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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학교라는 특성상 정부와의 연계성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 하나의 교육기관으로써 확고한 주체성을 지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관학교나 경찰학교는 개인적인 이념과 관계없이 일단은 국가 혹은 국민의 평안을 제 1의 목표로 삼고있을 것입니다. 카이스트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교육기관으로 이념 혹은 사상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기능보다는 연구의 성과물을 물리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서울대는 정치적 성향을 표출하기 쉬우나 특성화된 국립 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여타 일반 대학과 같은 역할은 가집니다. 허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위에서 열거한 국립 교육기관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지닙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인간의 이념이나 관념, 사상을 감각을 통하여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즉, 예술이란 그러한 생각의 연쇄를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표출하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색깔은 필연적으로 표출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정치적 성향이란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좌파, 우파. 흔히든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좌파일색인 한예종' 이라며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뿜어대고 있습니다. 한예종의 초 학생 수는 3000여 명입니다. 이들이 전부 '좌파' 일 수 있을까요. 각기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같은 색깔을 가지고 성장했다면 이는 성장과정, 즉 사회적 배경을 문제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나라가 그들을 좌파로 키웠을테니 말입니다.
정치란 두사람만 모여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이 정치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생리현상을 문제삼으며 자신들의 생리현상은 돌보지 않는 사람들은 정치의 기본 개념부터 익히셔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진보' 의 반대가 '진부' 라면 진부한 사고가 현실을 가리고 있는 상황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교육기관의 역할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의 가능성은 이러한 틀을 어떻게 파괴시키고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단 여기서의 파괴란 탄생을 위한 생산적인 활동입니다. 적어도 이렇게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필요로 하는 예술 교육기관에 '정치' 를 언급하는 것은 '진부' 한 사고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쓰런 애정와 인간,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민하는 '예술' 은 좌파보다도 더 진보적이며 우파보다도 더 우파적입니다.
과연 한예종의 어떠한 결과물이 '좌파적' 이였습니까.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예술가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표현에 색깔이 있다고 한다면 예술가의 색깔이란 그야 말로 시공간을 넘어설 정도로 존재 할 것입니다. 이런 예술의 교육기관을 한가지 색깔로 단정짓는 사람들은 이미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일반 시민들의 자유도 박탈 할 위혐이 있습니다. 대개 이러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일정한 권력체계에 속한 지식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식인은 사람들간에 벽을 만들어 분화시키고 맡은 바 임무를 다 합니다. 선전과 정치가 이들의 역할입니다.
學校(학교)란 나무 밑에서 아이들이 책을 들고 배워 가르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어느 곳에도 정치 혹은 정부, 국가와 관련된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되려 기본 의미를 좀 더 깊이 고민한다면 '아이들이 정치를 형성하는 곳'이 됩니다. 그것이 곧 '깨닫는' 행위 이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도 '교육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는데 주체적으로 정치를 형성하는 학교의 자연성도 모른 채 원시시대의 말을 하는 분들은 네안데르탈인정도의 정치를 형성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염려스러운 말 중 하나는 한예종의 학사 개편을 문화부에서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 도서관 몇 층에 컴퓨터실이 있는지도 모르는 행정관료가 학교 시스템을 짜겠다는 발상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동사무소에서 저희 집 저녁 반찬을 정해주겠다는 것입니다.이미 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각 예술 분야에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시고 이 분들은 교육현장에서 몇 년을 지내신 분들입니다. 이러한 분들의 역량은 학교, 사회를 아우를 정도입니다.
일부 논객들은 "전문예술인 양성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며 한예종의 개편을 서두릅니다. 하지만 전문예술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 되었습니다. 문화 혹은 예술이란 다른 분야처럼 예산 투자와 정책집행으로 단기간에 이루어 지는 분야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유인촌 문화부 장관님께서 작년 한예종 최고경영자교육과정에 와서 직접 발언하신 것으로 기억하고있습니다. 문화 강대국이라는 프랑스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비-공산당 국가로는 최초로 문화부가 생겨난 국가이니만큼(사실 이 마저도 선전의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가 없지 않겠지만) 역량의 축적 시기가 길었습니다. 시기상으로 따져보아도 1959년에 프랑스에서 생겨났고 한국에는 1990년에 생겨났으니 31년의 시간차이가 존재합니다.
전문예술인이 무엇인지 변희재 씨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참으로 애매한 단어입니다. 대개 전문가란 한 분야의 실험을 통하여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사전에 나오는데 사실상 실제 의사소통에서는 이와 다른 뉘앙스로 많이 사용되기때문입니다. 실제로 artist 란 단어와 expert 란 단어는 따로 존재합니다. art 는 artist 와 experiment 는 expert 와 연관되는 개념입니다. 그 사이에 artisan 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겠는데 이는 물리적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변희재 대표가 전문예술인이란 단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개념 생성에 오류를 범하신 것 같습니다.
앙해엽 씨의 발언 중 “한예종의 방만한 경영을 개혁하여, 연극원, 무용원 등은 음악원으로 통폐합하고, 미술원과 함께 두 개 단과면 충분하다” 는 것에 질문을 던집니다. '방만한 경영' 은 둘째 치고 먼저 무용원과 음악원을 음악원으로 통합 한다는 발언에서 무용과 음악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예술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수용하게 되는 것을 기준으로 장르가 나뉩니다. 무용은 '몸' 의 행위를 통해 '시각' 으로 통하는 것이고 음악은 '목소리' 라는 인간의 발성기관과 이 밖의 '소리' 로 청각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즉 음악없이 무용이 가능하므로 이 두 원의 통폐합은 말도 안됩니다. 영상원, 전통원, 연극원의 폐지를 비치시는 점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영상이란 시각을 통해 이미지의 연쇄로 인간의 사고나 관념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수용기관은 '시각' 입니다. 양해엽 씨의 말처럼 영상이 예술이 아니라면 고 백남준 작가를 예술가라 칭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는 영상을 매개로 소통해왔기때문입니다. 연극원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분야이며 무용과 영상, 음악은 이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들 없이도 연극은 가능합니다. 전통원의 폐지를 주장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행여나 청와대에서 재례악이 울려퍼지길 바라시는건 아닙니까.
예술은 기술과 달라 갈고 닦는다고 날카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양해엽, 복거일, 변희재 씨 등이 원하는 예술인과 가장 비슷한 개념을 들자면 entertainer 가 있겠습니다. 이들은 영상, 무용, 음악, 연기 등을 단기간에익혀 대중과 소통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돌을 아티스트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실기 위주의 교육' 은 연예 기획사 연습실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실기와 이론을 어떻게 양분 할 수 있습니까. 이 둘은 뼈와 살처럼 역할고, 구성도 다르지만 공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나누는 것은 그동안 수많은 개념을 창조한 예술가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은 아니지만 자라보고 놀라는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과거 유럽권에서 생긴 문화당 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문화당은 문화와 비문화를 나누고 광기에나 어울릴 법한 선전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행했습니다. 퓌마롤리는 '문화 국가' 라는 저서에서 문화에 관료주의가 스미는 순간 창조력은 고갈 된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fundamental 이 존재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문제의 근본은 자유에 대한 제한입니다. 대화(dialogue)를 막고 선전(monologue) 만을 시청하라는 권력집단의 암시입니다. 미국수정헌법 1조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재한 할 법률을 제정 할 수 없다' 고 나와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란 비판을 통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검열을 행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분위기라 선명하지 않게 글을 제기한 면이 있습니다. 허나 정치와 교육과 문화는 분명 떨어져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질스럽고 야만스러운 인간에 경악을 금치 못한 홀스또메르는 홉스키 공작옆에서 타락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추하게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한 세상 짊어지고 떠났던 새는 다른 새들과 둥지를 텃지만 애국가는 다시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편안히 누워 자본론을
읽던 쇼파를 빼앗길가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