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말이, 그래도 다행히다.너는 수학 여행이라도 간다. 두 형들은 수학 여행을 가지 않았다. 수학 여행 가는 싯점이 주로 농사철이었다.비용 문제도 있지만 대부분 그런 것에는 관심 없고 오직 일이나 해야 한다는 정서가 깃들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여행이냐고 동네 돌아보면 볼 것이 수천지인디 하면서 보내지 않았다.내가 중학교 수학여행을 간 것은 중3 때로 생각되었다. 중2 시월에 가려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된 것이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다음 년으로 미루었다. 봄은 아니었고 가을 즈음으로 생각된다. 봄에는 광주에 큰 일이 벌어졌다. 지금으로 말하면 광주 시민 항쟁이었다.그 일이 있은 후로 동네 어른들은 더욱 반공 사상이 고취되었다. 이상한 낌새만 있으면 신고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시골에 살면서 걸핏하면 농사철에 동원되고 집에 가장 바쁜 철에는 농번기가 주어졌다.집에 일을 거두어라는 것이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짤짤이 팀에 끼지 않았다.내가 주로 자전거로 통학을 했는데 학교 가다가 보면은 누구네 집에서 밤새 짤짤이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학교에 오면 틈만 생기면 짤짤이를 했다.어느 낮에 비오는 날이나 걸어서 가다가 동네 벽 귀퉁이에서 그늘에서 짤짤이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누구네 작은 방에서 이불 깔아 펼쳐 놓고 밤을 샜다는 말을 들었다.
가을이었을 것이다.우리들 수학여행 날짜가 정해졌다.나는 무엇보다 멀미가 너무 심해서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비 오는 날 자전거를 놓고 차를 타는 날이면 속이 울렁거려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공부도 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형도 차 타는 것을 싫어 했다. 그 멀미에 참을 수 없었다. 비슷한 자리를 잡고 가능한 아는 친구들과 자리를 했다.가는 도중 반장이 앞을 리더하면서 노래도 하고 어울려서 흥을 돋았다. 그 시기에 유행한 노래가 심수봉,들고양이 두 노래 그리고 연가였다. 주로 개인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 계속해서 합창으로 노래를 불렀다.우리에게는 대통령이 죽거나 광주 항쟁이 벌어져 사람이 죽어도 오직 버스가 들썩하도록 그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마음 약해서 짜라 짜짜 짜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