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새 외 2편
이후재
그의 장기는 공중돌리기
단박에 공원의 낙엽을 가뭇없이 날려버리고
언니 머리에 노란 핀을 꽂아준다
그는 벤치에 잠든 할아버지를 지키고
나를 일으켜 골목마다 데리고 다니며
너의 길을 찾으라 한다
착한 그도 심통을 부리면
나뭇가지의 옷을 벗겨 칼춤을 추게 하고
잔디밭에 붉은 파도를 몰고온다
때로는 가지에서 지붕에서
그가 노래를 불러도 볼 수 없지만
겨울에 그는 하얀 독수리로 온다
가로수
이후재
인도네시아 대사관 정문 앞 가로수 한 그루
40년 전의 명령을 오늘도 한 자리에 서서 지키고 있다
낯익은 얼굴을 만나면 언제나 손 흔들어주고
옆에 선 신호등이 붉게 화내면
자동차들 소리 지르고 달아나지만 화내지 않는다.
날마다 모래먼지 쇳가루 가스를 먹지만
좋은 음식먹는 그들보다 더 튼튼하다
패션이란 제 탈을 뒤집어 쓰고
날마다 싸우는 사람들
철마다 옷을 갈아 입으며 옵니다
보름달 아래 그들이 혈육의 정을 나눌 때
나는 발 끝으로 한 모금 지하수를 더듬는다
세상은 옷을 벗겨 시험하지만
발리섬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엔도르핀
이후재
육땡의 끗발로 중형차를 들여와
같이 쓰자며 큰 아들에게 넘겨주니
장딴지엔 알이 밴다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던 아들
엔도르핀이 솟는 눈치다
며느리는 벙글거리고
할머니가 왜 내 차를 모느냐는
다섯살 손녀의 앙탈에 놀란 에미
할머니 아빠 우리 다 같이 타는 거라고 일러도
왜 그래, 할아버지한테 돈 두개 달래서 사!
올레, 저런 맹랑한 참새를 봤나
할머니도 엔도르핀이 도는개벼
이후재
경북 상추 출생, 월간 스토리문학 등단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신방대학원 졸업
KBS아나운서, KBS원주방송국장 역임
시섬문학회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고문
시집 『땀 흘리는 산』동인지 『도자기의 노래』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