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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범죄의 재구성, 프로파일러의 세계
[TONG] 입력 2017.06.05 17:00 수정 2017.06.08 09:12
by 인천공항중 지부
추리소설의 전설 셜록홈즈부터 코난, 높은 퀄리티로 히트한 드라마 시그널부터 터널 등의 범죄 수사물 드라마. 이것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범죄현장을 수사하는 '프로파일러'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범죄 현장과 증거, 시체, 단서 등을 통해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내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죠. 하지만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고된 밤샘은 물론,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쉬는 날도 자동 반납. 평범할 날이 없는 직업, 프로파일러입니다.
프로파일러의 숨겨진 부분까지 알아보고자 경찰청 1기 프로파일러인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배상훈 교수님을 만나봤습니다.
[사진=중앙포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입니다. 저는 경찰청 1기 범죄분석 특채(프로파일러)로 임용되어 경찰의 범죄심리수사관으로 일하다가 퇴직 후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에서 학생과 경찰을 가르치는 프로파일러이자 교수입니다.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은 어떤 건가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프로파일러는 주로 연쇄 살인, 연쇄 강간, 연쇄 방화 이 세 종류의 범죄에 전종(필요한 곳에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근무체계)을 해요. 이런 연쇄성 범죄들은 주로 이상 동기, 흔히 말하는 싸이코패스의 성향,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범죄자들이 일으키거든요. 그래서 연쇄성 범죄는 추적 방식과 수사 방식이 일반 범죄와 달라야 합니다. 일반 사기범이나 절도범, 살인범을 추적하는 범죄수사관이 따로 있고, 우리는 독특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연쇄성 범죄자를 수사하고 추적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 범죄분석요원이라고도 해요. 경찰청 내부에서는 범죄심리분석관 혹은 범죄심리수사관이 미국에서 쓰는 표현인 '프로파일러'와 동의어입니다.”
-탐정과 프로파일러의 차이점은 뭔가요.
“흔히들 알고 있는 셜록홈즈는 프로파일러가 아닌 일종의 범죄심리 수사 컨설턴트 같은 것이에요. 일종의 조언자 혹은 조력자, 즉 탐정이라고 하죠. 그런데 프로파일러는 연쇄성 범죄자만을 추적하는 특별한 수사관이에요. 탐정은 민간에서 일하지만 프로파일러는 수사권을 가진 경찰 공무원이거나 검찰 공무원, 국정원 등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는 바와 달리 경찰청, 검찰청, 국정원에도 프로파일러가 존재해요. 예를 들어 검찰청 행동분석관 김경옥 박사는 최초로 경찰청 프로파일러에서 검찰청으로 넘어간 분이기도 하죠. 경찰청에서 2004~2006년쯤 프로파일러 30여명을 채용해서 활용하다가 그중 일부는 검찰청, 또 일부는 국정원, 다른 일부는 군으로 넘어갔어요. 국정원과 같은 곳에서 일하는 프로파일러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대외비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죠.”
-프로파일러들이 주로 연쇄성 사건들을 담당하지만, 미제사건도 추적하지 않나요.
배상훈 교수 연구실의 화이트보드에 적힌 미제, 연쇄 사건들.
“네, 맞습니다. 왜냐하면 미제사건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지만, 유사한 몇 가지의 연쇄성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장기 미제 사건을 많이 추적하는데 그 이유는 장기 미제사건이 어느 연쇄 사건의 빠진 조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연쇄 사건의 패턴 중 맞는 부분이 있으면 '아 이 사건도 일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죠. 몇 가지 사건의 패턴을 종합해보면 신원을 모르던 범죄자를 잡을 수도 있어요.”
-시체를 접하시나요?
“당연하죠. 핸드폰에도 사진을 갖고 다닐 정도로 일상 그 자체입니다. 제가 서울경찰청에서 일했을 때는 매일 아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가서 부검 참관하는 게 일이었어요. 왜냐고요? 부검의가 부검을 하면서 간혹 놓치는 게 있거든요. 부검의는 시체만 보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이 시체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죠. 예를 들어 ‘저 자세에서는 칼을 맞더라도 저 상태가 안 나오는데 왜 부검의는 칼이 이렇게 들어갔다고 하지?’ 하는 의문 속에 답이 있을 수 있어요. 망치로 죽었는데 부검할 때는 다르게 나왔다? 그리고 분명히 망치로 죽였을 것 같은데 망치가 없다. 이런 것들을 찾죠.
그래서 의무적으로, 의무적이 아니더라도 이 피해자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시신을 봅니다. 프로파일러들은 하루에 많을 때는 3구 이상도 보게 되는데, 그렇다보니 시체를 보는 것 자체에는 아무 느낌이 없고 시체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없어지죠. 시체를 볼 때 이상한 감정이 드는 건 딱 몇 달만 그럽니다. 나중에는 그저 '내가 해결해야 될 사건의 피해자다'라는 생각을 갖죠. 이 사건의 시체는 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를 보는 것이에요.”
배상훈 교수가 그동안 인터뷰한 기사와 연구 자료들.
-초기 진술과 그 진술 상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용의자 혹은 범죄용의자의 참고인들은 경찰에 진술을 할 때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용의자 같은 경우 많으면 열 번 넘게도 합니다. 그러면 처음 수사관과 1차 진술을 하고 2차 진술을 할 때 수사관이 이야기한 것과 자신의 이야기가 섞여버리는 거죠. 그러면 2차 진술부터는 내가 이야기한 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3차 진술에서도 헷갈리고, 또 다른 여러 주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내가 한 게 이게 맞나?’ 이렇게 혼동합니다. 그래서 진술 횟수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떨어지고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진술을 하게 되죠. 수사관이 생각했을 때 어느 부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향이 나타납니다. 이런 부분이 잘못된 것이에요. 그래서 보통 피의자신문조서(피신)를 봐서 4차, 5차, 6차, 7차로 넘어가면 우리 같은 프로파일러들은 ‘아 형사가 원하는 대로 답을 했구나!’ 생각하죠.
저희는 1차와 2차, 많으면 3차 정도까지만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뒤는 큰 틀만 받아들여요. 그리고 진술할 때의 동기, 감정 상태는 의미가 없어요. 그것은 5차, 6차 진술을 할 때의 기분이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 당시의 기분, 당시의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초기 진술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또 처음부터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고 무조건 오픈된 진술 태도를 유지하고 이야기하라 해요. 있는 그대로 녹음하고 녹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수사를 하죠. 그리고 목격자들의 진술은 51퍼센트만 신뢰해요. 가장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요. 왜냐하면 자신이 살아온 생애 어떤 경험과 연관이 되는 것도 많아서 사람의 감정 상태나 기억은 왜곡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진술자의 상황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프로파일러 1세대가 된 후 시간이 꽤 흘렀잖아요. 수사한 사건이 많을 텐데, 가장 마음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프로파일러들은 모든 사건이 다 중요해요.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 다른 경찰들을 믿어서 실패한 사건들이죠. 1기 프로파일러가 있기 전에는 경찰들의 수사가 도제식 수사 시스템이었어요. 매뉴얼화된 것을 교육 받아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고, 오로지 자신의 선배한테 배운 것을 기반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죠. 만약 자신의 경험이 제한되어 있으면 자신의 경험에 맞춰 사건을 수사하게 되어 수사에 실패하고 헛다리를 짚을 수 있어요. 그런 사건들이 좀 있었죠. 수사가 전문화·규격화되어 있지 못했던 거예요. 그런 이유로 실패한 사건들이 좀 아쉬워요.”
배상훈 교수의 연구실 화이트보드에 범죄 사건 추리에 대한 글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프로파일러와 형사들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네. 미제사건 중 아주 어려운 사건, 머리가 뛰어난 범죄자가 일으킨 범죄가 미제사건이 된 경우는 비율상 100건 중 다섯 건도 채 안 되죠. 보통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미제사건의 대부분은 경찰을 포함한 당시 수사 관계자들의 실수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부분에 남몰래 실수로 증거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는 거죠.
물론 예전에는 기술이 모자라거나 혹은 기술을 다루는 전문적인 수사 역량과 발견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졌고, 그래서 남아 있는 사건 기록도 엉망이죠. 장기 미제사건을 수사하려면 해당 사건을 재구성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해당 사건을 담당한 당시 수사진, 지금은 높은 계급에 있거나 퇴직해서 어딘가에서 한 자리 하고 있는 분들의 수사과정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사건이 매우 어렵거나 범죄자가 아주 똑똑하고 무섭다고들 이야기하죠. 결국 불가항력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실제로는 전혀 어렵지 않은, 단순한 실수로 만들어진 미제사건이라는 강력한 의심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에는 진짜로 미제사건 특히 장기 미제사건이 정말 많습니다. 실제로 1년 동안에만 미제사건이 5만 건이에요. 거기다가 전혀 엉뚱하게 처리된, 즉 진범이 아닌데도 진범으로 몰려 해결된 사건들도 적지 않죠. 영화 ‘재심’을 보세요. 비극입니다. 자칭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비극이죠. 우리 같은 수사 전문가들이 그 사람들의 시스템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실제 이것은 권력의 문제이고 정치의 문제라서 그럴 능력이 없어요. 이런 부분이 가장 힘들죠. 옛날 경찰들의 수사를 보면 잘한 것도 많지만 무능한 경찰도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요.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사건도 아니고 제대로만 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에 속하죠. 그래서 일반 경찰들이 우리를 싫어해요. 우리가 미제사건들을 수사하면 항상 칼끝은 당시 현장 수사를 하던 경찰들에게 갈 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형사와 프로파일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요.”
사건 현장에 경찰 과학수사대원들이 투입돼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프로파일러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프로파일러가 되기 전,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징병 갔던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생애 재구성과 같은 방법이죠. 그분들이 살아온 삶이 실제로 역사에 쓰일 큰 삶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의 작은 삶들을 재구성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듣고 기록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 사람의 삶의 동기, 힘 이런 것들을 찾고 재구성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파일러가 된 거죠.
‘나에게 이게 맞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굉장히 저랑 잘 맞더라고요. '크리미널 프로파일링'이란 것이 말 그대로 범죄 현장 재구성이잖아요. 범죄를 재구성하려면 그 범죄에 가담한 사람의 삶을 이해해야 되는데, 범죄자의 심리나 가족사, 현장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그 사람이 그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저는 그런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정말 잘 맞았어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많이 위험한가요.
“위험하기보다는, 뭐랄까… 성범죄자나 연쇄강간범들은 아무리 많이 형량을 받아도 15~20년 밖에 안 받아요. 재판 당시 나이가 25살 밖에 안 되면 40살에 출소한다는 얘기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크게 변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여자 프로파일러들은 더욱 힘들어하기도 하죠. 프로파일러에서 경찰로 바꾸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전국에 실제 활동하는 프로파일러가 20명 내외밖에 안 되어서 수가 많이 부족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예, 맞습니다. 양적으로도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이 뽑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뽑고 대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뽑아놓고 실제로 수사를 할 권한도 주지 않고 일반경찰처럼 부려먹기만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우고 일반 경찰로 전직해서 가는 경우가 열에 여덟은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양적으로 많이 뽑는 건 의미가 없어요. 질적인 것이 중요하죠.”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프로파일러는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어렵지만 최고', '나만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기도 해요.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런 직업이 많이 있겠지만, 부와 명예, 사회적 평가 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한다는 면에서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일 거예요.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진짜 인생의 맛을 알 수 있는 직업이 서너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프로파일러라고요. 우리 프로파일러들은 매일 아침에 각 지방 경찰청 책상에서 그 전날 발생한 사건을 일일이 모니터링 해요. 수백, 수천 건의 범죄를 보면서 범죄자들을 관찰하고 판단해서 수사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실제로 수사도 하죠. 우리는 보이진 않지만 늘 사람들의 생명과 범죄성을 관찰하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소방관 못지않은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이연우, 김강별 TONG청소년기자와 경찰청 프로파일러 1기 배상훈 교수.
이번 인터뷰를 통해 프로파일러의 세계에 한 발 더 다가간 것 같습니다. 항상 드라마에서 보던 멋있기만 한 모습이 아닌, 보이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수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보람찬 직업, 프로파일러. 멋진 모습만 보고 무작정 도전하기보다는 자신이 그에 알맞은 각오가 되어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파일러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배상훈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이연우(인천공항중 3), 사진=김기수·이연우·김강별(인천공항중 3) TONG청소년기자 인천공항중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