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33:14-30
[서론]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사람의 무관심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어둠에서 욥처럼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엘리후는 욥에게 정반대의 진단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욥 33:14).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우리의 둔감함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위험을 경고하거나 식사하라고 몇 번이나 부르고 이름을 불러도, 아이는 스마트폰 화면(자신의 관념과 욕망)에 몰두하느라 부모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부모가 안 부른 것이 아니라 아이가 관심이 없는 오늘날 세상의 모습에서 이해가 될 줄로 여겨집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가오시는 통로를 히브리어 원어로 정교하게 배치합니다. 오늘 본문의 샤하트(שַׁחַת, 구덩이), 멜리츠(מֵלִיץ, 대언자), 코페르(כֹפֶר, 대속물)는 놀랍게도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됩니다. 다만 이 중 멜리츠는 딤전 2:5의 '중보자(메시테스)'와 혼동해서는 안 될 단어입니다. 오늘 이 세 단어를 정확히 구분하여 따라가며,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 자리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첫째, 샤하트(שַׁחַת) — 구덩이로 내려가시는 하나님
욥기 33:18, 22, 24, 28, 30절에 반복되는 '샤하트'는 단순한 웅덩이가 아니라 죽음과 멸망을 향해 끌려 들어가는 존재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사람을 이 구덩이에서 건지시기 위해 꿈과 환상(15-16절), 그리고 고통과 질병(19-21절)이라는, 우리가 결코 반기지 않는 방식으로 찾아오신다고 말합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와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구덩이를 향해 던져진 존재이며, 고통은 그 사실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실존적 각성의 장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2:8은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구덩이를 관찰하신 분이 아니라, 친히 그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신 분입니다(엡 4:9, "낮은 곳 곧 땅 아래로 내리셨던 것").
오늘 성도 여러분이 겪는 질병과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가장 낮은 자리까지 찾아오신다는 초대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고난받는 지체를 "왜 저런 일이 생겼을까"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내려가신 그 구덩이 곁에 함께 머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멜리츠(מֵלִיץ) — 천 명 중 하나의 대언자
본문 23절의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멜리츠]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라는 구절에서, 멜리츠는 동사 ליץ(리츠, '통역하다·대언하다')에서 나온 명사로 당사자를 대신하여 말을 전달하는 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개역개정 성경의 '중보자'는 '대언자', '전달자', '사자' 등으로 고쳐져야 합니다. 창세기 42:23에서는 요셉과 형제들 사이의 '통역관', 역대하 32:31에서는 왕이 보낸 '사신'으로 쓰인 단어로, 화목의 근거를 스스로 제공하는 직분이 아니라 누군가를 대신해 아뢰는 기능적 역할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5의 '중보자(μεσίτης, 메시테스)'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시키는 유일회적 구속의 직분으로, 오직 그리스도만 감당하십니다. 반면 같은 장 1절의 '도고(ἔντευξις, 엔튜크시스)'는 타인을 위해 나아가 아뢰는 기도를 가리키며, 바울은 이 둘을 의도적으로 구분해 씁니다. 멜리츠는 화목의 근거(몸값)를 제공하지 않고 형편을 대언·상달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중보(메시테스)'가 아니라 이 '도고'의 구약적 원형에 해당합니다.
철학적으로, 이 개념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를 위한 책임(pour l'autre)'과 공명합니다. 레비나스에게 윤리적 주체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그를 대신하여 말하고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다만 이 책임은 타자를 대신해 대가를 치르는 구속의 책임이 아니라, 타자의 형편을 외면하지 않고 대언하는 책임입니다 — 바로 멜리츠와 도고가 가리키는 지점입니다.
그리스도만이 화목의 근거를 제공하시는 유일한 중보자(메시테스)이시며, 우리는 결코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나아가 아뢰는 '도고자'로 부름받았습니다(딤전 2:1). 교회는 서로를 정죄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각자의 형편을 하나님 앞에 대신 아뢰어 주는 도고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멜리츠처럼 대언할 때, 이 본문은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셋째 코페르(כֹפֶר) — 몸값을 치르고 건지심
본문 24절의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코페르]을 얻었다 하시리라"는 이 장의 결론입니다. 코페르는 출애굽기 21:30, 30:12 등에서 생명을 대신하는 대가, 몸값을 가리키는 율법적·제의적 용어입니다. 즉 회복은 값없이 오지 않고, 반드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신약은 이 단어를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마가복음 10:45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뤼트론, λύτρον — 코페르의 헬라어 대응어]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18-19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철학적으로, 이는 단순한 등가교환(리시엄 사고)을 넘어섭니다. 코페르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생명)에 값이 매겨지는 역설이며, 폴 리쾨르가 말한 '선물의 경제(économie du don)' —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대가를 치르는 은혜의 논리 — 에 가깝습니다. 몸값을 치른 이가 그 몸값을 도리어 자기 소유물처럼 요구하지 않고 값없는 선물로 되돌려 준다는 점에서, 코페르는 정의(justice)와 은혜(grace)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값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내가 무엇을 했기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값없이 받았는가"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성도의 겸손과 서로를 향한 관대함의 근거가 됩니다.
[결론]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샤하트, 멜리츠, 코페르 — 구덩이, 대언, 대속물이라는 이 세 히브리어 단어는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한 사건 안에서 통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구덩이로 내려가셨고(샤하트), 우리를 위해 항상 살아 간구하시며(멜리츠가 가리키는 대언의 궁극적 성취),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내어주셨습니다(코페르). 다만 그리스도의 이 사역은 딤전 2:5의 유일한 '중보자(메시테스)' 직분이며, 화목의 근거를 스스로 제공하지 않는 우리는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본문의 엘리후가 예언적으로 가리켰던 그 형상이, 신약에서 완전한 얼굴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이 교회와 성도에게 주는 최종적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를 위해 대언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치러진 값을 통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욥처럼 "관심하지 아니하는" 데 있습니다.
ㆍ오늘 우리 각 사람의 삶 속 구덩이(샤하트,שַׁחַת)를 돌아보십시오. 그 자리에 이미 내려와 계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ㆍ이미 치러진 값을 값없이 받은 자로서, 서로를 위해 나아가 아뢰는 도고(멜리츠, מֵלִיץ)의 공동체인 교회가 되십시오.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ㆍ우리를 영원한 파멸에서 건지시기 위해 친히 대속물(코페르, כֹפֶר)이 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값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욥 33:29-30)는 말씀이 어둠의 구덩이에 빠진 교회나 성도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비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