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늘 원고/김용락 시인의 영화로 읽는 문학 에세이(10. 2. 25)
슬픔의 심연, 인생의 길에 만나는 <워낭소리>
김용락
(시인,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희망숲대구교육연구소 소장)
근래 내가 쓴 졸시 한 편을 인용하는 것으로 영화 <워낭소리>에 대한 감상을 시작한다.
다문화 가족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리는 학교 강당
스물한 살 베트남 새댁이 떠듬떠듬 한국말을 이어간다
베트남 소 눈 커요, 한국 소 눈 커요
베트남 소 일 잘해요, 한국 소 일 잘해요
베트남 사람 착해요, 한국 사람 착해요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돌연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여보 사랑해요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 하면서
말하기를 끝낸다
그 눈빛이 하도 애절해 따라가 보니
강당 뒤편 5o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허수룩한 한국 사내가 갓난아이를 안고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서 있다
-김용락 <여보 사랑해요> 전문
시 내용은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이다. 다문화가족 문제가 국가적인 화두가 되었다. 베트남, 몽골을 비롯한 아시아 각 지역 출신의 어린 신부들이 우리나라에 시집 와서 겪는 어려움은 익히 아는 바이다. 어린 신부뿐 아니라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와서 고생하는 이국의 젊은이들의 딱한 처지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에 근접하고, 스포츠에서도 세계 강국이 되었다. 그제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국민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외국인 어린신부나 외국인 젊은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 관대하게 대할 때도 된 것 같다. 이 문제는 단일 국가적인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인류의 사해동포적인, 휴머니즘 관점에서 봐야한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국가정책적인 측면, 국민 개개인의 인도주의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성찰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외국인 어린 신부가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출전해서 발표한 이야기 한 내용이 인용한 시의 전문이다. 애초 이 시를 쓸 때 시인의 눈에는 어린 신부의 애절한 눈빛이 시적 관심사였지만, 영화이야기를 쓰는 이 지면에서는 소 이야기가 중심이다.
베트남 신부의 말에 따르면 베트남 소도 눈이 크고 일 잘하며, 한국 소도 눈이 크고 일을 잘한다. 동서고금, 지역을 따지지 않고 소는 선하고 일 잘하는 인간에게 이로운 짐승인 것같다. 영화 <워낭소리>에 대한 기본정보를 얻기 위해 다음에 들어갔더니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타리 영화이고, 상영시간은 78분이며, 300만 명이 관람했다는 기록이 뜬다. 그리고 영화 줄거리도 아래와 같이 요약되어 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 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 노인의 베스트 프렌드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 노인이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도 귀신같이 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 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최 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줄거리 다음에서 인용)
나도 이 영화를 두어 번 봤다. 전체적인 느낌은 수묵화를 보는 듯한 잔잔한 감동, 그리고 시골의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는 듯한 생생한 사실감, 그리고 어떤 형언하기 어려운 옅은 슬픔 같은 걸 느꼈다. 특히 경북 봉화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의성과 안동지역과 함께 경북 북부권 같은 방원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구사하는 사투리가 똑 같았다. 이 부분이 나 개인에게는 훨씬 사실적인 감동을 전해주었다.
영화가 개봉되어 화제가 된다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우선 ‘워낭소리’라는 제목의 뜻이 뭔가 의아했다. 나도 어릴 때 소 먹이러 산에 많이 갔다. 그때 우리는 ‘워낭소리’라고 하지 않고 ‘요롱(령)소리’라고 했다. 소의 목 부분에 달린 조그마한 쇠종 소리를 우리는 요롱소리라고 했는데 그게 사투리이고 워낭소리가 표준어인지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흔히 바쁠 때 ‘부랄에서 요롱소리가 날 정도로 달렸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때의 요롱이 바로 이 워낭과 같은 물건인 것이다.
그런데 안동에 살고 있는 권정생 선생의 동화 <용구삼촌>을 보니까 거기선 요롱소리라고 하지 않고 워낭소리라고 한 게 있어서, 아 선생님은 사전을 찾아보고 이 동화를 쓰셨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안동 의성지역에서는 열이면 열이 다 요롱소리라고 하지 워낭소리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사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독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른 한 분을 줄곧 생각했다. 전우익이라는 분인데 봉화에 살았던 농부이자 산문가였다. 이 어른은 곡절이 있는 분이었다. 1925년 생으로 당시는 시골에서는 좀처럼 어려운 서울 중동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주의 청년운동을 했던 분이었다. 한국전쟁과 좌,우 갈등이라는 어려운 시대상황 때문에 7-8년의 징역살이를 했다. 석방된 이후에는 사상범으로 분류되어 주거제한 된 몸으로 평생 봉화 상운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분이다. 매주 1회씩 형사의 사찰을 받았고 동네 밖으로 외출할 때는 관할 경찰서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런 생활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려서 이념갈등이 다소 희석될 때까지 계속됐다.
여느 평범한 농투사니 와는 다른 일생을 산 분이었는데 말년에 그 분은 산문집 <혼자서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 옵디까?>와 같은 인생에 대한 철리와 향이 짙은 산문집을 펴내고 돌아가셨다. 이 책들은 당시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에서 선정하는 우수도서로 선정되면서 늘그막에 유명세를 좀 타기도 했고, 약간의 돈을 만지기도 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이 분이 작고한 뒤 나는 <내일신문>에 한국의 노신이라 칭하면서 추모사를 발표했고, 어떤 신문에서는 한국의 스콧 니어링(미국의 생태주의자)이라고 추모하기도 했다. 전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자기 이웃에 살던 진짜 농삿군 영감에 대해 뭐라고 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우직하게 자기 삶을 끌고 간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소’의 삶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리저리 부침하면서도 묵묵히 자기 생을 충실히 선생께서도 살고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워낙 소탈하시어 권위를 찾지 않으셨지만, 역사를 보는 높은 혜안과 인생의 철리를 꿰뚫어보는 철학에 매료되어 나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가 선생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생의 삶이 사회적이거나 개인사적으로 둘 다 불행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삶이었지만, 아파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그것을 속으로 묵묵히 익혀 향기나는 문장으로 빚어낸 선생의 인고의 작업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나는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기면 울면서 선생님께 투정을 부리면서 선생님께 위로 받을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전 선생님의 아들 가운데 이름이 ‘용구’가 있다. 내 보다 몇 살 위여서 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는 선배인데 권정생 선생의 동화 <용구삼촌>에 나오는 용구삼촌의 용구라는 작명을 이 형님의 이름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이 동화는 권정생의 대표작인 <강아지 똥> 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작품인데 동화 주인공 용구삼촌은 물론 현실의 용구 형과는 다르다.
동화 주인공 용구는 나이가 서른이지만, 건너집 다섯 살 아이보다 더 철이 없고 세상물정을 모르는데다 가는귀까지 먼 일종의 바보였다. 그 용구삼촌이 소 먹이러 용뿔골짜기에 갔는데, 소만 혼자 돌아오고 용구삼촌은 돌아오지 않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찾아 나서 용구삼촌을 찾아낸다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대목은 끝부분에 나오는데 산속 다북솔 밑에서 용구 삼촌은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이 애타게 찾는 줄도 모른 채 천연덕스럽게 자고 있는 것이었다. 그 품속에 회갈색 토끼도 함께 잠들어 있었다.
이 동화에서 용구삼촌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마 토끼와 다북솔 아래서 함께 잠자기는커녕 아마 토끼를 사냥해 삶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용구삼촌이 바보였기 때문에 토끼를 품에 안고 잠들고, 토끼도 사람인 용구삼촌과 함께 잠들었을 것이다. 권정생 문학의 중요한 본령인 인간과 자연과 융합,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박애주의 사상이 잘 드러난 작품인데, 이 작품과 <워낭소리>의 소와 주인공 노부부의 삶이 어떤 점에서 동궤의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권정생 역시 세속적인 측면에서 불행하기로 치자면 전우익 선생 못지않은 분이지만, 이 분 또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간 분이다. 서구의 어떤 비평가는 ‘시는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는 금언을 남겼지만, 어떤 의미에서 영화 역시 인생에 대한 비평이자 성찰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실존적으로 목에 ‘워낭’을 달고 인생이라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소’인지 모른다. 그 생의 길에 늙은 농삿군 최 씨 어른과 대지의 어머니와 같은 주인공 어머니가 도반으로 함께 걷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워낭소리는 인간들이 걸어가는 길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고통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가 워낭소리를 귓전에 얹고 묵묵히 밭을 갈고 수레를 끌듯이, 인간도 세상사 고통의 단말마를 귓전에 흘리면서도 끝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야만 하는 슬픈 존재인지 모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