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돌고 돌아 봄이 오고 있습니다. 겨울이 고개마루를 넘어가는데 영상(嶺上)의 매화는 이제 막 피려는지 시를 읊습니다.
霜 風 括 地 掃 枯 亥, 상 풍 괄 지 소 고 해
誰 覺 東 君 令 已 廻 ; 수 교 동 군 령 이 회
唯 有 嶺 梅 先 漏 洩, 유 유 령 매 선 누 설
一 枝 獨 向 雪 中 梅. 일 지 독 향 설 중 매
<파계사 성전암 관음전 주련>
가을 바람 땅에 가득 불어 마른 풀을 쓸고간 다음
잠든 봄바람을 깨워 돌아오게 하는 님은 누구인고,
고갯마루 매화가 먼저 봄 소식을 누설하고 있나니
눈 속에 피어난 일지 설중매 !
지금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 귀를 귀울이고 들리지 않는 침묵을 볼 때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추세를 관찰하여 일이 되어가는 조짐(兆朕)을 본다는 것이 역(易)의 지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법(法/Dharma/다르마)이라고 하셨지요. 우주의 정칙이면서 항상 참(眞)인 진리, 그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자연적 과정(Natural Process)입니다. 그것은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타자(他者/Others)로서 저 나름의 질서대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자연적 과정은 무질서나 우연이 아니라 그 나름의 순환하는 질서가 있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 법입니다. 그 질서를 중국적 사유체계에서는 도(道)라고 하기도 하고 천(天)이라 하기도 하였으며, 인도적 사유방법에서는 다르마(Dharma)라고 했지요.
제행무상(Sabbe sankhara anicca/쌉베 상카라 아니짜)-모든 지어진 것(조건지워진 것/有爲法)은 항상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생생지위도(生生之謂道)-살리고 살리는 것을 자연의 질서라고 한다. 무슨말입니까? 끊임없는 변화,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라는 것. 그것은 보는 사람(觀点)에 따라서 부정적인 변화가 되기도 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 관계없이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할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자연은 인간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저 나름의 질서대로 움직여 나가는 무정한 놈처럼 느껴집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상을 가슴 깊이 깨달으면 무착삼매(無着/aparigraha/non-attachment, non-possessivness)라 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경지를 무착해탈이라 했겠죠. 한마디로 '모든 것은 결국 변해가니 무엇 하나 집착하지 말라. 모두 놓아버려라. 놓아버리고 놓아버리면 마음이 텅 비어 자유로우리라.'라는 말이겠죠. 아하, 어쩐지 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내가 아끼며 애써 모은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변해가서 사라져 가고, 마침내 모두 놓아버리고 나 홀로 빈 손으로 가야하다니...그렇습니다. 누구나 빈 손으로 홀로 가는 것-과거의 모든 사람들도 그랬고 미래에 올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갑니다. 그래서 대율사 우파리 존자께서 말씀하시되
"신심으로서 욕락을 버리고 일찍 발심한 젊은 출가들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가야 할 길만을 고고하게 찾아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이 봄에 무상의 진리를 깊이 사무쳐 느끼시길 바랍니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내가 꼭 움켜쥐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과도한 자기 의지(hyper-intention)를 놓아버린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과도한 자기 의지는 자기에게 짐이 되는 스트레쓰입니다. 그리고 그 과도한 의지는 타인과 자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여 이웃과 자연에 상처를 주기 십상입니다. 현대인들이 모두 더 잘 살아보겠다고 설치고 뛰어다닌 결과가 지금 눈 앞에 드러나 있지 않나요? 자연파괴, 인간소외, 빈부격차, 배려와 관용이 결여된 문화, 상업화하는 종교와 예술, 그리고 빈약해지는 진정(眞情, True Heart)!
불자님, 우리도 세상을 따라가서 모두 잘 살겠다고 설치시겠습니까? 아니겠죠? 우리에게는 가야할 길이 있고, 지켜야할 계율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려되는 선법(善法)을 알고 있고, 하지 말아야 되는 불선법(不善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가르치는 대로 행하면 영원한 복락이 따라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일상에 응용할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 마음이 대상을 따라 이리 저리 옮겨다니면서 마구 날뛴다고 해서 '원숭이 마음(Monkey mind)'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우리의 원숭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여기에 '원숭이 지켜보기'라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아바타 코쓰 교재를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어떤 원숭이가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누군가 어떤 주제를 꺼내면 그 화제를 필사적으로 부추기고 심지어 그것을 능가하는 우스개나 익살 또는 멋진 멘트를 생각해내려 합니다. 이런 사람은 '웃기는 원숭이'이죠. 이런 식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이나 자기를 변호하지 못하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슬쩍 갈구면서 웃음꺼리로 만들어 신나게 떠듭니다. 이런 사람은 '지껄이는 원숭이'입니다. 이런 사람은 안간 힘을 써면서 그 그룹에 끼어있으려고 의도하는 것이죠. 또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는 이것을 잘 했고, 저것을 남보다 잘 했다-언제나 잘 한다고 불고다니는 '우쭐대는 원숭이' 이죠. 그리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어떤 사람이 예리한 토를 달아서 '짜증난 원숭이'가 있습니다. 그 원숭이가 점점 골이 나는 것을 지켜보세요. 어떤 사람은 방금 제가 한 말에 대해 추궁을 당하면 당황하여 안절부절합니다. 이것은 '어쩔줄 모르는 원숭이'이죠.
자, 이런 온갖 미친 짓을 그만 끝내버리면 얼마나 시원하겠어요? 우리는 일이 지나고 나서야 스스로 자책하게 되지요. '왜 그런 말을 했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쭐거렸지? 왜 그렇게 남의 말을 했을까?' 원숭이 지켜보기 연습은 이런 버릇을 끝내 버리게 해줄 수 있를 겁니다.
먼저 '자기안에 있는 원숭이'를 지켜봐요.
그 원숭이짓을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잘 지켜보고, 원숭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똑똑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자기 스스로에게 '어서 잘 해봐'하고, 말없이 지켜봅니다. 떠오르는 그 생각을 멈추려 하지 말고 그저 그것을 똑똑히 지켜보고는 '어서 해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그 생각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죠.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 놓으면 안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래 그 생각 계속해봐, 어서 해봐'라고 하면 그 생각이 오히려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죠. 또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지요. '너 신이났구나 ,누구누구(자기 이름)야, 잘한다, 누구누구(자기 이름)', 그리고는 아무 말 않고 그 속 생각을 가만이 지켜봅니다. 또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을 때는 '아무개야, 넌 지금 흠을 잡고 있구나'하고는 가만히 지켜보세요. 소리내어 말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남들 속에 있는 원숭이 지켜보기'입니다.
그저 방안을 둘러보세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원숭이가 무슨 짓을 하고 있거나 지껄여대고 있는 것을 가려낼 수 있는지 관찰해보세요. 그것이 아주 빨리 눈에 뛸 것입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자기 자신의 원숭이 마음도 따라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숭이가 드러나면 그것은 아주 수줍어져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제 원숭이 노릇 그만하시고 진화의 길로 나아갑시다. 원숭이에서 진화한 인간이 되어 봅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봄을 만들어 봅시다. 봄은 산너머 남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씨와 행동에서 나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봄을 만들어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위빠사나 수업을듣다보니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운대로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겠지요
늘 항상 언제나 건안하십시요_()_
위빠사나 수행은 불자이거나 아니거나 모두 다 수행해야 해요. 일상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제가 올린 글을 잘 읽어보면 요령을 얻을 수 있어요. 연습, 연습, 그리고 연습하세요. 행복, 평화로 가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하나하나에 순간적감정보다 그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살아야겠고 ...하루를 되돌아 보며 진정한 나를 ~참 잘하고 있구나 !나 스스로 에게 외칠수 있게 반성하고 성숙되기를 마음 다잡고 수행의 길에 동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