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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奉化] - 전통과 역사가 살아있는 고장
동쪽으로 울진군·영양군, 서쪽으로 영주시, 남쪽으로 안동시,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태백시·삼척시와 접한다. 영화인 워낭소리의 무대이기도 하다. 춘양목과 송이버섯으로 유명하다.
봉화 문화관광 http://culture.bonghwa.go.kr/open.content/ko/
영상포엠 한국 100경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401313
닭실마을(달실마을)
권벌선생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충재(冲齋).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파직당하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안동권씨의 집성촌으로 충재 종택과 청암정, 석천계곡으로 이어지는 닭실마을의 경관은 명승 및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닭실마을 석천계곡(명승 제60호)
특히 이곳의 장점은 일찍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훼손되지 않고 이어져 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다. 석천계곡은 일제시대 신작로가 세워지기 전의 달실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오랜 여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이 계곡에서 잠시 쉬며 여독을 풀었다고 한다. 기이한 기암괴석과 울창한 소나무숲에 아기자기한 계곡의 물이 웅장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마을의 종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닭실마을 석천정사
청암정과 더불어 주변환경과 조화를 잘 이룬 빼어난 전통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마을의 종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닭실마을 청암정[靑巖亭]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정자를 꼽으라고 하면 그 순위권 안에는 청암정이 있다. 이는 바로 거북이 바위위에 지어진 청암정이 기존의 바위와 아주 잘 이룬 조화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과거 이곳은 마을의 입향조인 충재선생께서 공부를 하기위한 장소로 건립하였고, 그의 사후에는 후손들이 서당으로 활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닭실마을 추원재(追遠齋)
달실마을의 서쪽끝에 위치한 추원재는 선영의 묘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 건축미와 기능 및 역사로 인해 문화재로 지정받은 곳 중의 한 곳이다. 2층의 누각이 포함된 口자형태의 추원재는 100명 정도의 인원이 관련 체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이기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는 건물에 딸린 농지가 많이 있다.
닭실마을 충재종택
이들 네 곳 중 닭실마을만이 1963년부터 사적 및 명승 제3호(내성유곡 권충재 관계유적)로 지정돼 있다. 이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곳은 도립공원 청량산의 수려한 풍광과 태백산맥에서 발원한다는 낙동강이 기암절벽을 끼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소박한 양반가의 전형으로 특별히 규모가 크다거나 건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대문이 '월문(月門)'의 형상으로 매우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닭실마을 충재선생박물관 충재선생박물관은 宗家에서 소장해오던 遺物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이다. 보물 482점과 기타 유물 등 총 10,000여점에 이르는 조선시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닭실마을 만산고택(晩山古宅)
서당 정면에 보이는 현판‘翰墨淸緣(한묵청연)’은 학문 정진의 뜻을 기리는 영친왕의 글씨다.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진품 글씨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서툰 솜씨의 복제품을 본다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흥선대원군‘晩山(만산)’, 추사 김정희 등 유명한 인물들이 쓴 편액과 현판들을 볼 수 있어 당시의 위용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
만산고택은 대한제국 통정대부(정3품) 중추원 의관을 지낸 만산 강용선생이 건립한 가옥
만산(晩山)이란 대기만성의 큰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대원군이 직접 작호를 내렸으며 친히 편액을 내려 보내주었다. 현재 하사한 편액은 따로 보관되어있다
삼계서원(三溪書院)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정구(鄭逑)가 선조 때 삼계서원의 사당을 충정공사(忠定公祠), 당호(堂號)를 정일당(精一堂), 동재(東齋)를 사무사(思無邪), 서재(西齋)를 모불경(毋不敬), 정문을 환성문(喚惺門), 문루를 관물루(觀物樓)라고 이름 지었다
충재선생의 불천위제사는 선조25년(1592)에 국가로부터 친진부조(親盡不조)의 불천위명이 내려지면서 시작이 되었다.
오전약수탕
워낭소리 상운면 하눌리 산정마을
최 노인의 집은 누추하지만 정겨웠다. 마당 한 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영화 속 장면이 담겨 있어 <워낭소리>를 추억하게 한다. 영화의 주요 장면과 줄거리가 새겨져 있는 마을 입구의 조형물. 최 노인과 누렁이가 논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재현한 동상도 마을 입구에 서있다
유기공방 봉화읍 신흥리
이몽룡생가(가평리 계서당 佳坪里溪西堂)
성이성은 1627년 문과에 급제한 뒤 진주부사 등 6개 고을 수령을 지내고 어사에 세 차례 등용되었으며,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다. 훗날 부제학(副提學)을 추서받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청량사[淸凉寺]
본시 매우 큰 절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절은 유리보전(경북유형문화재 47)과 응진전만 남은 채 피폐했다.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 동방유리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법당에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지장보살, 우측에는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청량사는 원래는 매우 큰 사찰(30여 채)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사찰은 유리보전과 응진전만 남은 채 피폐했다. 법당에는 고려 공민왕이 친필로 쓴 "琉璃寶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종이로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紙佛)'이다.
노국공주 원(元)나라 위왕(魏王)의 딸. 고려 공민왕(恭愍王)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난산 끝에 죽었다(1365년, 공민왕 14). 공민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가 죽은 뒤부터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았으며, 친히 왕비의 진영(眞影)을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울었다. 또 그녀의 영(靈)을 위로해 주기 위해 혼제(魂祭)를 지냈으며, 그 진영을 모시기 위해 장려한 영전(影殿)을 지었다.
청량사5층석탑 5층 석탑 앞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에는 '셋뿔송아지 무덤(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는 이름이 있다. 옛날,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뿔이 세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그 송아지는 몇 달 만에 엄청나게 커져서 힘도 세고 성질도 사나워 함부로 송아지 곁에 접근을 못했었다. 그때 연대사(청량사 전에 있었던 절) 주지스님이 송아지를 데려다 짐을 나르는데 썼더니 송아지는 매우 온순해져서 시키는 일을 잘했다고 한다. 송아지 덕분에 산중턱 가파른 곳에 절을 세우는 불사를 손쉽게 치러낼 수 있었다. 그 후 송아지가 죽자 절 앞에 묻으니 바로 그 자리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셋뿔 송아지 무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990년에 세워진 5층석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5과가 모셔져 있다.
청량산[淸凉山]
김생굴 통일신라의 서예가인 김생이 이 굴에서 9년간 명필 수련을 하고 하산하려는데 청량봉녀가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불을 끄고 내 길쌈 솜씨와 네 서예 솜씨를 겨뤄 보자.” 김생은 자신만만하게 “도전!”을 외쳤으나 불을 켜 보니 글씨가 삐뚤빼뚤하더란다. 깨달음을 얻은 김생은 1년을 더 연마해 10년을 채운 뒤 하산해 명필이 됐다
청량산성
산성 터에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일부 발견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1595년(선조 28)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지시로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레가 16㎞에 이른다. 당시에는 말 5필이 동시에 나란히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가 성을 따라 나 있었는데, 이를 ‘오마대도(五馬大道)’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량산성 속의 마을 뒤 보호림 안에는 공민왕이 머물렀던 자리에 ‘공민왕당’이라는 조그만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산성에서는 4개의 문루, 수많은 불교 유적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도자기와 병기류가 출토된 바 있다.
밀성대(密城臺) 청량산 축융봉(845m)에 있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와서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명령을 어긴 죄인을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전설이있다. 밀성대 주위로는 성을 쌓은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축서사[鷲棲寺] 물야면 개단리
춘양목 군락지(금강소나무숲길)
이러한 금강소나무에 또 다른 이름은 '춘양목'이다. 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벌채한 질 좋은 소나무를 1955년 7월에 개통된 영암선(지금의 영동선)의 춘양역을 통해 대도시로 반출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 춘양목이라 불렀다. 또한, 영동선을 개설할 당시 직선으로 뻗어 달리게 설계된 노선을 춘양면 소재지를 감아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고 해서 ‘억지춘양’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특히, 서벽리 금강송 군락지에는 보기에도 훤칠한 1500여 그루의 금강송에는 페인트로 번호가 매겨졌다. 금강송의 100년 미래를 내다보고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성장이 매우 늦게 되고(1/3) 곧게 자라는 나무를 금강송 또는 황장목이라 한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위치한 춘양목 군락지에는 약 1500그루의 금강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삼림욕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춘양목산림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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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선주[奉化仙酒]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의 김의동 가(家)에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온 가양주(家釀酒)로 오가피를 넣어 만든 술. 빨리 취하고 뒤끝이 깨끗하여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신선이 된다고 하여 '선주(仙酒)'라 하였다.
봉화 송이축제 봉화송이는 태백산 자락의 마사토 토양에서 자라 다른 지역의 송이보다 수분량이 적고 맛과 향이 뛰어나며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봉화 은어축제 나무가 많아 물 좋고 공기 좋은 봉화에서 한여름을 제대로 즐길 만한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맑고 시원한 내성천에 뛰어들어 은어와 한 판 승부를 벌이고, 뗏목타기와 래프팅, 수상줄다리기 등을 즐기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더위를 밀어내 보십시오.
봉화장에서는 전국 최초 전통시장에서 민속품을 경매하는 경매장이 개설돼 운영된다
경북 봉화군 들락날락 봉화장(2,7장) 장터극장에서는 창작 국악그룹 아나야와 함께하는 세대공감 음악여행을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농산어촌 지역문화 순회사업중 하나로 문화 인프라 시설이 부재한 산간벽지 군단위이하 농산어촌 지역 주민을 찾아가 양질의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보급해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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