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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0.10.28.PM2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3
화엄회상 대중들의 득법(得法)과 게송
화엄경 공부하는 시간이다.
19. 가루라왕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팔부신중 중에 들어가는 가루라 대중이다.
1) 득법
부차대속질력가루라왕(復次大速疾力迦樓羅王)은 득무착무애안(得無着無碍眼)으로 보관찰중생계해탈문(普觀察衆生界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대속질력(大速疾力) 가루라왕은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는 눈으로 중생세계를 널리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집착이 없으면 보는 것도 걸림이 없다. 집착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가 걸린다. 중생세계를 널리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오늘 미국의 야구 메이저리그 결승전이 끝났다. 월드시리즈라고 해서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 특히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제일 관심을 많이 갖는 경기다.
거기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있어서 내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광고에 보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는 말도 있고, 그런 일들이 사실로 많이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 유명한 선수 한 분이 LA다저스에 가서 여러 해 동안 공을 들이고, LA다저스 하면 그 선수 때문에 거의 한국팀인냥 생각을 했었다. 그 선수 이름 들먹거리면 LA다저스팀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선수와 LA다저스팀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알고 있었다. 늘 그렇게 습관이 되어서 길이 난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업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팀을 옮겨서 다른 팀으로 갔다. 이야기인즉슨 보수를 많이 준다, 요는 돈을 많이 준다, 돈 따라서 갔다 이런 이야기가 났다.
그런데 가자마자 금년에 LA다저스팀이 월드시리즈에 우승을 했다. 잠깐만 참고 1년만 더 기다렸으면 우승반지를 끼고 금의환향해서 야단법석을 떨고, 금의환향하는 것을 한국에 중계도 하고 했을 텐데 그 1년을 못참고, 돈을 얼마나 더 많이 받고 갔는지 모르지만, 운동선수라면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는 명예가 아니겠는가? 무조건 운동선수라면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제일 큰 목표다.
그리고 야구팀에서는 우승반지가 있다. 우승반지 한 번 껴보는 것이 평생에 소원인데 LA다저스팀이 32년만에 오늘 우승을 해서 야단이 났다. 그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상당히 많은 전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서 또 배울 점이 있고 깨달을 점이 있다. 참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우승반지도 우승반지겠지만 상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한보따리씩 준다. 연봉받는 것보다 더 많은 상금을 받아서 올 것이다. 그런데 그 연봉 액수가 조금 더 많다고 하는 것 때문에 그만 우승반지를 놓치고 상금도 놓치고, 일찍이 들어왔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 그 영광, 우승반지를 끼고 한국 선수가 그 틈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이런 등등의 명예같은 것이 싹 사라지고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게 됐다.
순간의 선택이 그렇다. 명예도 명예고 돈도 많이 손해를 보게 되고 그런 입장이 되었다.
이 구절을 보니까,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는 눈으로 중생세계를 널리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집착이 큰 문제다.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면 거기서 우리나라 선수로서 뽑아주었으니까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나는 여기에서 우승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 몇 년이 걸리든 간에 우리팀이 우승을 할 때까지 나는 여기에서 그냥 최선을 다해서 선수생활 하겠다’ 우리나라사람들은 그런 의리가 있는데 좀 그렇다.
‘나를 한국선수로서 뽑아주었으니까 여기서 명예는 그동안도 많이 얻었고 하니까 그 은혜 때문이라도 나는 우승할 때까지 여기서 언제든지 돈이야 얼마를 주든지간에 기다리겠다’ 이랬으면 모양이 좋을 뻔했는데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데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많다 하는 의미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다.
불가괴보계가루라왕(不可壞寶髻迦樓羅王)은 득보안주법계(得普安住法界)하야 교화중생해탈문(敎化衆生解脫門)하니라
불가괴보계(不可壞寶髻) 가루라왕은 법계에 널리 안주해서 중생을 교화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법계에 널리 안주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님은 어느 한 지역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민족만을 위해서 교화하는 것이 아니다. 온 세계 골고루 인연 있는 중생들, 인연이 없는 중생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우정 인연을 맺어줘 가면서라도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 이것이 불교가 할 일이다.
우리 불자들은 그런 데 좀 약한데 그렇게 해야된다.
내가 시내 사찰에 잠깐 있었을 때 보면, 기독교인들은 절 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 ‘기독교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를 한다.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고 내가 물었다.
‘여기 절이다. 불교 믿는 절이다’ 자기들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우리한테 타종교인을 그렇게 강요를 하느냐?’하니까 ‘타종교인을 한 사람 교화하는 것이 다른 일반인들 열 사람 스무 사람 교화하는 것보다 더 공덕이 많다’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그렇게 하는 것을 제가 겪었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불법이 좋다’라고 생각이 들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를 해서 널리 중생을 교화하는 운동이 좀 더 벌어졌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청정속질가루라왕(淸淨速疾迦樓羅王)은 득보성취바라밀정진력해탈문(得普成就波羅蜜精進力解脫門)하니라
청정속질(淸淨速疾) 가루라왕은 바라밀의 정진력을 널리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청정속질가루라왕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라밀의 정진력을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제가 주바라밀 조바라밀이라는 표현을 잘 쓴다. 우리 불자들은 불교를 공부하게 되면 불교공부를 주바라밀로 생각해야 된다. 먹고 살고 다른 일은 설사 직업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바라밀로 생각하고 살아갈 정도까지 되어야 한다.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사는 일이 우선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굶어 죽는 경우는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불법공부를 주바라밀로 해야 한다.
내용을 몰라서 그렇지 이 불법 공부가 귀한 것이다. 이런 것을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인연이 되었을 때 파고들고 열심히 정진을 해야 된다.
바라문의 정진력을 널리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불교인이니까 하는 소리고, 스님이니까 으레 하는 소리다’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전혀 아니다.
너무 안타까와서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린다.
불퇴심장엄가루라왕(不退心莊嚴迦樓羅王)은 득용맹력(得勇猛力)으로 입여래경계해탈문(入如來境界解脫門)하니라
불퇴심장엄(不退心莊嚴) 가루라왕은 용맹스러운 힘으로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용맹스러운 힘으로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다. 용맹이 있어야 된다. 용기가 있어야 된다. 어느 정도 희생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 있는가?
오른쪽을 취하면 왼쪽을 버려야 되고, 왼쪽을 취하면 오른쪽을 버려야 하듯이 어차피 희생이 따른다. 그러니까 돈을 좀 덜 벌더라도 불법 공부를 해서 여기에서 안목이 열리고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게된다면 ‘야 참 잘했다. 내가 경제적으로는 손해를 좀 봤지만 이것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 틀림없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가끔 그런다. ‘부처님인들 직업이 없어서 출가했느냐? 애착 가는 자식이나 부모나 아니면 그 밑에 정치적인 권력이라든지 이런 것 없어서 출가했느냐?’ 그런 소리까지 하는데 사실은 농담 비슷하게 하지만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
용기, 용맹 그것이 있어야 여래의 경계에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가 있다.
대해처섭지력가루라왕(大海處攝持力迦樓羅王)은 득입불행광대지혜해해탈문(得入佛行廣大智慧海解脫門)하니라
대해처섭지력(大海處攝持力) 가루라왕은 부처님이 행하는 광대한 지혜바다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이 또한 용기나 용맹 이런 것이 필요하다. 부처님이 행하는 광대한 지혜바다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다.
부처님의 경지,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 ‘아이고 우리가 어떻게 부처님 경지를 넘볼 수 있느냐’ 걸핏하면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잘 한다.
조사스님들의 말씀에는 ‘피기장부(彼旣丈夫) 아역이(我亦爾)라. 그도 또한 장부고 나도 또한 그러하다. 똑같이 이 불법을 아는 장부인데 난들 못할 것이 있겠느냐?’ 이런 말을 한다. 그쯤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견법정광가루라왕(堅法淨光迦樓羅王)은 득성취무변중생차별지해탈문(得成就無邊衆生差別智解脫門)하니라
견법정광(堅法淨光) 가루라왕은 끝없는 중생을 성취시키는 차별된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중생들의 숫자가 워낙 많으니까 끝이 없고 한이 없고 한량이 없다. 그들을 다 성취시키려면 어떻게 하는가? 차별된 지혜가 필요하다. 갑이라는 사람에게는 갑에게 필요한 지혜가 있고, 을이라는 사람을 제도하려면 을이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지혜가 있다. 그런 차별된 지혜를 가져야 많고 많은 중생들을 모두 성취시키고 교화시킬 수 있다.
묘엄관계가루라왕(妙嚴冠髻迦樓羅王)은 득장엄불법성해탈문(得莊嚴佛法城解脫門)하니라
묘엄관계(妙嚴冠髻) 가루라왕은 불법의 성(城)을 장엄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불법의 성을 장엄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불법의 성(城)과, 불법의 도시, 불법의 세계는 의미심장하고 광범위하다. 여러 가지로 불법의 도시, 불법의 성곽을 장엄할 거리는 많을 것이다.
모범을 보이는 것도 장엄이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하나 사는 데도 아주 모범을 보이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좀 더 주려고 하면 ‘아 괜찮다’ 고 사양을 하고, 그 대신에 ‘이 염주나 하나 가지시라’고 ‘염주를 걸고 장사를 하면 장사가 더 잘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런 것이 다 뭔가? 불법의 성곽을 장엄하는 일이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간단한 일에서부터 사람을 대할 때 늘 교양있게 하고, 뭔가 불교를 믿는 불자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불법의 성을 장엄하는 일이다.
보첩시현가루라왕(普捷示現迦樓羅王)은 득성취불가괴평등력해탈문(得成就不可壞平等力解脫門)하니라
보첩시현(普捷示現) 가루라왕은 깨뜨릴 수 없는 평등한 힘을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깨뜨릴 수 없는 평등한 힘을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누구에게든지 평등하게 보고 평등하게 대하면 그것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일이 된다.
진실로 평등하게 대하면 절대 그 사람을 아무도 못 건드린다. 그 사람을 어떻게 못한다. 전부 차별하고 분별하고 아전인수로 자기중심으로 모든 언어와 이해관계를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이의를 단다.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힘, 그것은 평등한 힘이다.
보관해가루라왕(普觀海迦樓羅王)은 득요지일체중생신(得了知一切衆生身)하야 이위현형해탈문(而爲現形解脫門)하니라
보관해(普觀海) 가루라왕은 모든 중생의 몸을 분명히 알고 그들을 위해 형상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중생의 몸을 분명히 알고 그들을 위해 알맞게 맞추어서 형상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모습, 천백억 화신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는데, 부처님은 천백억 화신을 나타낸다. 중생들의 종류가 워낙 여러가지다 보니 여러가지 종류와 성향에 맞추어서 발전한다.
그러니까 불교가 태국쪽으로 가서는 태국의 민속신앙이라든지 여러가지 생활습관이라든지 이런 데 맞춰서 또 약간씩 변화를 주고, 중국에 와서는 중국의 기존의 도교라든지 유교라든지 이런 데 맞춰서 약간씩 변화를 줘가면서 불교를 퍼뜨리기도 한다.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고 일본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유럽에 건너가서나 아니면 미국에 가서도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라든지 이런 것을 적절하게 맞춰서 교화를 해야만 그것이 먹혀든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면 먹혀들지 않는다. 그것이 중생의 근기를 따른다 하는 의미가 되겠다.
용음대목정가루라왕(龍音大目精迦樓羅王)은 득보입일체중생몰생행지해탈문(得普入一切衆生歿生行智解脫門)하시니라
용음대목정(龍音大目精) 가루라왕은 모든 중생의 나고 죽는 행에 널리 들어가는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나고 죽는 행에 널리 들어가는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다.
어떤 지역의 어떤 민족적인 토속신앙이라든지 그런 것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나고 죽는 데까지 널리 들어간다고 하였다. 불법을 널리 펴려면 그러한 일들도 얼마든지 필요로 하는 것이다.
2) 게송
이시(爾時)에 대속질력가루라왕(大速疾力迦樓羅王)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보관일체가루라중(普觀一切迦樓羅衆)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그 때에 대속질력 가루라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가루라 대중들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불안광대무변제(佛眼廣大無邊際)하사 보견시방제국토(普見十方諸國土)하시니
기중중생불가량(其中衆生不可量)이어늘 현대신통실조복(現大神通悉調伏)이로다
부처님의 눈은 넓고 커서 그 끝이 없으사
시방의 모든 국토를 널리 다 보시니
그 가운데 있는 중생 헤아릴 수 없거늘
큰 신통 나타내어 모두 조복하시네.
부처님의 눈은 넓고 커서 그 끝이 없으사
시방의 모든 국토를 널리 다 보시니
그 가운데 있는 중생 헤아릴 수 없거늘
큰 신통 나타내어 모두 조복하시네.
조복이라는 표현이 교화니 제도니 하는 말보다 훨씬 더 뜻이 강하다.
부처님이 보기에는 시방국토가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있는 중생들은 얼마나 많은가? 정말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큰 신통을 나타내어서 그들 중생들을 다 조복하고 있다.
불신통력무소애(佛神通力無所碍)여 변좌시방각수하(遍坐十方覺樹下)하사
연법여운실충만(演法如雲悉充滿)하시니 보계청문심불역(寶髻聽聞心不逆)이로다
부처님의 신통력 걸림이 없음이여
시방의 각수(覺樹) 밑에 두루 앉으사
법을 연설함이 구름과 같이 다 충만하시니
불가괴보계 가루라왕이 듣고 마음에 거슬리지 않았네.
부처님의 신통력 걸림이 없음이여
시방의 각수(覺樹) 밑에 두루 앉으사
시방의 각수(覺樹)라고 하는 이 각수는 보리수다.
시방의 보리수나무 밑에 두루 앉으사
부처님의 신통력이 걸림이 없다.
법을 연설함이 구름과 같이 다 충만하시니
부처님의 설법을 이렇게 보신 것이다. 이분은 부처님이 깨달음의 능력을 크게 펼치는데 모두가 깨달음에 근거해서, 시방의 각수(覺樹) 밑에 두루 앉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화엄경에서는 설법의 차원이 달라질 때마다 천상에 올라가는 이야기가 있는데, 올라갈 때마다 보리수를 떠나지 않고 올라갔다고 나와 있다. 어디를 가도 보리수를 떠나지 않고 올라갔다. 그 말의 의미가 심장하다.
깨달음에 근거해서, ‘깨달음의 이치를 떠나지 않고’ 그런 말이다. 불교는 깨달음에 근거해서 모든 것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가 깨달음의 경지를 제대로 다 누리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깨달았다 치고’ 깨달음의 경지에 근거해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불어왕석수제행(佛於往昔修諸行)에 보정광대바라밀(普淨廣大波羅蜜)하사
공양일체제여래(供養一切諸如來)하시니 차속질왕심신해(此速疾王深信解)로다
부처님이 지난 옛적 여러 행을 닦을 때
광대한 바라밀을 널리 청정하게 하사
일체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시니
이것은 청정속질 가루라왕이 깊이 믿고 알았도다.
부처님이 지난 옛적 여러 행을 닦을 때
여러가지 수행을 닦을 때
광대한 바라밀을 널리 청정하게 하사
별별 수행을 다 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만 해서는 안된다. 보시만 해도 안되고 지계만 해도 안되고 선정만 닦아도 안되고 정진만 해도 안된다.
6바라밀을 골고루 닦아야 된다. 그래야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병통이 선정만을 줄기차게 닦고 ‘그것이 최고의 수행이다. 그 수행 속에 모든 수행이 다 갖추어져 있다’ 이런 엉터리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것이 문제다.
여러 가지 바라밀, 광대한 바라밀을 널리 청정하게 잘 닦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음식을 먹어도 편식하지 말라고 하는데 심지어 수행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치우친 수행은 문제가 많다.
여래일일모공중(如來一一毛孔中)에 일념보현무변행(一念普現無邊行)하시니
여시난사불경계(如是難思佛境界)여 불퇴장엄실명도(不退莊嚴悉明覩)로다
여래의 하나하나 모공(毛孔) 마다에
한 생각에 그지없는 행을 널리 나타내시니
이와 같이 생각하기 어려운 부처님의 경계여
불퇴심장엄 가루라왕이 다 밝게 보았네.
여래의 하나하나 모공(毛孔) 마다에
한 생각에 그지없는 행을 널리 나타내시니
낱낱 모공마다 아주 짧은 순간에 무수한 부처님의 수행을 널리 다 나타내고 있다. 한 모공 속에 부처님이 수행하는 가지가지 수행을 다 나타낸다.
이와 같이 생각하기 어려운 부처님의 경계여
부처님의 경계는 정말 생각하기 어렵고 불가사의 하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말을 우리가 아주 쉽게 쓰는데, 본래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 부처님은 다 맞게 생활하셨고 우리는 그것과 어긋나게 생활하여 여러 문제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수행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밑에 제가 해석하기를
부처님의 세포나 부처님의 DNA는 그 모두가 부처님이다. 사람의 세포 하나 속에 그 사람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어서 세포 그대로가 그 사람이다. 그래서 세포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온전히 복제할 수 있다. 감나무의 잎 하나에도 감나무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 그 감나무 잎을 갈아서 작은 먼지로 만들어도 그 먼지 하나 속에 감나무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어서 역시 그 먼지로 감나무를 복제하고 재현할 수 있다. 먼지 하나하나 모두가 그대로 감나무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경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은 모든 존재가 그 원리로 존재한다, 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는 내용을 여기서 제가 설명으로 덧붙였다.
불행광대부사의(佛行廣大不思議)라 일체중생막능측(一切衆生莫能測)이니
도사공덕지혜해( 導師功德智慧海)여 차집지왕소행처(此執持王所行處)로다
부처님의 행은 넓고 커서 부사의함이라.
일체중생이 측량할 수 없으니
도사(導師)의 공덕과 지혜의 바다여
이것은 대해처섭지력 가루라왕이 행한 곳이네.
부처님의 행은 넓고 커서 부사의함이라.
부처님의 행은 넓고 커서 불가사의하다.
일체중생이 측량할 수 없으니
일체중생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할 길이 없다.
도사(導師)의 공덕과 지혜의 바다여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의 바다여
이것은 대해처섭지력 가루라왕이 행한 곳이다
이 가루라왕은 부처님의 이러한 면을 보고 닮았고 그것을 자기의 공부로 여겼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여래무량지혜광(如來無量智慧光)이여 능멸중생치혹망(能滅衆生癡惑網)하사
일체세간함구호(一切世間咸救護)하시니 차시견법소지설(此是堅法所持說)이로다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의 빛이여
중생들의 어리석고 미혹한 그물을 다 소멸하사
모든 세간을 다 구호하시니
이것은 견법정광 가루라왕이 연설하였네.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의 빛이여
중생들의 어리석고 미혹한 그물을 다 소멸하사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의 빛, 바로 화엄경의 가르침이다.
그것을 통해서 중생들의 어리석고 미혹한 그물을 다 소멸한다. 우리가 어리석고 미혹하다 복이 없다 박복하다 중생들은 업장이 두텁다. 이런 문제들, 이런 많고 많은 문제들을 무엇으로 해결한다?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의 빛으로 해결한다. 모든 세간을 다 구호한다고 했잖은가? 그것을 전부 소멸한다고 했다. 결국은 화엄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세간을 다 구호하시니
모든 세간을 다 구호하는 길은 구체적으로 애매모호하게 그냥 부처님만 믿으면 된다 뭘 하면 된다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화엄경을 열심히 하루 열 시간쯤, 열 시간 이상씩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렇게 하다보면 지혜가 밝아져서 길과 길 아닌 것을 환하게 알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일단 지혜가 밝아져서 그것이 자신의 머릿속에 벌써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그것이 그려지지 않는데, 무턱대고 걸음부터 옮기면 어쩌자는 것인가?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실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공연히 손해를 많이 보게 되고, 그것을 ‘손재수(損財數)가 들었다’ 이런 표현을 하지만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의 빛이여
중생들의 어리석고 미혹한 그물을 다 소멸하사
모든 세간을 다 구호하시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냐?
화엄경을 열 시간 이상씩 무조건 읽어라.
법성광대불가궁(法城廣大不可窮)이여 기문종종무수량(其門種種無數量)이어늘
여래처세대개천(如來處世大開闡)하시니 차묘관계능명입(此妙冠髻能明入)이로다
법의 성곽이 광대해서 다할 수 없음이여
그 문이 갖가지라 한량이 없거늘
여래가 세상에서 크게 여시니
이것은 묘엄관계 가루라왕이 밝게 들어갔도다.
법의 성곽이 광대해서 다할 수 없음이여
진리의 성곽, 가르침의 성곽.
그 문이 갖가지라 한량이 없거늘
그러나 문문가입(門門可入)이다. 문마다 다 들어갈 수가 있다.
여래가 세상에서 크게 여시니
왜 저 팔만대장경, 팔만사천법문을 열었겠는가? 그것은 전부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업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잘 찾아보면 자기에게 딱 맞는 길이 있고 딱 맞는 문이 있다. 그래서 문문가입(門門可入)이라. 문마다 문마다 다 들어간다.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일체제불일법신(一切諸佛一法身)이여 진여평등무분별(眞如平等無分別)이어늘
불이차력상안주(佛以此力常安住)하시니 보첩현왕사구연(普捷現王斯具演)이로다
일체 모든 부처님의 한 법신이여
진여는 평등해서 분별이 없거늘
부처님은 이 힘으로 항상 안주하시니
보첩시현 가루라왕이 이것을 갖추어 연설하였네.
일체 모든 부처님의 한 법신이여
진여는 평등해서 분별이 없거늘
부처님은 이 힘으로 항상 안주하시니
여기서 한 법신, 진여, 이 힘, 부처님의 이 힘, 하는 것은 전부 동일한 것이다.
일체 모든 부처님의 한 법신이여
진여는 평등해서 분별이 없거늘
부처님은 이 힘으로 항상 안주하시니
이 한 법신의 힘으로, 진여의 힘으로, 우리들도 다 가지고 있다. 우리의 근본이고 우리의 참모습이고, 우리의 참마음이고, 우리 참사람, 나의 참모습, 참사람이 바로 이 진여이고 법신이다. 이것은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고 하는 바로 그 근거가 진여, 법신, 부처님의 힘, 그것이다.
이것 하나 믿지 아니하면 불교를 헛공부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부디 어떻게 하더라도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근거해서 모든 신행생활과 인생이 펼쳐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체 모든 부처님의 한 법신이여
진여는 평등해서 분별이 없거늘
부처님은 이 힘으로 항상 안주하시니
우리도 역시 이 힘으로 안주하고 있다. 무엇이 들어있는가? 이 순간 여기에 염화실 TV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듣고, ‘좋다 나쁘다’‘내 마음에 든다 안든다’고 무엇이 그렇게 하는가? 바로 그것이 한다. 내 마음이 한다. 참나가 한다. 나의 참모습 참사람 그 힘이 들어서 한다는 사실을 늘 놓쳐서는 안된다.
불석제유섭중생(佛昔諸有攝衆生)하사대 보방광명변세간(普放光明徧世間)하사
종종방편시조복(種種方便示調伏)하시니 차승법문관해오(此勝法門觀海悟)로다
부처님이 옛날 모든 세상에서 중생들을 섭수할 때
광명을 널리 놓아 세간에 두루 하사
갖가지 방편으로 조복을 보이시니
이 훌륭한 법문은 보관해 가루라왕이 깨달았도다.
부처님이 옛날 모든 세상에서 중생들을 섭수할 때
광명을 널리 놓아 세간에 두루 하사
광명이라는 것이 빛을 놓았다, 태양빛 같은 빛을 놓았다? 그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 지혜의 가르침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빛이고 훌륭한 광명이다.
자나깨나 그 이치를 우리는 놓쳐서는 안된다.
갖가지 방편으로 조복을 보이시니
경전에는 별별 가르침이 많다. 별별 소리가 다 있다. 저에게 ‘스님은 금강경 강의할 때는 맨날 금강경이 제일이다’ 하고 ‘법화경 강의할 때는 맨날 법화경이 제일이다’ 하고 ‘화엄경을 공부할 때는 화엄경이 제일이다’ 라고 하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거야 제일이니까 내가 제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제일이라는 말입니까?’
‘다 제일이지. 다 제일이지.’
자기의 어떤 성향에 딱 맞고, 자기 마음에, 또 그날 그 순간 거기에서 계합이 딱 되면 그것이 제일이다.
그런 의미로 ‘제일이다 제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 그 경전을 강의할 때는 그렇게 내가 감동을 하고 ‘아 이것이 제일이다’ 라고 그때는 아무것도 다른 것이 생각이 안 떠오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관일체제국토(佛觀一切諸國土)가 실의업해이안주(悉依業海而安住)하사
보우법우어기중(普雨法雨於其中)하시니 용음해탈능여시(龍音解脫能如是)로다
부처님이 관찰하니 일체 모든 국토가
업의 바다를 의지해서 안주함이라.
법의 비를 그 가운데 널리 내리시니
용음대목정 가루라왕의 해탈이 이와 같도다.
중생들이 사는 것은 전부 업의 놀음이다. 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라. 말은 간단하게 업이라고 하지만 참 불가사의한 경지다.
부처님이 관찰하니 일체 모든 국토가
업의 바다를 의지해서 안주함이라.
전부 업의 바다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업 아닌 것이 없다.
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가을이 되면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풀에서도 전부 그 나름대로 꽃을 피우고 씨를 맺고 내년을 준비한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지은 업이다. 그렇듯이 우리도 업을 잘 지어야 되고 자꾸 발전시켜야 된다. 자꾸 업을 발전시켜야 된다.
한 순간도 우리가 업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그러니 업의 이치를 잘 알아야 된다. 업의 이치를 잘 알아서 업을 잘 지어가는 수밖에 달리 다른 것이 없다.
오늘 화엄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
오신 분들을 한 번 살펴보겠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동참하셔서 화엄법석이 아주 풍성하고 좋다.
동참자가 이렇게 많은 것이 풍성하고, 또 우리 화엄경은 본래 얼마나 풍성한가? 참 풍성하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살더라도 우리가 풍성하게 살아야 된다. 모두 고맙다.
*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날로 더욱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굴러가서
미망에 허덕이는 중생들 하루빨리
지혜의 눈을 활짝 열게 하여지이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30일 오늘 오후 3시, 31일은 오후 2시에 '용학스님 목어TV' 유튜브 방송에서 큰스님 대승찬 특강이 있다네요.가끔 염화실 TV 구독자숫자를 헤아립니다. 날마다 한 두 명씩 늘어나서 오늘은 491명, <염화실>은 1030명인데 염화실로 이어받지 않으시고 (1000명 이상이 되어야 자유롭게 이동하며 찍을 수 있다고 용학스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어서요~^^)새롭게 염화실 티비로 해서 시작부터 만난 우리가 ^^~~10월에도 정말 열심히 화엄경의 길을 달려온 것 같습니다. 공부한 바가 모두모두 삶에서 잘 회향되기를.....공부하는 우리들 자신과 우리와 인연닿는 모든 분들 우리의 기도와 공부로 조금 더 안락해 지시기를 발원합니다.^^
이런 안내문이 없었더라면 뒷북 칠 뻔 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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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깨달음에 근거해서, ‘깨달음의 이치를 떠나지 않고’ 그런 말이다. 불교는 깨달음에 근거해서 모든 것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렇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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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주바라밀은 불법공부, 일상생활은 조바라밀.
아직은 아니나, 깨달음을 얻었다치고 깨달음에 근거한 삶을 살아간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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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합이 딱 되면 제일이다....법문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