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뉴욕 기도회 손경희 마리아입니다. 다른 분들처럼 많은 은총을 받은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인데 처녀 적인 1994년쯤에 “나주의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른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 아닌가?’ 싶어서 그 길로 물어물어
나주 경당을 찾아왔습니다.
경당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한 50cm 크기의 플라스틱 성모상에서 뭔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비신자인 저는 ‘저게 뭐라고 왜 신문에 나고
그런가?’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냥 잊어버렸습니다. 근데 성모님께서는 저를 찍으셨는가 봐요. 그 다음부터
무지무지 아팠습니다.
결혼하고 첫 애를 유산한 뒤 남편과 성당을 나갔는데 애기를 낳은 지 37일 만에 척추가 2개나 나갔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외손녀의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면서 ‘이제 우리 막내딸은 장애인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시며 우셨답니다.
그리고 애가 100일이 됐을 때 친정어머니는 ‘딸이 죽더라도 애 백일 떡 돌리는 거는 보고 죽어야 되지 않겠는가?’하시고는 제 남편하고 백일 떡을 돌렸다고 해요. 제가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신자가 되고 나서 성당이나 어떤 모임에서도 나주 성모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고 제가 그렇게 아파도 누구 하나 “나주의 성모님이
어떤 은총을 내리신다.”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파서 대구 친정집에 가서 누워있던
저에게 우리 성당 데레사 수녀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저는 그때 대구 파티마병원 통증치료실에서 목 경추에서부터 꼬리뼈까지 마취주사를 최대한 놓고 옆에서 부축을 해줘도 너무 아파 잘 움직일 수가 없어 비명만 질렀어요. 그런데 그 수녀님이 전화를 해서 “마리아, 그러지 말고 안강에 와서
주님 성모님께 매달려봐.” 그랬어요.
저는 신앙심도 별로 없었지만 “네” 하고는 정말 경주 안강 집으로 왔는데 수녀님이 어떤 자매님을 모시고 왔어요. 그 자매님은 무슨 물을 저에게 뿌리고 손에도 발라주면서 “기도를 해보라” 그랬어요.
저는
그때까지 입 밖으로 기도해 본 적이 없었지만 너무 다급했나 봐요. “주님 성모님 저를 낫게 해주시면 제가 우리 양가 친척들 다
신자로 만들게요.” 그랬는데 먹던 약봉지 다 던지고 진짜 사흘 만에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그 물이 뭔지 알려주지를 않아 그게 어디서 온 은총인지 몰랐어요.
그러다 나중에 그 자매님이 식복사 방에서 다른 분과 나주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들을까봐 “쉿!”하고 했어요. 저는 거기서 제가 받은 은총이 나주성모님이라는 느낌이 딱 왔는데 그분은 끝끝내 나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제일 먼저 느낀 거는 ‘주님 성모님을 따른다고 그러면서 왜 그렇게 용기가 없고, 성교회에서 왜 꼭 약자처럼 그렇게 행동을 할까? 약자가 아닌데도’하는 생각에 그 자매님의 행동이 이해가 안됐습니다.
저는
성격이 온순해 사람들이 여성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시는데 1980년대 민주화운동 하고 한창 데모할 때 대자보도 쓰고 그러니까
당차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아무튼 저는 2005년 4월부터 아이 둘이랑 남편이랑 나주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순례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머, 어떻게 다른 사람들한테 져주면서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하고 배운 것들이 너무 많은데 단 하나 의심스러웠던 거는 ‘왜 용감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주 순례 몇 달 안됐을 때 포항 실내체육관에서 신부님, 수녀님들 많이 모아놓고 저처럼 일반 신자들도 좀 많이 참석한 행사가 있었어요. 그때 개신교 목사님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광주교구 요셉형제님이 강사로 나와 막 말씀하시다가
나주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어요.
저는
‘아, 누군가는 언급을 하는구나!’ 좋아했는데 “율리아가 잘못됐다. 나주는 진실이 아니다.”라면서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때 제가 입었던 점퍼에는 처음 나주순례 왔을 때 받았던 성모님 작은 상본이 들어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그걸 딱 꺼내보고 “성모님 저 갑니다.” 그랬어요.
남편
요셉씨는 우리 본당의 신부님, 신자들이 있다고 저를 말리다가 응원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상본을 주머니에 딱 쥔 채로 막
뛰었습니다. 제가 척추가 안 좋아서 안 뛰는데 휴식시간이 끝나기 전에 가야 하니까 정말 그때는 제비처럼
뛰어 내려가서 요셉 형제님 등을 톡톡 두드렸어요.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셔서 “형제님! 죄송하지만 바깥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러니까 좋다고 나오셨어요. 목사님 출신이니까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따로 이야기하고 그랬나 봐요. 근데 제가 “율리아 자매님이 제 영적
어머니이신데 그 분을 잘 아십니까?” 그랬더니 낯빛이 쫙 바뀌어요.
그러더니
“나도 나주를 가봤고, 뭐...” 그래서 “나주를 가보신 분이 그렇게 얘기하실 수 있습니까? 성모님을 잘 아신다는 분이 율리아
자매님과 나주성모님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실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때부터 막 야단치듯 하셔요.
젊은
아줌마가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율리아는 잘못된 사람이니까 그런 데 다니지 말고 ...” 막 그러는 거예요. 사실 저는
누가 맞지 않은 얘기나 거슬리는 얘기를 하면 그전에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라고 한 뒤에 하나하나 근거를
대라고 추궁하면 누구든지 나중에는 말이 다 꼬여요.
그러면
제가 “앞으로 입 닫으세요. 안 그러면 입을 꿰매 버리겠습니다.”는 그런 얘기 잘했는데 나주 순례 몇 달 다니면서 율리아
엄마한테 첫 번째 배운 영성이 감사한 거를 배운 거예요. 그분이 엉뚱한 소리하는데도 “제가 아는 거랑 너무나
다른 얘기지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했어요.
근데
형제님이 열이 나서 막 이야기하는데도 제가 계속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니까 점점 더 코너로 몰리는 것 같았는지 “그런 데
쫓아다니지 마요. 사람도 바쁜데...” 그러면서 확 뒤돌아서서 가시는 거예요. 마주보고 있으면 참을
수 있고 봉헌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더 이상 봉헌이 안 됐어요.
그래서
“형제님! 그렇게 살지 마세요!!!” 한 소리 했더니 열이 나 막 뭐라고 하시면서 가셨어요. 제가 마지막까지 잘 봉헌하지 못해
율리아 엄마를 욕되게 한 건 맞는데 그분은 저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잖아요. 그래서 그때 입바른
소리 한마디 했다고 해서 제가 손해 본 게 없어요.
저는
‘주님 성모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는 남편 있는 3층으로 올라왔고, 휴식시간이 끝나 2부가 시작됐는데 요셉 형제님이
단상에서 말을 몇 마디도 하기 전에 대형 스크린이 ‘팍’하고 떨어진 거예요. 그 순간 그분이 놀래가지고는
갑자기 말이 꼬이더니 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까 휴식시간에 어떤 자매님이 나를 찾아와 말을 잘못했다고 야단을 치고 가더라.” 그러고는 계속 횡설수설 하시다가 “그래도 우리는 순명해야 돼요.” 하시더니 마지막 말은 뭐였냐면 “여러분,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성모성지 하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 말로 끝이 났어요.
이건
성모님께서 해주신 거 맞죠? 나주 순례 몇 달 안 다닌 제가 성모님 상본 하나 딱 쥐고 가서 많은 말을 안 했어도 성모님께서 다
해주신 건데, 여기 계신 선배님들이나 혈기 왕성하신 많은 분들이 누가 나주에 대해 틀린 말을 할 때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저보다 10배는 더 잘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면
저희는 은총 속에 순례를 한 5년 간 빠지지 않고 다녔어요. 순례버스를 못 타면 포항에서 남편이 운전해서 왔어요. 남편은 잠이
많아 나주에서 복사를 서도 내도록 잤는데 그래도 차를 몰고 열심히 순례 다녔어요. 근데 이건 율리아
엄마도 잘 모르시는 이야기예요.
남편은
저보다 가방끈 짧은 데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저는 남편의 박사학위 취득과 성공이 제 결혼생활의 업적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동안 노력을 많이 해왔고, 순례 초창기 때 만남을 하면서 “엄마, 요셉씨 박사학위 마칠
수 있겠죠?” 하니까 율리아 엄마가 “아멘!” 그러셨어요.
근데
요셉 씨가 학위를 받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여름이라 가족이 다 거실에서 잤는데 아침에 요셉씨 머리맡에 빨간 피가 세
방울이 삼각형으로 딱 내려와 있었어요. 너무 놀라 남편 머리를 막 뒤져봤더니 상처가 하나도 없어서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성혈 주신 것을 알고 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제 망토를 넣어두었던 옷장 문짝에 향유가 쫙 쏟아지듯 내린 거예요. 그 망토는 율리아 엄마가 기도하시면서 입으셨던
망토인데 다른 봉사자들한테는 잘 안 맞았던 망토가 제 목에는 신데렐라 구두처럼 딱 맞았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선물 받아 제가 겨울이면 입었던 망토였어요.
근데
두 번의 징표가 있고 나서 미국 ‘에너지 성’ 산하의 ‘국립 연구소’에서 요셉씨를 잡(Job)으로 초청하겠다면서 “초청경비를
대줄테니까 와서 집도 보고, 그 안에서 하는 일도 다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거기는 대단한 사람들이
즐비한데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그런 거예요.
근데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사춘기의 큰딸과 어린 둘째 딸은 포항에서 친구들 잘 사귀고 또 공부도 잘하고 하니까 친구들 놔두고 미국을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함께 나주에 와서 “그러면 갈바리아 동산에 올라가서
예수님께 한 번 여쭤보자” 그랬어요.
남편은
운전에 지쳐서 차 안에서 잠들어 있고 셋이 올라갔어요. 저는 애들처럼 순수한 마음이 돼 “주님, 미국 초청은 주님께서 해주신
일이예요?” 하고 물었어요. 그때 애들이 “엄마도 보여?”하면서 십자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 대요.
애들도
저와 똑같은 모습을 보고 있어서 또 여쭤봤어요. “주님, 정말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예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또 십자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예요. 저는 갈바리아 동산 십자가가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건 봤어도 이런 경우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그래서
애들하고 내려오는 언덕길에서 “그럼 저희 갔다 올게요.” 그러는데도 십자가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어요. 이 징표를 보고 두
아이가 미국에 온순하게 따라와 은총 속에 잘 지냈는데 제가 미국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애들 교육이
아니라 뉴욕에 나주성모님 기도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자매님과 함께 계속 준비기도를 했는데 7주 만에 나주에서 OK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뉴욕 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기도회원 중에 나주를 알았던 사람은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 무대장치 일을 하는 율리아나 자매 밖에
없고, 다른 분들은 나주 근처에도 온 적이 없어요.
근데 그 사람들도 성모님 메시지와 나주 영성으로 생활이 개선되기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한인 본당의 신부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우리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신부님이 나주 기도회원들에게 대부모 설 수 없고 봉사자 금지를 내리셨을 때도, 신부님께서 성모승천대축일에 저와 개인
면담을 하면서 “내가 뭐라고 하고 싶은데 흠잡을 데가 없는 신앙생활을 해서 흠을 잡을 수가 없다.”면서
“모든 성사는 다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놀라운 건 율리아 엄마를 본 적이 없는 기도회원들도 나주 영성으로 생활이 개선되면서 그 감사를 꼭 율리아 엄마를 통해서 한다는
거예요. 나주에 와서도 못보고 간 가족이 있고, 최근에 왔던 모자만 율리아 엄마와 잠깐 만남을 하고 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가까이 있으니까 보통 5~6시간이면 순례할 수 있고 차비도 작게 들어요. 저는 이 성수기에 비행기 왕복 티켓 이코노미 석이 1인당 3000불이니까 딸 둘과 셋이 오면 비행기 삯만 천만 원인데도 자주 오고 싶습니다.
나주가
인준 나면 엄마 얼굴 보기도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 나와서 이렇게 말씀 전해주시고, 얼굴 볼 수 있고, 또 뽀뽀도
날려주시면서 우리를 품에 안아 기도해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심을 다해서 율리아 엄마에게
위로의 화관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부족한
저도 쓰시는데 여기 계신 분들은 너무나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진짜 더 많이, 더 잘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율리아 엄마가
기도해주시는 거 믿고 있고, 주님 성모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거를 굳게 믿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나주는
진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 박해의 시대라고 그러지만 목이 날아가는 거 아니니까 저는 그냥 압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정도 압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경찰이 와서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우리 목숨에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성모님께서 율리아 엄마를 통해서 양육해주셨습니다. 믿으십시오. 성모님께서는 안 해주신 게 없으십니다. 그죠?
제가 두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날 여기 올 때 ‘동방박사 세 분은 아기예수님께 경배 드리려고 몰약과 황금과 유향을 가지고 왔지만 우리는 뭐를 가져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세 가지를 정했습니다.
나주가
진실임을 믿는 마음, 나주성모님의 메시지와 영성을 전하는 마음, 그리고 그 영성을 실천하는 마음입니다. 저희는 아기예수님께
‘다른 사람들도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그런 선물을 드리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날 엄마도 만나고 엄청나게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아무도 목 안칩니다. 옳은 걸 옳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들을 귀가 있고 볼 줄 아는 분들은 더
조심하십니다. 신부님들이 모르고만 계시지 않아요. 아직 기도가 많이 필요하신 분들도 있지만 교도권 안에서
순명하시느라고 침묵 중이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 신부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건 옳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나주성모님 가족들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두서없이 은총 나눔 했습니다. 율리아 엄마께 감사하며 주님 성모님께 이 모든 영광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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