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구간 소개 제4구간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 의탄교에서 의중마을~서암정사 가는길~서암정사~벽송사~ 세동마을~운서마을~구시락재~동강마을까지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온 6개의 산중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사찰로 가는 고즈넉한 숲길과 등구재와 법화산 자락을 조망하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 옛길과 임도 등으로 구성된다.
지방특산물 탄(숯)을 중앙에 공납하기위해 만들어진 특수행정구역인 의탄소(義灘所)의 600년 묵은 느티나무 당산목, 서암정사와 벽송사로 가는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듬뿍 묻어있는 고즈넉한 숲길, 400년된 소나무, 용유담과 엄천강의 조망,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종이 생산지 세동마을, 운서쉼터 등이 반겨준다. 김종직의 유류두록에 나오는 옛길인 구시락재, 강과 산이 함께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마을 동강(桐江)마을을 볼 수 있다. 지난번 마지막으로 걸었던 금계마을에서 시작하여 의중마을. 웅장하고 아름다운 마애 조각이 백미를 이루는 서암정사. 1520년 조선시대 벽송지엄선사가 창건하였고 우리가 익히알고 있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득도하였다는 유명한 절 벽송사를 지나, 지리산을 유람하던 선인들이 여흥을 즐기던 곳으로 마적도사와 아홉 용의 전설과 가사魚의 전설이 셔려있는 용유담을 지나서,운서마을,동강마을까지 걷는다. 이번 길은 지리산 북부 물줄 기들이 만나는 강을 따라 걸으며 강가 마을길, 강가 옆길 등 강을 바라 보며 풍경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숲을 따라 숲 속 친구들을 만나고, 고개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만나고, 들녘을 따라 삶과 노동을 만나고, 강을 건너 머리칼 흩뿌리는 바람을 만나고, 끝끝내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이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도로가 있어 발길이 뜸해졌지만 절로 가는 숲길로서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묻어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마을 안에는 느티나무 당산목이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죽포대(竹圃臺).. 한말 의병활동을 하였던 죽포 이규현공이 지팡이를 놓고 쉬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서암정사로 가는길은 약간의 오르막 산길이다. 중간중간 솔향기 그윽한 소나무 숲길도 지나니 코끝이 간지럽다. 또한 산죽의 터널이 장관이다. 산 깊고 물 맑으니, 이곳을 걷는 이의 마음이 절로 청정해진다. 서암정사는 지리산 산맥 위에 앉아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고, 한국의 3대 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서암정사는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란 별칭이 말해주듯, 온 도량이 불교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갖가지 장엄한 마애불이 조각되어있다. 서암정사의 중심은 불경속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石窟에 재연해놓은 극락전 석굴법당이 장관이다. 이곳에는 아미타불을 위시해 8보살, 10대제자, 신장단 등이 장엄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돼 있고 입구에는 거대한 천연바위에 새겨진 마애사천왕상이 새겨져있다. 그 밖에 비로전, 독수성, 주산신, 배송대, 용왕단 등은 불경에 담긴 갖가지 형상을 보여준다. 도량 곳곳의 석조 현판과 주련, 비석에 새겨진 글귀들은 광대한 부처님의 진리를 알려주고 있다. 서암정사에는 또 원응스님이 15년간 서사해 완성한 약 60만 자로 이뤄진 금니화엄경(金泥華嚴經)을 비롯해 다수의 사경 작품이 소장돼 있다. 원응스님의 사경은 한국불교에서 단절됐던 사경수행(寫經修行) 전통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다양한 불교 석조각과 한 스님의 사경수행 과정을 잔잔히 음미할 수 있는 곳이 서암정사다. <<석굴안 불상과 천장까지 온통 조각되어 백미를 이룬다>> 벽송사 주지였던 원응(元應)스님이 1960년대 중반부터 터를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원응스님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이곳에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류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발원으로 불사를 시작했다. *원문과는 다르게 나름대로 번역했다. 절간에서 쓰는 글의 내용이라는것이 일반객들은 넘 어렵다. <아래 원문 참조> 百千江河萬溪流 : 수 많은 강물이 만갈래 줄기로 흐르지만 同歸大海一味水 : 모두가 바다로 돌아가니 한물 맛이네. 森羅萬象各別色 : 삼라만상의 사물이 제 각각 모양과 색깔이 다르지만 還源元來同根生 :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원래 한 곳에서 태어났네. 돌기둥이 참배객을 맞이하는 바로 서암정사의 입구이며 여타 절간과는 다르게 일주문이 없다. <벽송사.碧松寺> 소재지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경상남도 전통사찰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말이나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사적기가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520년(조선 중종 15) 벽송(碧松) 지엄(智嚴:1464∼1534)이 중창한 뒤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으며 이후 영관·원오·일선 등이 이곳에서 선을 배웠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탔으나 바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간월루>>> 달을 구경하는 루각이란다. 아름답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방장선원·간월루·산신각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벽송사 삼층석탑과 목장승 2기가 전한다. 이 중 높이 3.5m의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세운 것으로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었다. 2기의 목장승은 본래 높이는 4m이나 절반이 땅에 묻혀 있으며, 마천면이 변강쇠와 옹녀의 일화를 담은 가루지기타령이 전하는 곳이라 특히 주목을 받는다. 왼쪽이 금호장군(禁護將軍), 오른쪽이 호법대장군(護法大將軍)이고 재질은 밤나무이다. 이 중 금호장군은 1969년에 일어난 산불로 머리가 파손되었다. 목장승은 원래는 사찰 입구 양 옆에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반겼다 하나 훼손이 심해 보호각 안에 안치되어있다. <<목장승>>사찰 입구에 보호각 안에 있다. 용유담은 역사적으로 점필재 김종직, 뇌계 유호인,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남명 조식 등 많은 선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남명 조식은 1558년 '유두류록'에서 지리산을 10번이상 올랐으며 용유담으로 지리산에 들어간 것이 3번이나 되었다고 알려져있어요. 용유담은 강수량이 부족하면 관아가 주도하여 기우제를 지내던 대표적인 곳입니다. 성종 때에는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이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오도재를 넘어 용유담으로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지요. 용유담 맑은 물에는 등에 무늬가 있는 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무늬가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다하여 '가사어'라고 불린답니다. 이 지리산 계곡에서만 사는 물고기입니다. 또 이 지방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지리산 서북쪽에 달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 곁에 저연이라는 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못에서 가사어가 태어나서 가을이 되면 물길을 따라 내려와서 용유담에 이르러 놀다가 봄이 되면 달궁으로 다시 돌아가는 까닭에 용유담 아래에서는 이 고기를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용유담가에는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마적도사란 분이 살았는데.종이에 쇠도장을 찍어서 나귀에게 부쳐 보내면 그 나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엄천사로 갔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등에 잔득 싣고 돌아온답니다. 이 나귀가 용유담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주면 그때 나귀가 용유담을 건너오고 하는데. 하루는 마적도사가 나귀를 보내 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하늘에서 내려온 용 아홉마리가 용유담에서 놀다가 싸움이 벌어졌답니다. 용이 싸우는 소리에 나귀우는 소리를 듯지 못한 마적도사는. 장기판에 정신을 빼앗기고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와 자연에 도취하다 보니 나귀가 와서 울었는데도 마적도사는 듣지 못하고 장기만 두고 있었다. 나귀는 강변에 짐을 싣고 서서 힘을 다해 울부짖었으나 반응이 없자 그대로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곧 나귀 바위라합니다. 마적도사는 나귀가 죽자 화를 참지 못하고 장기판을 부수어 용들을 쫓아버렸답니다. 그 부서진 장기판 조각들이 용유담가 흩어진 돌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