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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계四季가 표상하는, 표백된 영혼의 왈츠
― 신간시집 『소리사냥』 중에서
이인선(시인, 문학평론가 )
김용언의 신간시집 『소리사냥』은 그가 세우고 가꾼 가평의 <사람의 마을>에서 보낸 사계四季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김용언이 만난 나무, 꽃, 인연을 껴안고 추는 표백된 영혼의 왈츠다. 허허로운 마음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추는 독무다.
춤은 승화를 이루어가는 미학의 과정이다. 특히 왈츠는 여유다. 김용언의 아래 시들은 인생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에 추는 관조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 춤사위는 선善과 악의 경계를 허물고 청량하다. 인생의 겨울에서 표백된 영혼으로 바라보는 예지의 춤사위는 순백하다.
1. 풍경소리처럼 서러운 봄의 왈츠
아래 시는 봄의 왈츠처럼, 풍경소리처럼, 서럽다. 아프지 않은 시는 없다. 아프지 않은 시인도 없다. 허리를 휘어 꺾여보지 않은 바람은, 꽃을 수정하지 못한다. 과실의 열매는 비바람과 햇빛에 살갗을 베이는 상처를 딛고, 육즙이 철철 흐르는 과일이 된다.
김용언의 아래 시 「나는 아프다」 는 시인으로 태어나서, 시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한 시인의 소리없는 절규다. 풍경소리처럼 서러운 봄의 왈츠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지나온 먼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회고록이다. 아래 시는 봄의 왈츠처럼 아픔을 수용하고 승화시켜 시인으로 태어난 천형을 수용하고 있다.
나는 아프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가는 허무 때문은 아니다
가시를 품고 태어나서 아픈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가시에 찔려 아픈 건 더더욱 아니다
시인이기 때문에 아프다
시를 품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프다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불어 아프고
눈비 오는 날은 눈비 때문에 아프다
바람 속에 시가 있고
눈비 속에 시가 있었다
사람의 숲에 서면 사람 냄새로 아프고
길 위에 서면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아 아프고
흐르는 물을 보면 흘러가는 게 보여서 아프다
삶 속에 시가 있고
길 위에 시가 있었다
시인이기 때문에 안 보일 게 보이고
시인이기 때문에 작은 소리도 들렸다
천형의 아픔이니 어찌 하랴
시인으로 태어난 운명
허나, 아플 만큼만 아팠으면 좋겠다
― 김용언, 「나는 아프다」 전문
‘시인이기 때문에 안 보일 게 보이고/ 시인이기 때문에 작은 소리도 들렸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자신이 가꾼 <사람의 마을>에서 사계를 견뎌본 시인은 안다.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떠나 보냈다. 다시 만나는 인생의 겨울 문턱에서 문득 깨닫는다. ‘시를 품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프다’고 고백한다. 시를 쓰는 것은 아픈 일이다. 몸도 아프다. 영혼도 아프다. 인관관계도 아프다고, 아팠다고 고백한다.
가평 <사람의 마을>은 청정 지역이다. 수천 평의 땅에 나무, 꽃, 야채를 기르며 풍요로운 생활을 하던 시인에게 바람과 비와 눈은 매일 만나는 대상이다. 햇살과 눈과 바람과 비는 생활을 좌우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불어 아프고/ 눈비 오는 날은 눈비 때문에 아프다// 바람 속에 시가 있고/ 눈비 속에 시가 있었다’(2연 1-2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바람이 불어서 아프고, 눈비가 와서 아프다고 한다. 감성적인 시인은 비와 바람과 눈을 좋아한다. 비와 눈과 바람은 시인의 감성을 요동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설익은 과일은 모른다. 봄날 바람이 거세게 불어나 꽃이 수정되어 열매가 열린다. 벌과 나비가 드나들어야 과일이 튼실하게 달린다. 햇살과 바람과 비와 눈은 축복이면서 재해다. 치열하게 산 시인의 마지막 고백은 ‘아프다’고 요약한다.
혼자 추는 봄의 왈츠는 뒤돌아보는 계절의 여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봄에 추는 왈츠는 상쾌하지만 수많은 봄의 퇴적은 아픈 계절로 요약된다.
아래 시는 「봄날의 언덕」 전문이다. 눈물의 봄 카타르시스를 만나보자.
술에 취하지 않고 어찌 봄 햇살을 만지랴
여인의 속삭임 같은 저 햇살을 어찌 감당하랴
뜰에 나서면 가슴을 달구고
창앞에 서면 불꽃같이 파르르 떠는 저
햇살
가슴 풀어헤치고 용기를 내도
복사꽃으로 피어오르는
어지럼증
어쩌면 좋으랴
꽃은 피는 듯 지고
초록은 흐드러지고
언덕 너머로
자지러지도록 아지랑이 피는데
난 꽃도 아니고 초록도 아니다
한 방울 눈물일 뿐이다
― 김용언, 「봄날의 언덕」 전문
시는 눈물의 원소로 만들어진 글자들의 왈츠다. 이별의 원천이 눈물이듯, 꽃잎은 이별을 준비하며 시의 판타지를 완성한다. 술과 꽃과 여인을 시인의 애락의 3대 요소라고 가정하여 보자. 꽃잎이 지고, 열매도 지고, 불꽃 같은 사랑도 지고, 남은 한 방울 눈물이 시인 자신이라고 김용언은 말한다.
‘난 꽃도 아니고 초록도 아니다/ 한 방울 눈물일 뿐이다’(4연 5-6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꽃잎보다 여린 시인의 감성의 축은 눈물이다. 모든 욕망을 덜어내고, 후회를 덜어내고, 미련을 덜어내고, 마지막 남는 것은 순수한 눈물 한 방울. 자신을 한 방울 눈물이라고 소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타인을 울게 할 사람이 아니다. 혼자 숨어서 운 약자며 피해자다. 세상을 힘들게 안고, 자신이 그 짐을 짊어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눈물은 카타르시스의 원천이다. 비애스럽지만 선의 의지를 실행한 자에게 주는 인생의 고귀한 훈장이다.
혼자 추는 김용언의 봄의 왈츠는 외롭지만 비탄스러운 춤은 아니다. 최소한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그 눈물은 황홀한 아름다움이다. 내가 울면 내가 정화된다.
신이 눈물을 하늘에서 흘릴 때, 세상의 산천초목은 생기를 얻고 성장한다. 김용언의 눈물 한 방울 같은 시가 세상을 정화시키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는지 질문해 본다.
2. 단단한 사유와 직관의 여름 왈츠
여름이라는 계절이 없다면 과일나무는 열매를 키우지 못한다. 김용언의 아래 시를 <단단한 사유와 직관의 여름 왈츠>라고 명명하는 이유다. 왈츠는 분위기가 경쾌하고 여유롭다. 관조의 미학이다. 김용언의 시도 틈새가 넓다. 왈츠 동작처럼 행간과 행간이 넓고, 짧고 경쾌하다.
분꽃은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다. 분홍, 노랑, 흰색, 주홍색이 어우러져 나팔소리처럼 요염한 색기를 사방으로 분사한다. 분꽃 씨앗을 받는다는 건, 다음 해에도 또 그 화려한 분꽃을 심고 감상하려는 욕망의 씨앗을 갈무리하는 행위다. 분꽃은 순박한 듯하면서도 화사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생의 뜨거운 여름날을 견딘 분꽃 씨앗의 단단한 사유와 직관의 현장을 들여다보자.
씨앗을 받는다
어찌 보면 눈[目] 같고
어찌 보면 입[口] 같고
어찌 보면 귀[耳] 같고
어찌 보면 심장 같아서 우주를 보려는 듯
무엇인가 들으려는 듯
무엇을 말하려는 듯 쿵쾅거리는 저 심장
손바닥에 올리면
와르르 와르르
우주 구르는 소리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는 기적 소리
― 김용언, 「분꽃 씨를 받으며」 전문
위의 시에서 보여주는 ‘분꽃 씨’의 이미지는 지혜의 씨앗이다. 또한 시인은 그 씨앗의 귀함을 알아본 귀인이다.
분꽃 씨앗은 ‘어찌보면 눈 같고, 어찌 보면 입 같고, 어찌 보면 귀 같고, 어찌 보면 심장 같’(1연 4행)다고 갈파하고 있다.
김용언 시인의 시의 눈과 마음도 스케일이 우주만큼 크다. 시인의 나무와 꽃에 대한 박학다식한 지식과 섬세한 감성의 만남이 이룬 역작이다. 나무 전문가인 김용언 시인이 본 분꽃 씨앗은 소우주의 모태를 수용한 존재다.
시인은 분꽃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굴려본다. 우주로 굴러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러 떠나는 ‘기적 소리’로 상상력이 확장된다. 시인의 공감각적 세계는 멀리 우주까지 넓은 세상을 껴안는다. 열린 우주관이다. 단단한 사유와 직관이 도드라진다.
3. 가을꽃자리를 반추하는, 추억의 가을 왈츠
시인은 계절을 앞서가기도 하고, 계절을 건너뛰기도 한다. 또한 계절의 향기에 풍덩 뛰어들어 꽃향기를 온몸에 물들이며 희락에 잠기기도 한다. 시인의 나이와 몸은 물리적인 나이를 더해 가지만, 시인의 감성은 젊고 명쾌하다.
아래 시는 <가을꽃자리를 반추하는, 추억의 가을 왈츠>라고 명명하였다. 그 이유는 인생을 지나고 난 시점에서 바라본 추억은 모두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유를 가지고 관조하는 세계는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어준다.
늙어 간다는 것은 ‘서운하다’는 감정이 자주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시점이다. 서운한 것이 많으면 지난한 세월을 많이 견딘 나이다. 뒤돌아보면 서운한 것이 참 많은 건 살아온 생이 억울하다는 증거다. 사실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참은, 주눅 든 시간의 그림자가 서운함이다. 아래 시 「나의 사계四季」 는 또 어떤 서운한 독무를 출지 살펴보자.
아무리 무어라 해도 서운하다
친구들은, 너는 여름 끝물쯤 될 거라는 얘기를 하고, 건
강검진에서 신체 나이를 체크하면 지난해까지 56세라
하지만, 석연치 않다.
거리에서 걸인을 만나면 측은해 보이고, 전철을 타자마자
빈자리를 찾는 중늙은이 아줌마를 보면 안쓰러워보이는 나
살아가는 인생을 사계四季로 본다면 나는 이미 골바람이
불 때쯤이라는 생각을 한다
신체적으로는 서서 양말 신기가 신통치 않고, 서슴없이
던지던 유머가 쑥스러워지고, 거리에 흘러가는 여인들을
보아도 흘러가는 물처럼 보인다
올해도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소리없이 떠나고 있다
산다는 것이 무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반짝 불이 들어왔다
가을꽃자리를 보니 그 여자가 입던 앞치마 같다
손때가 묻어 가슴이 찡한 앞치마
보랏빛으로 혹은 빛바랜 유행가 가사처럼 내 심장의
가장자리에 놓이는 가을꽃자리
― 김용언, 「나의 사계四季」 전문
시인이 늙은이로 전락하는 순간 시의 향기는 사라진다. 산다는 것이 설레고 반짝이는 호기심을 가질 때 시도 반짝인다. 빨강이나 다홍빛 열정은 아니더라도, 보랏빛 과꽃추억이나 미련의 꽃 한 송이 피우는 것이 시의 형상화 과정이다. 시는 젊어야, 연애기와 색기가 감돌아야 황홀하게 홀로 피어난다.
‘산다는 것이 무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반짝 불이 들어왔다’는 표현을 주목하여 보자. 여름꽃에 반할 나이가 지난 시인에게 ‘가을꽃자리’는 생의 진정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가을꽃자리를 보니 그 여자가 입던 앞치마 같다/ 손때가 묻어 가슴이 찡한 앞치마’를 입은 여인은 시인의 건축현장에서 밥을 하던 식당 아줌마일 수도 있다. 색깔이 바랜 철 지난 과꽃 같은 여자일 것이다.
‘보랏빛으로 혹은 빛바랜 유행가 가사처럼 내 심장의/ 가장자리에 놓이는 가을꽃자리’를 주목하여 보자. 주변인을 챙기던 김용언 시인의 기억의 실타래에서 생성된 추억의 한 장면을 소환한 시구라고 유추해 본다. 위의 시는 생의 한 가운데서, 결실의 가을에 반추하는 추억의 왈츠다.
4. 생의 얼룩을 지우는, 빈손으로 추는 겨울 왈츠
겨울남자는 겨울나무를 만났다. 겨울산과 겨울나무는 겨울남자에게 무엇이라고 소곤대며 생의 비밀을 털어놓았을까? 생의 가장 막바지에서 인간은 어떤 깨달음의 소리를 낼까?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종소리처럼 매달린 바람과 새의 울음소리’를 닮은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생의 얼룩을 지우는, 빈손으로 추는 겨울 왈츠>의 시간 속으로 틈입하여 보자.
겨울남자가 긴 그림자를 끌며 산에 올라서 겨울나무를
만났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종소리처럼 매달린 바람과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한눈을 파는 구
름을 바라본다
주먹을 펴도 빈손이고, 주먹을 움켜쥐어도 빈손이다
푸른 하늘을 움켜잡아도 모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고, 일그러진 바람만 손바닥에서 미끈거린다
나뭇가지를 건드리면 겨울남자의 허파에서 빠져나가는
숨소리가 난다
“바보 같은 놈”이라 외치니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나무가 겨울남자에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겨울은 동양화처럼 너그럽다
여유가 있어 좋다
잠시 쉬어 간다는 쉼표 같아 좋다
별빛이 나무 발등까지 내려앉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좋다
나무들이 옷을 벗고 있으니 평등해서 좋다
낙엽 진 숲에는 비밀을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좋다
겨울남자는 오늘도 헝클어진 눈동자를 빈 나무 가지에 매
달아 놓은 후 하산을 할 게다
― 김용언, 「겨울남자, 겨울나무」 전문
겨울남자가 추는 겨울 왈츠는 허무의 세계를 조우한 관조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다음 구절을 주목하여 보자.
겨울나무는 겨울남자에게 ‘바보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겨울나무가 만약에 ‘영악한 놈’이라거나 ‘비열한 놈’이라고 말했다고 가정하여 보자. 겨울남자의 생은 갑자기 값어치가 없는 허상의 생이 된다. ‘바보 같은 놈’이라는 말 속에는 반어적인 진정성이 있다. 착하게, 선하게, 어질게, 베풀면서, 자기 것 챙기지 못하면서, 아낌없이 주면서, 실속없이 살아온, 바보같이 살아온 시인의 생이 숨어 있다.
겨울산은 ‘동양화’ 같다. ‘여백’이 많다. 그래서 ‘너그럽다’. 겨울산은 ‘여유’가 있다. ‘쉼표’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니까, 진달래꽃은 또다시 필 거다. 기다림이라는 여유를 익히면 된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삶의 여유를 대신하는 공간이다. 겨울은 치열하게 산 자에게 주는 휴식의 공간이다.
‘별빛이 발등까지 내려온’ 겨울나무를 상상하여 보라. 별빛이 나무들의 발등을 적시는 별들의 군무를 상상하여 보라. 겨울이라서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잎이 무성하고 싱그러운 여름에는 별빛이 우거진 숲의 머리에만 비춘다. 겨울은 겨울이라서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나무들이 모두 옷을 벗으니 평등해서 좋다. 겨울산은 비밀이 없다. 골계미를 드러낸 겨울산은 가식도 거짓도 꾸밈도 없다. 아무 비밀도 없다. 온몸을 드러낸다. 부끄러운 치부도 모두 드러내어 보여준다.
김용언이 본 겨울산과 겨울나무는, 김용언이 추구하는 인생관이다. 겨울산은 황량하고, 부끄럽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대로 좋다. 김용언의 시는 왈츠처럼 부드럽다. 생의 부족한 부분과 슬픔의 내밀한 부분을 고발하지만, 부드럽게 그 가치를 모두 인정한다. 시의 밑바닥에는 인생을 관통하는 진실이 반짝인다.
‘겨울남자는 오늘도 헝클어진 눈동자를 빈 나무 가지에 매/ 달아 놓은 후 하산을 할 게다’(4연 1-2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헝클어진 눈동자’라는 표현이 압권이다. 차가운 겨울산에서 빈 나뭇가지에 헝클어진 눈동자를 매달아놓고 하산하는 겨울남자의 등이 시리다. ‘인생은 외롭다’는 유행가 가사같은 문장이 급박하게 시인의 심장박동수를 늘렸을 것이다.
김용언의 시는 슬픔과 과오, 사랑과 미움, 모두 껴안고 홀로 추는 <생의 얼룩을 지우는, 빈손으로 추는 겨울 왈츠>다. 그 춤은 홀로 고독하다. 그러나 나무와 숲과 바람과 별빛이 박자를 맞추어 준다. 그 춤사위는 겨울을 녹이는 해빙처럼, 밝음을 몰고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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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