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차.141023.목. 순천만-여수시 소라면 장척마을
삼일 간 나를 즐겁고 슬프게 해준 비와 구름은 깨끗이 사라지고 티 없이
맑은 하늘이다. 9시에 순천 시내에
있는 찜질방을 나와 77번
버스를 타고 오랜 기다림 끝에 67번 버스로 갈아타고 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다
시 간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진 어금니 조각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삼켰나?
날씨도 좋은데 출발이 매우 늦다. 10:40에 입장료를 내고 공원 내로 들어간다. 여러 관광객들과
함께 용산전
망대에 오르니 아름다운 순천만 자연공원이 펼쳐진다. 나 홀로 전망대를 넘어 비탈진 산길을
내려가니 남도
삼백리길 이정표가 보인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이다. 어제
왔었더라면 갈 수 없는 맑은 날만 통행이 가능
한 길이다. 율촌면 상봉리 길을 지나던 승용차가 도보여행중이냐며
타란다. 고맙긴 하지만 도보여행중이란
걸 알면서 타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소라면 복촌선착장에서 반갑게도 해안따라 도보여행자를 만난다.
동해안은
지난해에 마쳤고 지난9월30일에 부산 태종대를 출발했단다. 인천에서 온 사람으로 숙식은 민박과
매식이란다. 한가로운 해안따라
예쁘게 지어놓은 가정집들이 많다.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빠져든 나도 그림
속의 주인공이다. 장척마을 입구에 수학여행을 온 듯한 많은 학생들이 장어구이를 먹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장어굽기가 바쁘다. 구경하고 있었더니 먹어보라고 두 마리를 주신다. 바닷가에 앉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맛있게 먹어버리고 기념촬영을 하려고 다시 갔더니 또 한 마리를
주신다. 대단한 영양식으로 포식
을 한다. 그사이 영균로부터
전화가 왔음에도 손에 묻은 기름 때문에 제 때 받지를 못한다. 친구를 기다리며
말로 표현키 어려운 석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는데 거제도에서 온 스님을 만난다. 내가 도보여행 중 이
라고 했더니 그것을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인 萬行’ 이라며 자기도 만행 중이란다. 또
내 사주를 보더니 福을 많이 받을 팔자고 전생에 아마도 큰 스님이었을 거란다. 인연이 닿으면 다음에 다시
만나자며
사라진다. 사실 나는 萬行이 아닌 ‘이리저리 한가히
떠돌아 다니는 漫行’ 중이다. 수 차례 위치 확인
을
한 후 한 시간여 만에 어렵게 찾아 온 영균이를 만난다. 내가 더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마을입구 바닷가에
위치한 유리정자가 마음에 쏙 들고 한 시간 내에 이만한 정자를 찾을 수 없을 것 같고 또 잘못하면 영균이를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서다. 식사하러 가는 길에 내일 내가 걸어갈 길로 답사 겸 일부러 해안따라
차를 몰지만 길은 매우 비좁고 위태롭기까지
하다. 멀리 오동도 까지 갔지만 횟집은 모두 문을 닫고 있어 근
처 식당엘 찾아가 장어구이를 먹는다. 오늘은 완전 장어 날이다. 마침 주인아주머니 사위는 영균이가 재직중
인
경상대를 졸업했고 딸은 나와 한 동네인 성수동에 산다며 아주 좋아한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만나며 모른
척 하지 말란다. 멀리서 찾아와 멀리 식사하러 갔다가 다시 멀리 있는 유리정자가 기다리는 장척마을까지
원
위치를 해준 친구에게 뭐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