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대륙과 일본의 중계지 역할을 해온 대마도(對馬島), 일본문화의 원형을 알 수 있는 풍부한 역사유산과 대륙의 문화가 생활, 축제, 신앙 속에 살아 있는 곳!

영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임괄)에서는 2일부터 4일까지 2박3일간 영천을 지나갔던 조선통신사의 흔적과 대마도를 정벌했던 이순몽 장군의 기개가 살아 숨쉬는 대마도로 역사문화탐방을 떠났다.

이번 탐방에는 영천향토사연구회 회원 및 가족 29명과 영천시한일문화교류회(회장 손태국) 회원 및 가족, 지인 등 19명 등 총48명이 동행했다.
탐방의 주목적이었던 2008 대마도 아리랑 축제 외에 관람했던 대마도의 문화유산들을 정리해보았다.
▶ 개요

한국 부산에서 49.5㎞, 일본 후쿠오카에서 138㎞인 대마도의 면적은 708㎢로 제주도 면적의 약40%이며 섬의 89%가 산림지대이다.

본 섬 외에 107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 5개 섬이 유인도이고 본 섬은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두 선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2004년 쓰시마시로 승격되었으며 6개의 마치(町)로 구성되어 있고 2007년 12월 현재 15,740세대 37,842명이 살고 있다.

부산국제여객선부두에서 남선인 이즈하라까지는 2시간50분, 북섬 히타카쓰까지는 1시간50분정도 소요된다.

푸른 바다, 녹음 우거진 산, 멀리 보이는 한국! 국경의 섬 쓰시마에는 웅대한 자연과 영원의 신비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일본계 동식물뿐 아니라 대륙계, 남방계 동식물이 함께 서식하는 생물 분포의 교차점으로 학술적으로도 소중한 자연의 보고다.

또한 바다, 산, 강 그리고 바람…. 천혜의 자연이 주는 즐거움과 마음의 안식을 누릴 수 있지만 척박한 토지로 인해 자금자족이 어려워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노략질을 일삼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 에보시타케전망대

2일 이즈하라항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에보시타케전망대(烏帽子岳展望所). 대마도 내에서 유일하게 360° 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여기서 보는 아소만은 몇 겹의 산과 바다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리아스식 해안 등 웅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한국 핸드폰이 터진다는 가이드의 말에 일행들이 시험해봤지만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와타즈미신사

에보시타케전망대에 이어 찾은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는 바다의 신인 모신 해궁으로 용궁전설이 남아있다.
본전 정면의 다섯 개의 도리이(鳥井)중 바다 위에 서있는 두 개의 도리이는 조수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어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 만제키바시

만제키바시(万關橋)는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세운 다리다. 현재 둘로 나눠진 대마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로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후쿠자키민숙

온천욕과 마트에 들러 간단한 쇼핑을 한 뒤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에 있는 후쿠자키민숙으로 향했다.
한국인 박무용(52)씨가 지난달부터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50명(여행사 사장, 가이드 포함)의 손님을 수용하기에는 좀 벅차보였지만 우리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박씨는 대마도에서는 한국인도 쉽게 집을 구입할 수 있지만 허가과정이나 증축 등을 하면서 절차도 복잡하고 경비도 많이 소요되므로 주의를 해야 된다고 귀띔했다.
▶ 미우다해수욕장

일행 중 36명이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돼 아침을 먹고 이날 운항을 하는 히타카쓰(比田勝)항으로 향했다. 2시간여 걸려서 도착한 히타카쓰에서 점심을 먹고 짬을 내 미우다해수욕장(三宇田海水浴場)을 찾았다.

1996년 ‘일본의 해안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매우 고운 입자의 천연모래 해변으로 에메랄드그린의 바다는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 최익현선생 순국비

먼저 떠난 일행들을 배웅하고 2008 대마도 아리랑 축제가 열리고 있는 이즈하라항 야외특설무대에 도착한 남은 회원들은 공연을 보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최익현 순국비를 답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항일투쟁의 상징인 면암 최익현 선생은 대마도에 유배돼 순국했고 선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6년에 이곳에 비를 세웠으며 슈젠지(修善寺)는 백제의 비구니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 고모다하마신사

대마도 답사 마지막 날 아침, 가이드 서경석(44)씨는 마음이 급했다. 일정이 꼬여 얽힌 가운데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침을 먹고 급하게 나섰다. 인원이 줄어든 덕에 버스를 45인승에서 25인승으로 바꾸고 나니 한층 기동력이 살아났다. 대마도는 도로사정이 열악해서 자동차가 교행할 때면 길옆에 바짝 붙어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고모다해변 옆에 위치한 고모다하마신사는 1274년 여몽연합군의 일본 진격시 처음으로 상륙한 곳으로 당시의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고 제사지내는 곳이다.
1274년10월3일 여몽 연합군이 경남 마산만의 합포를 출항했다. 3만 3천명의 군인이 탄배 900여척이 일본 내륙을 치러가는 길에 대마도 서해안에 상륙했다. 몽골군은 몽골군과 한인 2만 5천명에 고려군 8천명이었다.
고려 장수는 김방경, 박지량, 김흔이었다. 이어 1281년5월에 다시 여몽연합군이 합포를 출항, 대마도 코모다를 거쳐 하카다로 진군한다. 우리 장수는 역시 김방경이었다. 그런데 마침 불어온 태풍이 일본을 위기에서 구하게 되는데 그 바람을 카미카제, 즉 신풍(神風)이라 부르게 됐다.
신사 뒤쪽에는 최근에 개장한 해수욕장이 잘 조성돼 있었지만 해수욕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 이시야네

이시야네(石屋根, 돌지붕)는 대마도에서 채석된 판형의 돌로 지붕을 이은 고상식 건물로 창고로 사용돼 왔다.
일본에서는 대마도 시이네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로 본채에서 떨어진 곳에 마련해 풍수해나 화재의 피해로부터 재산을 보호하려고 했다.
▶ 쓰쓰자키

대마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쓰쓰자키는 거친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암초들 그리고 바다 저편의 새하얀 등대가 절경을 이룬다. 대함 해협과 쓰시마해협의 경계로 해류가 빨라 예로부터 거친 수로로 유명하다.

고기가 잘 잡혀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으로 대동아전쟁 화약보관창고가 인상적이었다.
▶ 아유모도시자연공원

대마도 남부에 위치한 아유모도시자연공원은 26㏊의 대자연 경관을 살렸으며 계곡전체가 화강암으로 덮여있고 산책로, 캠프장, 스포츠 슬라이더, 골프연습장, 만남의 광장 등이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며 신녕 치산계곡의 깨끗함을 생각했다.
▶ 쓰시마번 오후나에 유적지

이즈하라 항의 남쪽 구타(久田)포에 남아있는 옛 에도시대 대마도 번주의 선착장으로, 항해에서 돌아온 배를 격납하거나 수리한 곳이다. 내부에 4곳의 돌출 제방과 5곳의 선거(독, dock)가 있다.
나가사키현 지정사적인 이 유적은 1663년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돌담은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만조 시에는 많은 양의 바닷물로 채워져 대형 선박도 출입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간조 시에는 물이 빠져 하물의 선적 등에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정문, 창고, 번주의 휴식처 등도 남아 있어 당시의 웅대한 규모를 엿볼 수 있다.

에도시대 해안에 위치한 번은 이러한 선박 격납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이와 같이 훌륭히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곳은 그 예를 찾기 어렵다. 선사시대부터 에도시대에 걸쳐 오랜 기간 동안 대륙과의 통교 시 무역선을 이용한 쓰시마번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번의 전용 선박을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일정 금액을 받고 일반 서민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

점심식사를 하고 승선할 때까지 이즈하라 일대의 유적지를 관람하기로 했다. 쓰시사역사민속자료관은 1978년 12월 개관해 도내의 문화재, 고고 역사자료, 민속자료, 소가(宗家) 문고 등 귀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조신통신사 행렬도도 볼 수 있다.

고려문과 조선통신사의 비, 향토문화관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서 200여m 뒤쪽에 덕혜옹주결혼봉축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쓰시마번주 소 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 결혼했다.
이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건립됐으며 현 기념비는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다.

2박3일간 대마도를 답사하면서 일본인들이 아주 친절하다는 것과 깨끗한 거리, 경차가 유난히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를 가도 질서정연하게 주차된 차량들을 볼 수 있었으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듯했다.
좀더 여유를 갖고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산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