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학 2024 겨울(72)호 - 지난 계절의 시읽기
시인의 화두(話頭)와 시적 형상성(形像性)
김광기(시인)
시(詩)는 시인의 일상에서 비롯된다. 시인이 일상에서 화두(話頭)로 삼고 있는 것을 사유하고 고찰해서 형상을 갖추는 작업을 하면서 시가 탄생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을 주요관점으로 보는 용어의 의미가 포에트리(poetry)라 할 수 있는데, 시인은 자신이 안고 있는 화두를 풀기 위해 삶의 여정을 돌아보거나 어떤 소재를 선택해서 삶의 의미를 투영시키며 작품을 형상화한다. 다시 말해 시를 포엠(poem)으로 보는 입장은 시의 형상성을 중심으로 보는 측면이라면 포에트리(poetry)의 입장은 시의 창작과정을 중시한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보는 측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포엠(poem)적인 측면에서는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으면 시인이 되는 것이지만 포에트리(poetry) 측면에서는 시인이 쓰는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서 먼저 시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측면으로 시를 바라보든 그 시의 작품성과 정체성은 바뀔 수 없고 시의 의미를 짚어가려면 시를 쓴 시인의 입장과 시인이 바라보고 사유하였을 그 상황과 화두를 짐작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시는 시인에게서 나오고 작품을 통한 작자와 독자의 대화가 시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편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면서 작자와 독자의 시적 대화는 시작된다. 지난 《한국시학》 2024 가을(71)호에도 많은 작품이 선을 보였다. 그 가운데에서 시의 함축적 형상이 도드라져 보이고 시적 표현이 예사롭지 않은 몇 편의 작품을 골라 찬찬히 살펴 읽어보고자 한다.
짊어졌던
가시 등짐 내려놓았고
입에 문
소태도 뱉어내었고
잡초들은
말소리에 놀라지 않고
벌레들은
발소리를 겁내지 않고
산골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구름은
저 멀리 제 갈 길로 떠나고
처사는
산속에서 바람소리 듣는다.
- 허영자, 「자연인」 전문
위의 시 허영자 시인의 「자연인」은 화자 삶의 행로가 전편의 행간마다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삶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삶의 시간으로 정렬되어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험난했을 것만 같은 삶의 “짊어졌던/ 가시 등짐”을 이제는 “내려놓았고”로 진행되는데, 이는 욕심과 욕망 등을 다 내려놓으니 “가시 등짐”과 같은 ‘지난한 삶의 무게도 내려놓아지더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리고 화자는 험난한 삶의 과정은 이뿐만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입에 문/ 소태”는 약재로 쓰이는 소태나무의 껍질 맛이 아주 쓴 것을 ‘삶이 소태처럼 쓰다’라는 말로 흔히 비유하는데 그러한 삶도 “뱉어내었”다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잡초들은/ 말소리에 놀라지 않고” “벌레들은/ 발소리를 겁내지 않”는 것처럼 무념무상의 삶 속에서 지내다 보니 “산골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있고 “구름은/ 저 멀리 제 갈 길로 떠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을 듣게 된다. ‘자연인’인 듯한 ‘처사’는 초연하게 “산속에서 바람소리 듣”고 있다. 시간의 소리, 공간의 소리, 화자가 걸어온 듯한 삶이 지나가는 소리로 인식된다. 무념무상한 곳에서 무위를 깨닫게 되는 초연한 ‘자연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을산이 제 그림자에 놀라
망설임 없이 붉다
고백하기에 너무 늦지 않은
시월 어느 날
단풍은 드러나는 거라며
단풍은 단풍나무가 으뜸이라며
카시오페이아
사무치게 돋아나는 별자리
너의 이름으로 나를 접는다
시치미 뚝 떼고
산허리를 돌아 숲으로
지극히 날아오르는 천 마리 종이학
- 유회숙, 「단풍나무 종이학」 전문
유회숙 시인의 「단풍나무 종이학」에서는 단풍나무처럼 화려한 생애를 꿈꾸는 한 여인의 삶의 총체를 보는 듯하다. “가을산이 제 그림자에 놀라/ 망설임 없이 붉다” 한다. 나르시스적인 설렘처럼 읽힌다. “고백하기에 너무 늦지 않은/ 시월 어느 날/ 단풍은 드러나는 거라며/ 단풍은 단풍나무가 으뜸이라며” 화자는 ‘카시오페이아’를 떠올린다.
카시오페이아는 북두칠성의 맞은편에 있는 W자 모양의 별자리로 11월 하순에 시각의 기준이 되는 자오선을 통과한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티오피아의 왕 케페우스의 아내로 자기의 미모를 자랑하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딸 안드로메다를 해신에게 바치고 자신은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카시오페이아/ 사무치게 돋아나는 별자리/ 너의 이름으로 나를 접는다” 한다. “시치미 뚝 떼고/ 산허리를 돌아 숲으로/ 지극히 날아오르는 천 마리 종이학”이 단풍잎처럼 날리고 있다. 환상적인 카시오페아의 꿈과 욕망이 흩날리고 있는 여인의 이상적 가을 심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제 가야 한다고
통곡의 합창을 한다
베옷 같은 허물을 벗어두고
다시 오겠노라는 기세등등한 목청은
시누이 눈치 같은 계절의 기세에
음소거로 사라진다
조석으로 밀려드는 서슬에 눌린 변덕은
귀속의 명분도 잃은 채
그나마 걸친 시스룩 같은 차림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몸부림쳐도
어김없는 시간의 쳇바퀴에 갇힌
근본 없는 존재가 서러워
저리 울고만 있다
- 전영구, 「매미가 운다」 전문
전영구 시인의 「매미가 운다」에서는 한 생애의 굴곡이 매미와 같은 삶에 비유되어 한 행 한 행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행간마다 매미와 같은 삶의 애환이 내재되어 있다.
매미는 대략 3년에서 17년 동안 땅속에서 유충인 굼벵이로 살다가 지상에 올라와서 매미가 되는데 성충이 된 후에 약 2~3주일 동안 번식 활동을 하다가 죽는다. 몇 주를 살기 위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유충으로 살아야 하는 매미의 일생이 참으로 허무하다 아니할 수 없다. 전영구 시인의 「매미가 운다」에서는 이러한 삶이 우리의 삶에 비유되어 있다. “이제 가야 한다고/ 통곡의 합창을 한다”고 한다. “베옷 같은 허물을 벗어두고/ 다시 오겠노라는 기세등등한 목청은/ 시누이 눈치 같은 계절의 기세에/ 음소거로 사라”지고 있다. 며칠 남지 않은 운명 같은 시간의 “조석으로 밀려드는 서슬에 눌린 변덕은/ 귀속의 명분도” 생각지 못하게 한다. “그나마 걸친 시스룩 같은 차림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몸부림쳐도/ 어김없는 시간의 쳇바퀴에 갇힌/ 근본 없는 존재가 서러워/ 저리 울고만 있다”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하는 말로 ‘살만하면 죽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매미의 일생이 여기에 딱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이렇게 허무하고 속절없는 삶의 형태를 갖고 있는 매미의 일생은 “어김없는 시간의 쳇바퀴에 갇힌/ 근본 없는 존재가 서”럽다 아니할 수 없다. 또 이러한 아이러니한 의미를 제시하는 「매미가 운다」를 읽고 있다 보면 지난(至難)하고 허무한 우리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얼마나 많이 가두어 두었으면
갇힌 눈물이 살을 뚫고 밀려 나오는 걸까
투명한 비닐 물통처럼 부은 노파의 몸
가장 깊어, 봉인되었던 계절의 밤
앙다물었던 빗장을 뜯고 갸륵한 꽃이 피네
주삿바늘이 꼽혔던 자리들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꽃이 피다니, 꽃이 피다니
꽃은 필 때도 질 때도 참 아프다니께
사고로 죽은 남편과 자식이 묻힌 곳여
다 썩은 가슴 헤집어 열고
자기들도 한 번 피고 싶었다고
바깥바람에 얼굴 한번 내밀어 보는 거여
무늬져 검붉게 젖은 눈시울 아래
차마 못다 한 말들이 종알종알
못다 산 생을 밀고 둥실 떠올라야만 했던
- 구향순, 「옥잠화를 읽다 2」 전문
구향순 시인의 「옥잠화를 읽다 2」는 화자가 ‘옥잠화’와 함께 하면서 꽃의 모양과 꽃의 의미 그리고 그 꽃에 얽힌 사연을 하나하나 얽고 꿰어 잠언처럼 읊은 것 같은 시로 읽힌다.
옥잠화는 옥비녀꽃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굵은 뿌리줄기에 잎이 많다. 잎은 자루가 길고 달걀 모양의 원형이며 심장저(心臟底)로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이고 8∼9쌍의 맥이 있다. 꽃은 8∼9월에 피고 흰색이며 향기가 있고 총상으로 달린다. 6개의 꽃잎 밑부분은 서로 붙어 통 모양이 된다. 옛날 중국에서 피리를 잘 부는 청년의 피리 소리에 반한 선녀가 매일 밤 내려와 피리 연주를 부탁했고 그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옥비녀를 건넸으나 그만 땅에 떨어지면서 깨졌는데 그 자리에 핀 꽃이 ‘옥잠화(玉簪花)’라는 전설이 있다. 꽃말은 ‘추억’이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는 꽃의 모습 “투명한 비닐 물통처럼 부은 노파의 몸”에 “가장 깊어, 봉인되었던 계절의 밤/ 앙다물었던 빗장을 뜯고 갸륵한 꽃이” 피었다. “주삿바늘이 꼽혔던 자리들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꽃이 피다니, 꽃이 피다니/ 꽃은 필 때도 질 때도 참 아프다니께” 하며 “사고로 죽은 남편과 자식이 묻힌 곳”에 살고 있는 노파의 서사가 시작된다. “다 썩은 가슴 헤집어 열고/ 자기들도 한 번 피고 싶었다고/ 바깥바람에 얼굴 한번 내밀어 보는 거”라고 하는 “무늬져 검붉게 젖은 눈시울 아래/ 차마 못다 한 말들이 종알종알/ 못다 산 생을 밀고 둥실 떠올라야만 했던” 꽃, ‘옥잠화’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많이 가두어 두었으면/ 갇힌 눈물이 살을 뚫고 밀려 나오는 걸까” 하는 시인의 화두를 음미한다.
시퍼렇게 무성한 소문
열매가 꽃도 없이 열렸다네
꽃 없는 나무는 치욕이다
종(種)들의 야유가 힘들었을
잡초도 꽃이 피고 풀씨 날리는데
꽃 피지 않는 나무라니
모든 잎이 움츠러드는 땡볕 아래
속으로만 익어가는
은밀한 사유
무화과 속 잘 익은 노을은
하루의 끝
그 끝에 숨어서 자분자분 일어나는 꽃자루
지중해 갯바람이 비틀거리면
우윳빛 울음이 칭얼거린다
“말라버려라”
신의 아들 저주에도 흘러넘치는
마디마다 다산의 흔적
노을빛 속살에
보란 듯이 익어가는 위로의 말
곱게 아물어 가는 상처처럼
작은 꽃들이 다소곳이 들어 있다
상서로운 열매가 피운 꽃
- 정연희, 「속으로 피는 노을」 전문
정연희 시인의 「속으로 피는 노을」의 서두를 열고 들어가면 “시퍼렇게 무성한 소문/ 열매가 꽃도 없이 열렸다네// 꽃 없는 나무는 치욕이다/ 종(種)들의 야유가 힘들었을/ 잡초도 꽃이 피고 풀씨 날리는데/ 꽃 피지 않는 나무라니” 하는 역설적인 표현의 “시퍼렇게” 날이 선 언어로 긴장감을 돋운다. 그리고 “모든 잎이 움츠러드는 땡볕 아래/ 속으로만 익어가는/ 은밀한 사유” 속 ‘무화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화과는 봄부터 여름에 걸쳐 잎겨드랑이에 주머니 같은 화서(花序)가 발달하며 그 속에 작은 꽃이 많이 달리는데 수꽃은 위쪽에 암꽃은 아래쪽에 위치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열매는 어두운 자주색의 은화과(隱花果)로 가을에 익으면 식용을 하는데, 열매 속에 꽃이 핀 특이한 과일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무화과 속 잘 익은 노을은/ 하루의 끝/ 그 끝에 숨어서 자분자분 일어나는 꽃자루” “지중해 갯바람이 비틀거리면/ 우윳빛 울음이 칭얼거린다”며 “말라버”리라 하는데, 그럼에도 “흘러넘치는/ 마디마다 다산의 흔적”이 운명을 딛고 일어서는 삶의 의지를 보이는 것 같다. “곱게 아물어 가는 상처처럼/ 작은 꽃들이 다소곳이 들어 있”는 “상서로운 열매가 피운 꽃” 무화과의 결정(結晶)이 굳건한 삶의 의지를 세운 절정(絶頂)으로 비친다. 역설적으로 전개된 무화과의 상서로운 의미가 긴장감 있게 우리의 감각을 파고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