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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ajumary.or.kr/najumary/truth/truth18.php#7
광주대교구와 나주문제의 전반적 상황과 교황청의 입장
저는 광주대교구 두암동 성당 신자인 김 동명 알비노인데 나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잘 모르고 무조건 반대하는 분들을 위하여 광주대교구 발표 이면에 있는 실상을 알려드리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1. 주님과 성모님께서 나주에 발현하신 연유와 그 의미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주님께서는 저 같은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의 수많은 영혼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율리아 자매님을 보속의 도구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6살 꼬맹이 때부터 드라마 속 불운의 주인공조차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윤 홍선 소녀는 그 혹독한 시련과 고통의 화덕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잃지 않고 성장하여 또 다른 고통들이 질풍노도처럼 밀려와도 좌절하지 않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고, 거지들의 벗이 되어주면서 행여 자신이 불편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화평하기만을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사랑이 밑거름이 되어 1985년 6월 30일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나주에 발현하셨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나주를 통하여 온 세상 자녀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시고자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전대미문의 기적과 치유와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의 열쇠인 사랑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2. 광주대교구에 나주 조사위원회가 결성된 시기와 과정
저는 1991년 12월 성탄 때 인천 교구 주안 3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1992년 10월 첫 토요일에 나주 순례를 한 이후 계속 순례를 다니며 나주의 일들이 모두 진실 됨을 확실히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순례를 다니며 나주를 알면 알수록 고민이 생겼습니다. 나주는 분명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이 맞는데 재정도 열악하기 짝이 없고 행사가 끝나 순례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일할 봉사자도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민을 거듭하다‘5년 정도면 인준이 되겠지. 그러면 그 뒤에 내 일을 다시 하리라’마음먹고 1997년 3월 19일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무작정 나주에 왔습니다. 하지만 광주대교구의 현실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전대미문의 기적은 계속 되었고 교황님과 교황청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셨지만 광주대교구의 태도는 거꾸로 가고 있었습니다.
죠반니 불라이티스 교황대사님은 1994년 11월 24일 경당을 방문하여 성체강림의 기적을 목격하시고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여 한국교회의 주교님들과 장상들에게 당신의 체험을 전하셨습니다. 그로인해 광주대교구는 마지못해 1994년 12월 30일 부랴부랴 나주조사위원회를 결성하고 1995년 1월 9일 첫 회의를 했는데 위원회를 주도하신 분은 기적의 가능성 자체를 아예 믿지 않는 장 용주 알베르또 신부님이었습니다.
3. 나주 조사위원회는 과연 무엇을 조사하였는가?
조사위원회는 1994년 11월 24일 성체강림기적을 목격하신 교황대사님과 피터 몬시뇰, 그리고 5명의 신부님들 중 누구에게도 그 상황과 진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사위원회는 이렇게 제대로 된 조사 없이 1995년 6월 16일 가톨릭신문과 평화신문에 부정적인 중간발표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필자와 2009년 초에 통화하신 춘천 교구의 오 상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은 “1994년 11월 24일의 성체강림기적 현장에는 나도 있었는데 한국인 사제인 내게조차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의견도 구하지 않은 광주대교구의 조사는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그래서 나는 광주대교구에서 발표하는 것은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주 조사위원회의 부정적인 중간발표에도 불구하고 성모님 눈물 10주년 기념일인 1995년 6월 30일에는 국내외에서 10여명의 사제들과 수많은 순례자들이 구름같이 모여와 나주 성당 매일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성체를 모시고 들어와 묵상을 하는 중에 갑자기 뒤에서 술렁이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 미사를 주례하신 나주성당 주임 김 무웅 율리오 신부님이 “지금 미사 중에 거기 뭐하는 거요?”하시자 어떤 순례자가 “신부님! 지금 성체기적이 일어났어요!”하고 알려드렸습니다. 저는 당장 그리로 달려가 직접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갈 수가 없었는데 김 무웅 신부님은 대수롭지 않게 “성체기적은 우리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마다 매번 일어나는데 그것이 뭐가 큰일이라고 그래! 소란 피우지 말고 빨리 미사나 합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나주 성당 주임 신부님의 말씀이 너무 황당하여 혼란에 빠졌었는데 2년 뒤인 1997년 성모님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나주에 오고 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 무웅 신부님은 나주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 중 한 분이셨는데 조사위원인 신부님은 우리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성체기적이 당신 면전에서 일어났음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무질러버렸습니다. 그것은 조사위원회가 나주의 기적들을 조사할 생각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4. 가톨릭 신자는 누구에게 순명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장 용주 신부님과 그분을 추종하는 핵심 세력들은 조사위원회서 3년 간 주도면밀하게 조사했다고 강변하며 선량한 신자들을 혼란시켜 저는 장 용주 신부님과 몇몇 책임 있는 분들에게 그러한 주장들이 거짓임을 지적하며 공개질의도 했지만 누구도 답변을 하는 성직자는 없었고, 모두가 하나같이 되뇌는 말씀은 교도권에 순명하고 주교님께 순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맞습니다. 저는 천주교신자이므로 신부님과 교구장 주교님께 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교님의 견해가 교황님과 다르다면 우리는 누구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까?”하고 여쭙니다. 그러나 제가 대화나 논쟁을 한 나주를 반대하시는 성직자 중에 “당연히 교황님을 따라야 한다.”고 시원스럽게 말씀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었고 무조건 “주교님 말씀에 순명하라”였습니다.
이 질문에 당황하여 답변을 못하시는 한 신부님만이 제가 재차 물었을 때 “교황님을 따라야 하지만 나는 사제이니 주교님을 따라야 합니다.”는 이상한 논리를 편 것이 고작입니다. 그 신부님은 웬만큼 열심한 신자들은 다 아는 유명한 분인데 사제로서 해서는 도저히 안 될 하느님을 두고 하는 거짓말을 알면서도 하신 분입니다.
교회법상 전 세계의 주교님들이 12사도들의 후예로서 향유하시는 모든 힘의 원천은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교회법은 교황님을 따르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은 대주교나 추기경일지라도 이교로 단죄하여 자동 파문벌을 내릴 수 있고 특히 성직자는 가중 처벌하도록 되었습니다.
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나주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그러면 이제부터 교황님과 교황청에서 나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는 증거를 제가 아는 데로 하나하나 설명하겠습니다.
나주 조사위원회에서 부정적인 중간발표를 한 3개월 뒤인 1995년 9월 중순 경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개인비서 빈센트 투 몬시뇰을 나주에 보내셨습니다. 몬시뇰님은 성모님께 경배 드리고 “교황님께서 ‘나는 나주 성모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며, 또한 고통을 받고 메시지를 받아 전하는 율리아 자매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한다.’라는 말씀을 율리아 자매님에게 꼭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40여일 뒤인 1995년 10월 31일 율리아 자매님은 바티칸의 교황님 개인 성당에 초청되어 미사에 참석했는데 자매님이 영한 성체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었습니다. 교황님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시고 강복을 주신 후 자매님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시며 뺨을 어루만지시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까지도 강복을 주시며, 신뢰와 사랑을 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6년 3월 우리나라 주교단이 사도좌 방문을 위해 바티칸을 갔을 때 인천 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님께 “나도 나주 율리아 자매를 통해 성체기적을 목격했다. 이 훌륭한 은총을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광주대교구의 조사위원회는 죠반니 불라이티스 교황대사님이 1997년 4월 한국을 떠나시자마자 교황님 앞에서의 성체기적도 조사하지 않고 교황님의 간절하신 소망도 무시한 채 진실을 호도하는 조사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조사위원 신부님 중 장 용주 신부님, 이 순성 신부님, 이 제민 신부님 등 나주를 반대하는 핵심들만 갖고 계시던 조사보고서를 저는 한 종오 베드로라는 가톨릭 서적 출판인과 함께 1997년 11월 말 경 이 순성 교수신부님을 방문하여 신부님이 서재에서 꺼내든 그 책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조사위원들은 그 보고서를 본 적도 없다고 하니 조사위원회조차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주를 부정하기 위해 그냥 형식적으로 만든 기구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아무튼 나주 조사위원회는 나주를 단죄하기 위한 공지문도 교황청에 보냈는데 교황청에서 한국 주교단 전체의 동의를 받은 것인가? 하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구장이셨던 윤공희 대주교님은 공지문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주를 극렬하게 반대하시는 장 용주 신부님과 핵심세력들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교황청 최종승인도 받지 않고 1997년 12월 29일 사제 송년회 때 공지문을 공개하고 1998년 1월 1일 자로 공표했습니다.
6. 교황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율리아 자매님의 순명
율리아 자매님과 율리오 회장님은 “공지문은 나주를 단죄하기 위해 교리까지 왜곡했으니 따를 수 없다”는 우리 협력자들을 다독여 공지문을 경당 안팎에 붙여놓고 기도회에 관여하지 않고 순명하였습니다. 윤 대주교님께서는 “율리아가 순명을 잘 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여 많은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11월 최 창무 대주교님이 교구장으로 착좌하시고 2001년 2월 송 홍철 루가 신부님을 나주 성당의 지구장 신부님으로 인사발령하고 나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3월 우리나라 주교단은 사도좌 정기 방문을 위해 바티칸에 갔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주교단과 만찬을 하시며 “나주는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1차 공지문을 내신 윤 공희 대주교님도 계셨는데 아무 말씀도 못하셨고 제주 교구 김 창렬 주교님이 나중에 따로 자세하게 말씀드리니 교황님께서 기뻐하시며 김 주교님을 포옹하셨답니다.
교황님을 만나고 돌아오신 최 창무 대주교님은 2001년 5월 10일 경 장 홍빈 신부님을 만났을 때 “율리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됐으니 교만하지 않도록 장신부가 잘 지도하라.”고 하셔놓고 2001년 5월 25일 나주에 대한 2차 공지문 성격의 사목교서를 공표하셨습니다.
7. 광주대교구의 지구장 신부님들 권한은 무소불위인가?
광주대교구 비아 성당 박 비오 신부님은 2001년 5월 27일 교중미사 때 신자들 앞에서 “나주 성당 송 신부님이 내 아버지 신부인데 교구장을 압박하여 이번에 2차 공지문을 내도록 했다”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그 미사에 참석했던 한 신자가 그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폭넓게 회자되기도 하였는데 박 신부님은 무슨 이유인지 2005년 9월 7일부터 현재까지 정직 상태입니다.
또한 장 용주 신부님은 여수 지역의 평협 회장단과 저녁과 술을 먹는 사석에서 “송 홍철 신부가 나주를 쓸어버리겠다고 해서 나주 성당으로 보냈는데 잘 할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영향력과 힘을 과시하였습니다. 이는 불순명 정도가 아니라 교구장을 무시하고 농락한 것인데 그런 분들이 진실 된 나주 발현을 거짓이라면서 교도권에의 순명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8. 광주 핵심 성직자들은, 나주에 대한 교황님의 견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저는 2002년 여름 나주 성당 교중미사에 참례하여 저를 교화시키겠다는 송 신부님과 두 차례에 걸쳐 얘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기세등등하시던 송 신부님은 제가 쓴 이 글 내용들을 얘기하고 공지문의 오류와 이단성 등을 질타하며 논박하자 답변을 못하시고 “그래도 주교님께 순명해야지” 하시며 등을 돌려 사제관으로 향하셨습니다.
저는 답변을 듣기 위해 그 뒤를 따라갔는데 갑자기 나타난 나주 성당 신자가 제 멱살을 잡고 주먹을 들이댔습니다. 저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배운 영성으로 진리를 위해 모욕당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주님과 성모님이 위로 받으시도록 생활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송 신부님은 나주 성모님을 반대하시는 핵심 중 한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하나도 답변을 하지 못하신 것은 교황님과 교황청이 나주를 받아들이신다는 제 말이 하나도 거짓이 아닌 진실임을 이미 아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미사 때마다 나주 성모님을 비판하시던 송 신부님은 그 후 미사 때 제가 보이면 나주에 대한 말씀을 많이 자제를 하셨답니다. (이 말은 그 당시 송 신부님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던 나주 성당 송 도미니꼬 형제님이 한 말이니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신부님들과 얘기를 해봤는데 결론은 대동소이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청의 최근 소식을 말씀드리고 끝맺겠습니다.
9. 피디수첩의 조작에도 나주 인준을 촉구하시는 교황청
최 창무 대주교님은 2007년 11월 장 용주 신부님이 만들어준 피디수첩 이태리어 판을 가지고 교황청을 방문하여 관계성성들에 제출하셨습니다. 장 용주 신부님과 그를 추종하는 분들은 피디수첩 한 방이면 나주는 끝났다고 쾌재를 불렀는데 교황청의 태도는 그분들의 예상과 완전히 틀렸습니다.
인류복음화성성의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은 한국 주교단이 모인 공적석상에서 나주를 받아들이도록 공식적으로 촉구하셨고 신앙교리성성의 주교님과 성직자들은 최 창무 대주교님께 나주를 받아들이시도록 권유 하셨습니다.
최 대주교님은 귀국하여 2007년 12월 8일 장 홍빈 신부님이 포함된 교구청 신부님들과의 점심, 저녁 식사 때 나주에 대한 교황청의 근황을 얘기하시며 광주의 신부님들이 회개해서 장 신부님처럼 늘 기도하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고 장 신부님을 추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장 신부님을 징계하고자 2008년 1월 16일 참사회의를 소집하셨고 21일 교령을 공포하셨습니다.
이에 장 홍빈 신부님은 최 대주교님께 잘못된 교령과 공지문을 철회를 요청하시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티칸에 가셨습니다. 2월 16일 중국 출장에서 돌아오신 인류 복음화 성성의 장관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은 피곤하실 텐데도 그 날 바로 장 신부님을 만나주시고 장 신부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광주대교구에서 한국 춘계주교회의에 상정한 나주 문제도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10. 나주는 사적계시로 간주된다는 교황청의 적극적 견해표시와 지휘권
한국교회를 지도할 권한과 의무가 있는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은 한국 주교회의에 긴급히 공문을 보냈고 이로 인해 교황청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주교회의는 나주와 순례자들을 강력하게 제재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각 교구별로 (알아서) 교령을 공지하기로 하였다.”라는 선언적인 결론만 냈습니다.
추기경님은 따로 광주대교구에 “나주는 사적계시로 간주되므로 나주 순례자들을 제재 할 수 없으며 장 홍빈 신부님에게 가한 제재도 풀어줘야 되고 장 신부님은 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셨습니다.
광주대교구는 이때라도 오류와 이단혐의가 있는 공지문과 교령을 접고 교황청의 지시에 순명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존의 잘못된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은 신앙교리성과 협의하여 2008년 4월 나주문제를 신앙교리성으로 이관 하였습니다.
신앙교리성은 예로부터 가톨릭신앙과 교리를 수호하고 이단을 처단하는 곳인데 그곳에서 나주문제를 정식으로 심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주의 기적들과 사랑의 메시지의 진실 여부와 함께 나주를 단죄한 공지문의 오류와 이단성을 동시에 조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광주대교구는 이때부터 “나주에 순례하여 성사와 준성사 의식을 하면 파문이다”라는 교령을 공식적으로는 선전하지 못했고 다만 나주를 극렬히 반대하는 신부님들이 개인적으로 교령을 들먹이며 순박한 신자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2008년 7월 2일 성모님 동산을 둘러보시고 경당에 들른 최 창무 대주교님은 광주대교구 신자임을 밝힌 제게 “주교가 기도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닙니다. 은총 많이 받으세요. 성령도요.…”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나주는 사적계시로 간주되므로 나주 순례자들을 제재 할 수 없으며 장 홍빈 신부님에게 가한 제재도 풀어줘야 되고 장 신부님은 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인류복음화성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의 공문은 추기경님을 만나신 바티칸의 소식통을 통해 알려졌는데 광주대교구는 이에 대해 부정하지 못하고 다만 “인류복음화성 장관이 개인적으로 나주를 좋아하는 모양이다.”라며 “나주 문제는 신앙교리성만이 유일한 주관부서인데 신앙교리성은 광주교구장님들의 공지문과 교령을 교회의 공식입장으로 지지한다.” 는 이상한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교황청의 장관님들은 교황님 다음 가는 공적 위치에서 교황님을 보좌하고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끄시는 분들로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현사건이라는 중요한 사건을 개인적인 생각만으로 한 나라의 주교단 모두에게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고 확정적인 공문을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세계 선교지역에 속한 국가의 모든 가톨릭교회를 관장하시는 인류복음화성성 장관님의 공문과 말씀은 광주대교구의 주장처럼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교황청의 공식적 견해입니다. 그런데 광주대교구가 교황청의 정당한 지휘권 발동에도 순명하지 않고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자 인류복음화성에서는 할 수 없이 나주문제를 신앙교리성에 잠시 이관한 것입니다. 지역 교회 주교님의 교도권이 중요하다면 전 세계 교회를 지도하시고 관장하시는 교황청의 교도권은 그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11. 순명을 강조하는 광주대교구는 왜 교황청에 순명하지 않는가?
저는 나주 성모님 집에서 봉사하는 12년 5개월 중 11년 반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찾고자 많은 시간을 묵상하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주에서의 징표와 기적과 그에 따른 열매를 보면 그 누구도 하느님이 직접 역사하시는 것임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지문이 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씩 알게 된 사실들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나주 조사위원회 위원장 김 재영 신부님은 “하느님은 말씀하실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모님은 말씀하실 수 있었으나 2000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지금은 말씀 하실 수 없다”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하느님의 존재마저 우습게 여겼으며, 나주를 단죄한 공지문의 교리신학적 토대를 마련하신 것으로 알려진 광주가톨릭 신학대학의 이 제민 신부님과 이 순성 신부님의 주의 주장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였습니다.
저는 나주문제가 이렇게 꼬인 것은 나주 조사위원회의 핵심 성직자와 신학자들의 신학관에 큰 문제가 있으며 그 배후에 장 용주 신부님이 진두지휘를 하여 일사불란하게 교황청에 불순명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 12월 27일과 2008년 10월 15일 장 용주 신부님께 공개질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장 신부님과 광주대교구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고 저에 대한 제재조치도 없었습니다.
그 공개질의 편지에서 저는 나주를 조사하지도 않고 면밀히 조사하였다는 거짓말을 질타하였고, 나주의 기적을 단죄하기 위해 교회와 교황님께서도 인정하신 가톨릭 역사상 일어난 모든 성체기적을 단죄한 이단적 잘못과 조사위원 신부님들의 신학관이나 신앙관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나주는 사적계시로 간주되므로 나주 순례자들을 제재 할 수 없으며, 장 홍빈 신부님에게 가한 제재도 풀어줘야 되고, 장 신부님은 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디아스 추기경님의 공문내용도 있었는데 장 홍빈 신부님의 보고를 통해 2008년 10월 말경 이 편지를 입수하신 복음화성에서는 제 편지를 즉시 신앙교리성에 넘겨주시고 11월 7일 주한 교황대사관을 통해 제게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교황청에서 제 공개편지 내용에 공감하신다는 뜻이며 “나주는 사적계시로 간주되므로 나주 순례자들을 제재 할 수 없으며 장 홍빈 신부님에게 가한 제재도 풀어줘야 되고 장 신부님은 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교황청의 공식 견해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12. 결론,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나주에 다니는 신자들은 교회와 교도권에 불순명하기에 자동파문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해도 너무 왜곡한 것입니다. 교회와 교도권에 불순명하는 사람들은 나주 순례자가 아니고 진실 된 발현을 말살하고자 교황님의 의견과 교황청의 지시조차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 분들입니다.
2008년 1월 21일 교령이 난 후에도 여러 명의 주교님과 많은 신부님들이 순례 오셨고, 특히 인도네시아 대주교님은 성혈을 받으시고, 기적들을 목격하셨으며 순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최 창무 대주교님과 같이 12사도의 후예이신 그분들이 교령으로 파문당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최 대주교님의 교령은 교회법 상 자신의 관할인 광주대교구 성직자와 신자들에게만 미칩니다. 더구나 교황청에서는 이미 나주는 사적계시로 간주된다며 교령으로 나주 순례자들과 장 신부님을 제재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셨기에 광주대교구 신자들도 구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주 성모님께서 언제 인준 받으실지는 모르지만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교황청의 견해를 아시는 성직자들께서도 입을 다물고 계시기에 힘이 들어도 우리가 교황청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을 전파할 때 상황을 잘 모르시는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은 교도권에 순명하라며 우리를 마구 윽박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같이 흥분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우리가 나주에서 체험하고 받은 은총과 그로인해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어떻게 복음적 삶으로 바뀌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는지를 진지하고 겸손하게 얘기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 내용을 포함하여 제가 쓴 모든 글을 복사해서 다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그 책임은 제가 질 것입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아니 모든 이들이 성모님 사랑 안에 함께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희생하며 더욱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영웅적으로 충성을 다 하도록 합시다. 아멘!
2009년 7월 24일
광주 대교구 두암동 성당 김 동명 알비노 (HP 017-608-3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