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조 / 강화학과 문학의 접점 / ≪한강문학≫ 31호 권두언
강화학과 문학의 접점
성기조
한국문학진흥재단 이사장, 《문예운동》, 《수필시대》 발행인 겸 편집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역임),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한국교원대학교 교수(퇴임)
세상에는 줏대 없는 생각들이 갈갈이 찢겨져 어지럽고, 주먹 쥐고 내세울만한 크고 참다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을 치유해 낼 수 있는 것은 문학이란 생각을 갖는다. 그 까닭은 문학은 순수할 뿐 고집스럽지 않고 문학은 진실과 양심에 호소할 뿐 성패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생각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학儒學을 숭상해 오던 우리들은 숨이 막힐만한 학문적 규범 속에서 신유학新儒學까지 비판하고 이학理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심학心學의 발전을 꾀해 왔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주지적主知的 이학理學에서 지知, 정情, 의意 온전한 발휘와 실현을 뜻하는 치양지설致良知設로의 전환을 지행합일知行合一로 중심 사상을 삼고자 했다.
문학이 무엇인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진실한 삶의 기록이 아니던가. 당연히 존재存在와 심성心性, 이理와 기氣로 이원화二元化된 사상을 하나로 묶는 이理는 기氣의 조리條理요, 기氣는 운용運用에 불과한 것이니, 이理와 기氣가 공존하는 이즉기理卽氣로 일원화一元化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마음이 곧 이치가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 발전하여 ‘문학은 도道가 아니다’란 생각을 낳았다. 맞다. 문학은 도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의 이치에 맞는 행동을 그리는 예술로 정착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명나라 때 왕수인王守仁(호:양명陽明, 1472~1528)에 의해 창시된 양명학陽明學이 들어온 조선 중종 때, 새로운 학설로 이 사상을 받아들이는 학자들과 이를 이단이라고 부르고 배척하는 학자들의 싸움은 조선의 사상계를 격랑으로 몰아넣었다.
대표적 학자이며 사상가였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도 격렬하게 비판 하고 나섰다.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양 거두들의 배척으로 양명학이 이단으로 몰려 변방으로 밀려났다.
변방으로 밀려난 양명학이 발붙인 곳이 이곳 강화땅이었다. 조선 후기 하곡霞谷 정제두鄭齋斗1649∽1736)는 서울의 명문 출신으로 관계에 몸담아 왔다. 주자학朱子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61세 때, 강화도 하곡霞谷으로 옮겨 살면서 본격적으로 양명학 연구에 헌신했고 권위주의 학풍과 당쟁으로 얼룩진 주자학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는 주자학이 정쟁의 도구로 타락했다고 파악하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학맥으로는 아들 후일厚一과 외손 신작申綽, 그리고 윤순尹淳, 심육沈錥, 이광사李匡師 등이며 실학實學으로 저변을 넓혀 한말에 위정척사의 사상적 골격이 되어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문학으로는 이건창李建昌, 김택영金澤榮, 황현黃玹 등이 있고 뒷날 정인보鄭寅普도 이 계보에 속한다.
이건창이 전라도 보성에 귀양 간 뒤, 그 곳의 문인들과의 관계가 깊게 이루어졌다.
“강화학 250년은 모진 핍박과 갖은 곤궁 속에서 성취한 인간의 존엄과 그 발견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을 그들은 내세운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자진할 때 “내가 꼭 죽어야할 이유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란 말을 남겼다. 나라를 잃었고 살아갈 희망이 없는데, 잃을 나라를 찾을 힘도 무망無望한 상황 속에서의 절규였다.
강화의 문학과 정신은 이건창, 김택영, 황현, 이건승 등에 의하여 전해왔고 정인보가 정리해서 엿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말의 숱한 의병들이 그 얼을 보존해 왔다. 이 정신적 자산을 한국의 중심사상으로 재현 해내려면 사상적 측면과 문학적 측면에서 폭 넓게 살펴보아야 한다.
《한강문학》이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따라 투철한 인물과 사상, 그리고 문학적 유산을 남긴 인물을 발견, 재조명하는 의미로, 강화학파에 관한 사상과 문학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자리에서 이를 주관하며 주제를 발표하는 하곡학연구원 이경룡 원장과 그리고 토론에 참가하는 이 방면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오늘의 행사는 큰 뜻을 가진 것으로, 250년을 이어 온 강화학의 사상적 뼈대와 그 사상이 한국문학에 끼친 흔적을 찾아 한강, 특히 그 흐름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강화섬에서 사상적 특성을 찾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주제 발표자와 토론에 참가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2017 만추, 《한강문학》 江華 세미나〉기조강연 발췌)