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여주 하언 의 만사 4수 〔鄭驪州 夏彥 輓 四首〕
시단에 북과 피리 울려 일천 적군 쓸어내고 / 騷壇鼓吹掃千群 풍진 세상의 수레와 의복은 한 점 구름처럼 보았네 / 塵世軒裳視點雲 무엇보다도 흉중의 바다 호수같이 넓은 기상으로 / 最是胷中湖海氣 눈앞에 있는 이들의 분분함을 비웃었지 / 眼前諸子笑紛紛
문장과 명필 겸비하여 / 詞宗墨妙兩兼之 한 시대의 영웅호걸들과 나란히 말을 달렸네 / 一代英豪竝轡馳 선배들 십 년 사이에 모두들 시들어 없어졌으니 / 先輩十年零落盡 유풍과 여운 누구에게 다시 의지하리오 / 流風餘韻更憑誰
공은 담장 동쪽에 살고 나는 마을 서쪽에 살았는데 / 公住墻東我巷西 향기로운 술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매양 초청해주었지 / 芳樽日夕每招携 쓸쓸한 옛집엔 부질없이 꽃이 지는데 / 凄凉故宅空花落 산새만이 손을 짝하여 우는구나 / 惟有山禽伴客啼
청심루 위에서 술잔 들고 맞이하니 / 淸心樓上把盃迎 백발노인의 청안에서 옛 정을 볼래라 / 靑眼華顚見故情 술자리에서 소리 높여 읊조리던 일 엊그제 같건만 / 醉席高吟如昨日 한 번 이별하자마자 울음소리 삼키게 될 줄 어이 알았으랴 / 那知一別便呑聲
[주-C001] 애만록(哀輓錄) : 〈애만록(哀輓錄)〉은 이계가 지은 애사(哀詞)와 만사(輓詞)를 수록한 것이다. 애사와 만사의 주인공은 영조와 정조를 비롯한 왕족들, 조정의 선후배, 자각시사(紫閣詩社)의 동인(同人) 등 다양하며, 이를 통해 이계의 생애와 인간관계를 간접적으로 살필 수 있다. 총 23제(題) 71수(首)이다. [주-D001] 정 여주의 만사 : 정하언(鄭夏彦, 1702~1769)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미중(美仲), 호는 지당(止堂)ㆍ옥호자(玉壺子)이다. 1735년(영조11) 증광 문과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고, 의주 부윤(義州府尹)ㆍ여주 목사(驪州牧使)ㆍ병조 참의(兵曹參議)ㆍ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문학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문집으로 《지당집(止堂集)》이 있다. 제1수에서는 정하언의 문학적 재능과 호방한 기상을, 제2수에서는 뛰어난 선배가 타계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제3수에서는 정하언과 이웃해 살며 정답게 지내던 추억과 그의 빈자리로 인한 상실감을, 제4수에서는 여주에서 함께 노닌 추억과 그의 부고를 받았을 때의 충격을 살필 수 있다. 각각 평성 ‘문(文)’ 운ㆍ평성 ‘지(支)’ 운ㆍ평성 ‘제(齊)’ 운ㆍ평성 ‘경(庚)’ 운의 칠언절구이다. [주-D002] 수레와 의복 : 고관들이 타는 수레와 입는 관복으로, 높은 벼슬을 가리킨다. [주-D003] 청심루(淸心樓) : 조선 시대 여주목(驪州牧)의 객관 북쪽에 있던 누정으로, 한강을 마주한 풍광이 수려하여 여주의 명승지로 일컬어졌다. 정몽주(鄭夢周)ㆍ이색(李穡) 등 역대 쟁쟁한 문인들의 시를 새긴 시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주-D004] 청안(靑眼) : 눈동자의 검은 부분이 드러나도록 똑바로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뜻인데, 상대를 반가워하거나 존중하는 눈빛을 의미한다. 진(晉)나라의 고사(高士) 완적(阮籍)이 세속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아 속사(俗士)를 대할 적에는 흰자위를 드러낸 백안(白眼)으로 보고, 고사(高士)를 대할 적에는 청안으로 본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임영걸 (역) | 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