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으로 새로운 구원을 얻었어요”
서울 강남 요지에 빌딩 몇 채를 가지고 있던 사람.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었던 사람. 하지만 지금은 경북 문경에서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모든 욕심 다 내려놓고 사는 사람. 조혜련 씨(65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40대 초반, 어느 날 갑자기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렇게 많은 돈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좋다는 약, 좋다는 의료기구로 넓디넓은 집이 병원처럼 돼 갔지만 그녀는 하루하루 죽음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 때 죽으려나, 저녁 때 죽으려나 그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 소리 없이 펄럭이는 깃발처럼 자신의 행복도 펄럭이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흙이 될 줄 알았는데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서 아이들의 장성한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가 됐다며 기뻐한다. 그 비결은 뭐였을까?
글 | 이은혜 기자
“아이가 몇이오?”
생각해보면 까마득한 세월 저편의 일이다. 벌써 22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일까? 조혜련 씨에게 22년 전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2년 전인 1990년 7월 어느 날. 그날도 올해의 7월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너무 더워서 샤워를 하던 그녀는 움찔했다. 가슴에서 멍울이 만져졌다. 온몸으로 흐르는 냉기 한 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였다.
“사실 그 즈음 이유 없이 가슴이 뜨거워 여러 군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괜찮다고 해서 걱정 안 하고 있었는데 멍울이 만져진 거예요.”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고, 곧바로 검사를 했다. 그런데 결과를 알려주던 의사가 뜬금없이 “아이가 몇이오?”부터 물었다. “넷입니다.” 의사의 다음 말은 더 어이가 없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아이들이 안됐군요.”
“제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자 그제서야 유방암 말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무 늦게 왔다면서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40대 초반, 아이 넷은 모두 어린 데 사망선고라니…. 믿을 수 없었다. ‘오진일 거야!’ 너무도 황당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며 재검사를 했다. 하지만 가는 데마다 검사 결과는 같았다. 유방암이 맞았고, 말기인 것도 사실이었다. 1990년 7월 29일, 조혜련 씨는 그렇게 유방암 진단과 얼마 못 살 거라는 통보까지 함께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생사를 넘나들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수술대 위에 오른 조혜련 씨. 위치가 좋지 않다며 의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수술은 의외로 잘됐다고 했다. 탁구공만 한 암세포를 떼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술은 오히려 간단했던 것 같아요. 수술 후에 그런 끔직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짐작조차 못했으니까요.”
항암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조혜련 씨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과 맞서야 했다. 밥 한 숟가락을 먹으면 100번을 토해내야 하는 고통. 온몸의 털이란 털은 모두 빠졌다. 눈썹도 빠지고 머리카락도 사라졌다.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얼굴은 80살 노인보다 더 무섭게 말라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항암제를 먹느니 안 먹고 그냥 죽겠다고 떼를 썼어요. 먹을 수가 없으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결국 복용 8개월 만에 항암제는 끊었지만 유방암 수술 후유증은 여전했다.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다. 어지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신발 신고 돌아다니는 일은 꿈도 못꿨다. 가만 있다가도 통증은 온몸으로 왔다. 온몸의 뼈마디가 서로 잡아당기듯 아팠다. 그렇게 드러누워서 좋다는 것은 다 해봤다는 조혜련 씨.
“다행히 돈은 많아서 좋다는 건 다 구해먹었어요. 스쿠알렌, 산삼, 웅담까지…. 살고 싶으니까 비싸도 안 해본 게 없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잃은 건강을 회복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각종 좋다는 약, 식품, 의료기기들이 집안 빽빽이 들어차도 그녀의 건강은 하루하루 나빠졌다. 그렇게 2년 남짓 흘렀을 때 그녀의 몸은 내일을 기약하기조차 버거웠다.
“밤새도록 아픔과 씨름하다가 아침 햇살이 비치면 오늘은 살아 있구나 안도했으니까요. 하지만 점심 때 죽을 지, 저녁 때 죽을 지 하루를 기약할 수 없는 몸이었어요.”
그런 그녀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된 것은 건강잡지에 난 한 세미나 광고였다. 신선들의 음식을 강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강의는 조혜련 씨 삶에 새로운 구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 구원의 문을 열다
병원 정기 체크 날,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 대신 세미나 장소를 찾았다는 조혜련 씨. 그리고 그 선택은 생사의 기로에서 기사회생하는 단초가 됐다고 말한다.
“강의 내용은 신선들의 음식이었는데 그것은 학교에서 배웠고, 또 가르치는 내용과는 전혀 달랐어요. 신의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음식을 알려줬으니까요.”
사람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신선처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음식을 알려줬다고 한다. 밥 먹기 전에 물은 어떻게 마시고, 어떤 음식과 음식은 함께 먹지 말며, 과식하지 말고, 간식 먹지 말고….
핵심은 단순했다. 하늘이 길러준 천연 그대로의 무공해 곡식과 채소와 과일을 생으로 먹는 식사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신의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거였다. 신선처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충격이었다.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였다. 무엇보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 조혜련 씨를 매료시켰다.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렸고, 의사들은 못 산다고 했다. 죽음도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그것은 조혜련 씨에게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숙제처럼 여겨졌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걸리는 일은 그동안 욕심내며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후회였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욕심이 곧 죄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는 내내 욕심 낸 것밖에 없는 삶, 그것은 곧 죄지은 삶을 살아온 거였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하나님 곁으로 갈 때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주는 음식을 알려줬던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그렇게 살아보자.’ 1993년 조혜련 씨는 깨끗한 공기, 깨끗한 바람, 깨끗한 물을 찾아 경북 울진의 오지로 찾아들었다.
새로운 선택, 희망의 증거가 되다
살아온 지난 세월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볼 결심을 하고 찾아든 곳 경북 울진. 이때부터 조혜련 씨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사는 방식도 바뀌었고, 먹는 것도 바꾸었다. 마음가짐도 변했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세 8000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죠. 처음 시골로 내려갔을 때 쓴 한 달 생활비에요. 전기세 8000원 쓴 게 전부였어요.”
모든 것이 공짜였다. 생수도 공짜, 신선한 공기도 공짜, 먹는 것도 산으로 들로 나가 따다 먹고, 없는 것은 농사 지어 먹고… 돈은 필요가 없었다.
“이런 세상도 있나 싶었죠. 개울물에서 세수하고 빨래하고, 생수로 설거지하고, 통증이 있어도 밭에 나가 일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자 너무도 신기하게 제 몸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통증을 느끼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하루도 기약하기 힘들었던 조혜련 씨 몸에는 믿을 수 없는 변화가 나타났다. 어느새 통증은 희미해졌고, 다시금 얼굴에 혈색이 감돌았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어느 덧 22년. 2012년 7월 현재 조혜련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울진에서 문경으로 삶의 터전은 옮겼지만 여전히 깨끗한 마음, 깨끗한 몸으로 살기 위해 먹는 것, 생활하는 것은 예전 그대로예요. 그것이 제 몸에 기적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정말 그랬다. 지금 조혜련 씨에게서 암 환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5월, 유방암 수술 후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는 그녀의 몸은 다 좋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던 몸, 하지만 기적이 일어난 그녀의 몸. 비결은 뭐였을까?
조혜련 씨가 깨끗한 몸과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실천하는 것들
조혜련 씨는 지금도 여전히 신의 마음처럼 살고자 한다. 그래서 먹는 것, 생활하는 방식이 조금 색다르다. 살짝 엿보자.
1. 24시간 시간 쓰는 법이 다른 생활방식은…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새벽공기로 온몸을 깨운다. 정신이 깨끗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그녀의 오랜 습관이다.
.매일 운동하는 시간이 있고 농사짓는 시간도 있다.
.봉사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제는 병들고 아픈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아픈 사람을 만나면 “어서 건강하세요.” 위로하기보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위로한다.
2. 깨끗한 몸으로 바꿔준 식생활 방식은…
.숯가루는 가장 든든한 보디가드다. 깨끗한 몸속을 위해 아침 공복에 한 숟가락 먹고 자기 전에 한 숟가락을 꼭꼭 먹는다. 숯가루는 몸속의 독소를 흡착해 배설시켜 준다고 말한다. 몸속의 독소가 빠지면 피곤함도 없어지고 깨끗한 몸으로 바꿔주는 것 같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그녀는 숯가루 열렬 예찬론자다.
.식사는 채식을 기본으로 한다. 몸이 산성화되면 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육식은 우리 몸을 산성으로 만든다고 여기기 때문에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되, 아침 점심은 생식을 하고, 저녁은 찐 감자나 고구마, 혹은 과일을 소식한다.
.곡식은 발아시켜서 건조한 것을 식사대용으로 먹고 채소는 직접 심고 가꾸어서 먹는다.
.과일과 채소는 함께 먹지 않는다. 소화과정에서 독이 되어 몸에 해롭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3.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는 마음가짐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굉장히 많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는 동안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자 한다. 신의 마음처럼 살면 신이 병드는 법 없는 것처럼 건강해진다고 믿고 있다.
긴 인터뷰를 마치며 조혜련 씨가 꼭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는 하나다. 식생활을 바꾸고 시간 쓰는 법을 바꾸고, 마음도 바꾸면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당부다. 병이 든 것을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신신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