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대학로에 연극구경을 갔다. 부부동반으로. 몇 년만의 일인지...
신문에서 설경구가 출연하는 연극이라고 대서특필한 것을 본 남편 왈, 가서 보고 울자. 그래서 울고 싶은 두 중년이 거금을 들여 모처럼 대학로 나들이를 했다. 유감스럽게도 설경구 공연은 전회 매진이라 최용민 정경순 커플 것을 봤다.
보고난 느낌?
울고 싶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러브레터]는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하는 예술이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보여준다.
감동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원작,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살린 어색한 대사, 끊임없이 말을 씹는 남자배우, 미동없이 앉아서 편지만 읽는 단조로운 연출, 어떤 감흥도 생각도 불허하는 무대조명, 철저히 신파를 기대하는 무드음악, 객석보다 먼저 훌쩍이는 배우... 연출가 최형인은 최고의 배우를 길러냈다는 평판을 받는 배우 출신 연출가인데, 나는 최형인이 연출은 다시 하지 말던가, 아님 자신이 키운 배우의 명성에 기대지 않는 연출을 시도하던가 하길 바랐다.
암튼 온몸이 다 욱씬거리는 가운데 연극이 끝났고, 울지도 웃지도 못한 부부는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눴다. 대학로에서 따로따로 집에 왔으니...^^;; 그래도 부부가 함께 공감한 바 있으니, 설경구 것을 봤더라도 이 찝찝한 느낌은 똑같았으리란 것.
지난번 오지혜, 윤소정 모녀의 [엄마 안녕]을 봤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 연극은 텔레비전 드라마보다도 안이한 듯하다.
이번주 금요일엔 갓 대학에 들어간 조카와 함께 [헤드윅]을 보기로 했는데, 이젠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진정성 없는 예술을 만나는 것보다 입맛 쓴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