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화폐속의 이슬람 건축(1) 알 아즈하르 사원
/최준석 조선일보 카이로 특파원 2008년 4월 7일
(알 아즈하르 모스크)
이집트 지폐의 앞면에는 역사적인 이슬람 건축물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이집트가 자랑하는 이슬람 시대 건축물이 줄줄이 소개되어 있다. 지폐 뒷면에는 고대 파라오 시대의 건축물이 소개되어 있다.
이집트 지폐는 모두 8종이다. 최고액권인 200파운드부터, 100, 50, 20, 10, 5, 1파운드가 있고, 파운드의 100분의 1인 피아스터 단위로는 25, 50피아스터가 있다.
지폐에 소개된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 이븐 툴른 모스크(5파운드)이다. 초기 이슬람 시대 건축이다. 파티마 왕조 시대(969-1171년) 건축물로는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있다. 맘룩 술탄 시대(1250-1517년) 건축물은 콰이트배이 무덤 사원(1파운드), 핫산 술탄 모스크(100파운드), 아미르 퀴즈마스 알 이샤퀴 모스크(50파운드), 아미르 아크후르 모스크(200파운드)가 있으며,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20파운드)는 지폐 도안 이슬람 건축물중에는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이슬람 시대중 아윱 술탄 시대(1171-1250년)와 오스만 제국의 통치기(1517-1798년) 건축물은 지폐 디자인 그림으로 선택된 게 없다. 지폐 디자인에 채택된 건축물의 수를 봐도 이집트 이슬람 시대 사상 맘룩 술탄기가 가장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다.
(50피아스터 지폐)
*50피아스터 지폐 도안: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성원이다. 중세 카이로 구역의 중심에 있고, 사원 내부도 아름답다. 흰색의 벽면과, 그 위 지붕 쪽의 회색 장식이 주는 느낌이 안정감을 준다. 밖에서 볼 때는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첨탑과, 통일성을 잃은 건축 양식으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나, 안에 들어가면 평온하다.
알 아즈하르 사원은 972년에 세워졌다. 아랍에 정복된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 생긴 네 번째의 모스크이자, 당시 수도 ‘알 카히라’(카이로의 아랍어 표기)의 첫 사원이었다. 알 아즈하르는 오랜 역사 만큼이나 많은 증개축이 있었다.
(알 아즈하르 사원의 주 출입문 위 장식)
사원의 현재 주 출입구로 사용되는 아치 모양의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문과, 그 위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모양 부조는 오스만 제국 시대 흔적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제후이었던 압드 알 라흐만 캇크후다(Abd al-Rahman Katkhuda)는 가 사원을 확대하면서 남긴 흔적이다.
사원에는 6개의 첨탑(미나렛)이 있었다. 미나렛은 일반 모스크는 한 개, 왕실 관련 모스크는 두 개를 통상 세운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있는 블루 모스크도 미나렛이 4개다. 이 점에서 알 아즈하르에 이토록 많은 미나렛이 있는 건 특기할 만하다. 알 아즈하르의 미나렛 6개중 세 개는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은 세 개만 남아있다. 통상 사원 위에 미나렛이 같은 디자인으로 대칭적으로 서 있는 것과는 달리, 이들 세 개의 미나렛은 자신만의 자리를 고집하며 서있다.
(알 아즈하르의 미나렛. 맨 오른쪽이 알 그후리 술탄이 세운 것이다.)
세 개의 미나렛중 가장 높고, 첨탑의 끝에 두 개의 둥근 전구와 같은 장식을 갖고 있는 게 알 그후리(Al-Ashraf Qansuh al-Ghury, 재위 1501-1516년)술탄의 1510년 작품이다. 그 다음은 알 아쉬라프 콰이트배이(Al-Ashraf Sayf al-Din Qa'it Bay, 재위 1468-1496년) 술탄이, 또다른 하나는 알라아 엣딘 아크바그하 왕자가 세웠다.
알 아즈하르는 건물의 심미적인 측면보다는 역사적 종교적인 중요성으로 더 유명하다.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의 본산으로 위상을 자랑한다.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당초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시아파의 교육 기관 및 모스크로 설립됐는데 이 건물을 수니파의 중심 교육기관으로 재활용한 무슬림들의 속내가 궁금하기도 하다.
알 아즈하르는 시아파의 지류인 이스마일 파 추종자인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알 무잇즈(al-Mu’izz Li-Din Allah)의 지시에 따라, 카이로를 정복한 그의 원정 장군 고하르 알 시킬리(Gawahr Al-Sikilly 혹은 Jawhar al-Siqilli라고 영어로 표기)가 972년에 완공했다. 알 무잇즈는 이집트에 자신의 수도 알 카히라를 만들고, 왕성이 완공되자 튀니지에서 정복 4년 뒤 거처를 옮겨온다.
알 아즈하르는 파티마 왕조가 카이로에 세운 첫 번 째 모스크이자, 첫 신학대학이기도 하다. 고하르 장군은 수니파 국민을 상대로 시아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강론을 시작할 때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의 이름을 강조하도록 했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아들이자 예언자의 손자들인 핫산, 후세인을 추종하는 세력이다. 파티마 왕조의 이름도 알리의 부인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에서 왔다.
(알 아즈하르의 내부 마당.)
서기 975년 알 아즈하르에서 첫 신학 세미나가 열렸다. 수석 판사 아부 알 핫산 이븐 알 노아만(Al-Hassan Ibn Al-Noaman)이 부친의 시아파 율법 요지를 낭독했고, 많은 학자와 명사들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참석자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989년에는 대학의 위상을 얻었다. 35명의 교수를 임명, 시아파내 이스마일파의 신앙을 교육하도록 했다.(Touregypt.com에 따르면, 989년이 아니라 988년에 당시 장관 야아콥 이븐 킬리스 Yaakoub Ibn Killis는 칼리프 알 아지즈 빌라흐,Al-Aziz Billah로부터 허가를 받아 37명의 학자를 교수 요원으로 임명하고, 금요 예배 후 세미나를 열도록 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월급을 받았으며, 알 아즈하르 인근의 집에 거주했다. 명예있는 자리에 있는 표시로 이들은 노새를 타고 다녔다. 이슬람 세계의 또다른 중심인 바그다드와 코르도바가 쇠락하면서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는 10세기에 아랍 세계 지식의 메카가 되었다.
(알 아즈하르의 니흐랍.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방향을 가리킨다.사진속 니흐랍은 972년 완성된 모스크에 있었던 니흐랍의 원형이다.)
하지만 파티마 왕조가 망한 뒤 알 아즈하르의 위상은 급전직하했다. 새로운 왕조인 아윱 술탄들은 수니파 신앙을 다시 세우면서 시아파 교육을 이집트에서 금지시켰다. 아윱 술탄 시대를 연 살라딘 술탄(재위 기간 1171-1193년)은 금요 예배 장소를 알 아즈하르에서 알 하킴 사원으로 옮기도록 했다. 알 아즈하르와 함께 당시 수도 알 카히라에서 많은 신도들이 모일 수 있는 사원이었던 알 하킴 사원은 알 카히라 성곽의 북쪽 끝에 있었다. 금요 예배는 이후 한 세기 동안 알 하킴에서 열렸다.
(아즈하르 모스크 내부)
아윱 왕조가 끝나고 맘룩 술탄 시대가 왔을 때 알 아즈하즈 모스크는 수니파의 사원으로 거듭났다. 알 자히르 바이바르스(al-Zahir Baybars) 술탄은 이 곳에서 다시 금요 예배를 보도록 했고, 이곳에서 수니파 4대 법학파의 하나인 ‘샤피이’학파 교육을 하도록 했다(이때의 전통에 따라 지금도 알 아즈하르의 최고 학자는 샤피이 학파 출신이다). 맘룩 시대의 많았던 종교 교육기관 마드라사가 점차 쇠퇴하면서 오스만 제국 통치기에 들어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무슬림 세계의 중심 신학 대학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제국내 무슬림들은 신학 공부를 위해 알 아즈하르를 찾았다. 1798년 이집트를 원정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회고록에서 “알 아즈하르는 파리의 소르본느에 해당한다”고 썼다고 한다.
오늘날 알 아즈하르 대학은 신학뿐만 아니라, 일반 대학에서와 같이 모든 학문을 가르친다. 대학은 알 아즈하르 사원에 붙어있다. 1961년 당시 낫세르 대통령을 알 아즈하르를 개혁, 여자 대학도 설립했다.(계속)
첫댓글 최준석 조선일보 카이로 특파원이 아주 잘 정리해 놓으신 자료입니다. 이집트 화폐와 더불어 이슬람 건축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니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