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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예술은 왜 경계·흔적·표면에 집중하는가
동시대예술이 경계·흔적·표면에 집중하는 이유는 예술의 관심이 완성된 사물의 아름다움에서 그 사물이 만들어지고 보이고 해석되는 조건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경계는 무엇이 구분되고 배제되는지를 보여 준다. 흔적은 사라진 존재와 지나간 사건이 현재에 남아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표면은 그 경계와 흔적이 실제로 감각되고 기록되는 장소이다.
따라서 경계·흔적·표면은 서로 떨어진 세 개념이 아니다.
경계는 차이를 만들고, 표면은 그 차이가 나타나는 장소이며, 흔적은 그 표면에 새겨진 시간과 사건이다.
[1] 예술의 관심이 ‘대상’에서 ‘조건과 관계’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1. 전통미술은 주로 무엇을 그렸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1) 종교화는 신성한 존재와 사건을 재현하였다.
(2) 초상화는 인물의 외모와 사회적 지위를 보여 주었다.
(3) 풍경화는 자연과 장소를 조화로운 화면으로 구성하였다.
(4) 정물화는 사물의 형태·질감·상징을 표현하였다.
2. 근대미술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그렸는가를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1) 인상주의는 대상보다 빛과 지각의 변화를 강조하였다.
(2) 입체주의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과 원근법을 해체하였다.
(3) 추상미술은 외부 대상의 재현에서 선·색·형태의 자율성으로 이동하였다.
(4) 모더니즘 회화는 캔버스의 평면성과 물감의 물질성을 드러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회화의 고유한 조건으로 평평한 지지체, 화면의 형태, 물감의 성질을 강조하였다. 회화의 표면은 단순한 그림의 바탕이 아니라 회화라는 매체가 성립하는 조건이 되었다.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
3. 동시대예술은 다시 질문의 범위를 넓혔다.
(1) 이것은 왜 예술인가.
(2) 누가 이것을 예술로 인정하는가.
(3) 작품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4) 작품과 전시장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5) 작가와 관객은 어떻게 의미를 함께 만드는가.
(6) 어떤 사회적·정치적 조건이 작품을 보이게 하는가.
따라서 동시대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대상만이 아니다. 대상과 공간, 작가와 관객, 이미지와 제도, 현재와 과거가 맺는 관계가 중요해졌다.
경계·흔적·표면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드러내기에 적합한 개념이다.
[2]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1. 전통적인 사고에서는 사물과 존재의 정체성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여겼다.
(1) 인간과 자연
(2) 남성과 여성
(3) 정상과 비정상
(4) 자국민과 외국인
(5) 예술과 비예술
(6) 회화와 사진
(7) 원본과 복제
(8) 실제와 가상
2.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깨끗함과 더러움이 물질의 절대적인 성질이 아니라 사회의 분류 체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어떤 것이 정해진 자리에 있지 않을 때 그것은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3. 동시대예술은 이러한 분류가 만들어지는 경계를 탐구한다.
(1) 누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가.
(2) 누가 시민과 이주민을 나누는가.
(3) 어떤 몸이 아름답고 건강한 몸으로 인정되는가.
(4) 어떤 물건이 쓰레기이고 어떤 물건이 예술품이 되는가.
(5) 누구의 삶은 기록되고 누구의 삶은 보이지 않게 되는가.
경계를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담장이나 국경선을 찍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물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사회적 규칙을 드러내는 것이다.
[3] 경계는 권력이 작동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 경계는 안과 밖을 나누는 동시에 통과할 수 있는 사람과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을 결정한다.
(1) 국경은 국민과 외국인을 구분한다.
(2) 병원은 건강한 사람과 환자를 분류한다.
(3) 감옥은 합법과 불법, 정상과 일탈의 경계를 공간화한다.
(4) 미술관은 예술품과 일상 사물의 지위를 구분한다.
(5) 사진의 프레임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나눈다.
2.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옥·병원·학교·군대 같은 공간이 사람을 단순히 수용하는 곳이 아니라 분류·감시·훈육하는 장치라고 보았다.
공간의 벽·문·복도·창문·검사실은 물리적 구조인 동시에 권력의 배치를 만든다. (Michel Foucault, 「Of Other Spaces」)
3.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사회가 무엇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들을 수 있는지를 배분한다고 설명하였다.
(1) 누구의 얼굴이 공적으로 보이는가.
(2) 누구의 목소리가 발언으로 인정되는가.
(3) 누구의 고통은 애도되고 누구의 고통은 무시되는가.
(4) 어떤 장소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이고 어떤 장소는 위험 지역으로 규정되는가.
이것이 랑시에르의 ‘감성적인 것의 분할(distribution of the sensible)’이다. (Jacques Rancière, 『The Politics of Aesthetics』 관련 해설)
4. 동시대예술이 경계에 집중하는 이유는 경계가 권력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경계는 추상적인 정치이론을 몸·장소·행동의 문제로 바꾼다.
[4] 세계화와 이주로 경계가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1. 세계화는 국가 간 이동과 정보 교환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경계가 똑같이 열리지는 않았다. 자본·상품·관광객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난민·이주노동자·무국적자에게 국경은 여전히 위험한 장벽이다.
2. 글로리아 안살두아(Gloria Anzaldúa)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을 단순한 지리적 선이 아니라 언어·인종·성·문화가 충돌하고 섞이는 경계지대로 보았다.
경계지대에서는 기존 정체성이 흔들리고 양쪽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혼종적 정체성이 형성된다. (Gloria Anzaldúa, 『Borderlands/La Frontera』)
3. 동시대예술에서 국경은 지도 위의 선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1) 검문을 기다리는 몸
(2) 국경을 넘다 버려진 물건
(3) 철조망과 감시카메라
(4) 여권·비자·신분증
(5) 이주민의 임시 거주지
(6) 두 언어가 섞인 말과 글
(7) 떠난 장소와 도착한 장소의 기억
4.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의 《The Green Line》(2004)은 예루살렘의 휴전 경계선을 따라 걸으며 녹색 페인트를 흘린 작업이다.
지도에 추상적으로 그어진 정치적 경계가 한 인간의 걷기와 신체적 행위를 통해 현실 공간에 나타난다. (Tate, Francis Alÿs, 《The Green Line》)
경계는 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동·기억에 작용한다.
[5] 현대의 삶이 지속적인 경계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1.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전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새로운 상태에 도달하지 않은 중간 단계를 리미널리티(liminality), 즉 문턱 상태라고 설명하였다.
이 상태에서는 기존 질서가 약해지지만 새로운 정체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는다. (Victor Turner, 「Betwixt and Between」)
2. 현대인은 여러 경계 상태를 반복해서 경험한다.
(1)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이동한다.
(2) 건강한 사람에서 환자가 된다.
(3) 직업인에서 은퇴자로 이동한다.
(4) 중년에서 노년으로 이동한다.
(5) 거주민에서 이주민이 된다.
(6) 현실의 자아와 온라인 자아 사이를 오간다.
(7) 인간의 판단과 인공지능의 판단 사이에 놓인다.
3. 동시대예술은 완성되고 안정된 정체성보다 변화 과정에 놓인 존재에 관심을 가진다.
경계 상태는 모호하고 불안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존재 가능성이 생기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 상태를 무조건 자유롭고 창조적인 것으로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경계 상태는 불안·차별·상실·무권리의 상태일 수도 있다.
[6] 거대한 역사보다 사라진 개인의 흔적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1. 전통적인 역사와 기념미술은 국가·영웅·승리·중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2. 그러나 전쟁·학살·식민주의·독재·강제이주를 경험한 이후 예술은 거대한 영웅적 서사만으로는 개인의 상실과 침묵을 표현할 수 없다는 문제에 직면하였다.
3. 많은 동시대 작가는 사건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사건 이후 남은 흔적을 다룬다.
(1) 빈 의자
(2) 남겨진 옷
(3) 사라진 사람의 사진
(4) 철거된 집의 벽 자국
(5) 이름이 지워진 문서
(6) 훼손된 사물
(7) 비어 있는 장소
(8) 기록되지 않은 침묵
4. 흔적은 사라진 사람을 완전히 복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그 부재가 현재에 계속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역사적 지식이 현재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부재하는 과거를 재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흔적은 과거 자체가 아니므로 출처·기억·기록·망각을 함께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Paul Ricœur, 『Memory, History, Forgetting』)
[7] 폭력과 트라우마는 직접 재현만으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 폭력의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언제나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1) 피해자의 고통을 볼거리로 만들 수 있다.
(2) 충격적인 장면이 반복되면서 관객이 무감각해질 수 있다.
(3) 피해자의 삶이 폭력 장면 하나로 환원될 수 있다.
(4) 작가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명성과 작품 가치로 바꿀 수 있다.
2. 이러한 문제 때문에 동시대예술은 폭력의 현장을 직접 보여 주는 대신 남겨진 흔적과 부재를 통해 사건을 드러내기도 한다.
3.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는 콜롬비아의 정치적 폭력 피해자와 실종자 가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가구·옷·균열·건축적 개입을 제작하였다.
살세도의 작품은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하지 않는다. 폭력이 지나간 뒤 사물과 생존자에게 남은 빈자리와 상처를 증언한다. (SFMOMA, Doris Salcedo)
4.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는 낡은 사진·옷·이름·전구·보관함을 이용하여 죽음·기억·익명성·부재를 다루었다.
사진은 사라진 사람을 완전히 되살리지 못한다. 오히려 개인의 존재가 기록 속에서 얼마나 쉽게 익명화되고 소멸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Christian Boltanski의 기억·죽음·부재 작업)
흔적은 말할 수 없는 사건을 대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까지 드러낸다.
[8] 완성된 작품보다 과정과 시간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1. 전통적 예술관에서는 작품이 작가의 작업이 끝난 뒤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여겼다.
2. 그러나 퍼포먼스·대지미술·과정미술·개념미술에서는 작품이 반드시 영구적인 물체일 필요가 없어졌다.
(1) 걷는 행위
(2) 몸의 움직임
(3) 물질의 부식과 변화
(4) 관객의 참여
(5) 장소에 대한 일시적 개입
(6) 사라지고 남은 기록
3. 퍼포먼스가 끝나면 사진·영상·의상·문서·관객의 기억만 남는다.
이때 사진은 작품을 단순히 설명하는 자료인지, 사라진 행위의 흔적인지, 그 자체가 독립된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4.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지표에 관한 노트(Notes on the Index)」에서 1970년대 미술의 신체 자국·사진·장소 특정적 작업·퍼포먼스 기록을 지표성(indexicality)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완성된 형상을 창조하기보다 어떤 행위와 접촉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흔적으로 남긴다. (Rosalind Krauss, 「Notes on the Index」)
동시대예술에서 흔적은 작품의 부산물이 아니라 작품이 시간 속에서 존재했다는 핵심 형식이 된다.
[9] 표면이 더 이상 단순한 겉껍질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1. 전통적인 사고는 표면과 깊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1) 표면은 외관이고 깊이는 본질이다.
(2) 표면은 거짓이고 깊이는 진실이다.
(3) 표면은 장식이고 깊이는 구조이다.
(4) 표면은 감각이고 깊이는 의미이다.
2. 그러나 인간은 표면을 통하지 않고서는 깊이에 접근할 수 없다.
(1) 사람의 내면은 얼굴·몸짓·목소리를 통해 나타난다.
(2) 질병은 증상과 검사 결과를 통해 나타난다.
(3) 건물의 구조적 변화는 벽의 균열로 나타난다.
(4) 사회 변화는 도시의 간판·철거·오염·조경에 나타난다.
(5) 시간은 사물의 마모·변색·부식으로 나타난다.
3. 표면은 깊이를 가리는 장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이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장소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에서 몸은 세계와 분리된 관찰자가 아니다. 보는 몸은 동시에 보이는 몸이고, 만지는 몸은 동시에 만져지는 몸이다. 몸의 표면은 주체와 세계가 만나는 감각적 접촉면이다. (Maurice Merleau-Ponty의 지각·살·가역성)
[10] 표면은 시간과 권력이 기록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 도시의 표면은 중립적이지 않다.
건물 외벽·도로·간판·광고판·유리창·철거지·방음벽에는 도시를 관리하는 제도와 자본의 논리가 나타난다.
2. 도시가 낡은 표면을 지우고 깨끗한 표면을 만드는 일은 미관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1) 어떤 흔적을 보존할지 결정한다.
(2) 어떤 삶을 낡고 위험한 것으로 분류할지 결정한다.
(3) 누구의 공간을 철거하고 누구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결정한다.
(4) 도시의 공식 이미지를 구성한다.
3. 낙서는 행정기관에는 제거해야 할 오염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그 장소에 존재했다는 흔적이다.
4. 노숙인의 물건은 도시 관리의 관점에서는 폐기 대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최소한의 생활 공간이다.
표면을 관리한다는 것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지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따라서 동시대예술은 표면을 질감으로만 다루지 않고 기억·노동·통제·배제·망각이 새겨지는 사회적 장소로 다룬다.
[11] 사진의 본질이 경계·흔적·표면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1. 사진의 프레임은 경계이다.
프레임은 현실 가운데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배제할지를 결정한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사진을 찍는 것이 프레임을 정하는 것이며, 프레임을 정하는 것은 배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의 프레임 논의)
2. 사진영상은 빛의 흔적이다.
대상에서 반사된 빛이 필름이나 센서에 작용한다. 따라서 사진은 대상을 닮은 이미지이면서 대상과 인과적으로 연결된 지표적 흔적이다.
수전 손택은 사진을 현실에 대한 해석인 동시에 발자국이나 데스마스크처럼 현실에서 직접 찍혀 나온 흔적으로 설명하였다. (Susan Sontag, 『On Photography』, 「The Image-World」)
3. 사진은 물질적 표면이다.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보여 주는 투명한 창문이 아니다. 인화지·은입자·잉크·유리·스크린·픽셀로 이루어진 물질적 또는 기술적 표면이다.
4. 사진의 한 장 안에서 세 개념은 동시에 작동한다.
(1) 프레임은 세계의 경계를 만든다.
(2) 빛은 대상의 흔적을 남긴다.
(3) 인화지나 화면은 흔적이 나타나는 표면이 된다.
사진은 경계·흔적·표면이 가장 긴밀하게 결합된 매체이다.
[12] 사진의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1. 사진은 현실의 흔적이기 때문에 강한 사실성을 가진다.
그러나 현실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사진의 의미까지 객관적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2. 사진가는 다음을 선택한다.
(1) 촬영 대상
(2) 촬영 위치
(3) 프레임
(4) 촬영 순간
(5) 초점과 노출
(6) 사진의 선별
(7) 캡션과 배열
(8) 전시와 유통 방식
3. 사진의 경계는 현실을 단순히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특정한 질서를 부여한다.
4. 사진의 흔적은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사건의 원인·전후 과정·사회적 맥락을 모두 보여 주지 않는다.
5. 사진의 표면은 현실처럼 보이지만 카메라 장치와 사회적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사진을 장치(apparatus)와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가능성 안에서 생산되는 기술적 이미지로 보았다. 사진가는 자유롭게 촬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렌즈·센서·소프트웨어가 미리 구성한 가능성 안에서 선택한다. (Vilém Flusser의 기술적 이미지와 사진 장치)
동시대 사진은 현실을 보여 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실이 어떻게 사진의 표면으로 변환되는지를 문제 삼는다.
[13] 매체의 경계가 무너지고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1. 전통적으로 회화·조각·사진·영화는 서로 다른 예술 장르로 구분되었다.
2. 그러나 동시대 작품은 사진·영상·텍스트·사운드·조각·퍼포먼스·아카이브를 함께 사용한다.
3.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에서 조각을 하나의 고정된 물체로 정의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분석하였다.
조각은 건축과 풍경, 장소와 비장소의 관계망 속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했다. (Rosalind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4. 사진 역시 인화지에 고정된 한 장의 이미지라는 경계를 넘어섰다.
(1) 사진이 조각적 물체가 된다.
(2) 사진이 영상과 결합한다.
(3) 사진이 벽·바닥·천에 설치된다.
(4) 사진이 문서·지도·증언과 결합한다.
(5) 사진이 책·아카이브·데이터베이스의 형태를 취한다.
(6) 관객이 사진을 이동하거나 배열한다.
그러나 매체를 섞는 것 자체가 동시대성은 아니다. 각각의 매체가 작품의 질문에 왜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14] 작품과 비작품의 경계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1.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는 일상 사물과 예술작품의 경계를 문제 삼았다.
소변기 자체가 아름답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작품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선택되고 제목을 얻고 전시 맥락에 놓이면서 예술의 정의를 질문하게 되었기 때문에 작품이 되었다.
2.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파레르곤(parergon)을 통해 액자·받침대·장식처럼 작품 바깥에 있다고 여겨진 요소가 실제로는 작품의 안과 밖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분석하였다.
액자는 작품이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액자가 없으면 작품의 시작과 끝을 확정하기 어려워진다. (Paul Duro, 「What Is a Parergon?」)
3. 동시대 설치미술에서는 다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1) 작품과 전시장
(2) 작품과 받침대
(3) 작품과 기록사진
(4) 작품과 관객의 행동
(5) 예술적 사물과 일상용품
(6) 전시의 내부와 도시의 외부
따라서 경계는 작품을 둘러싸는 부차적인 선이 아니라 작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 문제가 된다.
[15] 작가와 관객의 경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1. 전통적인 작품에서 작가는 의미를 만들고 관객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으로 구분되었다.
2. 동시대예술에서는 관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고, 물체를 움직이고, 선택하고,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3. 이때 작품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관계가 발생하는 상황이 된다.
(1) 작품의 표면은 관객의 몸과 접촉한다.
(2) 관객의 움직임은 작품에 흔적을 남긴다.
(3) 관객의 참여는 작품의 경계를 변화시킨다.
(4)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 참여가 항상 민주적이거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작가가 미리 정한 선택지만 허용한다면 참여는 통제된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참여했는가가 아니라 관객에게 어떤 권한과 책임이 주어졌는가이다.
[16]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1. 생태위기·생명공학·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을 세계의 독립된 중심으로 보는 관점을 흔들었다.
2. 인간의 몸은 미생물·공기·음식·기술·환경과 끊임없이 물질을 교환한다.
3. 도시와 자연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1) 콘크리트 틈에서 식물이 자란다.
(2) 산업 폐기물이 지층의 흔적이 된다.
(3) 미세먼지가 몸의 내부로 들어온다.
(4) 기후변화가 피부·주거·이동에 영향을 준다.
(5) 위성·센서·인공지능이 인간 대신 환경을 본다.
4. 표면은 인간과 비인간이 접촉하는 장소이다.
피부·토양·바다·대기·건물 외벽·카메라 센서는 독립된 존재의 단단한 외피가 아니라 물질과 정보가 교환되는 인터페이스이다.
동시대예술이 표면에 집중하는 이유는 표면이 인간과 자연·기계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7] 디지털 이미지가 표면과 깊이의 관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1. 스마트폰 화면은 물질적 표면이면서 가상공간으로 들어가는 창문이고, 사용자가 데이터를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이다.
2.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뉴미디어가 회화·사진·영화의 직사각형 화면을 계승하면서 인터페이스·데이터베이스·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구조를 발전시켰다고 분석하였다. (Lev Manovich, 『The Language of New Media』)
3. 화면에 보이는 표면 뒤에는 다음이 작동한다.
(1) 알고리즘
(2) 사용자 데이터
(3) 서버와 네트워크
(4) 기업의 추천 체계
(5) 광고와 수익 구조
(6) 감시와 개인정보 수집
4. 디지털 표면은 정보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작동시키는 구조를 감춘다.
따라서 동시대예술은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뿐 아니라 화면 뒤의 데이터·알고리즘·플랫폼 권력을 탐구한다.
[18] 복제된 이미지의 표면에 유통의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1.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를 저해상도로 압축·복제·다운로드·재편집되며 인터넷을 이동하는 이미지로 설명하였다.
2. 이미지에 나타나는 픽셀 깨짐·노이즈·자막·워터마크·화질 저하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지가 여러 사람과 플랫폼을 거쳐 이동했다는 유통의 흔적이다. (Hito Steyerl,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3. 디지털 시대에는 이미지의 가치가 반드시 원본성이나 고해상도에만 있지 않다.
(1)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는가.
(2) 얼마나 널리 공유되는가.
(3) 누가 접근할 수 있는가.
(4) 어떤 맥락에서 다시 편집되는가.
(5) 누가 이미지로 이익을 얻는가.
따라서 이미지의 손상된 표면은 디지털 자본주의와 유통 구조를 보여 주는 흔적이 된다.
[19] 인공지능이 사진과 비사진의 경계를 흔들기 때문이다
1. 생성형 인공지능은 실제 카메라 앞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을 사진처럼 보이게 만든다.
2. 이로 인해 다음의 경계가 불확실해졌다.
(1) 촬영과 생성
(2) 기록과 합성
(3) 원본과 복제
(4) 인간의 창작과 기계의 계산
(5) 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
(6) 증거 이미지와 설명 이미지
3. 촬영 사진과 AI 생성 이미지는 표면적으로 비슷할 수 있지만 생성 원리는 다르다.
촬영 사진은 특정 시공간에서 대상의 빛이 센서에 작용한 흔적이다. 생성 이미지는 학습 데이터와 명령어와 확률 계산으로 구성된 결과이다.
4. 그러나 생성 이미지에도 흔적은 존재한다.
특정 현장의 광학적 흔적은 아니지만 학습 데이터, 기존 이미지의 관습, 사회적 편견, 프로그램의 분류 방식이 통계적 흔적으로 남는다.
따라서 동시대예술은 이미지 표면이 무엇을 보여 주는지만 묻지 않는다. 그 표면이 어떤 데이터·장치·연산·노동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다.
[20] 경계·흔적·표면은 관객의 상상력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1. 완전하게 설명된 이미지는 관객이 의미를 만들 여지를 줄일 수 있다.
2. 흔적은 사건 전체를 보여 주지 않는다.
빈 의자·벗겨진 벽·남겨진 옷·흐린 얼굴은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부재한다는 사실만을 제시한다.
3. 관객은 흔적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원인을 추론한다.
(1) 누가 이곳에 있었는가.
(2)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3) 왜 이 물건만 남았는가.
(4) 무엇이 지워졌는가.
(5) 이 표면은 왜 손상되었는가.
4. 경계 역시 관객에게 프레임 밖을 상상하게 한다.
사진 안에 포함된 것보다 제외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5. 표면은 관객의 시선을 늦춘다.
로라 U. 마크스(Laura U. Marks)의 촉각적 시각성(haptic visuality)은 입자·흐림·질감·극단적 근접 촬영이 관객의 눈을 화면 표면에 머물게 하고, 눈으로 만지는 듯한 지각을 유도한다. (Laura U. Marks의 촉각적 시각성)
따라서 경계·흔적·표면은 관객에게 정답을 전달하는 대신 감각·기억·추론을 통해 의미 형성에 참여하게 한다.
[21] 세 개념이 각각 담당하는 역할
1. 경계는 차이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1) 무엇과 무엇이 나뉘는가.
(2) 누가 경계를 정했는가.
(3) 누가 안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밀려나는가.
(4) 누가 경계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가.
2. 흔적은 시간과 부재의 문제를 드러낸다.
(1)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가.
(2) 무엇이 사라졌는가.
(3) 무엇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가.
(4) 왜 어떤 흔적은 보존되고 다른 흔적은 지워졌는가.
3. 표면은 감각과 출현의 문제를 드러낸다.
(1)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2) 시간과 사건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3) 무엇이 표면에 드러나고 무엇이 가려지는가.
(4) 어떤 물질과 기술이 이미지를 보이게 하는가.
4. 세 개념을 함께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분석이 가능하다.
(1) 경계는 사회적 질서를 만든다.
(2) 그 경계를 통과하거나 침범한 사건은 흔적을 남긴다.
(3) 그 흔적은 몸·사물·장소·사진의 표면에 나타난다.
(4) 예술은 그 표면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과 권력을 드러낸다.
[22] 동시대예술이 세 개념에 집중한다고 모두 좋은 작품은 아니다
1. 경계를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영상·설치·텍스트를 섞는 것이 작품의 질문과 연결되지 않으면 형식적 혼합에 그친다.
2. 흔적을 제시한다고 반드시 깊은 작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낡은 벽·폐허·빈 의자를 반복해서 촬영하면서 그 흔적이 무엇에서 생겼는지 밝히지 않으면 감상적인 분위기에 머물 수 있다.
3. 표면의 질감을 아름답게 표현한다고 시간과 기억이 자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표면을 만든 노동·사건·제도와 연결되지 않으면 질감은 장식이 된다.
4. 경계지대를 무조건 자유와 혼종의 공간으로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실제 경계에는 감시·추방·빈곤·차별·폭력이 존재한다.
5. 타인의 상처와 부재를 미학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고통의 흔적을 작품화할 때에는 피해자의 구체적 삶과 존엄, 촬영자의 권한, 이미지의 유통 결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23] 작품을 평가하는 핵심 질문
1. 경계에 관한 질문
(1) 무엇과 무엇 사이의 경계인가.
(2) 누가 그 경계를 만들었는가.
(3) 누구에게는 열리고 누구에게는 닫히는가.
(4) 그 경계가 몸과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2. 흔적에 관한 질문
(1) 무엇이 이 흔적을 남겼는가.
(2) 흔적과 원인 사이의 관계가 확인되는가.
(3) 무엇은 남았고 무엇은 사라졌는가.
(4) 작가는 흔적을 발견한 것인가, 연출한 것인가.
(5) 흔적을 증거처럼 제시하는가, 불확실한 단서로 제시하는가.
3. 표면에 관한 질문
(1) 표면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2) 표면은 무엇을 감추는가.
(3) 표면에 어떤 시간과 노동이 새겨져 있는가.
(4) 작품의 출력 재료와 설치 방식이 주제에 적합한가.
(5) 표면의 질감이 의미를 만드는가, 단지 아름다운 장식인가.
4. 세 개념을 통합하는 질문
(1) 어떤 경계가 이 표면을 만들었는가.
(2) 어떤 사건이 이 표면에 흔적을 남겼는가.
(3) 누가 그 흔적을 보존하거나 지우는가.
(4) 관객은 그 표면을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는가.
[24] 종합 결론
동시대예술이 경계·흔적·표면에 집중하는 이유는 예술이 더 이상 완성된 대상의 아름다움이나 작가의 내면 표현만을 중심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대예술은 다음을 묻는다.
(1) 존재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2)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
(3) 누가 안에 포함되고 누가 밖으로 배제되는가.
(4) 지나간 사건은 현재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
(5) 사라진 존재를 직접 재현하지 않고 어떻게 증언할 수 있는가.
(6) 시간·노동·폭력·기억은 몸과 사물에 어떻게 새겨지는가.
(7) 이미지의 의미는 어떤 물질·장치·제도·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가.
경계는 차이·분류·배제·통과를 보여 준다.
흔적은 시간·기억·상실·부재·증언을 보여 준다.
표면은 존재가 감각되고 경계와 흔적이 실제로 나타나는 장소이다.
따라서 세 개념은 동시대예술의 핵심적인 전환을 압축한다.
동시대예술은 완성된 존재를 재현하기보다 존재를 나누는 경계, 사라진 뒤 남은 흔적, 그리고 그 모든 시간과 권력이 새겨지는 표면을 탐구한다.
그러나 동시대예술의 목적이 모든 경계를 해체하고, 모든 흔적을 수집하며, 모든 표면을 미학화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계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무엇이 그 표면에 흔적을 남겼는지,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지워졌는지, 그리고 작품이 그 관계를 어떤 새로운 감각과 사유로 드러내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결국 경계·흔적·표면에 집중한다는 것은 세계의 겉모습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가장 바깥쪽에서 시작하여 그 표면을 만든 시간·역사·기억·제도·권력의 깊이로 들어가는 동시대예술의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