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의 대표격인
영월 돼지봉
아직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나물·버섯 채취꾼들 많아

첫눈이 내린 날의 영월 선돌의 환상적인 풍경.
2019년 기해년(己亥年)에서 천간의 기(己)는 토(土)에 해당한다.
토는 색깔로 노란색 또는 황금색을 가리킨다.
그래서 새해가 황금돼지해가 되는 것이다.
토는 오행에서는 중앙을 나타낸다.
토체의 산이 중국의 오악 중 중앙에 있는 이유다.
‘황제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중국의 수도인 낙양과 서안이
중악 숭산 옆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천간의 기, 그 자체는 오행에서 물에 해당한다.
오악에서 북악 항산이다.
산봉우리들이 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듯한 ‘수체의 산’이다.
토체와 수체의 산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영월의 산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특히 돼지봉과 관련이 매우 높다.
한국에서 돼지이름을 가진 산은 드물다.
몇 개 되지 않은 산 중에서 영월 돼지봉(817.7m)이 대표적이다.
영월의 지명과 산세를 알기 전에 먼저
영월의 산과 물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산과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예로부터 산수가 명당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영월은 85%가 산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전체의 산지 64%보다 훨씬 많다.
산이 많다는 의미는 물도 그만큼 많이 발원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물의 발원지는 항상 산이기 때문이다.
영월 주변에는 기본적으로 동강과 서강이 있다.
한국의 오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법흥사가 있는
백덕산에서 발원한 법흥천은 무릉리까지 내려와 주천강으로 합류하고,
주천강은 다시 평창강과 합류해서 서강을 이룬다.
서강은 영월 동쪽의 동강과 합류해서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법흥천이 주천강과 합류하는 강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백덕산, 즉 백덕지맥이 내려오는 끝자락에 있는
돼지봉을 감싸며 쌍태극의 형세를 띤다.
마치 안동 하회마을의 물줄기가 태극의 형세를 띠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다.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인물들과 기업가들을
많이 배출한 동네로 유명하다.
아니, 산을 휘감아 흐르는 모양새는 안동의 그것보다 훨씬
더 태극의 형세를 띤다.
산이 많은 영월은 하천까지 포함해 5개의 강줄기가 흐른다.
온 동네를 태극으로 만들 모양새다.
영월군의회 윤길로 의장은 “쌍태극의 형세를 띤 영월 주천과 수주에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주천에서 인심을 얻고 표를 얻어야 영월에서 선거에 이긴다.
주천은 실제 인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들의 단합력은 영월 전체의 군심을 결정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요선정의 겨울 풍경

영월 동강 어라연에서도 물이 산을 휘감아 흐른다

백덕지맥 끝자락에 있는 요선정과
그 앞에 흐르는 법흥천이 환상적인 경관을 보여 준다.

돼지봉에 이전에 온 등산객이 묶어 놓은 리본이 몇 개 걸려 있다
돼지봉 주변은 온통 물 관련 지명
돼지봉을 감싸고 있는 동네는 온통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일단 돼지봉이 있는 지역이 수주면이다.
지금 무릉도원면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행정지명은 수주면이다.
마을 이름엔 아직 수주(水周)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수주는 온통 물이라는 의미다.
인근 주천(酒泉)도 맑은 샘이 솟아 술을 담그는 뜻의 동네다.
여기도 물이고, 저기도 물이다.
무릉도원면은 무릉리와 도원리로 나뉜다.
신선이 나오는 동네다. 실제 물이 흐르는 계곡이 많아 신선 못지않다.
돼지봉은 백덕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돼지봉 끝이 주천강으로 스며든다.
멀리서 바라본 돼지봉 형세는 마치 거북이가 머리를 내민 형국이다.
돼지봉인데 이상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마주보고 있는 산이
설구산(雪龜山, 503.1m)이다.
거북이와 돼지가 눈을 마주치고 있다.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잔뜩 궁금증을 가지고 돼지봉으로 향한다.
출발지점은 모현사.
단종의 스승이던 생육신 원호가 단종이 유배를 가자
벼슬을 버리고 영월로 내려와 살며,
충절을 지킨 뜻을 기려 사당에 모셨다고 한다.
원씨, 이씨, 곽씨 3성의 조상을 함께 모신다고 한다.
산은 아늑하다. 겨울 찬바람이 부는 데도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의아했다. 혹시 돼지 지명과 관련이 있을까?
신경주 이장은 “원래 돼지봉은 박달이습지가 능선 옆으로 있어,
돼지들이 이동하던 동선이자 돼지들이 습지에 목욕하던 장소가 있었던 산이다.
멧돼지들이 원체 많아 이름으로 유래됐다. 지금도 습지가 그대로 있다”고 전했다.
산의 형세와 상관없이 돼지들이 원체 많이 다녀 명명됐다는 설명이다.
무릉도원면사무소에서 제공한 설명에도 비슷하다.
‘돼지봉은 멧돼지가 많다 하여 돼지봉으로 불려온 산이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과 영월군 수주면 경계를 이루는
백덕산 남쪽 능선 가운데쯤에서 신선바위봉(1,089m)을 이루고 남진해,
소위 백덕지맥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지는 또 다른 능선의 마지막봉이 돼지봉이다.
돼지봉은 이 남서릉의 최고봉으로
산세가 빼어나고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 있는 곳이다.’
한쪽 사면은 백덕산에서 발원한 법흥천이 흐른다.
법흥천과 주천강이 거의 합류하는 지점에 요선정이 있다.
바로 출발 지점인 모현사와 관련 있는 장소다.
요선정은 영월의 청정계곡이 흐르는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다.
그 요선정이 영월을 대표하는 3개 성씨인 원, 곽, 이씨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숙종, 영조, 정조의 어제시를 봉안하기 위해 1913년 세웠다고 한다.
그 옆 마애여래좌상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요선정 아래 돌개구멍 사진이 무릉도원면사무소에 크게 걸려 있다.
흐르는 물이 합류하면서 물살이 거세져 돌에 구멍을 만들었다고 해서
돌개구멍이라 했다고 한다.
신경주 이장은 “평소 돼지봉에는 등산객보다는
봄 나물, 가을 도토리, 버섯 채취꾼들이 매우 많이 왔다”며
“황금돼지해를 맞아 전국에서 대표적인 돼지 지명을 가진 돼지봉에
등산객들이 더욱 많이 올 것으로 전망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취재가 끝난 뒤 12월 셋째 주 일주일 내내 이장 포함 마을주민들이
일제히 등산로 정비에 나섰다고 신경주 이장의 연락이 왔다.
등산로 정비와 이정표, 안내문을 새해를 맞기 전에 마무리하고
등산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돼지봉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점종을 이루고 있다.
신 이장은 등산로를 올라가던 도중 곳곳에 버섯을 가리키며
“한참 시즌에는 버섯과 산나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충분히 그럴만한 산이었다.

돼지봉 하산길에 있는 송골마을의 장독대가 눈길을 끈다

탱골마을 모현사

요선정 아래 계곡에는 요선암이란 명소가 있다
버섯과 산나물 지천으로 널려
5부 능선쯤 올라서자 의외로 넓은 철쭉군락지가 나타난다.
가파른 듯 부드럽고, 완만한 듯하면서 조금 경사가 있는 애매한 사면의 돼지봉이다.
또 조금 가파르면서도 날카롭거나 위압감을 전혀 주지 않는
아늑한 느낌은 지울 수 없는 산이다. 전형적인 육산의 이미지다.
조금 더 올라가 7부 능선쯤에는 진달래 군락이 나온다.
군락지가 제법 크다. 4월쯤에는 진달래로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진달래나무 사이로 등산로가 나 있다.
진달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봄산행은 정말 할 만 하겠다.
봄부터 등산객이 제법 몰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산이 알려지지 않고 있었을까.
황금돼지해니까 제대로 선을 보이는 산이 되겠다.
돼지봉 바로 직전 등산로 진입로가 좁아지면서 목이 잘린 듯 지형이 양분되어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신 이장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영월에 쇠파이프를 박은 장소가 몇 군데 있다.
내가 확인한 장소만 두 군데 된다. 들은 바로는 5군데 정도 된다고 한다.
여기도 그 비슷한 장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의미부여를 하자면 뭔가 꺼림칙하다.
이런 건 풍수전문가가 와서 형세를 한 번 파악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요선정과 마애불
요선정이 저만치 앞 계곡에 보이는 정상이다.
요선정은 휘감아 도는 물을 바라보며 잡은 자리가 천하의 명당 같아 보인다.
영월에는 계곡이 많이 산수가 정말 수려하다.
산이 85%에 하천을 포함한 강이 5개나 될 정도로 산수가 어울리는 지형이다.
명당이 따로 없고 전부 명당 같다. 그런 땅이 영월이다.
정상은 나무 조각에 ‘돼지봉’이란 안내판 하나 덩그러니 있다.
뭔가 설명도 있을 법한데 아직 정비가 제대로 안된 것 같다.

하산도 능선으로 한다. 조금 가파른 듯하지만 전혀 위험하지는 않다.
하늘이(허리) 동네 이정표가 있다.
신 이장은 “저 동네가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해서
'하늘이'라고 명명됐다”고 설명했다.
방향이 달라 그냥 지나친다. 의자바위 등을 지나면 잣나무 군락이 나온다.
죽죽 뻗은 잣나무와 소나무가 대형군락을 이루고 있다.
제때 수확하지 않은 잣이 제법 땅에 뒹굴고 있다.
원체 사람이 찾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황금돼지해를 맞아 돼지봉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
등산객들에게는 한 번쯤 가볼 만한 매력적인 산으로 다가올 듯하다.
돼지봉이라는 유래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무릉3리 송골마을이 하산 끝지점이다.
무릉3리 탱골 모현사 입구에서 출발한 산행은
서릉지능선~전망대바위~삼거리~동릉~돼지봉 정상을 거쳐
송골~무릉3리 마을회관에서 끝난다.
총 5.7km에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돼지봉은 수체의 산이 아니라 실제 물이 많고,
토체의 산이 아니라 육산에 가까운 그런 형세의 산이다.
산도 많고 물도 많고, 물이 많아 계곡도 좋고,
산수 수려한 영월의 산에서
황금돼지해를 맞아 남한의 대표적인 돼지 지명을 가진
영월 육산을 즐기는 것도 등산꾼들에게는 한 해를 맞는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지금쯤 등산로 정비가 완벽히 끝났지 싶다.


출처: 월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