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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설
풍경 속에 나부끼는 ‘사람’이라는 깃발
<박강남의 시세계>
김필영(시인·문학평론가)
박강남 시인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가 한 사람의 시인이기 전에 참‘사람다운 사람’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평소 타자를 배려하여 다름을 인정하며,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평화의 조성자로서 항상 여백을 두고 기다려주는 참 겸손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강남 시인은 1996년 첫 시집『그리운 날에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를 출간하고, 2000년 2집『사랑이 내게로 와서』, 2004년 3집『산이 웃고 바람은 달려오고』를 출간하였으며, 2013년 가을에 제 4시집『입술』을 출간한 후, 7년 동안 영혼을 다해 써온 시를 이번에 제 5시집『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에 엮어 출간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4반세기를 몰입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며 놀라운데, 예술의 극점이라 할 수 있는‘詩人의 길’에서 25성상을 지나오며 제 5시집을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한 시인의 생은 참 고매한 기적이다. 출간한 시집 제목으로 박강남 시인의 길을 요약해 보면,‘「그리운 날에는 바람으로 살」며,「사랑이 내게로 와서」머무를 때, 사랑 따라 풍경도 시가 되어「산이 웃고 바람은 달려오고」, 불혹을 넘기며「입술」로 詩를 노래하는 시인은「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풍경」에 스미어 비로소 시를 호흡하노라.’로 정리해 본다.
시의 발아점과 지향점(시인의 길 찾기)
시인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는다. 시의 씨앗이 뿌려져 발아하는 장소성과 환경적 토양 위에서 길러지며 가꾸어지는‘삶의 여정’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 박강남 시인에게 있어 시의 발아점과 시인의 본성이 길러진 길의 지향점을 탐색해 본다.
모리스 블랑쇼(M Blanchot:프)의“바깥”의 사유에서 문학언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공간은 이미지와 단어들과 의미 너머에 있는 어떤‘비어있는 중심’이며, 어떤‘부재의 공간’으로 불린다. 현대시에서‘미학의 바깥’을 향하여 페이드 아웃(fade out)과정을 생략하고 일시에 충격적 행간을 병렬시켜 과도한‘낯설게 하기’를 통해 새롭게 만들려는 고뇌에 집착하여 암호 같은 시가 난무하고 있음을 본다. 구름처럼 밀려오는 난해시는 서정과 감동이 파편처럼 부서지고 있어 시를 마주하면 공허감을 느끼게 되는 시와 박강남 시인의 시적 미학은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 점은 박강남의 시에서의“바깥”이라는 장소성은 대자연을 향해 나아가는 시라는 꿈을 꾸며 길을 찾아가는 본성의 길이 형성되는 공간과 환경으로 작용 되었음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강남 시인의 대부분의 시편들은 대자연의 풍경과 사물에 접사(接寫)되어 있음을 본다. 『그리운 날에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에서『입술』까지 이르는 4권의 시편들은 시적 언어의 미학에 대한 부정적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년의 전원생활에서 자연과의 교우를 통해 우연히 포섭된 언어들이 내적 필연으로 기억의 창에 각인되어 사물의 존재에 따른 이미지와 향기와 소리의 입체적 언어로 방금 꾼 꿈을 말하듯 풍성하게 형상화 되고 있어 부정적 기억들이 시의 행간에 표출될 기회를 부여받고 있지 못하고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박강남 시인에게 유년시절부터 대자연이라는 거대한 집인“바깥”이 이미지와 단어들과 의미 너머에 있는 어떤‘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한 그루 나무가 호흡하며 자라는 공간이며, 삶과 시인의 길을 가며‘길 찾기’과정에서 겪은 체험적 자양분이 무의식적으로 영혼에 스며들어 발아의 때가 이르게 되자 시의 행간에 페이드 인(fade in)되어 자연의 미학으로 개화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덕구아줌마네서
처음으로 엄마 떨어져
셋째언니와 바라보던 밤하늘 한 채
푸른빛이 어둠에 물들던 그 밤
빼곡하던 노란 별들
뒷문 너머 참외밭에 내려앉았네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거린 탓에
덜컹거리는 달구지 타고
혼자 누워 오는 길
고양이처럼 웃는 낮달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하늘바다
양 길섶 미루나무 푸른 눈들
나를 들여다보던
그 풍경 사이로 보드랍던 바람결
잘그랑거리며 스쳐가네
-「달구지에 누워 오던 길」전문
위 시「달구지에 누워 오던 길」의 행간에 비친 유년시절을 회상한 풍경은 동화처럼 아름답다. 소녀였을 화자가 별빛 아래서 밤을 새운 잊을 수 없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알퐁소 도데의 별’과는 또 다른 목가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유년시절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 곁을 “처음으로 엄마 떨어져/ 셋째 언니와 바라보던 밤하늘 한 채”는 소녀가 바라본 최초의 은하였으며 꿈의 도화지였을 것이다. 반짝이다 가물거리며 쏟아져 내리던 별들의“푸른빛이 어둠에 물들던 그 밤/ 빼곡하던 노란 별들/ 뒷문 너머 참외밭에 내려 앉았”을 때 별빛과 나눈 최초의 내면적 언어는 소녀의 가슴에 뿌려진 시의 씨앗이었음 직하다. 그 밤을 꼬박 새우고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거린 탓에/ 덜컹거리는 달구지 타고/ 혼자 누워 오는 길”에서 바라본 하늘, 무수히 쏟아지던 별들은 모두 숨어버리고“고양이처럼 웃는 낮달/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하늘바다”를 바라보던 소녀의 가슴엔 그리움의 씨가 심겼을 것이다. “양 길섶 미루나무 푸른 눈들/ 나를 들여다보던/ 그 풍경 사이로 보드랍던 바람결/ 잘그랑거리며 스쳐“갈 때 외로움의 씨도 심겼을 것이다. 삐그덕 거리며 흔들리는‘길’을 따라 풍경을 울리며 미끄러지는 달구지바퀴의 진행속도로 역방향으로 흐르는 새털구름과 하늘바다, 달구지에 누워 스쳐가는 풍경들을 흘려보내며 그 유년의 소녀는 먼 생을 향한‘길’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꿈꾸듯 흘려보낸 기억의 그늘에 새겨진 헤어져야 하는 것들과의 안타까운 갈망이 박강남 시의 발아점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채송화만 하던 아이
뒷동산 참꽃 울음에 달 따러 나오고
소금쟁이 같은 아버지 등에서
아람 드는 소리를 따라 발자국이 커갔지
옥수수알 같은 기차를 처음 타고
외숙모댁에 갔을 때
방에 앉았어도 흔들거려
계속 기차를 타고 가는 것 같은 착각은
생의 첫 멀미였지
햇살에 녹아드는 봄눈 같은 간이역 지나
비바람 속을 쉼 없이 멀리 떠나 와
뿌연 구름 뒤 창백한 해가
새초롬이 자태를 드러내
삶이 온통 멀미였다는 것을 알기까지
쉰 해가 스쳐지나갔지
도착한 역(驛)이름은 아직도 알 수 없네
-「알 수 없는 역 이름」전문
유년의 외출은 부모를 따라‘집을 떠나는 길’에서 출발한다. 박강남 시인의 시인으로서의‘길 찾기’는 언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위 시「알 수 없는 역 이름」에 나타난 그 기원은“채송화만 하던 아이”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꽃 만발한 봄밤 달을 따러 “소금쟁이 같은 아버지 등에”업혀“아람 드는 소리를 따라”낯선 사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시작되었음을 알게 한다. 자라게 되면 언젠가는 자신의 곁을 떠나보내야 하는 딸에 대한 애틋함으로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걸리지 않고 등에 업고 길을 간다. 박강남 시인도 그런 아버지 등에 업혀 대자연의 새로운 사물을 만나는 길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기차여행’이라는 자연계의 만남과는 다른 과학문명과의 만남을 통해‘멀미’라는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길’에서 화자는“옥수수알 같은 기차를 처음 타고/ 외숙모 댁에 갔을 때/ 방에 앉았어도 흔들거려/ 계속 기차를 타고 가는 것 같은 착각”으로 처음‘멀미’를 체험하게 되었음을 회상하고 있다. 화자가 기차여행을 통해 처음 겪는‘멀미’는 시각정보와 평형감각 사이의 괴리로 인해 기차에서 내려서도 자꾸 흔들리며 달리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킴으로 뇌에 혼선이 발생하게 되어 어지럽거나 메스꺼우며 머리가 멍멍하거나 아프게 되는 현상이다. 어린 소녀가 처음 겪었던‘멀미’가 은유하고 있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의‘길찾기’가 결코 자신의 의지대로 걸어갈 수 없었음을 말하고 있다. 화자는 그 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삶의 여정에서 걸음을 지도함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햇살에 녹아드는 봄눈 같은 간이역 지나/ 비바람 속을 쉼 없이 멀리 떠나 와/ 뿌연 구름 뒤 창백한 해가 새초롬이 자태를 드러내/ 삶이 온통 멀미였다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더욱이 “도착한 역(驛)이름은 아직도 알 수 없네”라고 하므로 그동안 걸어온 시인의 길에서‘길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가늠하게 한다.
풍경 속에 나부끼는 '사람'이라는 깃발
박강남 시인은 지난 네 번째 시집『입술』의 “책머리에”서“시는 물상과 민중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라며 10년 동안 앓아온 시집을 엮어내며 고백하였다. 그『입술』시집의 시편에서는 자연과 사물에 대해 ‘대면 접근법’을 통해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7년이 지나 펴낸 이번 제 5시집『바람 없이도 흔들리는 꽃잎』의 시편에 나타난 박강남 시인의 사물과 사람(민중)에 대한 접근법은 "삼투 접근법"을 통해 접근하고 있음을 본다. 유체학적 현상에서 삼투현상(滲透現象)은“물의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확산되는 현상”으로 화자가 시에 표현된 사물에 대하여 접근할 때 대상의 존재가 느끼지 않게‘스며들기’식으로 다가가는 접근법을 터득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화자는 이‘투명접근법’이라는 비기(秘技)로 대자연의 시적 대상을 향해 다가가 풍경의 일부로 동화되고 있음을 본다. 이는 마치 실내에서 불을 끄고 창밖의 사물을 바라볼 때, 창밖의 사물은 유리창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마저도 느낄 수 없게 접근하는 것과 같다. 이점은 박강남 시인의 사물에 대한 존중심과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나 그 고요함이 결코 고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박강남 시인의 시와 삶이 접사된 간극이 너무나 밀접히 일치하는 시적 사유의 내공에서 기인하게 된 매력이자 에너지라 여겨진다.
벚꽃그늘 아래선
누가 꽃을 바라만 보아도
한 폭 그림이 된다
풍선을 든 천진한 아이들
꽃그늘 진 벤치에 서로 기댄 연인
책 읽는 얼굴에 노을이 들고
꽃 터널 속으로 스쳐가는 자전거
나무는 꽃을 뿌리며 바라본다
벚꽃그늘 아래 서면
무언가 사람을 일렁일렁 흔든다
한잎 두잎 흩날리는 꽃잎 아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
가난에 울며 쪼그려 앉은 여인
얼굴이 험상한 사내가 서 있어도
벚꽃그늘은 사람을 품는 풍경이 된다
사람도 언젠가는 저렇게 흩어질 것을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저 꽃잎들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전문
위 시「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은 벚꽃이 지는 꽃그늘 아래 7명이나 되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시적 주체인 사람이 이처럼 복수로 등장하는 시는 흔치 않다. 허나 “벚꽃그늘 아래선/ 누가 꽃을 바라만 보아도/ 한 폭 그림이 된다.”라는 표현에서‘누가’라는 지칭은 행간에 7명으로 축약된 사람만이 아니라‘모든 사람’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행간 속으로 들어가 화자이자 시인이 어디에 스며들어 있는지 느낄 수 없는 것은 한 행 한 행에 묘사된 자연과 사람이 서로에게 조화롭게 스며들어 있는 영상이 한 폭의 그림으로도 손색없어 그 그림 속으로 독자마저 스며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박강남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행간에 묘사된 사람들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박강남 시인이‘사람’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편견 없이 사랑하고 있는지 느끼게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자이자 시인은 8행에 ‘벚나무’로 화신하여 사람들에게“꽃을 뿌리며 바라”보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풍선을 든 천진한 아이들”을 출현시킴은 우리의 싱그러운 꿈과 미래가 아름답기를 기도하고 있음으로 보인다. “꽃그늘 진 벤치에 서로 기댄 연인”을 등장시킴은 미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평화롭게 서로 기대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책 읽는 얼굴에 노을이”드는 풍경은 책(詩)을 사랑하는 자신의 바람을 한 폭의 그림으로 치환하고 있다. “꽃 터널 속으로 스쳐 가는 자전거”는 바쁜 일상으로 지친 사람들의 여가 선용과 즐기는 삶이 펼쳐지기를 꽃을 뿌리며 기원하는 고운 마음씨의 화자가 벚꽃그늘이 되어 서 있음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 연을 들여다보면, “벚꽃 그늘 아래 서면/ 무언가 사람을 일렁일렁 흔든다”는 표현에서 봄나들이를 나와 설레는 가슴으로 꽃그늘을 바라보는 순수한 영혼의 화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행간에 “한잎 두잎 흩날리는 꽃잎 아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 가난에 울며 쪼그려 앉은 여인,/ 얼굴이 험상한 사내”,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의 세 사람을 등장시킴으로 철렁, 긴장이 고조 된다. 이 풍경이 시인이 실제 벚꽃그늘에서 본 것인지, 시작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등장시켰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직업이 어떠하든, 삶의 모습이 서로 다르고 빈부의 차이가 나거나 외모가 달라도 우리는 서로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줄 사람이기에 ‘벚꽃 그늘’이 안아주듯 그러안아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사람도 언젠가는 저렇게 흩”날려 가야만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슬픔일지라도 사는 날까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기에, 서로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저 꽃잎들”처럼 가슴에 품어 아름답게 사랑하다 스러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박강남 시인의 소망이 그려져 있는 풍경으로 느껴진다.
땅을 덮는 겨울 추위가 묵직한 한낮
산과 들에 바람 매서운데
신께서 걸어놓은 구름 아래
선을 긋는 기러기 떼
새들이 먼 여백 속으로 스며든다
을씨년스러운 마음 감도는
갈대의 흔들림 따윈 상관없이
저녁 해는 산으로 강물로 스며든다
한강 저 편 미사리마을
빽빽한 아파트 숲 사람들
견고한 바람의 품에 스며들고
세상은 강물에 스며들어 흘러간다
지난 가을은 어디로 스며들었을까
-「스며드는 풍경」전문
위 시「스며드는 풍경」은 한강줄기의 팔당하류 미사리를 스치고 흐르는 한강풍경이 동공으로 포착되었을 때, 마음판을 펼쳐서 대상의 표정과 이면을 사유하여 투영시킨 풍경이다. “땅을 덮는 겨울 추위가 묵직한 한낮/ 산과 들에 바람 매서운데/ 신께서 걸어놓은 구름 아래/ 선을 긋는 기러기 떼”의 비행을 포착하고 창공을 날아가는 작은 “새들이 하늘의 "먼 여백 속으로 스며”드는 풍경과 일순간에 사라져가는 석양의 풍경을“저녁 해는 산으로 강물로 스며든다”고 하므로 대자연의 상호공존과 평화로운 섭리를 통해 그렇지 못한 세상과 사회에 자연을 은유하여 권면하고 있다. 심지어 “한강 저 편 미사리마을/ 빽빽한 아파트 숲 사람들/ 견고한 바람의 품에 스며들고/ 세상은 강물에 스며들어 흘러간다”는 표현에서 물질문명이라는 바람 속에서 틈 없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빽빽한 삶과 ‘쉼 없이 흘러간다’는 세월과 강물이 서로 스며들어 흐른다는 공통점을 제시함으로 덧없는 사람의 생을 가여워하고 있다. 강마을의 석양과 문명의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의 아픈 모습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각 연마다 시인이 사물과 풍경을 정면으로 접근하여 관조하고 시를 썼다기보다는 행간에 표현된“스며든다”는 묘사처럼 사물과 풍경 속으로 스미어 들어가 수채화로 인화해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람이 창작한 어떠한 예술품도 자연을 능가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생각하면 과장하지 않고 수식하지 않는 묘사에서 진솔하고 단아한 시어들이 얼마나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스미어오는지 느끼게 한다.
슬픔까지 사랑해야 할 '사람'
이제 박강남 시인의 다른 시편들을 시적 렌즈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심상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박강남 시인은 지구에서도 아시아, 아시아에서도 극동의 조그마한 반도에서 이념과 정치제도와 사회체제가 서로 다른 분단된 나라에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후 모두가 힘들었던 시대에 태어나 유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한 국가적 환경에 민중 모두가 힘들게 살았던 유년시절에도 시인은 부모와 형제와 함께 대자연과 가까이 교우하며 살아온 삶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동일한 풍경 속에 자연화한 존재였음을 느끼게 한다.
시인으로 불리는 사람도 일반사람과 같은 세상이라는 공간과 사회를 사는 사람이겠으나 시인에게 바람직한 덕목을 새삼스레 일컬어본다면, 자신이 쓴 시에 나타난 시정신과 삶의 가치관이 괴리가 없어 자신과 타자에게 진솔하고, 사람의 삶에 유익한 감동을 주는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존경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강남 시인의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에서는 주관적인 관념어로 이루어진 시가 드물다. 그 점은 오랜 기간 시의 칼을 갈고 닦아오며 세상과 사람 앞에 겸허함을 배양하며 노력해왔음을 가늠케 한다. 시인이 아닌 그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다. 박강남 시인의 대부분의 시편들에서 주관적 관념이 배제되고 객관적 시선으로 사람과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어린 나무가 누웠다는 소식은 슬프다
눈이 퉁퉁 부어있는 유가족
그 눈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는다
상주중에는/ 우는 나무 웃는 나무
눈물이 마른 나무가 있다
나무마다 뿌리내린 곳이 달라
물길 가까이 있는 나무
험준한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
바람의 길목에 서 있는 나무
양지 바른 곳에 심겨진 나무도 있다
꽃 피고 열매 맺는 일도
나무마다 때가 있기에
서로 빈 곳을 찾아 가지를 뻗었으면
꽃과 열매가 달라도
사랑과 진심을 담아
향기 전하며 살았으면
우리는 모두
한 흙에 서있는 나무이기에
-「한 흙에 서 있는 나무」전문
위 시「한 흙에 서 있는 나무」는 사람을 나무로 치환하여 화자는 세상과 사회 그리고 사람들에게 소망하는 바를, 마치‘사람’이 한 그루 나무처럼 서서 세상과 사람을 향해‘참다운 사람의 모습’을 깃발처럼 펄럭이며 희구하는 모습으로 은유하고 있다.“어린나무가 누웠다는 소식은 슬프다”는 표현에서 어린아이의 생각지 못한 죽음을 직감케 한다.“눈이 퉁퉁 부어있는 유가족”의 “그 눈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는다”는 말에서 타자의 슬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쏟는 화자를 보게 된다. 예기치 못한 슬픔 앞에 망연자실하여 울지도 못하고 눈물마저 말라버리고 감정의 조절기능을 상실한 가족들의 서로 다른 모습을 표현하므로 누구라도 예외일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사별의 슬픔이 얼마나 큰 충격인지를 표현하며 공감과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2연에서는“나무마다 뿌리내린 곳이”다를 수 있으므로“물길 가까이 있는 나무/ 험준한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 바람의 길목에 서 있는 나무/ 양지바른 곳에 심겨진 나무도 있”음을 표현하여 우리 사회도 각자 서 있는 위치가 다름을 인정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꽃피고 열매 맺는 일도/ 나무마다 때가 있기에/ 서로 빈 곳을 찾아 가지를 뻗었으면”하는 바람을 통해 공생하는 존재로서의“꽃과 열매가 달라도/ 사랑과 진심을 담아/ 향기 나누며 살았으면”하는‘사람이 사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서“우리 모두 한 흙에 서 있는 나무”임을 강조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소중한 것을 놓치는 사람을 보면
슬픔의 키가 자란다
선한 일을 하고도
티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좋은 책 한 권을 읽은 듯
초록빛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다
살아가는 동안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먼저 다가가 손잡아 주었는지
교만이 웃자라 저울추 기울어져
누군가의 가슴에
슬픔의 키를
자라게 한 것은 몇 날 인지
-「슬픔의 키」전문
위 시「슬픔의 키」에 묘사된‘슬픔’은 화자이자 시인 박강남 자신이 조장한 슬픔이 아니다. 이 사회제도에서 표출된 사회적 슬픔이다. 슬픔의 형태와 구조 또한 단순히 한 가지 상황에 국한된 슬픔이거나 어떤 범주에 규정되어 있는 슬픔이 아니다.“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소중한 것을 놓치는 사람을”목격한 화자의 가슴이 꿈틀거리게 되고 그 슬픔의 키는 고정되지 않고 자란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화자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세상과 사람’에 대하여 건전한 측은지심으로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그런 슬픔에 사로잡혀 내적 중심을 잃는 외골수가 아니다. “선한 일을 하고도/ 티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좋은 책 한 권을 읽은 듯/ 초록빛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다.”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마음상태에서는 슬픔의 키와 반대로 기쁨의 키를 마음에 지닌 유연성을 소유한 것으로 다가온다. 화자가 세상의 슬픔과 모순을 아무리 안타까워한다고 그 상황을 일시에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화자는 그 슬픔을 외면하려하지 않고 지켜봄으로 슬픔의 키가 자라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갇혀있는 개인의 사유가 아닌 확장된 감동으로 다가오는 데에는 다음에 오는 행간의 공명 때문이다.“살아가는 동안/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먼저 다가가 손잡아 주었는지”하고 화자 내면의 양심의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는 점에 더욱 감동이 큰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화자는 세상의 뒤틀린 인식과 슬픔을 손가락질하며 세상 탓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스스로 사회구성원에 포함시키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교만이 웃자라 저울추 기울어져/ 누군가의 가슴에/ 슬픔의 키가 자라게 한 것은 몇 날 인지”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겸손함에서 이 시의 감동과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감사
박강남 시인의 시편에서 감동을 안겨주는 시들을 읽으면, 오늘의 시인이 있게 한 정신적 감정적 큰 스승은 대자연임을 느낄 수 있다. 그 경이롭고 신비로운 대자연의 정경들과 섭리에 대하여 겸허히 다가가 자연에 대한 존중심이 웅숭깊은 감사함으로 시편들의 행간 속에 녹아 있다. 생의 여정에서 길을 찾는 과정에 대자연이 펼쳐주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사물들의 조화로운 공존의 틈에 스며들어 나무와 꽃과 자연의 사물을 사람으로 치환하여 세상의 아픈 모습들이 치유되기를 은유하고‘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을 희구하고 있다.
박강남 시인의 시는 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와 같은 특별한 세상을 지향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시적 주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에서 불완전함으로 인해 길이 보이지 않거나 역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길목에서‘길찾기’에 헤맨 적은 있었으되 결코 길이 없을 거라고 좌절하거나‘길이 없는 길’을 건너 초월적인 자아를 찾아‘무아의 길’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대자연이 펼쳐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아름다움의 결정체들 앞에서 어떠한 시적 묘사도 자연보다 빛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깊이 모를 잿빛하늘에 숨어
맹렬하게 침공해오는 잿빛 눈을 보았다
깎아지른 산허리를 향해 달려오던 눈보라
한 장의 닥종이에
눈 내리는 소리가 스며들고 있었다
숲에 내리는 눈은 숲만큼의 너울을 펴
고요히 휘몰아쳐 새떼처럼 출렁거린다
성글고 얇은 공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눈송이 흩뿌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세상을 뒤덮는 바람의 흰목덜미
저 빠르고 섬세한 붓놀림은
누가 그리는 화폭일까
-「폭설, 그 스며드는 소리」전문
위 시「폭설, 그 스며드는 소리」는 물의 순환계 중 겨울이 선사하는‘눈’이 창공에서 지상으로 쏟아지는 폭설장면을 묘사한 시이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세상을 덮어주는 면에서 아름다운 용서를 상징하기도 하고, 첫사랑처럼 순백의 색감으로 인해 티 없는 순정을 상징하기도 한다.‘첫 눈 오는 날’만나기로 약속하여 첫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만나지 못한 사랑의 기억으로 평생 눈만 내리면 환상통을 앓기도 한다. 박강남 시인이 묘사한 눈 내리는 장면은 산기슭을 넘어오는 폭설을 집중해 바라본 것으로 여겨진다.“깊이 모를 잿빛하늘에 숨어/ 맹렬하게 침공해오는 잿빛 눈”이라는 표현은 눈을 만들어내는 어떤 존재가 있고, 눈을 잿빛하늘 어딘가의 장소에서 지상을 향해 날려 보내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 물리적인 현상이 목전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연에서 침공해오던 잿빛 눈은 절벽 같은 산허리에“한 장의 닥종이에 눈 내리는 소리가 스며”드는 것인데 이 장면은 사실 엄청난 과장법이 사용되었지만 자연스럽다.
우리의 시각적 지각력으로 본 눈은 게릴라처럼 지상을 향해 맹렬하게 침공하여 스며드는 기적을 선보였지만 3연에서“숲에 내리는 눈은 숲만큼의 너울을 펴/ 고요히 휘몰아쳐 새떼처럼 출렁거린다”는 표현은 눈이 숲에 대하여 받아드릴 만큼의 날개폭을 조절해주는 아량을 베풀어주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사실 무수한 눈발은 하늘에서 지상에 이르기 까지 각기 내려오는 길이 있는 것처럼 눈가루들이 뭉쳐지지 않고 숲에 다다른다. 만약 눈발이 허공에서 서로 엉키거나 뭉치게 되면 숲의 나무들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성글고 얇은 공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순간이동을 한다”는 표현이 그 점을 입증해주고 있다. 폭설이 지상으로 안착하는 장면을 아무런 관념도 배제한 사물시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세상을 뒤덮는 바람의 흰목덜미/ 저 빠르고 섬세한 붓놀림은/ 누가 그리는 화폭일까”라는 결구는 눈이라는 경이로운‘물의 순환계’를 만든 이에 대해 겸허히 경의와 감사함을 전한다. 이제 산허리에 스며든 눈이 봄이 눈을 뜨는 날 계곡으로 노래하며 흘러 새벽강을 향해 흘러갈 것이다.
물안개가 어둑새벽을 연다
북한강은
문을 잠그는 일이 결코 없다
부르지 않아도
홍천, 소양, 춘천강 지류가 모이듯
뭇사람이 찾아와 가파른 시름을 풀어놓는다
깊은 이랑마다 등고선 같은
푸른 목숨 줄
서해로 이어진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기 전
긴 생각을 온몸에 괴고
늦은 밤 적막 속에서 마음을 뉜다
-「강은 긴 생각을 온몸에 괴고」전문
위 시「강은 긴 생각을 온몸에 괴고」에서 화자는 보기 드물게 북한강의 새벽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춘천의 호반 상류에서 흘러들어 두물머리로 향하는 북한강물에 마음을 담고 있다. 물안개 속에 흐르는 아침 강변을 산책하고 있는 화자의 동공에 비친 사물의 존재를 향하여 방해 없이 다가가려는 마음으로 강물을 바라본다. 고요의 창은 모래알에서 축출한 유리창이 아니다. 수정보다 맑으나 차갑지 않은 강물 같은 마음의 창이다. 화자의 마음의 창에“문을 잠그는 일이 결코 없”는 북한강물을 바라보며 화자는 강물에 동병상련의 아린 마음을 내려놓는다.“깊은 이랑마다 등고선 같은/ 푸른 목숨 줄/ 서해로 이어진다.”는 표현에서 강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겉으로 잔잔히 흐르는 강물도 강바닥에 깊은 이랑과 등고선을 쓰다듬으며 흘러가야만 하듯 화자도 마음의 이랑과 등고선에 삶의 애환을 견디어 내야 한다고, 강물이 멈추지 않고 서해를 향해 흘러가는 것만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듯 우리가 산다는 일이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을 살아내는 일이라고 일러준다. 다만“강물이 바다에 이르기 전/ 긴 생각을 온몸에 괴고/ 늦은 밤 적막 속에서 마음을” 뉘듯 하루를 보내기 전 자아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참회와 다짐으로 마음을 뉠 때 강물처럼 흘러갈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박강남 시인의 자연을 대하는 마음판은 소달구지에 누워 바라본 하늘처럼 맑고 청량하다. 그 고운 마음으로 사회의 기본단위인 소중한 가족 앞에 진솔한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남편과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감사(「알 수 없는 역이름」), 오순도순 함께 자란 오빠와 언니들에 대한 깊은 우애와 자식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마음판에 기초석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달구지 타고 누워」).
박강남 시인의 시는 세상의 부조리나 모순과 슬픔에 대하여 가족과 같은 연민으로 바라본다. 비판하는 시선으로 손가락질하거나 예리하게 반응하여 흥분하지 않는다.“살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산이 되어주는 이/하늘을 날게 하는 사람/ 간혹 나를 무너지게 하는 일 생겨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사랑하며 사는 일이겠지요.”라고 말한다(「사랑하며 사는 일」). 순수문학을 하는 시인으로서 정치, 사상, 종교 등 타자의 자유의사 선택권을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나 다만 바로 서지 못하고 왜곡된 세상 사람들에게‘꽃의 눈’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하며“사람도 꽃이”라고 애써 말한다(「사람도 꽃이어라」). 때 묻은 세상에 살면서 자신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거짓 없는 자연과 조우하며 자연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표정을 통해 자연과 오늘의 삶에 대해 감사하며 그 자연을 닮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시의 행간에 표현하고 있다.
박강남 시인의 측은지심은 국경을 넘어선 여행길에 충격적인 풍경을 보게 되어도‘같은 지구별에 사는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으로 안아 들인다. “나폴리만 연안, 베수비오 화산에 불비가 내린/ 로마 귀족의 여름 휴양지”폼페이를 여행하며“먼먼 그 시절, 아폴로신전(…중략…)/ 귀족들 허영과 서민의 삶이 공존하며/ 인간의 본성을 누린/ 쾌락 환락 사치의 도시”에“단 한 채의 건물도/ 한 사람의 자취도 없이/ 화산재와 용암 아래/ 한 시대의 역사가 묻혀버”린 폼페이의 마지막 날을 들여다보며 발길을 돌이키지 못하고 아파한다(「불비 내리던 폼페이를 가다」).
박강남 시인의 길을 찾는 여정은 지구 전역으로 뻗어나갈 공산이 크다. 말레이지아의 코타키나발루 섬을 여행하면서 선한 미소를 가진 종사원들이 “아침마다 음식을 그득히 준비해 놓으면/ 느긋하게 일어나/선한 미소의 그들과 인사하며/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여왕이 된 듯 우아하게/ 열대과일을 먹고 커피를”마시며 새로운 문화를 체험한 적이 있다. 박강남 시인은 시의 길을 찾아 자연을 향해 새로운 체험이 계속될 것임을‘빛나는 역모’라는 암호로 꿈꾸고 있다(「빛나는 역모」). 이러한 국경과 시대를 넘는 체험을 동경하는 아카페적인 우정어린 마음은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편견 없는 시인정신을 가진 시인만이 시를 통해 끊임없이 고매한 진리를 향해 길을 찾아 나서는 길에서 꽃을 가꾸듯 스스로를 가꾸어 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박강남 시인의 대자연을 향한 사유의 시선엔 언제나 망원경과 현미경이 장착된 신비한 동공이 있었고, 북한강물 같은 망막이 있었다. 그는 고요의 창으로 바라본 대자연의 풍경들을 수채화처럼 그릴 수 있는 마음판을 지닌 푸른 가슴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 대자연에 대하여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날이 갈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리라고 여겨진다.
이번 다채로운 자연의 일렁이는 감동이 오롯이 담겨진 제 5시집『바람 없이도 흔들리는 꽃잎』을 출간하는 마당에서 다음 시집을 기대해보는 즐거운 재촉이 어색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데에는 박강남이라는‘참 사람다운 시인’이 지구별, 같은 하늘 아래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