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패 (기적의 메달)
이 패는 프랑스의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보고 제작하게 된 것으로, 냉담하는 사람이나 신앙심이 약한 신자에게 믿음을 갖게 해 주는 은총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패의 앞면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께서 세상을 상징하는 지구 위에 은총의 손길을 내리시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마리아를 상징하는 M자와 부활하신 예수를 의미하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으며, 그 밑에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 패는 따로 목걸이로 착용하거나 옷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고 묵주에 달고 다니기도 한다.
이 '기적의 패'는 동정심이 있는 기적, 병의 회복 등 많은 은총을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기적의 패'는 수호신이 아니다. 그 자체에는 힘이 없다. 성모님(전구)의 힘과 '기적의 패'를 몸에 착용하는 사람의 사랑과 신앙에 의한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와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의 4만 5천명(그 당시)의 '사랑의 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의 집에서 전염병과 그 밖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대포 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장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불쌍한 고아들과 함께 그리고 어디에 있든지, 사랑의 딸들은 창립자인 성 빈첸시오와 루이즈에 의해 이어받은 성모님을 향한 사 랑을 보여 줍니다. 당신들의 어머니를 보십시오. 사랑의 딸 회의 유일한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알리는 교리가 반포되기 거의 200년 전에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은 그 딸들에게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신앙을 선언하고 계셨다. 지금도 묵주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모든 사랑의 딸들의 마음에서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신앙 고백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쳐지고 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선언하시고 교회의 신앙 개조로 정하셨다.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의 생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기적의 패는 가타리나 성녀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가타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모님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하고 이 기적의 패를 제작하게 되었다.
1. 어린 시절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는 프랑스의 부르강디 지방에서 1806년 5월 2일 한 농가의 10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났으며 그 다음날 세례를 받았다. 이 작은 마을에는 교회, 학교, 관청이 각각 하나씩 있었으며,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고 몇 개의 농장이 있었다. 가타리나가 겨우 9살 때 어머니는 10명의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가타리나는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위하여 청소, 세탁, 식사 등 가사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린 소녀에게 있어서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이 일들은 훗날 수녀가 되고 나서 큰 도움이 되었다.
가타리나는 좀 더 자란 후에 새벽에 집에서 약 4km의 길을 걸어서 성당에 다녔는데,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날이 밝아 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무렵부터 수녀 생활의 소명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특히 성당 앞쪽에 있는 성모상과 아기 예수상은 가타리나 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인 분위기로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두터워졌으며, 어느 날 부엌에서 일하던 가타리나는 "성모님, 이제부터는 당신이 제 어머니이십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 이후로 성모 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은 깊어지고 꼭 한 번 성모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갖기 시작했다.
가타리나가 22살이 된 어느 날, '사랑의 딸' 회에 입회하기를 아버지께 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친께서는 그녀를 파리에 있는 친척의 집으로 보내 도시 생활의 매력에 이끌리게 함으로써 그녀의 소망을 없애려 하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생활은 수녀가 되려는 그녀의 소망을 더욱 강하게 만들뿐이었다.
2. '사랑의 딸' 회에 입회
마침내 1830년 4월, 가타리나는 파리 본부의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 사랑의 딸'회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수녀가 되기 위해 생활했다. 그녀는 기도와 일, 레크레이션 등을 다른 수녀들과 함께 열심히 하여 매일 수녀 수업에 힘쓰고 있었으며, 한편으로 성모님을 뵙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은 기도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더욱 강해져 갔다.
3.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
가타리나가 수련기에 들어가고 나서 3개월이 지난 7월 18일이었다. 매우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녀는 그 날 밤은 틀림없이 성모님을 뵐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수녀의 수호 천사가 그녀를 깨워 성당으로 인도했으며 거기서 성모님을 뵙게 되었다. 가타리나는 성모님의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2시간 동안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성모님께서는 그녀에게 "하느님께서 너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모님은 "제단 밑으로 오너라. 신뢰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면 어떤 기도도 이루어질 것이다. 신뢰하고 기도한다면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풍부하게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녀에게 좋은 수녀가 되라는 바램과 '사랑의 딸' 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가타리나는 그 날 밤 잠들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기쁨에 넘쳐 있었지만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상시와 같이 생활했다. 일하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성모님을 뵙고 자신에게 맡겨진 이상한 사명을 더욱 확실히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는 4개월 후에 이 기도를 들어주셨다.
4. 두 번째 발현
11월 27일 저녁 5시 반. 기도 시간이었다. 갑자기 성모님이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그 때 모든 수녀들이 성당에 모여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그녀는 양손에 지구본을 들고 지구 위에 서서 하느님께 이 세계를 바치고 계시는 성모님을 보았다. 잠시 후 지구본은 없어지고 성모님의 내려진 손끝에서 빛이 나왔다. 그 빛은 성모님이 서 계시는 지구를 내리 비추었다.그리고 성모님의 머리 주위에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달아 드는 우리를 위해 빌으소서" 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또 십자가와 M자를 보았는데 그 밑에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심장이 있었다. 이는 전체적으로 타원형을 이루었고 그 주위에는 12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그녀에게 지금 본 것을 메달로 만들라고 하시며, "이 메달을 걸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많은 은총이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성모님께서는 각 발현의 의미를 설명하셨다. "하느님께 바쳐진 이 지구의는 전 세계와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한다. 보석이 박힌 반지에서 나오는 빛은 은총을 바라는 것과 그것을 들어주는 은총을 나타낸다. 빛이 나오지 않는 보석은 바라는 것을 잊었든지 또는 은총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성모님은 사라지시고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가타리나 이외에는 아무도 이 발현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으며 원죄없으신 성모님의 '기적의 패'를 만들고 그것을 보급시켜서 성모님의 사랑과 힘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 세 번째 발현
1830년 12월, 역시 기도 시간 중이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손에서 나오는 이 빛은 은총의 상징이며 은총을 구하는 이들은 그 분 자신이 들어주실 것임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성녀는 성모님께서 더 이상 발현하지 않을 것이며 기도 중에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6. 성녀 가타리나의 사도직
성모님 발현 후 가타리나는 그녀의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 고해 신부인 알라델 신부(전교회 소속)에게 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적의 패'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것을 하나의 상상이라 생각하고, "환상을 보는 것보다 성모님의 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성모님을 존경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가타리나는 몇 번이고 알라델 신부의 마음을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제를 찾아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결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가타리나에게 있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 '사랑의 딸'회의 수녀복을 받는 날이 찾아왔다. 마침내 성 빈첸시오의 딸로서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소망이 실현된 것이다. 그 후 가타리나는 파리의 병원으로 파견되어 죽을 때까지 45년 간의 생애를 기도 속에서 기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바치게 되었다.
한편, 사도직을 하면서도 잠시도 성모님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적의 패'를 아직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타리나가 기도 중에, 아직도 알라델 신부는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씀드리자, 성모님은 당신 뜻대로 하실 날이 올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7. 기적의 패
가타리나가 이러한 성모님의 탄식을 전하자 알라델 신부는 파리의 대주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성모님과 '기적의 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주교는 곧 '기적의 패'를 보급하도록 했으며, 자신이 최초로 몸에 착용하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여 겨우 원죄 없으신 '기적의 패'가 2000개 만들어져서 보급되었다.
대주교는 그에게서 '기적의 패'를 받자마자 신앙을 잃은 채로 임종을 맞이하려고 하는 전임 주교에게 급히 갔다. 필요 없다고 냉대하던 그 전임 주교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께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이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기적의 패'에 의해서 일어난 매우 많은 신비한 일들 중에 최초의 사건이었다.
얼마 후 '기적의 패'는 주문에 응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되었으며 그것은 '기적의 패'를 몸에 착용하는 사람에게 놀랄 정도로 은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의 유명한 일화인 알퐁스 라티스본느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는 성실한 유대 사람으로 로마에 잠시 머물고 있었으며 친구들을 기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적의 패'를 몸에 착용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알퐁스는 우연히 성 안드레아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때 성모님의 발현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전에는 그리스도교를 모독하고 있었지만 그의 앞에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을 확실히 보았다고 했다. 8일 후 알퐁스는 세례를 받았고 후에 사제가 되었다.
이 '기적의 패'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고 했지만 함께 생활하는 수녀들조차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성녀는 만년에 시민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일했으며, 차츰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성모님께 부탁 받은 일 중에서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남아 있는 것을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성모님이 지구를 하느님께 바치는 자신의 성상을 만들도록 부탁하신 것을 아직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라델 신부가 죽은 지 꽤 오랜 시일이 지났다. 이제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타리나는 성모님의 발현과 그분의 부탁,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자신의 오랫동안의 걱정을 마침내 장상 수녀님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성상 건립은 장상의 협조로 실현되었으나, 그것은 성녀에게 결정적인 희생을 가져왔다. 이 일로 인해 46년간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가타리나는 임종을 맞았다. 1876년 12월 31일에 임종한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는 바로 전 날 "나는 내일 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녀의 건강에는 별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교회 아래 묻혔던 성녀의 시신은 1933년에 성인이 되기 위한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에 놀랍게도 옷과 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성모님의 무릎에 오랫동안 놓여졌던 그 손은 죽음조차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타리나는 1947년에 시성 되었으며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성녀를 '침묵의 성녀'라고 부르셨다. 가타리나 라부레 성녀는 성모님이 발현하셨기 때문에 시성된 것이 아니다.가난한 이들의 종으로서 매일을 깊은 신앙 안에서 겸손하게 사신 그분의 삶이 성녀로 이끈 것이다.
8. 기적의 패를 착용한 후 드리는 기도문
이 기적의 패를 몸에 지니고 매일 적어도 한 번씩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달아드는 우리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와 같이 기도할 때 기적의 패는 우리의 생활에 큰 양식이 될 것이며, 기적의 패를 몸에 지니는 사람은 특별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레지오 회합 때 레지오의 제대에 모시는 성모상과 벡실리움에 새겨진 성모님의 모습이 바로 1830년에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의 모습이다. 그리고 벡실리움의 뒷면에 새겨진 것은 기적의 패 뒷면에 새겨진 것과 같은 것이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상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고 활동하는 레지오 마리애는 오늘날 가장 큰 평신도 단체로 발전하는 축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