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도 불자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집사입니다. 그런데 절에서 남편 사업이 어려울 때 1000일 불공기도를 드리면 사업이 불길 같이 일어 날 것이라고 해서 1000만원을 드려 1000일 불공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교회로 개종해서 신앙 생활하는데 담임 목사님께서는 일천번제헌금을 매일 만원씩 하면 남편 사업이 잘된다고 합니다. 목사님! 일천번제헌금이란 뭐예요?
1. 성경에서 일천 번제의 의미
다윗의 뒤를 이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솔로몬이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사실이 “역대하 1장 6절에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불교와 같이 1000일 동안 기도한 것이 같이, 1000일 동안 희생을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즉 일천 마리를 번제로 태워서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일천이란 수를 제물의 많은 수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번제는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사입니다.
솔로몬이 회중과 함께 그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에 곧 회중의 성막 옆에 있는 놋 제단에 이르러 그 위에 번제 헌물 일천희생으로 드렸더라.(대하1;5-6), 또한 역대상 29장21절과 역대하 7장 4-7절 등 솔로몬의 제사를 다룬 다른 성경구절을 보더라도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1000마리의 많은 생축을 태워서 제사 드린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받으시고, 꿈에 나타나서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4-5)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쁘게 여기셔서 지혜 외에 부와 귀와 장수를 약속하셨습니다.(역하1;7-12)
2. 한국교회의 일천 번제의 의미
한국교회의 유행처럼 퍼져 가는 이 일천번제는 솔로몬 일천번제를 예로 들었기 때문에 매우 성경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불자들이 소원 성취를 위해서 1000일 동안 정성을 다하여 불공을 드리듯이 매일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 왕이 드린 일천번제는 왕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권력자나 재력가가 아니면 일천번제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항한 믿음이 강했음을 보여 줍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지금 한국 교회에서 드려지는 일천 번제와는 분명이 달리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일천번제는 불교인들이 1000일 동안 소원성취를 위해서 드리는 불교의 불공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다른 기독교 국가 교회에는 없는 것이 한국교회에 있다는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필자는 승려생활에서 개종한 목사로서 불교인들이 하는 1000일 불공과 연관에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한국 불교 사찰에서는 1000일 불공 프랑카트를 대웅전에 걸어 놓고 회원을 모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제는 “사업문제”, “입시문제”, “승진문제”, “질고문제” 등 현실적인 기복적인 소원 성취를 위한 1000일 불공입니다. 한국 교회 일부목회자들이 일천번제 한번 해보라고 합니다. 한 번에 1000만원 헌금하기 힘들지만 매일 1만원씩 일천번제로 1000만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한 매일 5000원씩 하면 500만원 할 수 있고, 1000원 씩 하면 100만원은 누구나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일수 돈 찍듯이 일천번제 드리면 교회 재정문제는 해결 된다는 것입니다.
3. 한국교회 행해지는 일천 번제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기뻐하시고 솔로몬에게 내가 무엇을 주기를 원하는가하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국민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귀와 장수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사찰에서 1000일 불공 회원을 모집하면서 불공드리는 명목으로 큰 액수의 돈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사찰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천번제 예배가 교회 재정을 채우기 위해서 성도들에게 권유한 다면 기복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교회의 일천번제는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개종한 목사로서 불자들이 1000일 불공기도 드리는 모습과 너무나 유사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천번제가 한국교회에 시작된 역사는 몇 십년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불교적인 문화와 사상들이 교회 안에 정착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뜻을 성도들에게 바로 가르쳐야하겠습니다.
서재생목사/ 서울대현교회
첫댓글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한번에 드려진것입니다.그러니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은 너무 편엽한해석입니다. 저도 목사입니다.저희교회는 제가 먼저 일천번제를 말하지 않았는데 평신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그래서 교회에 정착한 헌금이되었습니다.
헌금의 가장 중요한말씀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것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구약적 일지언정 신약적 이지는 않습니다.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의미를 바로 가르치고 기복적 헌금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헌금이라는 용어도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것이요"라고 말씀하시는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 왜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바친다는 개념 보다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설립된 목적대로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전파,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구제금, 목회자의 생활비 지원, 기타 교회운영에 들어 가는 일체의 비용 등- 이러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경제적 형편과
교회의 경제적 형편을 감안하여 정성껏 연보를 하면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지 일 천번 헌금을 통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기독교를 기복주의로 만들어 가는 유감스러운 헌금방식일 뿐입니다. 저는 기적적인 큰 축복을 받은 적은 없지만 직장에서 땀흘려 노력하고 근검절약하여 모은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천번제헌금을 통하여 큰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믿음도 정성도 모든 것을 헌금이라는 잣대로 평가되는 한국교회... 교회 속의 이러한 배금주의와 세속주의를 극복 못한다면 아무리 교회 마다 전도 총동원주일 및 부흥회를 하더라도 신자 수는 감소될 뿐입니다
제가 신앙생활 30년을 하면서 목도한 것이지만 서민들에게는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주일 날 교회와서 예배와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새롭게하고 힘을 얻어 돌아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헌금의 강조로 인해 마음의 무거운 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의 발 걸음이 얼마나 많은지 목사님은 아시는지요?. 오죽하면 전도를 안하는 카토릭은 성도 수가 늘고 있고 전도를 강조하는 개신교는 성도 수가 감소하고 있으니...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교회의 세속화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혁교회는 잘못된 것을 계속 개혁해가는 것인데 한국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다 잃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것입니다.헌금을 거둔다는생각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헌금은 잘못된것입니다.일천번제는 율법이아닙니다.물론.일천번제를 매일 드리라는 성경의 가르침도 없습니다.그러나 일천번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날마다드려진다면 그것은 이천번제이든 삼천번제이든 아름다운것입니다.
일천 번제가 율법이 아니라니요? 제가 알기로는 신학교에서는 "의식법(제사법), 시민법은 구약 당시에만 적용되고 신약시대에는 구속력이 없다. 다만 도덕법만 복음의 빛안에서 바르게 해석 되어 원용할 수 있지만 문자적 구속력은 없다"라고 가르치는 것으로 아는데...일천번제는 의식법(제사법)에 해당되고...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제가 읽은 책 "율법의 계속성과 단절성" 서철원박사(총신대)과 개혁주의 윤리학 J 다우마(기독교문서선교회)책의 가르침이 잘 못되었다면 지적 좀 해주세요. 예수님이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달리므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켰는데 또 무엇이 부족한것 처럼 또 일천번제를 통해 하나님께 날마다 드려진다니요?
헌금을강요하는 목사는 잘못된 것입니다.헌금은 자발적이어야 합니다.또한 불교에서 1000일 기도를하는데 기독교가 따라가는 것이라고 혹평을 하시는데 이해는됩니다.그러나 우리나라 다종교상황속에서 비슷하다고 모든것을 혼합주의로 몰고가는 해석도 잘못된 것입니다. 일천번제가 문제가 아나라 모든헌금을 어떻게 드리,
모든 헌금을 어떤 믿음으로 드리는가?가 문제입니다.일천번제헌금이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고백에서 드린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헌금인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십일조헌금이라도 하나님중심으로 드리지 않고 인본주의로 드린다면 그것은잘못된
헌금일것입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그러나 주일낮예배때에 제대로된 성경적인 솔로몬의 일천마리를 드린제사에 대하여 설교말씀을 전해야할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이 전혀 모르고 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또한 우리 한국교회에 일천번제가 시작된 계기도 한번 살펴보아야 하리라 사료됩니다. 목사님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감사함으로하나님께 귀한예물을 드림은 참으로 귀한믿음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성경적인 믿음에서 드려질수 있도록 바른 의미를 가르쳐야할 의무가 목사에겐 있으니까요. 감사가 넘치는 교회가 되시기를~~
지금은 마지막때입니다. 거룩한.생활과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써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합심이 중요한 때입니다.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물론 헌금은 하나님이 주신것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림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입니다. 하오나 성경에서 말하는 일천 번제의 바른의미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두 렙돈을 드리고 칭찬받은 믿음을 본 받읍시다. 일천번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일천번의 행위보다 한번의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성도가 솔로몬의 위치에 있지 않음을......
거듭남을 입은 성도는 이미 하나님안에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하여 내가 드리고 안드리고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모두다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번제는 신약에서 이미 완성되어 더 필요치 않는다고 봅니다. 일천번제를 돈으로 대신하여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제사드린바 된 것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성도들에게 물어보십시요. 순수하게 드리기만을 하는 것인지? 그 내면은 모두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감사함으로 드려야 되는데...분명코 뜻을 잘 알지못하고 불교식으로 드려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울교회 권사님 한분이 저에게 일천번제 헌금을 드리면 복받는다고...그분도 일천번제를 삼년동안 아침 금식을 하면서 드린분인데 지금 형편은 너무도 많은 빚으로...적어도 제 생각으로는요...오늘날 다소의 교회들이 너무 물질에 집착하여 감사함으로 드릴수있도록 말씀을 잘 가르쳐 주셔야는데 꼭 돈 걷는 목적으로 강요하는거 같이 여러가지 종류의 헌금봉투를 만들어서 들어오는 입구에서 손에 들려주는걸 보면 속상하고 안타까워요...처음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가 돈걷어 들이는 곳인줄 알고 아마도 착각할거예요..
아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돈으로 사는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감사함으로 하나님께드리면 된다고 봅니다.금액이나
기간이나 뭐이런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어떤명분을 만들어 전성도에게 강요한다고 해도 자신형편을 생각할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드리면 된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일천번제는 일천개의 재물을 동시에 드린제사로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큰제사를 드린겁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마치 일천번에 제사를 드린것처럼 몇번째헌금 몇번째헌금 하면서 천번을 드리는것은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차라리 감사헌금으로 명하시지요 예물을 드리는 마음을 하나님께선 중하게 보실겁니다
감사히 읽고 가옵니다^^*
오래전 저도 기도하며 일천번제 헌금을 하며 몇백번째 하는도중 예수님께 돈주고 뭔가를 바라는 느낌이들어 자꾸 형식적으로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고만둔적이 있습니다. 어떤 헌금이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미신이나 불교처럼 정성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정말 하나님을 아주 데리고 노시는군요. 안타깝네요.
rkatk
은혜의 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