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빙하우스 착시(Ebbinghaus Illusion)’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것은 동일한 크기의 원이라도 주변을 둘러싼 다른 원의 크기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착시 현상을 말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 착시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보다시피 두 개의 회색 원의 크기는 같은데 왼쪽의 원이 더 크게 느껴지죠.
퍼듀 대학교의 심리학자 제시카 위트(Jessica K. Witt)와 동료 연구자들은 에빙하우스 착시를 통해 목표의 크기를 다르게 인식하도록 조작하면 성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했습니다. 홈런을 친 야구선수들이 평소보다 공이 크게 보였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실제보다 목표물을 크게 인식하면 성과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크기보다 과장되면 오히려 목표를 정확히 조준하지 못해 성과가 나빠질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결국 실험을 통해야만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있는 거겠죠.
그래서 위트는 직경 5cm(정확히는 5.08cm)의 구멍을 만들고 그 위에 바닥을 비추는 프로젝터를 설치해 에빙하우스 착시를 구현했습니다. 위트는 36명의 참가자에게 구멍 주위를 직경 3.08cm짜리 원 11개를 비추는 경우와, 직경 28cm짜리 원 5개를 비추는 경우를 보여주고 각각 구멍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구멍이 큰 원들 주위에 있을 때보다 작은 원들 주위에 있을 때 더 크게 인식함으로써 에빙하우스 착시를 경험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위트는 참가자들에게 10개의 공을 주고 구멍에서 3.5 m 떨어진 곳에서 퍼팅해 구멍 안으로 가능한 한 많은 공을 집어넣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다음과 같은 그래프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구멍이 작은 원들 주위에 있을 때의 성과가 큰 원들 주위에 있을 때보다 더 좋았습니다.
이 결과는 목표의 크기를 실제보다 크게 인식할 경우 자신감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성과도 좋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홈런 친 타자가 공이 수박만큼 크게 보였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짐작케 하는 결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위트의 실험은 우리가 평소 ‘착시나 편향에 휘둘리지 마라’고 조언하는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입니다. 오히려 목표물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는 ‘긍정적인 착각’을 해야 성과가 나아진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축구, 농구, 야구, 골프 등 물리적인 목표물이 있는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를 일반화해 과장된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목표물이 크게 보인다’ 혹은 ‘목표가 멀지 않았다’는 약간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나쁠 것은 없다고 보는 게 좋겠죠. 홈런을 치려면 일부러 공이 수박처럼 크게 보인다고 자기암시를 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자신감은 독이지만요.
(*참고논문)
Witt, J. K., Linkenauger, S. A., & Proffitt, D. R. (2012). Get me out of this slump! Visual illusions improve sports performance. Psychological Science, 23(4), 397-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