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도 젊은이들은 인도로 몰려간다. 겨울이면 전세 비행기를 띄워야 할 정도로 인도로 가는 길은 붐비고 있다. 인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명상과 정신문화다. 인도와 명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의 정점에는 오쇼 라즈니쉬가 있다.
1970년대부터 서구 젊은이들에게 열광적 인기를 누리던 라즈니쉬는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석지현 스님과 무용가 홍신자에 의해서다. 빛나는 커다란 두 눈과 흰 수염을 가진 인도의 명상가는 단박에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아버렸다. 시인 류시화는 홍신자와 인터뷰에서 라즈니쉬와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말을 듣는 것은 아주 위험" "동양철학이나 인도철학이라면 노자나 장자 같은 사람들이 채소나 심고 밭이나 갈아라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1981년인가 어느날 책방에 들렀다가 홍신자와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라즈니쉬를 읽었어요. 아주 우연히 들쳐보았는데, 그만 그 책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라즈니쉬라는 '깨달은 사람'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아주 컸습니다. 카뮈나 지드가 주었던 현실 도피적 감동을 전부 쓸어가버렸어요."
라즈니쉬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그의 저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출간된 그의 저서는 650여 종.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국내에 번역된 책은 200여 종이다. 지금도 서점에서 100여 종의 책을 만날 수 있다. 류시화의 이야기대로 라즈니쉬의 사상은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탈레스에서부터 노자까지, 예수로부터 달마까지... 세상의 어떤 사상이라도 그의 영혼과 혀를 통하면 자아를 들여다보는 명상의 열쇠가 되고 만다.
그에 대한 열광만큼 비판도 뒤따랐다. 섹스교나 사교라는 지적도 있다. 그의 가르침이 기존 질서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자초한 비난이다. 라즈니쉬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적 의식의 시작이다. 과거는 기억할 만한 가치조차 없다. 나의 메시지는 교리나 철학이 아니다. 일종의 연금술이고 변형의 과학이다. 존재와 의식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된 사람만 위한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자신은 완전히 죽어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말한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이렇게 위험한 영혼의 연금술사도 젊어서는 평범한 철학교수였다. 9년간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인도 전역을 순회하면서 기존의 신앙을 공격하는 강연을 열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1974년 서구에서 몰려든 젊은이들과 함께 인도 뭄바이 남쪽의 도시 푸나에 공동체를 세웠다. 이때부터 라즈니쉬의 시대가 열렸고 영광과 함께 수난이 시작된다. 지금도 푸나의 라즈니쉬 공동체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밀려드는 영혼의 탐구자로 푸나는 축제의 도시가 되고 매주 열린 그의 강의는 새롭게 태어나는 정신들의 모태가 되었다.
1980년 5월의 어느날 라즈니쉬의 가르침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힌두교도 1명이 강의 중에 식칼을 던져 암살을 기도했다. 그가 속한 극단적인 힌두교파에서는 폭력적으로라도 라즈니쉬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라즈니쉬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를 미국으로 초대한다. 1981년 오레곤 주의 안텔롭에 6만4천 에이커의 광활한 황무지를 사들였다. 이곳에 둥지를 튼 라즈니쉬의 추종자들은 황무지를 개간해 성공적인 농업공동체를 만들었다. 반대자들의 역선전이 거세질수록 추종자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왕국이 만들어진 듯했다.
문명사회는 왜 그를 거부했을까 이 무렵의 라즈니쉬의 생활은 반대자들의 표적이 된다. 당시 라즈니쉬의 취미는 롤스로이스 자동차 모으기.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모으듯이 90여 대의 최고급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사들였다. 아침마다 그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겼다. 반대자들은 힘을 얻었다. "정신적인 지도자라더니 웬 사치를 그렇게 하는가? 완전한 사기꾼이다"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하는 안승준씨(동국대)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깨달은 사람에 대해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빈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자이면서 깨달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깨닫고서 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까요? 라즈니쉬의 사상 자체가 급진적이고 일체의 고정관념을 깨뜨려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삶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검약한 구도자가 아니라 정신과 물질이 모두 풍요로운 붓다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에서 쫓겨난 라즈니쉬의 교단은 세계적인 규모로 커졌다. 일본과 유럽의 각지에 오레곤 공동체를 본뜬 집단이 생겼다. 1985년 미국 정부는 심각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영장도 없이 체포돼 34개의 죄목으로 고발된다. 그리고 40만달러의 벌금과 동시에 추방되고 만다. 겉으로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성공한 듯했다. 안텔롭에 모여들었던 사람은 모두 떠났고 지금은 30여 명의 추종자만 조용히 은둔했다.
라즈니쉬는 그의 고국 인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86년 한 해 동안 무려 20개 국에서 입국이 거절되거나 추방된다. 고단한 유랑의 명상가는 1987년에야 가까스로 인도의 푸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압력은 여전했고 그를 보러 모여드는 사람도 전과 같이 열광했다. 문명의 사회는 왜 그를 회피하고 거부했을까? 홍신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라즈니쉬의 가르침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결정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격렬하게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 있게 하는 것이죠."
보수적인 종교집단과 정치세력이 싫어할 만한 대목이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회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를 낳은 인도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의 어느 나라에서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먹어치우는 바이러스이자 기성의 질서를 향한 폭탄의 뇌관이 되었다.
라즈니쉬는 1990년 1월 독극물에 의한 CIA의 암살이라는 주장 속에 숨을 거두었다. 본인도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의 추종자 모두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라즈니쉬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
올 겨울에도 젊은이들은 인도로 몰려간다. 겨울이면 전세 비행기를 띄워야 할 정도로 인도로 가는 길은 붐비고 있다. 인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명상과 정신문화다. 인도와 명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의 정점에는 오쇼 라즈니쉬가 있다.
1970년대부터 서구 젊은이들에게 열광적 인기를 누리던 라즈니쉬는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석지현 스님과 무용가 홍신자에 의해서다. 빛나는 커다란 두 눈과 흰 수염을 가진 인도의 명상가는 단박에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아버렸다. 시인 류시화는 홍신자와 인터뷰에서 라즈니쉬와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말을 듣는 것은 아주 위험" "동양철학이나 인도철학이라면 노자나 장자 같은 사람들이 채소나 심고 밭이나 갈아라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1981년인가 어느날 책방에 들렀다가 홍신자와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라즈니쉬를 읽었어요. 아주 우연히 들쳐보았는데, 그만 그 책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라즈니쉬라는 '깨달은 사람'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아주 컸습니다. 카뮈나 지드가 주었던 현실 도피적 감동을 전부 쓸어가버렸어요."
라즈니쉬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그의 저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출간된 그의 저서는 650여 종.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국내에 번역된 책은 200여 종이다. 지금도 서점에서 100여 종의 책을 만날 수 있다. 류시화의 이야기대로 라즈니쉬의 사상은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탈레스에서부터 노자까지, 예수로부터 달마까지... 세상의 어떤 사상이라도 그의 영혼과 혀를 통하면 자아를 들여다보는 명상의 열쇠가 되고 만다.
그에 대한 열광만큼 비판도 뒤따랐다. 섹스교나 사교라는 지적도 있다. 그의 가르침이 기존 질서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자초한 비난이다. 라즈니쉬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적 의식의 시작이다. 과거는 기억할 만한 가치조차 없다. 나의 메시지는 교리나 철학이 아니다. 일종의 연금술이고 변형의 과학이다. 존재와 의식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된 사람만 위한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자신은 완전히 죽어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말한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이렇게 위험한 영혼의 연금술사도 젊어서는 평범한 철학교수였다. 9년간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인도 전역을 순회하면서 기존의 신앙을 공격하는 강연을 열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1974년 서구에서 몰려든 젊은이들과 함께 인도 뭄바이 남쪽의 도시 푸나에 공동체를 세웠다. 이때부터 라즈니쉬의 시대가 열렸고 영광과 함께 수난이 시작된다. 지금도 푸나의 라즈니쉬 공동체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밀려드는 영혼의 탐구자로 푸나는 축제의 도시가 되고 매주 열린 그의 강의는 새롭게 태어나는 정신들의 모태가 되었다.
1980년 5월의 어느날 라즈니쉬의 가르침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힌두교도 1명이 강의 중에 식칼을 던져 암살을 기도했다. 그가 속한 극단적인 힌두교파에서는 폭력적으로라도 라즈니쉬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라즈니쉬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를 미국으로 초대한다. 1981년 오레곤 주의 안텔롭에 6만4천 에이커의 광활한 황무지를 사들였다. 이곳에 둥지를 튼 라즈니쉬의 추종자들은 황무지를 개간해 성공적인 농업공동체를 만들었다. 반대자들의 역선전이 거세질수록 추종자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왕국이 만들어진 듯했다.
문명사회는 왜 그를 거부했을까 이 무렵의 라즈니쉬의 생활은 반대자들의 표적이 된다. 당시 라즈니쉬의 취미는 롤스로이스 자동차 모으기.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모으듯이 90여 대의 최고급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사들였다. 아침마다 그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겼다. 반대자들은 힘을 얻었다. "정신적인 지도자라더니 웬 사치를 그렇게 하는가? 완전한 사기꾼이다"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하는 안승준씨(동국대)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깨달은 사람에 대해서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빈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자이면서 깨달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깨닫고서 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까요? 라즈니쉬의 사상 자체가 급진적이고 일체의 고정관념을 깨뜨려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삶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검약한 구도자가 아니라 정신과 물질이 모두 풍요로운 붓다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에서 쫓겨난 라즈니쉬의 교단은 세계적인 규모로 커졌다. 일본과 유럽의 각지에 오레곤 공동체를 본뜬 집단이 생겼다. 1985년 미국 정부는 심각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영장도 없이 체포돼 34개의 죄목으로 고발된다. 그리고 40만달러의 벌금과 동시에 추방되고 만다. 겉으로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성공한 듯했다. 안텔롭에 모여들었던 사람은 모두 떠났고 지금은 30여 명의 추종자만 조용히 은둔했다.
라즈니쉬는 그의 고국 인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86년 한 해 동안 무려 20개 국에서 입국이 거절되거나 추방된다. 고단한 유랑의 명상가는 1987년에야 가까스로 인도의 푸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압력은 여전했고 그를 보러 모여드는 사람도 전과 같이 열광했다. 문명의 사회는 왜 그를 회피하고 거부했을까? 홍신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라즈니쉬의 가르침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결정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격렬하게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 있게 하는 것이죠."
보수적인 종교집단과 정치세력이 싫어할 만한 대목이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회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를 낳은 인도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의 어느 나라에서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먹어치우는 바이러스이자 기성의 질서를 향한 폭탄의 뇌관이 되었다.
라즈니쉬는 1990년 1월 독극물에 의한 CIA의 암살이라는 주장 속에 숨을 거두었다. 본인도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의 추종자 모두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라즈니쉬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