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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 속의 여성과 여성안수 난제에 대한 성경적 고찰
Ⅰ. 서론
교회 안에서 여자의 위치에 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여자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질문은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에서 공적인 여자의 역할과 기능으로서 여성안수 문제에 관한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대하여 구약성경이나 복음서, 그리고 바울서신에 분명한 명시적 언급이 등장하지 않고, 오직 바울서신 네 곳에만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그 부분 또한 여성안수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으므로 그 해석을 놓고 오랜시간 여성안수 찬성과 반대로 대립되어 오고 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 합동측에서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게 합동측 내에서까지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은 성경에 여성안수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역해야할 남성과 여성이 심지어 견해의 차이로 인해 남성과 남성까지 확대된 여성안수 문제의 심각성은 갈수록 심해지는 대립구조를 통해 면밀히 드러나고 있다.
본문에서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이 어떻게 꾸준히 지속되어왔으며, 또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여성 안수에 대한 관련 구절을 성경적 관점에서 분석함으로 여성안수 난제 해결에 대한 성경적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기독교 역사 속의 여성
1. 초대 기독교 여성
여성에 대한 초대교부들의 견해는 당시 그레코 로마 사회의 가부장적 사고와 제도를 반영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 또는 남성 우월적 전통 속에서 여성은 죄악시되거나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초대교부들의 여성관도 예외는 아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은 서방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이다. 그는 여자를 향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악마의 출입구이다. 당신은 금지된 나무의 과일을 처음으로 딴 사람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린 최초의 사람이다. 당신은 악마도 감히 넘보지 못할 남자를 유혹해서 너무도 쉽게 남자, 즉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트는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엉뚱한 예를 든다.
그의[남자의] 턱수염은 남자의 표식이며 그가 틀림없이 남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턱수염]은 이브보다 더 오래된 것이며 [남자가 여자보다] 더욱 강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상징이다. 털이 있다는 것은 남자의 뛰어난 속성 중의 하나이다… 털이 있다는 것은 털이 없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더 건조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보다 더 털이 많고 더 따뜻한 피를 가지고 있으며 더욱 완벽하고 더욱 성숙하다.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남성에게 종속된다는 가부장적 사고를 초대 교부들이 지니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남녀평등을 시사하는 진술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자비와 그 결과로 따라오는 하늘의 은총은 성이나 나이나 사람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뉘어짐을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며, “모든 사람은 나이나 성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생각하고 느끼는 역량과 능력을 가지고 똑같이 태어났음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특히 자기 수행과 덕의 실천은 남녀에 관계없이 똑같이 행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남자와 여자의 덕은 같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의 하나님이 한분이시라면 주님도 또한 한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의 교회와 하나의 절제와 하나의 겸손이 있다. 음식도 공통된 것이며 결혼도 같은 멍에이다… 공통된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은총과 같은 구원을 받는다. 사랑과 훈련도 그들에게는 공통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이름은 남자나 여자에게 공통된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절제와 의,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덕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종이나 자유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왜냐하면 같은 본성은 하나의 같은 덕을 지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성서에 나오는 훌륭한 여성들, 예를 들면 미리암, 드보라, 훌다, 유딧, 에스더, 동정녀 마리아, 안나, 엘리자베스, 빌립의 딸들 등의 믿음과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여자들이 그들을 본받을 것을 권면했다. 특히 동정녀 마리아의 순종적 태도와 순결성은 크게 칭송을 받았고 나아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가 시작된 초기의 단계에서 여성의 활동은 비교적 활발했었으나 로마제국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조직화되면서 여성의 활동은 제약을 받기 시작했으며 교회의 법령들이 제정되어 여성의 직분과 역할을 제한했다. 자연히 여성의 활동은 위계질서의 규범이 강한 정통교회 안에서보다는 분파나 이단에서 더욱 활발했다. 2세기 후반부터 3세기 초반에 걸쳐 흥했던 예언운동인 몬타누스주의에는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 같은 여예언자들이 몬타누스의 동역자로서 활동했으며 몬타누스가 죽은 후 지도자로서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집례했다.
그라나 정통 교회의 교부들은 여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말씀을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하는 것을 맹렬히 비난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갈라디아서 3:28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의 구별 없이 모두가 하나”라는 말씀을 근거로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역할을 주장하였다. 교회는 여러 차례 회의를 소집하여 몬타누스를 정죄하였고 그 후 몬타누스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통교회는 예언을 경계하게 되었으며 특히 여성의 예언을 억제하였다.
순교와 수덕주의는 초대 기독교 여성들이 기존 사회 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두 개의 통로였다. 기독교는 네로 황제의 박해 이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승인을 받을 때까지 약 250년 동안 고난을 겪으면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고 그 중에는 많은 여신도들이 있었다. 로마 제국의 박해 하에 많은 여자 순교자들이 나왔다.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역에 퍼지게 된 저변에는 기독교 여성들의 적극적 선교활동과 헌신적인 봉사가 있었다. 초대 기독교 여성들은 특히 “그들의 신앙을 전파하는 특성”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역에 확산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비교적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제약에 매이지 않았으며 때때로 새로운 문화와 종교에 대해서 남자보다 더 개방적이었다. 여자들이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이어서 남편과 자녀, 그리고 가솔들이 개종하였고 또한 이웃에도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는 또 하나의 가정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굳게 결속하여 고난을 극복하였고 불안의 시대에 정신적, 물질적 안정을 갈구하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끌어 드리는 구심력을 갖게 되었다.
초대 기독교 여성들은 결코 가정주부나 어머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수동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때로는 남성들의 동역자로서 때로는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봉사와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간당하였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박해를 극복화고 승리하여 제국 전역에 전파되는 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 교부들도 깊은 신앙과 덕행으로 기독교의 발전에 기여한 여성 지도자들의 역할을 인식하고 높이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여성으로서 인정하기보다는 남성으로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취약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했다는 것이다. 초대 기독교 여성을 연구한 여성학자의 결론대로 “후기 제국의 거룩한 여성들은 실로 제국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교부들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2. 중세 기독교 여성
7세기부터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의 중세 시대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성기였다. 스콜라주의가 발전했으며 수도원 운동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여성을 죄악시하고 열등시하는 편견과 억압은 여전하였다. 여성은 교회와 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며, 여성의 타락과 불복종을 통제하기 위해서 아내를 구타해도 된다는 교회법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투르회의(567년)에서는 “여자는 남자를 유혹해서 죄짓게 했기 때문에 정죄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으며, 오세르회의(567년)에서는 “여자는 선천적으로 불결하다… 그러므로 성체를 맨손으로 받을 수 없고 생리(또는 임신) 중에는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교회법을 제정했다. 여성은 교회에서 찬송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음을 내는 내시(castrato)를 성가대원에 포함시켰다. 심지어 마콘회의(585년)에서는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감독들이 찬반 토론을 한 끝에 투포를 하여 과반수의 찬성으로 여자에게도 영혼은 있다고 결론짓기도 하였다.
여성 천대, 여성 혐오의 경향은 ‘마녀사냥’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했다. 마녀는 악마를 숭배하고 악마의 성적 파트너이며 마술과 마법으로 인간을 해치고 질병, 흉작, 천재지변 등 불행한 일들을 일으킨다고 여겨졌다. 수만 명의 무고한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잔인한 고문과 재판을 받고 처영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성(性)을 죄악시하면서 처녀성을 지킴으로써 여성이 성욕이나 죄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교회의 동정녀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불렸으며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과 순종의 덕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자연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이 발전했다. 마리아는 심판주인 그리스도와 인간의 중보자라고 여겨졌으며, 하늘에 올라 천상의 여왕이 되었다는 성모승천설, 수태될 때 마리아 또는 원죄를 깨끗이 씻음 받았다는 성모무흠수태설과 같은 교리가 형성되었다.
중세에는 많은 수녀원이 설립되었다. 기독교 여성들은 수녀원 생활을 통해 가부장적 제도로부터 벗어나서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많은 수녀회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베긴회(Beguines)이다. 베긴회는 서구 역사상 최초의 여성 운동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12세기 말 네델란드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베긴회의 여성들은 서약을 하거나 엄격한 규범이나 위계 질서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수녀원 등 일정한 거주 지역에 제한 받지 않고 활동해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병든 자들을 돌보며 지냈으며 또한 경건과 신비적 체험을 중시하면서 ‘사도적 삶’을 추구하였다. 교회의 위계 질서를 따르지 않고 개인의 신비적 체험을 중시하는 베긴회는 이단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스트라스부르의 왈도파(Waldensians), 프랑스 남부의 카타리파(Cathari), 후스 운동의 분파인 프라하의 타보르파(Taborites) 등에서는 여성의 활동이 활발하였으며 설교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종파들은 과격한 행동과 주장, 로마 교황의 권위 무시 등으로 인해 대부분 이단시되었다. 트렌트회의는 1563년 수녀원을 남자 수도원에 편입시키고 수녀원이 그대로 존속할 경우 지역 주교의 통제를 받도록 결정하였다.
중세의 뛰어난 기독교 여성들은 대부분 수녀였으며 경건한 생활, 헌친과 봉사, 신비적 체험을 가르침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중세 기독교 여성들은 초대 기독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사회 제도와 교회 권위주의의 억압 속에서 종속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 자리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수녀회 또는 여성 공동체를 형성하여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경직된 교회 체제와 교리에 매이지 않고 복음의 근본 정신인 사랑과 섬김을 실천했으며 특히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과 신비적 체험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삶의 기쁨을 찾았다. 그들이 체험하고 이해한 하나님은 권위를 지니고 지배하는 두려운 분이 아니라 애정으로 감싸고 돌보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한 그들의 삶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3. 종교개혁 기독교 여성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서신학 교수인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서양의 역사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교인들은 교회의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며 새로운 신앙과 구원의 길을 추구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은 결혼관도 변화시켰다. 개혁자들은 결혼을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로 보았으며 성(性)을 더 이상 죄악시하지 않았다.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성직자도 결혼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중세 시대와 마찬가지로 결혼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과 출산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결혼은 부부 사이의 영적 결합이라는 점이 강조되었으며, 부부는 서로 의무를 나누는 동반자 관계로서 부부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중세 교회는 부부의 별거만을 허용하였으나 종교개혁자들은 결혼을 교회의 성사에서 제외함으로써 이혼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여성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라는 표어를 내걸고 성서절대주의를 주장한 종교개혁자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숭배가 비성서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성모 마리아 신앙은 약화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여성을 더 이상 타락자나 유혹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며 조력자로서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루터 또한 여성을 죄악시하지 않았지만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으며, 여성의 역할을 출산과 자녀 양육, 남성에 대한 내조에 국한시켰다.
루터는 엉뚱하게도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를 들면서 여자의 역할을 가정에 국한시키고,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소명은 아내, 어머니, 가정주부라고 가르쳤다.
남자들은 넓은 어깨와 좁은 엉덩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은 좁은 어깨와 넓은 엉덩이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집에 머물러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창조되었다. 여자들은 앉기 편한 넓은 엉덩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집을 지키고 임신을 하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여성의 활동은 주로 집안 일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상류층에 있던 여성 중에는 소신껏 개혁 운동을 지지하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예를 들면, 아굴라 폰 그룸바크(Argula von Grumback, 1492-1563)는 루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카톨릭 측 적대자로부터 협박과 함께 “오만한 이브의 딸잉 이단적인 암캐이며 엄청난 사기꾼”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루터를 옹호했다.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의 누이인 나바르의 마제리트(Maguerite of Navarre, 1492-1549)는 카톨릭 교도이면서도 종교개혁 신학에 공감하고 또한 프랑스 내의 칼빈주의자들인 위그노파(Huguenots) 탄압에 반대하였다. 그녀의 딸인 알베르의 쟌느(Jeanne d' Albert, 1528-1572)는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를 만난 후 개신교 신앙을 따르겠다고 공포했다. 그녀는 칼빈의 가르침이 성서에 근거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위그노파를 지원하였다. 카톨릭 측은 쟌느가 악한 자들에게 잘못 이끌려서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 왕과 제후들에게 반역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낡은 종교를 고치려는 것이다… 나는 베자와 칼빈등이 성서를 따르는 한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 응수하면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프랑스 왕 루이 12세의 딸인 페라라의 르네(Rene of Ferrara, 1510-1575)는 마리제리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개신교를 옹호하게 되었다. 그녀의 궁전은 곧 개신교 신자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또한 개신교 설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르네는 칼빈과 거의 30년 동안 교우 관계를 맺었으며,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위그노파나 카톨릭 교도를 가리지 않고 자선사업을 펼쳤다.
잉글랜드의 앤 아스큐(Anne Askew, 1521-1546)는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인 죄로 당국에 체포되어 신앙을 바꿀 것을 협박과 함께 종용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미사에 다섯 번 참석하느니 차라리 성경 다섯 장을 읽겠다. 왜냐하면 성경은 나를 교화시키지만 미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면서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아스큐는 결국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준 믿음의 절개와 용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조이스 루이스(Joyce Lewes)도 카톨릭 교회의 미사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다가 투옥된 후 화형을 당했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인 만인사제설에 의하면 모든 평신도는 사제로서 기도와 복음 선포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었으며 설교, 성례 집전, 안수, 교회행정 등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개신교 목사의 아내가 된 스트라스부르의 카더린 젤(Katherine Zell, 1497-1562)은 종교개혁 운동을 따르는 사람들을 돌보고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따. 그녀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발언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 반발하였다.
당신들은 사도 바울이 여자들은 교회에서 조용히 하라고 한 말을 나에게 상기시키려고 하지만 나는 바로 같은 사도의 말, 즉 그리스도 안에는 더 이상 남자나 여자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겠다… 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은 세례 요한인 척하지도 않으며, 다윗을 책망한 나단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나는 단지 주인에게 경고한 발람의 나귀처럼 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남자의 설교직이나 사도직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도라는 생각 없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실을 전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되고 싶을 뿐이다.
카더린 젤은 자신의 발언과 행동이 교회의 평화를 깨뜨린다고 비난받자 이에 응수하였다.
내가 평화를 깨뜨리는 자라고?… 나는 감옥에 있는 사형수들을 방문했다. 때때로 삼일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나는 강단에 서 본 적은 없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어떤 목회자보다도 더 많이 애썼다. 이것이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인가?
수녀원장이었다가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개신교 목사와 결혼한 제네바의 마리 텐티에르(Marie Dentiere)는 『여성의 변호』라는 저서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람도 남자였으며, 잘못된 교리와 이단들을 만든 사람들도 남자였다고 지적하면서 여성의 쓰고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선한 여자들에게 은총을 주셔서 성서를 통해 거룩하고 선한 것을 계시하시는데도 그들이 감히 서로간에 쓰고 말하고 선포할 수 없다는 말인가?… 아! 그 여자들이 하는 일을 멈추게 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감춘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를 따르는 기독교 여성들은 새로운 수녀회를 조직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우르술라회, 동정녀 성모회, 사랑의 자매회 등이 있다. 이러한 여성 수도회들은 동정녀 생활을 고수하고, 교황과 상급 남성 신부에게 복종하면서 자선과 봉사 활동에 치중하였다. 트렌트회의(1545-1563년)에서는 중세 교회의 타락상 중 하나였던 사제나 수녀의 스캔들을 우려하여 수도원 외부의 활동을 강력하게 규제하였다.
종교개혁은 여성에게도 성서를 새롭게 보는 길을 제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또한 여성을 죄악시하던 전통적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회복시켰으며, 성과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남성에게 종속시켰으며 여성의 역할을 가정에 국한시켰다. 교회나 사회에서 여성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활동, 예를 들면 목회자, 설교자, 정치 지도자 등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의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은 19세기에나 이르러서 이루어지게 된다.
4. 근대 기독교 여성
종교개혁 이후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 개신교 내에는 형식적이고 경직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경건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다양한 신앙 운동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서도 기성 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전 시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영적, 도덕적인 면에서 취약하다고 생각되었으며, 여성이 배운다는 것은 쓸모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까지 여겨졌다. 이상적인 여성상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주부였으며, 여성에게는 투표권이나 공직 진출이 허락되지 않았다. 여성은 여전히 통제와 지배의 대상이었다.
결혼관에 나타난 남녀관계는 다소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의 목적은 출산이나 성욕 해소라기보다는 부부가 함께 사랑과 신뢰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며, 부부간의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적 관계라고 생각되었다. 17세기말부터 여성은 점차 영적, 도덕적인 면에서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여성도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여성들의 성경공부 모임이 조직되었으며 신학을 연구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지도하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가부장 제도의 높은 벽에 부딪히고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앤 허친슨(Anne Hutchinson, 1591-1643)은 메사추세츠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고 여성 성경공부 모임을 조직하여 이끌었다. 그녀는 예수에 의해 속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시민법이나 교회법이나 도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신자에게는 도덕률보다 은총의 경험이 더 중요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운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또한 성서나 교회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여성도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앤 허친슨은 불온한 모임으로 평화를 교란시킨 죄로 기소되었고 ‘사탄에게 넘어간 자’라는 죄목으로 파문 받고 추방되었다. 그녀는 북미대륙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퀘이커파는 사회급진주의자들로 여겨져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경건한 신앙 생활, 평화주의와 박애주의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의 평등권 획득과 여권신장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7세기에 나타난 여성 설교자들은 남성 성직자들의 경계와 압력으로 인해 기성교회가 아닌 소종파 운동에서 활동하였다.
18세기에 들어서서 기독교에는 죄와 구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복음주의가 일어났고 미국에서는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대각성운동은 여성 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여성으로 이루어진 성경공부 모임, 기도 모임 등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로드 아일랜드 뉴포트의 사라 오스본은 화이트필드가 그곳을 방문한 후 흑인들의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지도했다. 그러나 남녀가 함께 모여 토론하는 것과 흑인 노예들에게 평등의식을 고취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목사들은 그녀가 활동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사라 오스본은 자신이 신앙적인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명령에 의한 것이지 신학 교육이나 교회의 승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초기에 여성의 설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지만 목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여성을 모임의 지도자로 임명하고 여성의 설교와 성서해석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감리교에서는 다른 교파에 비해 여성의 설교와 안수가 빨리 이루어졌다. 18세기 말 시작된 자유의지침례교회는 여성 설교자와 선교사를 많이 배출하였다. 이로써 교회의 목회에서 괄목할만한 여성의 진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성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목회 활동은 그때까지도 남성 성직자의 감독이나 승인 하에 이루어졌으며, 소종파 운동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의 견제와 압력을 감내해야만 했다.
“19세기는 여성의 세기이다.”라는 빅터 휴고의 말대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이 증대된 시대였다. 자녀 교육과 교회 활동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으며 산업화의 진전으로 여성이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의 공적 발언권, 지도직 진출, 단체 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30~40년대에는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 여성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며 이 운동은 노예제폐지운동과 연계되어 진행되었다. 퀘이커교도인 사라그림케(Sarah Grimk, 1792-1873)와 루크레티아 모트(Lucretia Mott, 1793-1880)는 여성해방운동과 노예제폐지운동을 연계시킨 대표적인 여성들이다. 모트는 ‘미국여성반노예제도대회’(Anti-Slavery Convention of American Women)의 개최를 도왔으며, 1848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함께 세네카 폴스 대회(Seneca Falls Convention)를 개최하여 여성의 사회적, 종교적 권리와 상태에 대해 토의를 하고 여성의 권리 장전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미국 독립선언을 모델로 한 그 선언문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와 같은 인간의 절대적 진리를 똑같이 부여받았다… 인간의 역사는 남성들에 의한 여성의 권리 박탈이 반복되는 역사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교회에 받아들였으나 사도들의 권위를 내세워 목회에서 여성들을 배제하고 교회 일에 여성의 공식적 참여를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을 종속적인 위치에 놓았다.
세네카 폴스 대회는 미국 여성의 참정권 운동의 모체가 되었고 1920년에 여성의 선거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모트는 1866년부터 2년간 미국평등권협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19세기 초 일어난 제2차 대각성운동에서도 18세기의 대각성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여신도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여성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어머니회, 선교단체, 자선단체, 개혁단체들이 구성되었다. 1836년에 여집사협회가 결성되어 교육활동과 자선사업을 활발하게 벌였으며, 1861년에는 여성연합선교협회가 조직되어 선교기금을 모금하고 여선교사를 외국에 파송하여 선교, 교육, 의료사업을 추진하였다.
1903년 크리스챤 고울더라는 시카고의 한 의사는 인구 2만 명인 시카고 지역의 유흥업소를 조사한 결과 술집 272개, 술가게 85개, 마약실 7개, 도박장 8개, 불명예스러운집(사창가) 92개로 집계되었다고 개탄하면서 그 상황에서 여성의 역할이 필요함을 호소하였다:
오늘날은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여성의 힘을 필요로 하는 때이다. 삶의 사치로움을 포기하고 사회와 친구들을 등지고 이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는 남자들을 돕는 데 전념할 여자들이 필요하다. 많은 도시에서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구원할 유일한 희망과 가능성은 오직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그런 여자들에게 있다… 수만명의 여집사들이 도시나 시골에서 기독교의 사랑과 봉사를 위해 그들의 삶을 바칠 때가 온 것이다.
여성의 설교에 대한 논쟁은 19세기 후반에도 있었다. 여성의 설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늦게 조력자로서 창조되었으며 세상에 죄를 들여온 장본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티븐 노울턴이라는 사람은 “여성이 한 때[타락 전에]는 약간의 발언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세상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그녀를 침묵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은 생리, 임신 등의 신체적 특성상, 또한 가사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설교자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여성은 남성에 비해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 특히 신학 교육을 받기에 부적합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여성의 설교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설교의 소명을 받은 사람을 여성이라고 해서 교회가 저지할 수 없으며, 또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역할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성경에는 여성의 설교를 부정하는 내용도 있지만 그것은 특수한 시대와 장소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고, 성경에는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가르쳤고 사도들의 동역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특히 오순절 사건은 여성들이 설교를 할 수 있게 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19세기에 기독교 여성의 역할은 이전 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신장되었다. 많은 여성 조직체가 구성되었고 특히 인도주의적 구제사업이나 외국 선교활동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활약은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또한 소종파 운동에서의 여성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였다. 그러나 교회에서 여성의 공직 진출이나 목사 안수 등은 여전히 남성들이 쌓아 놓은 높은 장벽에 가로막혔다.
5. 현대 기독교 여성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활발해지고 특히 선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았고 남성 목회자의 지도와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여성들로 이루어진 연합 단체들은 남성이 지배하는 일반 단체로 합병되었으며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전보다 줄어들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성의 온전한 참여를 주장하는 일련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 여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조사 결과 아직도 여성은 주변인으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렇듯 열악한 지위와 대우를 직시하고 각성하게 된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 위원회 및 협의체를 구성하여 남녀차별을 타파하고 여성 해방을 추구하는 공동 대처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제도 속에 있는 성차별을 극복하고 여성 해방을 모색하는 여성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카톨릭 교인으로서 보스톤 대학 교수였던 메어리 댈리(Mary Daly)는 제2차 바티칸 회의에 참석했다가 수녀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보고 분노했다. 그녀는 즉시 『교회와 제2의 성』을 저술하여 교회 내에서 행해지는 남녀차별을 비판했다. 그 책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란 장에서 댈리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어느 신학자나 성서학자도 하나님이 문자적으로 남성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신학자나 설교자나 신자의 마음에는 분명하거나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대중 앞에서 하나님을 ‘그녀’라고 부른다면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당황해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녀’(she)와 ‘그것’(it)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여성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덜 모독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이 책이 출판된 후 보스톤 대학에서 파면되었고 더욱 급진적인 여성해방주의자가 되었다. 그녀는 가부장적 제도를 개혁하기보다는 거부할 것을 주장하면서, 여성이 교회 안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흑인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비밀결사인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안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힐난했다.
여성신학은 가부장제도 안에 있는 성차별과 남성독재주의를 비판하고 ‘포괄적 언어’와 개념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성서와 교리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표현한다.
Ⅲ. 여성안수에 관한 성경의 난해 구절 분석
1. 창세기 1장~3장 분석
창세기 1장은 인간창조에 대한 창세기 2장의 압축 개관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7절에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하셨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셨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다. 성경은 2:24의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을 통하여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인간창조 사건 이전 26절에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후에 28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복수를 사용하심으로 아담 혼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자 작정하셨으며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셨던 것이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를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의미한다. 결코 남자만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로 부르시지 않았다.
구약성서 학자인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구약성서를 재해석하면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고 속에서 당연시 되어왔던 고정관념에 맞서서 반론을 제기한다. 창세기 2장과 3장의 창조 이야기와 타락 이야기에 근거한 남녀차별적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남자보다 열등하다. 둘째,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자에게 종속된다. 셋째, 여자는 남자를 유혹해서 타락시켰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 여기서 ‘돕다’는 단어는 우선 ‘돕는 배필’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돕는 자’(ezer)는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18장 4절의 ‘엘리에셀’이란 말은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1) 만일 돕는 자라는 말이 열등한 위치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면 하나님이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배필’을 뜻하는 ‘케네그도’(kenegdo)라는 말은 동등한 위치의 동반자를 의미한다. 김정우 교수는 ‘돕다’라는 단어가 한쪽이 상대를 지원하며 그리고 또 상대는 그 지원을 받는 동반자이기에 여자는 땅을 다스리는 남자의 사역에 동참하는 동료이며 조력자라고 한다. 그리고 ‘배필’이라는 단어도 원래의 그 의미가 “앞”이라는 의미로서 배필의 일차적으로 “그의 앞에 있는 자”로 해석 할 수 있고, 조금 의역하면 “그와 맞은 편에 있는 자” 혹은 “그와 같은 자”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마치 여자가 인격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개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2)
여자가 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남자에게 종속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아담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는 흙에서 만들어 졌다. 만일 여자가 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남자에게 종속된다면 흙으로부터 나온 남자는 흙에게 종속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지어졌기 때문에 더 우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인간이 피조물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창조된다. 그러면 인간이 자연이나 동물보다 더 열등한 존재인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만든 분은 하나님이다. 남자가 여자의 창조에서 한 일은 자신의 몸으로 재료가 된 채 깊이 잠든 것밖에 없다. 그는 여자를 창조하는 일을 목격하지도 못했고 그 일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남자와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는 결코 남녀관계를 우월과 열등, 또는 지배와 종속이라는 도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성, 상호의존, 연대와 조화의 관계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고 하나님이 뜻하신 것이다.
다음으로 타락 이야기에서 남녀의 관계를 살펴보자. 타락 이야기에는 뱀과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뱀과 여자이고 남자는 대사가 한 마디도 없다. 뱀의 유혹을 받은 여자는 처음에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고민하던 끝에 결국 열매를 먹고 남자에게도 주어서 먹게 한다. 그렇게 여자는 뱀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떤가? 아담은 여자가 뱀에게 꼬임을 당하고 있었으나 옆에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여자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 먹는다. 여자의 범죄를 보고도 아담은 동일한 죄를 저지른 것이다. 또한 자신이 죄를 지었음에도 여자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담에게 먼저 죄를 물으셨나? 그렇게 따진다면 하나님은 가장 먼저 뱀에게 물었어야 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범죄한 아담부터 하와, 뱀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질문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때 뱀부터 시작하여 여자, 아담 순으로 벌하심을 통해 증명되어 진다.
하나님은 두 사람에게 벌을 내리신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도 달라진다. 타락 이전에 둘의 관계는 동등했고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제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짓는다(창3:2).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관계로 조화를 이루던 창조질서가 깨어지고 지배와 억압의 타락구조가 나타난다.
아담은 타락전에 하와의 이름을 짓지 않는다. 타락전 여자라는 말은 이름이 아니라 인식이다. 그것은 이부분에서만 이름이라는 명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히브리어로 ‘남자’는 ‘이쉬’, ‘여자’는 ‘이샤’로 두 단어가 유사하다는 것은 이것을 증명해 준다.3)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담이 ‘하와’라 이름 지어진 것은 타락 후의 일이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여자의 이름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며 선하고 완벽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어지게 된 것이지 하나님의 창조 의도가 아니였다. 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의 암수 창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시고 왜 인간들의 남자와 여자 창조만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록하셨을까? 그것은 그만큼 남자와 여자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와 여자를 각각 창조하였음을 인간 창조에 대한 언급의 시작부터 기록해 놓으신 것이다.
창세기의 창조와 타락 이야기는 결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에 대해 지배권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남성의 여성 지배나 노동의 수고, 해산의 고통은 창조질서가 깨어진 타락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차별적인 생각이나 제도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했던 창조의지와는 다른 비정상적인 것이다.4)
2. 고린도전서 11:2~16 분석
모리스에 의하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목적은 첫째는 고린도 교회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었고, 둘째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고, 셋째는 교리적인 가르침으로서 특히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었다.
본문의 문맥을 보다 자세히 살펴 보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와 ‘성만찬의 질서’ 문제를 전후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단락은 당시 고린도 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주요한 문제들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당면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교훈으로 ‘덕을 세우는 원리’(8:1; 10:23)와 ‘자유함의 원리’(8:8)를 가르친다. 이 때, 바울은 덕을 세우고, 복음의 진보를 이루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원리를 주장한다.
본문의 뒤에 위치하는 성만찬에 대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거기에 참여할 ‘자유’가 있으나 스스로 자신을 분별하여 돌아봄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참여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가르침은 ‘덕’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성만찬에 참여할 ‘자유’가 남용되고 있음을 보았고, 그 위험성을 지적하여 경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11:32). 그리하여 일반적 원칙 아래서 자유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경건을 위한 관습을 세우며 임시적 원칙 아래서 자유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임시적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바울이 전하여 준 유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3절부터 16절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남자와 그리스도,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와 머리에 두건을 써야하는 적용의 문제가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3절의 ‘머리(케팔레)’의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케펠레’를 ‘권위’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근원’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본문의 의미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먼저 ‘머리’를 ‘권위’로 해석하여 종속적인 관계로 번역한다면 ‘모든 남자의 지배자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지배자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지배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가 되며 이것은 구조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11절의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과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삼위일체 관계를 종속적으로 보도록 만들기 때문에 불가능한 논리이다.
반면 ‘머리’를 ‘원천’으로 해석하여 출처로 번역한다면 ‘모든 남자는 그리스도에게서 출생했으며, 여자는 남자에게서 출생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출생했다.’는 의미가 되며 이것은 ‘모든 남자-그리스도’, ‘한 여자-그 남자’, ‘그리스도-하나님’의 순서로 창조의 연대기적 순서를 나타내며 9절의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말씀과도 의미상 조화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머리’는 출생에 관하여 이야기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바울은 10절에서 여자가 자신의 머리에 대해 가지는 스스로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11절에서 접속사 ‘플렌(nevertheless)’을 통하여 반전을 시도한다. 또한 11절을 강조하기 위하여 12절의 시작을 접속사 ‘휘페르(just as)’와 접속사 ‘가르(동격)’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11, 12절에서 남자와 여자의 상호의존성과 동등성을 다룬다.
12절에서 주목할 것은 전치사 ‘에크(from)’와 ‘디아(through)’의 사용이다. 바울은 ‘남자에게서’와 ‘하나님에게서’는 출처와 기원을 의미하는 ‘에크’를 ‘여자로 말미암아’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디아’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창조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잠들어 있었으므로 여자의 창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반면에 여자의 경우 남자가 여자를 통하여 태어났다고 함으로써 여자가 남자의 출생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바울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머리에 두건을 쓰는 것과 긴 머리 모양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결코 여자에게만 머리에 두건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여자의 긴 머리를 머리덮개로 가리는 것이 남자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에 머리에 두건을 쓰기를 좋아하던 남자들에게 머리에 쓴 두건을 벗으라고 하고, 긴 머리를 하고 다니던 남자들에게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다.(4, 14절)
쉬레이너는 7절에 있어서 여자의 머리 덮개에 대하여 ‘남자가 머리, 즉 권위이기 때문에 머리덮개를 함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주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여자가 머리 덮개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머리, 즉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므로 남자도 머리에 덮개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도 머리에 덮개를 함을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논리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여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한, 남자의 영광’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13절에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크리나테)’를 사용한다. ‘판단하라’는 바울서신에서 로마서 14:13과 고린도전서 10:15에 단 두차례 나타난다. 전자에서는 식물로 인하여 형제가 넘어지지 않도록 자유함을 양보하여 덕을 세우라는 권면 속에 등장하고, 후자에서는 우상숭배로부터 구별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바울은 일차적으로, 당시의 관습 하에서 머리에 두건을 쓰라고 함으로 기도하는 자의 덕과 거룩함을 존중하고, 우상 숭배 행위와 예배를 구별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유전으로서 복음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여 여자의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주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독특한 상황에 기초하여 융통성(덕)과 일관성(자유)의 원리를 모두 적용하는 것이다.
칼빈은 이부분의 주석을 ‘좋은 법이 나쁜 관습 때문에 생긴다’라는 옛 속담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자들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공식 예배에 나타나는 것은 부적당한 일이며, 또 한편 남자들이 머리에 무엇을 쓴 채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이 부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칼빈은 이 부분의 해석에 대해 갈라디아서 3:28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어려움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해결점은 두 구절의 문맥에 따라서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영적 나라에 대하여 말하고 있을 때는 남녀의 구별을 두지 않는다. 영적 나라에서는 외적인 특징들은 중요하지 않으며, 또 별로 그런 것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육신적인 어떤 조건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의 어떤 육적인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영적인 것에만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종’이나 ‘자주자’ 사이의 차이점까지도 심지어는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칼빈은 4절의 주석 마지막에 이 부분을 요약하는데 유일한 지도 원리는 토 프레폰, 곧 적당함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칼빈이 이렇게 난해함을 표현한 이유는 칼빈이 바울에게 충실하려고 하면서도 고정관념을 뛰어 넘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우선 칼빈은 바울의 지론이 변할 수도 없고 가감할 수도 없는 교회적인 불변의 것이라고는 보지 아니한다. 오히려 바울의 견해는 시공에 의해 제한을 받는 지역의 문화적인 전통에 기인함을 시사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이러한 전통은 교회의 형편에 따라 유동적이지 고정된 원리는 아님이 분명하다.
3. 고린도전서 14:34~35 분석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충만하였다(1:7). 그래서 공적인 예배에서 “다 방언으로” 말하려고 하였고(14:23), “다 예언을” 하려고 하였다(14:24). 이것은 어린아이 신앙이다(3:1-2; 13:11). 그래서 바울은 14:26에서부터 사람과 교회에 덕을 세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질서와 절제로 특징 지워지는 덕의 원리를 통해 개개인의 은사 사용의 자유를 제한하여야 했다.
바울은 찬송시, 가르침, 계시, 방언, 통역과 같은 모든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며, 그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은사 사용을 질서 있게 하여 덕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27절에서 공적 예배 가운데서 방언이 때때로 절제되어야 하며, 질서대로 해야함을 이야기한다. “차서를 따라”라는 표현은 분명히 무질서한 습관을 바로잡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단지, 잠정적으로 침묵을 유지하라는 교훈이다. 이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는 표현과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다. 이는 통역함이 없는 방언을 공적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행할 경우, 그 뜻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는 상태에서 방언하는 자가 계속 큰 소리로 방언을 하면, 교회의 예배가 소란스러워지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잠잠하라”라는 표현으로 제지를 하고 있다. 여기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나 차별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은 30절에서 “잠잠하라”는 표현을 두 번째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때로는 예언도 교회 예배의 질서를 위하여 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11:32). 구체적으로 말하면, 먼저 예언하던 자는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14:32). 여기에 남자와 여자, 종과 주인,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그 어떤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질서를 존중해야 하는 덕의 원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의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화평의 하나님”을 전제로 삼고 있다. “화평”을 강조하는 이것은 바울이 지금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하나임을 몸의 유비로서 설득해 온 것과 일맥상통한다(고전6:15; 10:17; 12:12-27). 그러면서 34절에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표현으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절대금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예배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오히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바울의 침묵명령은 14:3의 “권면하고 안위하는 것”과 14:24의 “책망과 판단”하는 것, 그리고 29절의 “분별”하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여자들이 무분별하게 남자와 남편을 분별하고, 권면하고, 책망과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남자보다 여자로 인하여 예배의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하였다. 아마도 그녀들에게 성령의 역사와 은사가 강하게 임하여서 영적인 교만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4:6; 11:39).
일반적으로 남자에 비하여 배움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여자들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을 것이고, 이는 질문공세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고대 회당에서 여자가 공적인 예배 중에 말하는 것은 금지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여자들의 영적 교만으로 남자들의 권위와 설자리를 빼앗아버렸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문화적 관습 속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바울의 명령이 남자들에게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표현이 선결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여자 침묵 명령이 비바울적인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여자들이 일으킨 혼란을 잠재우고, 덕스러운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한 강력한 처방을 하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이는 “잠잠하라”라는 언급 뒤에 율법에 호소하면서 “오직 복종하라”라는 강조적인 용법에도 부합된다. 그렇게 볼 때에 지금 바울은 세 부류의 사람들로서 “방언을 하는자”와 “예언을 하는 자” 그리고 “교회 안의 무질서한 여자들”을 상대로 각각 “잠잠하라”라고 권면하는 가운데 여자의 교만을 약화시키고 침묵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교훈을 율법에 호소하여 말하고, 이어서 관습에 의존하여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라고 강한 어조로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은 결코 여자의 사역을 완전히 제한하는 영구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이는 “잠잠하라”라는 명령이 방언과 예언에 관한 교훈에서도 같은 동사로 사용되어 모두 세 번 등장하는 것을 통해서 현저히 나타난다.
보다 더 중요한 사항으로 “복종하라”라는 명령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해밀턴은 복종의 대상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경우라고 지적하였다. 35절의 남편을 복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 바울은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 예배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에반스의 주장에 의하면, 구약의 율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남성에 대한 복종으로 해석할 경우 과부들과 처녀들, 그리고 불신자 남편을 둔 경우에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더욱이, 남편을 복종의 대상으로 볼 경우, 34절의 “여자”를 “아내”로 번역해야 하는데, 이것은 공적 예배를 말하는 부분에서 상황이나 문맥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로 번역할 경우, 바울의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강경한 명령은 아내들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명령이 된다. 따라서 이 때의 대상은 33절의 “화평의 하나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헤밀턴의 주장처럼, “율법”은 시편 37:7의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라는 명령으로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70인역은 하나님 앞에 잠잠하라는 시편의 세 군데 표현을 “자신을 복종시킨다”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단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본문에서 바울은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바울은 일반적 원칙이자 구조적인 측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다.
율법에 호소하였던 바울은 이어서 관습에 호소하여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아이스크로스(부끄러운)’는 고린도전서 11:6과 에베소서 5:12에서만 등장한다. 여기에서 모두 관습과 본성에 의존하고 있다. 여자는 설령 예배 중에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는 것이 관습을 통해서 볼 때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고 예배 중에 손을 들고 질문공세를 하거나 예언하는 것에 끼어드는 것은 예배의 거룩함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관습에도 어긋나는 덕스럽지 못한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주의 만찬을 악용하던 자들에게 “집에서 먹어야 한다”라고 교훈하던 것과 같다(고전11:22, 34). 여기서 바울은 결코 여자들의 배움의 열정을 문제시하거나, 배움의 열심을 버리라고 하거나, 배움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덕을 중시하여 질문해야할 곳을 알려주고 있으며, 상황을 고려하여 예배 중에는 잠잠히 예언과 방언 통역함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즉, 바울은 여성의 무질서를 계속 바로잡고 있다.
칼빈은 이 본문에 대해 “ 곧 만일 그것들이 주님의 명령이라면, 그때 그것들이 준수되어야 하며, 인간의 양심에 묶여져야 할 강제성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나 그 이외의 곳에서 외적인 일들을 배열하는 방법을 그가 추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 경외를 취급하는 것과 같이 신성불가침의 법률이 되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유용한 형태이며, 또 전혀 무시되지 않는 것이었다. ”
칼빈은 이부분을 기독교강요 4권 10장 29절에서 정당한 교회법들의 실례로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경우-즉, 호동을 제거하는 일-에 해당하는 실례들이 바울에게서 나타난다. 곧, 주의 성찬을 속된 주연과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과(고전 11:21-22), 또한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공적인 자리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고전 11:5). 그리고 일상적으로 행하는 여러 가지 다른 실례들도 있다. 예를 들면, 기도할 때에 머리에 쓴 것을 벗고 무릎을 꿇는 것, 주의 성례들을 소홀히 시행하지 않고 위엄을 유지하며 시행하는 것,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일을 품위 있게 시행하는 것 등 이런 유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경우에 속하는 사항들로는 기도 시간과 설교 시간, 그리고 성례의 시간들을 정해 놓는 일, 설교 시에 조용하고 침묵을 지키며 정해진 장소에서 행하는 일, 함께 찬송을 부르는 일, 주의 성찬을 정해진 날짜에 시행하는 일, 여자가 교회에서 가르치지 못하도록 바울이 금지한 사실(고전 14:34)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31절에서 정당한 교회법들의 시행지침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독교인의 ‘자유’를 언급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치게 세심하고 경계를 기울여야 한다면, 거기에 어떻게 양심의 자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규례들이 완전히 고정된 영구한 볍령들이 아니고, 인간의 연약함을 위한 외형적인 기본 법칙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매우 분명해질 것이다. … 그렇다면 무엇인가? 신앙이 여자의 머리 위에 덮는 천에 달려 있기 때문에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바깥에 나가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인가?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는 바울의 명령이 그야말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범하면 엄청난 과실이 되는 것인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만일 어떤 여자가 이웃을 돕느라고 너무 황급한 나머지 도저히 머리에 천을 쓸 여유가 없을 경우를 당했다면, 그때에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뛰어간다 해도 그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잠잠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적절한 곳이 있는가 하면, 여자가 말을 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적절한 장소도 있는 법이다.
결국 칼빈의 주장은 32절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는다.
우리 스스로 영구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의 규례들의 용도와 목적 전체가 바로 교회를 세우는 데 있음을 주지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가 필요로 할 경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어떤 규례들을 변경할 수도 있고, 과거에 시행하던 규례들은 폐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상황에서는 불경하거나 부적절한 것이 아닌 어떤 특정한 의식들을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대로 폐기하는 일이 합당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이 시대가 증거해 주고 있다. 과거 시대의 우매 무지함이 얼마나 심했던지, 지금까지도 교회들이 부패한 생각과 완악한 의도를 갖고서 의식들을 고집해오고 있어서, 비록 과거에 선한 이유로 제정되었고 또한 그 자체로서는 불경한 점이 드러나지 않는 의식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그 끔찍한 미신들을 깨끗이 척결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4. 디모데전서 2:9~15 분석
본문은 A(모든 사람: 복수)-B(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 특정인)-A?(모든 사람: 복수)-A?(여자들: 복수)-B?(어떤 여자: 특정인)-A??(여자들: 복수)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본문에서 바울은 신학적 근거로서 창조순서와 타락사건에 근거하여 여성의 공적사역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9절은 복수로 표현된 여자들에 관한 교훈으로 부사 ‘호사우토수(이와 같이)’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똑같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바울이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대하면서,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기도하기를 원하였음을 보여준다. 키너는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2:1-2, 2:10의 문맥을 통하여 설명하면서 바울이 남자와 여자의 공적인 기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덴은 2:1-2와 2:8-15가 “공적인 기도와 예배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어서 남성과 여성의 기도에 대한 보다 나은 태도에 관하여 가르친다”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기도하는 남자들의 문제가 분쟁과 다툼이었다면, 기도하는 여자들의 문제는 옷과 머리모양, 장신구들로서 복장과 관련된 것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 두가지를 모두 바로잡고 있다. 숄러는 실제로 여자들에 대한 금지는 2:9의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라는 언급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언급은 2:8의 남자에 대한 교훈에서도 나타난다. 즉, 바울의 금지명령은 2:8-12에서 남자들(8절)과 여자들(9-10절)과 어떤 한 여자(11-12)에게 각각 주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일 헐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영구적인 가르침으로 본다면, 남자들은 두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하며, 여자들은 머리에 파마를 해서도 안되고, 추운 겨울 몸을 따스하게 하기 위하여 오늘날 보편적으로 널리 공급된 웃을 사 입어도 안되고, 결혼을 기념하기 위하여 결혼반지도 끼어서도 안된다. 즉, 하나님의 풍요하심이 가져다 준 현대문화의 모든 풍성한 요소들을 즉각 제거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2:9-10에 언급된 여자들에 대한 교훈과 2:11-12에 언급한 한 여자에 대한 교훈을 영구적인 명령으로 보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본문에서 한 여자의 해산함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고통 받는 모든 여성을 구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는 하와를 주어로 하는 ‘소조(save)’라는 단어가 단수 ‘소데세타이(will be saved)’로 사용되어 하와의 구원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받을 수 있다. 이렇게 바울은 하와의 구원받음에서 모든 여성의 영적인 구원과 더불어 사회적인 차별로부터의 구원을 내다본 듯하다. 즉, 여자는 성경을 배우고, 연구하여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구원에 이르러 교사의 사역을 다시금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11절의 명령은 1장의 배경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자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언급되었다. 당시에 거짓 교훈을 가르치며 남자를 주관하던 영향력 있는 어떤 한 여자에게 배움을 지시하는 바울의 강한 명령은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거짓 가르침에 꼬임을 받아 그릇된 길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울은 여성에게 공적인 예배에서 기도를 하도록 허락하였고(고전11:5, 13), 수많은 여자 지도자들을 세웠다. 디모데에게 어머니의 가르침을 상기시키기도 한다(딤후 3:14-15). 디도서에서는 늙은 여성 지도자들에게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하였다(딛 2:3-4). 사도행전 21:9에서 빌립집사의 처녀인 네 딸들을 예언자요 선지자들로 인정하여 여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 주관하는 것을 박탈하면서 격앙된 어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헬라어로 본문을 “남자 위에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KJV: "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이라는 의미로 읽을 때에 더욱 확연히 나타난다. 또한 2:11, 12에서 “일절”, “종용히”, “오직”이라는 표현과 2:13, 14의 변형된 그리고 무리한 구약 인용을 보라. 이것은 바울이 어떤 한 여자의 잘못된 가르침과 그릇된 영향력을 제지하여야 한다는 강한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 그녀에게 가르침을 금지한 것은 결코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크뢰거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녀가 거짓 교훈과 남자위에 군림하려는 부적절한 권위적인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 관한 차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로 인하여 나타난 분쟁과 미혹에 빠진 여자, 그리고 남자 위에 군림하려는 독선적인 어떤 여자의 태도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렌쯔와 키예스보가 “간단히 말해서, 그는 그녀들의 선생들이었던 남자들 위에 부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그녀들을 금지한다.”라고 내린 결론은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것은 1장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거짓 교훈에 대한 언급과 연관해서 생각할 때에 더욱 분명해진다(딤전 1:3, 4, 6, 7, 20).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에베소 교회에서 창세기 3:20에 호소하여 “여자가 남자의 근원”이라고 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래서 창조기사의 일부분을 취하여 그렇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목회적인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에베소 교회의 영향력 있는 어떤 한 여성이 하와처럼 거짓 유혹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들을 유혹하는 거짓 교훈을 경계하려는 목적으로 창조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영향력 있는 어떤 한 여자 지도자에게 교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여자는 1장의 거짓 교훈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1:3, 4), “다른 교훈”(1:3)으로서 “신화와 족보”(1:4)와 관련된 “헛된 말에 빠져”(1:6)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미혹 받은 이 여자의 가르침을 중지시키고(2:12), 그와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성경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면서(2:11), “진리를 아는데 이르러”(2:4)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말한다(2:4). 그러므로 바울이 남자가 여자보다 권위와 지배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견해는 본문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다. 또한, 어떤 한 여자에게 금지된 교사와 리더쉽의 제지를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일반적인 명령으로 보편화시키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키너의 다음과 같은 결론은 주목할 만하다: “만일, 바울이 어떤 의미에서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여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의 원리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없는 사름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키너의 주장을 개연성 있게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바울이 여성 사역과 여성 안수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여자 지도자로 세움 받는 그녀의 자격을 중시하고 있으며, 그 대상에 따라 때로는 동역자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Ⅳ.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와 역할
1. 구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와 역할
이스라엘의 신정제에서 여성은 사실상 고대 근동의 문화 유형에서는 독특하게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는 히브리 사회에서 여선지자(왕하 22:14; 6:14), 사사(삿 4:4), 심지어 여왕(비록 왕하 11:3에서는 사악한 침해자로 나타나지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직에 다 참여하고 있었다.
여왕 아달랴는 사악한 침해자이긴 하지만 성경의 기록이 여자의 신분으로 왕이 된 것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한 통치자로서 책망하고 있음을 통해 성경은 공적 사역에 남녀의 구분을 두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여선지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녀는 홍해를 건넜을 때 노래를 불렀으며 아론과 더불어 모세를 시기할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출 15장; 민 12장)
사사시대에 부름 받은 여선지자 드보라는 랍비돗의 아내로 여선지자의 역할과 사사의 역할 그리고 예언자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였다. 그녀는 종려나무 아래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재판하였으며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지시하는 리더쉽도 발휘한다. 뿐만아니라 드보라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바락의 모습을 통해서 드보라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알 수 있다.
여선지자 훌다는 제사장 힐기야와 아기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요시아왕의 명령을 받고 여호와의 말씀을 물었던 선지자이다. 이것은 훌다의 능력이 제사장보다도 뛰어났음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조금의 망설임없이 훌다를 찾아가도록 지시한 요시아왕과 자연스럽게 그 명령에 순종하여 훌다를 찾아가는 힐기야등을 통해 훌다에 대한 공적지지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여리고 두 정탐꾼을 숨겨 줌으로 가족을 구원한 라합과 야빈을 죽인 야엘과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등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셨던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신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와 역할
예수님의 주변에 모인 그룹 내에서도 지도적 역할을 담당한 이들은 남성들, 특히 12제자였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보다 광범위하게 보면 랍비들의 선례에 따른 예상과 달리 그들이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혈연 가족을 제자 그룹과 대비하실 때도 제자 집단은 “나의 모친과 동생들”이라는 말로 묘사되며 집단의 구성원 내용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마12:48~50; 막3:33~35; 눅8:19~21). 이 “자매들” 가운데 일부가 누가복음 8장 1~3절에서 거명된다. 놀라운 것은,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이 물질적 후원자로 묘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2제자처럼 “예수님과 함께” 다닌 여행 동반자들로 기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여성들과 친분을 맺었으며 그들을 독자적 가치와 인격을 지닌 진정한 사람으로 존대하셨다. 여자들은 주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경우 여성들이 한 사람도 12제자 가운데 포함되지 않은 것을 놀라운 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에 관해서 쉽게 답변할 수 있다. 즉 12제자의 선택은 (베드로를 교회가 그 위에 서는 반석이라고 호칭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영구적 가치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선언이 아니라 역사적인 한시적 장치였다는 것이다. 당대의 문화적 상황에서 남성들이 예수님 주변의 내부 집단을 형성한 것은 아마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 8:1-3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그 내부집단은 실제로 여성들(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한 여성들)이 내포된 보다 광범위한 동반자 집단과 그리 날카롭게 구분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사역이 예루살렘에서 절정에 달하였을 때 그의 측근자들 가운데 여성들이 담당한 중요한 역할은 아주 분명해졌다. 남성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을 때 십자가 곁에 남아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의 시신매장을 목도하며 장례 의식에 필요한 것을 조달한 이들은 여성들이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또한 그의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 될 수 있었다. 여성을 법적인 정당한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에서, 빈 무덤을 목격하고 남성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도록 부탁받은 이들은 여성들이었다(유대인 남성들은 처음에 그들의 말에 대해 거부적인 태도를 보였다, 눅 24:10~11). 여성들에 대한 유대인의 편견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여성들의 지도자 역할 배제 관심을 총체적으로 역전시켜 놓는 그런 기록이 복음서에 담겨져 있다고 보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복음서들에는 그러한 역전 현상을 싹 틔울 만한 어떤 씨앗들이 담겨져 있다.
로마서 16:1-2에서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에 대해서 희랍어 원문에 Diakonos로 되어 있다. 뵈뵈는 바울이나 다른 남자 사도들처럼 종(Servant), 사역자(Minister), 선교자(Missionary) 등으로 번역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봉사하는 여교우(공동번역)나 일꾼 또는 집사로 번역되고 있다.
또한 로마서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에서 희랍어 원문에 의하면 유니아는 사도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과정에서 평신도로 번역되거나 또는 그 성이 남자로 바뀌어 번역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브리스길라와 루디아는 신약에서 전파사역을 감당했던 여성도라 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 3:28 말씀은“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주자”에 “남자나 여자 없이”를 덧붙이고 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6-30의 말씀이 양성간의 불평등을 암시하지 않으며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파트너로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족보에 의도적으로 여성의 이름을 기입한 것과 여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에서 더욱 확증되어 진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고 그녀를 가르치시며 그녀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요4장) 뿐만 아니라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을 예언적 행동으로 말씀하시며 기념하라고 명하시고 십팔년 동안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에게는 ‘아브라함의 딸’의 칭호를 사용하셨다.
예루살렘 탈무드의 “토라의 말씀을 불에 태울지언정 여자에게 주지는 말라”(예루살렘 탈무드, Sotah 10a)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을 가르치심으로 예수님의 여성관이 그 당시 관습과 다름을 명백히 나타내신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하였을 때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도 같이 있었다는 것을(행 1:14) 통하여 더욱 확증되어 진다.
Ⅴ. 결론
초기 한국장로교회는 공식적으로 여성안수를 금지하였으나 여선교사와 여전도인으로 사역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허용하였고 지금은 오히려 많은 여선교사들과 여전도인들을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여성안수의 필요성은 일선 목회현장에서 남성 목회자에 의해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 되었다. 그리고 여성안수 허락에 대한 본격적인 정치적 요구는 여성들 스스로의 요청으로 촉발되었다.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 안에서 진행된 여성안수에 관한 신학적 논의는 지금까지 찬성과 반대라는 두 가지 입장으로 양분되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볼 때, 다소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양분된 듯이 보이는 여성안수에 관한 신학적 논의는 심도 있고 포괄적인 연구를 통하여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여성 안수에 대한 복음주의자들 간의 찬성과 반대로 대립되는 두 가지 상반적인 결론은 나름대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정당한 적용이라 간주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견해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해석과 적용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하는 편에서는 남녀 역할에 하나님이 주신 영구적 차이가 있다고 암시하며, 그리고 여성들의 가르침과 권위 행사를 배제하는 신약성경의 일부 구절들과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찬성하는 편에서는 성경의 보다 광범위한 패턴에 주의를 기울이고 1세기 교회 상황을 위한 사도적 규범을 그와 매우 다른 현대 교회 현장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합동측은 강력한 보수를 주장하며 성경해석에 있어서 일말의 고민과 논리적 사고없이 찬성을 주장하는 편에게 강력한 페미니스트로 규정하여 극단적으로 몰아세우며 무조건인 반대 행위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덕법인지 시민법인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찬성하는 편에게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를 달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며 토론보다는 싸움으로 의식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성경은 무오하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성경은 여러 상황과 성경전체를 바라보며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 여성안수의 문제는 성경의 난제 중 하나이다. 따라서 어떤 해석이 더 성경적인지 좀 더 신중하고, 좀 더 객관적으로 고민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자신의 주관과 편견으로 인하여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여성안수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육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관련지어서 영적인 부분 쪽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구약과 신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성별과 신분, 나이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사용하심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선교지나 목회현장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여성안수의 문제를 해석함에 있어서 우리는 육적인 부분보다는 영적인 부분을 염두하며 해석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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