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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관리공단 공이 크다
1 꽁초봉에서 연하봉 가는 길. 길옆으로 천상화원이 펼쳐지는‘ 연하선경’이 바로 이곳이다.
2 지리산 산길은 그대로 녹색터널이다. 온갖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3 촛대봉을 향해 오르는 숨 가쁜 길. 넓은 고원을 정원으로 삼은 세석대피소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4 내삼신봉에서 가야 할 능선을 살펴보는 순재와 하은.앞의 선 굵은 산길이 남부능선이다.
세석에서 장터목 구간은 중간에 ‘연하선경’을 간직한, 지리산 산길 중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촛대봉 오름길이 늘 숨차고 힘들지만 문득 뒤돌아보는 풍광 속에 담긴 내용은 그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난 여기가 너무 좋아. 정말 예뻐요!”
하은은 지리산의 수많은 아름다움 중에서 촛대봉 오르다가 바라보는 세석고원을 손에 꼽는다. 90년대 초, 처음 지리산을 찾았을 때 보았던 세석고원은 움막 같은 대피소에, 주변은 무분별한 야영지로 인해 촛대봉 가까이까지 훼손이 심했었다.
게다가 군부대 시설까지 남아 있던 터라 벌목지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지금은 그 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복원되었다. 무성했다는 철쭉은 드물어졌지만 현재의 세석고원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으니 복원은 대성공인 셈.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공이 크다.
삼신봉 지나 닿은 꽁초봉. 공식적으로는 이름 없는 이 바위봉은 바로 앞으로 일출봉능선을 포함한 ‘연하선경’이 펼쳐지며 환상적인 조망을 보여주는데, 오래 전 사람들이 이 봉우리에서 쉬면서 담배를 피우고는 꽁초를 바위 틈새에 버려서 무수한 꽁초로 인해 이름 붙은 곳이다.
구름에 덮였다가 보이기를 반복하는 연하선경. 나는 지리산에서 이 구간을 좋아한다. 길이 순하고 꽃이 만발하며, 무엇보다 풍광이 확 트여서다. 무척이나 걷고 싶은 길, 꽁초봉에 앉아 한참 동안 눈에 담고는 내려선다.
언제나 시장을 방불케 하는 장터목. 장이 서던 옛날에도 이랬을까? 많은 이들이 넓은 마당 끝까지 자리를 잡고 비박을 준비하고 있다. 관리공단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상황인데, 이제는 이 또한 우리의 독특한 산행문화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딱딱하고 불편한 대피소 마당에 누워 비닐로 이슬을 가리고 별을 보며 노숙하던 한여름 밤의 추억을 저들은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이야기하리라.
두 해 전 지리산을 처음 찾았을 때 하은은 새벽에 일출을 보러 천왕봉을 오르던 길이 죽을 만큼 힘들었단다. 그래 장터목에서 수통을 채우며 잠시 쉬는 동안도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나 막상 오르기 시작하자 사방의 조망을 즐기며 그 때는 왜 그리 힘들었을까, 하며 잘 걷는다. 광호, 영민, 기현도 모두 아직은 씩씩하다.
“‘옵! 옵! 옵! 옵!’ 이렇게 ‘옵’이 네 번이야.” 뒤따라오던 하은과 기현은 최근 국제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수 싸이의 신곡 <오빠는 강남스타일>을 안무까지 곁들여 따라 부르며 신이 났다. 인터넷에서 구한 것이라며 등산모자 대신 오색찬란한 모자를 쓴 기현의 모습이 터번을 두른 아랍왕자 같아서 우리는 ‘오빠는 중동스타일’이라 가사를 바꿔 부르며 천왕봉으로 오른다.
오리무중 같던 하늘이 중봉에 닿자 말갛게 갰다. 멀리 인월 바래봉부터 서북능선의 만복대를 지나 노고단, 반야봉, 명선봉, 촛대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산세가 남김없이 조망된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당당한 봉우리, 예서 보는 천왕봉은 그야말로 왕의 위엄에 어울리는 자태를 가졌다. 중봉 남쪽의 20리길 황금능선과 하봉과 쑥밭재 지나 왕등재로 뻗어간 동부능선도 훤하다.
중봉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무척 색다르다. 가파른 오르내림이 많고 계단이 설치된 곳도 여러 군데지만 지리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주목을 자주 만날 수 있어 눈이 즐겁다. 1602미터의 써리봉에 올라 바위와 구상나무가 어울린 사이로 펼쳐진 중봉과 천왕봉을 조망하는 것은 이 코스의 백미다.
2월말 치밭목 심설산행 때 만났던 민병태 선생이 밝은 웃음으로 일행을 맞더니 원두커피를 내온다. 그와의 이야기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언제나 명료하다. 그래서 독특한 느낌의 즐거움이 있다. 이날은 치밭목 주변의 수많은 태양열집열판에 관한 것.
“집열판이 무척 많은 편인데, 전기 걱정은 없으시겠어요?”
“이 편집장, 모르는 소리 하지 마소.”
손사래를 친다. 집열판 종류가 여럿인데 치밭목에 설치한 것은 효율면에서 부족하단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의 수명이 짧은 편이며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주능선의 대피소들이 미어터지는 휴가철인데도 이곳 치밭목은 지난 밤 스무 명 남짓 머물렀단다. 그의 삶만큼이나 늘 한적한 치밭목대피소. 한적한 휴식을 끝낸 우리도 세상으로 내려서야 할 시간, 새재까지는 무제치기폭포를 지나 4.8킬로미터 남았다.
주능선에 버금가는 길고 험한 종주길, 결코 얕보지 마라!
3 새재마을‘ 조갯골산장’의 다슬기국 상차림.
4 음양수에서 물을 뜨고 있는 기현과 하은. 얼음물 같아서 손을 담그고 있으면 금세 한기가 느껴진다.
남부능선은 16.5km라는 물리적인 길이만 고려해서 산행을 계획해서는 안 된다. 쌍계사에서 출발할 경우 이른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여름이라도 해지기 전에 세석대피소까지 가기 힘들다. 쌍계사에서 상불재 구간이 특히 어려운데, 거리는 짧지만 난이도만 셈한다면 남부능선 산행의 5할쯤을 차지한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수없이 반복되며 녹록치 않은 산세를 보여준다. 또 불일폭포 상류의 계곡을 벗어나면 중간의 한벗샘 외에는 물을 구할 수 없어서 개인당 2리터 이상의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쌍계사를 출발해 40분쯤 가면 불일폭포휴게소가 나타난다. 이 구간은 남부능선 당일 산행의 가능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 구간으로, 배낭을 멘 상태로 불일폭포휴게소까지 40분 만에 오를 수 있다면 세석까지 가능하고, 1시간을 넘었다면 무리다. 탐방안내소 기능을 겸한 불일폭포휴게소에서 몇 번의 지계곡을 건너 1시간 40분이면 상불재에 닿는다. 상불재까지 오르는데 힘에 부친다면 가까운 탈출로인 청학동으로 내려서는 게 좋다. 상불재부터는 능선길이다. 40분 후에 낡은 헬기장을 만나고 다시 15분이면 쇠통바위다. 외삼신봉은 여기서 30분쯤 더 가야 한다.
표지석이 있는 외삼신봉에서 빤히 건너보이는 삼신봉까지는 20분 남짓 거리. 삼신봉은 코스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세석까지 7.5km의 능선이 결코 만만치 않으니 남은 시간에 주파할 자신이 없다면 청학동(2.5km)으로 내려서는 게 좋다. 삼신봉에서 한벗샘이 있는 수곡재까지는 1시간이면 된다. 이동통신용 안테나 시설이 있는 수곡재에서 한벗샘은 동쪽으로 40m 내려서야 한다. 여기서 식수를 보충한다. 수곡재에서 1시간 10분 가면 거대한 석문이 나타나고, 다시 20분 더 가면 대성골 갈림길이다. 여기서 30분이면 음양수, 다시 30분을 가면 세석대피소다.
주능선의 세석대피소에서 택할 수 있는 코스는 크게 네 곳이다. 거림골이나 한신계곡을 택해 하산하거나 벽소령 또는 장터목으로 능선산행을 이어가는 것이다.
※ 지도는 별책부록 초대형 지리산 등산지도 참고
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구례를 거쳐 하동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화개에 선다. 1일 9회(06:30, 08:00, 09:30, 11:30, 13:30, 15:30, 17:30, 19:30, 22:00) 출발한다. 3시간 30분 걸리며 요금은 20800원. 용산역에서 구례구역으로 가는 열차가 05:40~22:45까지 수시로 출발한다. 무궁화호는 4시간 20분쯤 걸리고, 새마을호는 4시간쯤 걸린다. 주말 기준 무궁화호는 23600원, 새마을호는 35000원이다.
구례터미널(061-780-2730)에서 쌍계사로 가는 버스가 하루 7회(06:40, 08:00, 10:50, 12:25, 14:30, 17:00, 18:00) 다닌다. 40분 걸리고, 요금은 2200원이다. 하동터미널(055-883-2663)에서 쌍계사행 버스는 하루 10회(08:00, 09:15-직행, 10:10, 11:00, 12:40, 14:00, 15:20, 16:45, 18:50, 20:30) 출발한다. 45분 걸리고, 요금은 2600원.
유평리나 새재마을로 가려면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산청군 원지까지 간 후, 원지시외버스정류소(055-973-0547)에서 6:55부터 20:55까지 매 시간마다 출발하는 버스로 유평탐방지원센터까지 간다. 40분쯤 걸리며, 요금은 3000원. 진주시외버스터미널(741-6039)에서 대원사행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승용차로는 대전통영간고속국도 단성나들목을 빠져나온 후 남사예담촌을 지나 삼장면사무소까지 간 후 명상삼거리에서 대원사방면으로 진행하면 유평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유평탐방지원센터에서 유평리나 새재마을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든지 걸어가야 한다. 유평리나 새재마을의 식당을 예약하고 차량을 부탁해도 된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단성(972-0345, 973-6611), 원지(972-8800, 972-0752), 덕산(972-6363, 972-9292)로 연락하면 된다. 새재에서 덕산 택시를 불러 원지까지 갈 경우 40000원을 받는다.
잘 데와 먹을 데 쌍계사로 들어오는 길 주변과 화개장터가 있는 원탑동 근처에 이름난 식당과 찻집, 그리고 숙박시설이 많다. 고향식당횟집(055-883-2239), 동백식당(883-2439), 단야식당(883-1667), 쌍계수석원(883-1716), 부산식당(883-1709), 미리내(884-7292) 등. 날머리 새재마을에는 새재산장(973-8249)과 비둘기봉산장, 아침햇살민박(010-2559-7767), 조개골산장(973-5425), 일하상회(972-8984) 등이 있다. 특히 조개골산장은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 각종 나물과 절임 반찬으로 차린 밥상이 일품이다.
지도 2만5천분의 1 사리•대성•악양, 5만분의 1 산청•운봉•하동
쌍계사 (40분) → 불일폭포휴게소 (1시간 40분) → 상불재 (1시간) → 쇠통바위 (30분) →외삼신봉 (20분) → 삼신봉 (1시간) → 한벗샘 (1시간 20분) → 석문 (20분) → 대성골갈림길 (30분) → 음양수 (30분) → 세석대피소 (2시간) → 장터목 (1시간) → 천왕봉 (3시간) → 치밭목대피소 (40분) → 새재갈림길 (1시간 10분) → 새재 총거리_30km
쌍계사
어느 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 절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려면 해가 뜨기 전에 둘러보는 게 좋다. 산안개라도 낀다면 금상첨화다. 쌍계사도 마찬가지. 산새들이 법당의 청명한 목탁소리에 화답하며 아침을 여는 시각, 새벽이슬의 영롱함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쌍계사 마당에 들어서 보라. 단청의 화려함이나 코끝을 자극하는 향내가 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전에 아직 숲 그림자에 푹 잠긴 자연과 하나 된 절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천년고찰 쌍계사는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많은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쌍계사의 아름다움은 보유한 유물의 수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진입로의 울창한 숲길이나 국사암 가는 길, 또 경내의 주축을 이룬 일주문, 팔영루 대웅전 영역에서 비껴나 계곡을 사이에 두고 청학루로 열리는 금당영역의 신선함이다.
대원사 다층석탑
대원사는 가람의 정갈함이 나라 안에서 손꼽히는 절집이다. 비구니사찰이라서 더욱 그러하겠지만, 이곳 장독대의 아름다움은 유홍준의 답사기에서 특별 조명되기도 했다. 대원사에는 이 외에도 별스런 볼거리가 있으니 바로 요사채 뜰에 있는 다층석탑이다. 646년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높이 6.6m의 탑이다. 석탑앞에 있는 배례석에는 1784년(정조 8)에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89년 해체 복원 때는 58과의 부처 사리와 사리를 넣는 사리장엄구편이 나왔다. 탑은 이중기단 위에 팔층의 지붕돌로 되어 있으나, 기단 맨 위의 갑석을 일층으로 간주한 9층탑이었을 것이다.
이단의 주름이 있는 지붕돌은 투박하지만 네 모서리를 약간 들어 올려 가벼움을 주려하고 있다. 석탑으로는 보기 드물게 기단의 네 모서리에 문관의 모습을 한 기둥을 세웠는데, 조선시대에 다시 세워질 때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