 중봉 등으로 나뉘고, 그 처리에 따라 점획은 모가나거나 둥글고, 길거나 짧고, 굵거나 가늘고, 굽거나 곧게 됩니다. 또한 서체에 따라서 전서와 초서는 곡선의 표현이 많고, 해서는 직선의 표현이 많으며, 행서는 직선과 곡선이 섞여 있습니다. 예컨대 해서인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직선이 많고, 전서인 태산각석은 곡선이 많습니다. 그리고 점획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필속(붓의 운필 빠르기)도 중요합니다. 해서는 천천히 운필하지만 초서나 행서는 해서보다 빨리 운필합니다. 한 글자 안에서도 붓의 운필에서 빠르고 늦은 부분, 가볍고 무거운 부분, 강하고 부드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관찰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옛부터 선질이 굳세다 혹은 연미하다라는 등의 관념적인 표현을 사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점획에 대한 관찰이 끝나면 종이와 붓과 먹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글씨에 있어 강한 털로 만들어진 강호필(强毫筆),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유모필(柔毛筆), 아니면 두 가지 털이 섞인 겸호필(兼毫筆)에 따라 점획의 표현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종이도 먹을 잘 흡수하는 중국지인지 먹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지인지에 따라 점획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한지는 질기지만 먹이 잘 퍼지지 않는 단점이 있고, 중국지는 질기지는 않지만 먹물을 잘 흡수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먹을 잘 이용하는 이른바 용묵법에 대한 관찰도 서예감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진한 농묵(濃墨)을 사용하면 흑백의 분명한 대비, 필선이 강렬하나 선질이 탁하고 두터워 질 수 있고, 연한 담묵(淡墨)을 사용하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낀을 주지만 자칫 선질이 약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행초서를 쓸 때 먹물을 한번 붓에 찍어 먹물이 나오지 않을 때 까지 서사하는데 이를 윤갈(潤渴)의 변화라고 합니다. 즉 먹물의 양이 많으면 운필이 부드럽고 윤택해져 넉넉한 분위기가 되고 먹물의 양이 적으면 운필이 껄꺼롭고 먹색이 마르게 되어 호방하고 조야(粗野)한 느낀을 주게 됩니다. 이와 같이 먹과 붓, 점획과 결구, 장법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통해 분석적인 감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합적인 감상법을 말하면, 위에서 말한 직관적 감상법과 분석적 감상법을 포괄하고 거기에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성격, 창작습관, 주변환경,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종합하여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한 작가 개인의 독특한 글씨풍을 서풍(書風)이라고 하고, 한 시기의 독특한 양식을 풍격이라고 합니다. 마치 미술사에서 말하는 시대양식(period style)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컨대 조선시대 우리의 서예를 보면, 초기까지 조맹부의 송설체가 풍미하여 왕희지를 공부하더라도 송설체스타일의 글씨를 구사하였고, 동국진체가 등장하면서 같은 왕희지를 공부하더라도 해석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술작품에는 이와 같이 그 시대의 공통적인 미감이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서예작품은 직관적인 방법과 세밀한 표현기법을 관찰하는 분석적방법, 나아가 종합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감상하여야 바른 감상법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서예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서예작품의 형식-대련, 편액, 권, 축, 첩 등등-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서체-한문 오체, 한글, 문인화, 전각-별 특성에 관한 충분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른 감상법은 곧 작가의 작품제작에도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강상자를 위한 작품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모쪼록 서예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여기서 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